[송태흔 칼럼] 회개하고 돌아온 전도자 마가 요한
주후 1세기 당시 로마 및 이방지역의 신실한 전도자로 알려진 마가 요한은 ‘비추이다’ 라는 의미를 지닌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는 제2복음서, 즉 마가복음을 기록한 기자로 알려져 있다. ‘마가’라는 이름은 신약성경에 모두 9번 나오는데, 사도행전 12장 12절, 25절, 13장 5절, 13절, 15장 37절, 골로새서 4장 10절, 디모데후서 4장 11절, 빌레몬서 1장 24절, 베드로전서 5장 13절 등에서 보인다. 사도행전 13장 5절 및 13절 에서는 단순히 ‘요한'이라고만 기록하고 있다.
그는 당시 이스라엘의 성도(聖都)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정통 유대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크리스천인데, 히브리식 본명은 ‘요한(John)’이고, 전도할 때 불려진 로마식 이름은 ‘마가(Marcus)’이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기사는 성경에 전혀 나타나 있지 않으나, 어머니의 이름은 마리아로 표기되어 있다. 성도(聖都)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집은 예수 그리스도 제자들의 거처와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의 중요한 집합 장소였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모일 수 있을만한 큰 저택(邸宅)을 가지고 있었고, 노예들을 두고 있던 것 등으로 미루어 넉넉한 살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행 12:12,13).
바나바의 생질이었다는 점에서 마가 요한은 지중해의 구브로(Cyprus)섬 출신 레위족인 것으로 생각된다(골 4:10, 행 15:37, 39). 마가 요한이 마가복음 14장 51절에 등장한 청년이었다면, 생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전도와 관련된 최초의 기사는 첫 오순절 사건으로부터 15-16년 후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교회를 방문한 일이다(행 12:25). 그곳에서 사도 바울 일행의 제1차 전도여행 수종자로서 마가 요한이 동행했다(행 13:5). 수종자 마가 요한은 숙박 여정(旅程)을 짜고, 일행들의 짐을 관리하며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시중을 드는 일을 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수세(水洗)할 때 어린 마가 요한은 옆에서 돕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마가 요한은 구브로(Cyprus)를 거쳐 밤빌리아의 버가까지 바울 일행과 동행했다. 버가에서 사도 바울 일행을 떠나 돌연 예루살렘 자택으로 돌아갔다(행 13:13). 그가 떠난 이유는 공포에 질려서인지, 곤란을 극복할 수 없었음이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급진적 이방 전도를 찬성할 수 없었음인지 분명치 않다. 감정이 상한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때 마가 요한과의 동반을 거부하여 바나바와 결별(訣別)하기에 이르렀다(행 15:38). 마가 요한은 바나바를 따라 고향 구브로로 건너갔으며, 여러 해 동안 그의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이며, 그로부터 11-12년 후 일이다. 마가 요한은 로마에서 영어(囹圄)의 생활을 하는 사도 바울을 섬기게 됐다. 사도 바울은 그를 골로새 교회에 추천하여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고 말했다. 사도 바울은 마가 요한에게 ‘동역자’, ‘나의 위로’라고 불렀다(골 4:10-11, 몬 1:24). 사도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고 명령하기도 했다.
전에는 바울의 사역에 걸림돌이나 방해거리 취급을 당한 그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동역자가 됐다. 사도 바울이 세상을 떠난 이후, 마가 요한은 선임 사도 베드로를 성실하게 도와 일했다(벧전 5:13). 사도 베드로는 그를 ‘내 아들 마가’라고 부름으로(벧전 5:13), 그들 사이에 친밀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과 로마 사람들에게 붙잡혔을 때,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자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친 청년이 마가 요한이다(막 14:51,52). 그는 외국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 사도 베드로의 통역관으로 일했다고 전해 진다. 학문이 없는 사도 베드로는 로마 등지에서 설교를 할 때 통역을 세워야 했다. 베드로는 마가 요한에게 예수 그리스도께 배운 성경과 신학을 열심히 가르쳤다. 마가 요한은 사도 베드로에게 듣고 배운 것을 빠뜨리거나 오전(誤傳)하지 않도록 전심을 다해 마가복음을 기록했다.
그의 만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소식은 분명치 않다. 이집트 사람들에게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알렉산드리아에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개척하다 순교했다고 알려졌다. 나이가 어릴 때는 미숙하여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에 큰 장애가 됐지만, 청장년이 돼 자신의 부지중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고 성숙해진 이후에는 하나님의 교회와 지도자들을 위해 헌신했던 신실한 성도가 됐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실수를 범할 수 밖에 없다. 고의에 의한 실수가 아니라면, 그것의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실수를 용서하실 것이고, 이 땅의 사람들도 용인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교회 및 정치, 재계 지도자들의 실수들이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대법관 후보, 장관 후보,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윤리적 검증이 국회 청문회 및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특히 12월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검증이 매섭게 이뤄질 것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5년간 이끌어 갈 중요한 대통령을 뽑는 데는 세심한 검증과 확인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점검에 대한 원칙도 없이 무조건 과거의 실수를 만방에 드러냄으로 유능한 후보들에게 흠집만을 안기는 부정적 방식은 지양돼야 한다. 부지중 실수는 후보자 입으로 직접 고백하게 해서 국민들에게 용서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고, 고의적 범죄는 철저히 검증해서 후보자 자격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