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느 1:11)
느헤미야는 기도로 어떤 장애든지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로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와 사랑이라는 두 가지 명제를 생각하면서 성경에서 기도의 사람 혹은 사랑의 사람으로 가장 적합한 모본이 없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가 가장 적절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술 맡은 관원장으로 높은 직책을 맡았기에 편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민족의 아픔과 슬픔, 고통을 가슴에 안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울면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느헤미야를 민족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기도는 민족을 구원하는 도구입니다. 이 시대의 사명자는 누구입니까? 높은 지위를 가진 자들입니까? 아닙니다. 이 시대의 고난과 아픔을 가슴에 안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민족의 아픔과 슬픔, 고통의 자물쇠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열쇠로 그 아픔을 달랬습니다. 기도의 열쇠를 통해서 그 문제들을 이겨냈습니다.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의 사람이라고 할 때 바로 연상되는 이미지는 어떤 것입니까? 세상과 유리되어 특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연상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그러한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눈만 감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도피해 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깊은 산 속이 아니라 우리 주변 어디에서든 만나게 됩니다. 성경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눈을 뜨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적 현실을, 눈을 뜨고 냉철하게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문제의 자물쇠를 정확히 분석하고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어떤 기도의 열쇠가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귀가 열려 있습니다. 열린 귀로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듣는 사람입니다. 주위의 소리를 듣고 주변 환경을 바라보니 가슴이 답답하고 아파서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마침내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결코 안일하거나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방 나라에서 상당한 지위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의 지위에 만족하고 고국의 현실을 외면해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걱정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입니까? 800마일이나 떨어진 이방 나라에서 조국의 현실을 알았다 한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성경은 느헤미야가 앉아서 울고 슬퍼했다고 증언합니다.
그런데 울고 슬퍼하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위대한 삶의 비밀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기도는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는 울고 슬퍼하다가 일어났습니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를 알고 기도의 힘을 알았습니다. 느헤미야는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금식 기도는 가장 절박한 기도의 형태입니다. 느헤미야가 금식 기도했다는 말은 밥 먹을 시간까지 아껴가며 기도하는 일에 전심전력했다는 뜻입니다. 그는 전적으로 기도했습니다. 누군가를 참으로 사랑한다는 것의 증거는 기도입니다. 누군가를 향한 사랑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은 기도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기도했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안고 황폐한 예루살렘 성과 그 성에서 고생하고 고통당하는 동족들을 바라보면서 무릎을 끊고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고국의 아픔과 어려움을 왕에게 말해 해결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보다 하늘의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실망합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실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기도 방법
느헤미야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고 역사를 바꾸는 이 위대한 일을 가능하게 했던 그의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여기서 기도의 놀라운 모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느헤미야는 기도의 대상을 파악하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성경적인 기도는 그렇게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 인격적인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자기가 기도하는 대상을 알았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느1: 5).
그가 고향에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고 민족을 회복시키는 일은 사실상 현재의 자기 입장에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불가능한 과제에 도전하기 위하여 크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크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께 큰 문제를 가지고 나아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 알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싶어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다음 느헤미야는 먼저 자기의 죄를 자백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내 민족이 범죄했습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도 범죄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민족의 범죄에 대하여 자신도 책임이 있다고 통감한 것입니다. 먼저 자기의 죄를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용서의 기도가 왜 필요합니까? 죄가 있으면 하나님과 나 사이가 막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으면 기도가 응답되지 않습니다. 죄를 자복해야 하나님과 나 사이의 통로가 열리고 하나님이 보이며 그분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래서 죄의 자복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느헤미야는 자기가 한 기도에 책임을 졌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드린 다음 왕에게 나아가 자기의 고향 예루살렘 성 건축을 도와 달라고 청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왕에게 청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드렸습니다. 그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리라 믿고 왕에게 가서 이야기할 작정이었습니다. 왕이 싫어할지도 모릅니다. 쓸데없는 청탁을 한다고 직위를 박탈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자기의 기도에 책임을 지기로 결심했습니다. 기도는 많이 하면서 자기의 기도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말로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고향에 가기로 작정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기가 한 기도에 책임을 졌습니다. 기도만 하고 끝나지 않았습니다. 책임 없이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한 대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이렇게 성경적인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민족을 회복시키십니다.
행복한교회 최명일 담임목사
기도가 전부이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