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은 다른 사람이 자기와 같아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데 곤란을 느낀다. 우리의 신앙 가운데에 우리의 친구들에게 필요한 무엇이 있는 줄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것을 꺼린다. 우리의 우월을 보일까 두려워하여 우리가 발견한 가장 위대한 것에 관하여 시종 침묵하는 것이다. 이에 전도에는 뱀 같은 지혜, 기교가 필요하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한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전도에는 선한 행실을 통해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전도에는 인내도 필요하다. 우리가 한 일의 결과가 때로는 실망할 정도로 열매를 찾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놀랍고 신비스러울만큼 보존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선한 노력은 결코 버림을 당하지 않는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고전 15:58).
관계전도의 방법
인생은 나와 너의 관계다. 우리는 부부 관계, 부자 관계, 모녀 관계, 형제 관계, 자매 관계, 사제 관계, 친구 관계, 선후배 관계, 동창 관계, 동향 관계, 고부 관계, 숙질 관계, 동료 관계 등 여러 가지 관계의 그물 속에 얽혀서 산다. 관계를 떠나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바로 이것이 ‘관계 전도의 필요성’이다. 관계 전도에는 여러 가지 현대적 방법을 쓸 수가 있다. 예수님은 35인의 개인적 관계를 통한 면담 기록이 있는데 사람마다 다른 방법으로 대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하신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는 쓰지 않았다. 어느 방법만이 유일한 것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자기 방법의 절대화의 오류를 범한다. 성령은 무슨 방법이나 축복하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보다 나은 방법보다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초대교회는 전도하라는 설교를 들을 필요도 없었다. 전도방법을 배울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태양에서 빛을 발하듯이, 샘에서 물이 흐르듯이, 자연발로로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처럼 그리스도를 전했다. 전도방법으로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경영학, 철학, 음악, 문학 등 그 어떤 학문이나 기술로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없다. 그런 식견으로 전도에 많은 효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적인 방법에 따르는 하나의 위장은 지나친 방법에 의존해서 성령의 권위와 능력을 최소한으로 한계 지을 수 있으며 전도가 마치 계몽이나 교육정도의 것, 혹은 심리적, 도덕적 차원으로 격하시킬 수도 있다.
종교는 신흥종교의 선전원이나 상품 판매원처럼, 애걸하거나 강매하거나 심리적 인술을 쓰고 능변과 연극을 꾸며서 전할 필요가 없다. 심오하고 멋있는 지적인 설득력이나 인간의 매력, 집단의 역량감이나 심미적 분위기 같은 것이 예수 전도에 유효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중심적인 것은 못 된다. 요한 웨슬레는 하나님 외에는 열망하는 것이 없고 죄 외에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 100명만 있으면 세계를 복음화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문제는 방법보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다. 그가 접촉하는 곳마다 그리스도를 전해 주고 그리스도의 씨가 심어지는 것이다. 건강한 나무는 저절로 열매가 맺는다. 열매 없는 나무의 원인은 병들었거나, 미숙하거나, 죽었거나, 셋 중 하나다. 예수 있는 생명마다 옆 사람에게 예수를 전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도에 만능의 방법이 있다면 사랑이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예수를 싫어하고 원치 않는 사람의 마음을 여는 방법은 꾸준하고 뜨거운 사랑이다. 그리고 예수 믿는 도리를 30분 이내에 설명할 수 있는 공부를 할 것을 권한다. “교회 갑시다”, “예수 믿읍시다”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내용 있는 전도를 해야 한다. 또 전도의 대상자의 이름을 들어서 준비 기도가 있어야 한다. 관계 전도는 일대 일, 즉 입에서 입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하는 전도이다. 이 방법은 초대 교회의 전도 방법이다. 이 원리를 미국의 어느 실업인이 선전원리로 응용해서 미국의 상품선전 사상 최대 효력을 가져왔다. 전도는 대상자와 자주 접촉하여 친밀한 대인관계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예수에 대한 얘기를 하되, 변론은 삼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전도를 위한 핵, 즉 세포를 1:3:3명으로 만들고, 전도대상자를 그 모임에 인도하여 교회로 인도할 것을 잊지 말 것과 연합전도운동에 모든 평신도는 주어진 처지에서 적극 참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우리 조상의 지혜의 말이 있다. 예수님께서도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씨를 뿌리고 물을 줄 뿐이다.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 오직 기도하면서 진저와 성실로 봉사할 때 능력주시는 하나님이 크고 비밀한 일을 이루어 주신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배고픈 사람에게 값비싼 옷을 주지 말라. 그가 원하는 것은 물과 떡이다. 그가 어린이면 말씀의 죽을, 그가 젊은이면 말씀의 과자를, 그가 노인이면 말씀의 누룽지를, 이것이 관계 전도가 우리에게 주는 작은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