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학 칼럼] 십자가를 거부하는 한국교회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박승학 목사.

▲박승학 목사.

312년 콘스탄틴은 서로마 황제 막센티우스(Maxentius)의 강력한 군대와 로마 테베레강 밀비안 다리 전투(the Battle of Milvian Bridge)에 직면하게 된다. 그는 바벨론 시대부터 전해오던 대로 전쟁의 갈림길에서 화살들을 흔들어 우상에게 묻기도 하고, 제물로 죽인 짐승의 간 색깔을 살피는 점(占)에서 이번 전투에서 패배한다는 점괘(占卦)를 얻는다.

불안해하던 그는 그날 밤 꿈에 하늘로 닿는 빛나는 십자가와 함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문자를 보았다. 이에 콘스탄틴은 312년 10월 28일 병사들에게 깃발과 방패에 십자가를 그려 넣게 하고 진군하여 전투에서 승리했으며, 마침내 313년 통일 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여러 불리한 전세에도 승리한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라 믿었고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는 밀라노 칙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십자가, 십자가가 그에게 승리를 준 것이다.

기독교의 십자가처럼 이슬람에서 초승달이 그들의 상징이 된 이유는 무하마드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히라 동굴에서 알라의 첫 계시를 받은 밤하늘에 초승달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 이슬람 사원 첨탑에는 초승달이 걸려있다.

불교의 표상은 만(卍)자인데, 예로부터 석가모니 불상이나 보살상 가슴에 부처님의 마음을 찍는 불교 도상에서 유래된 불심인(佛心印)에서 비롯됐으며 이는 ‘부처님의 마음이 이 한 곳에 있다’ 는 믿음을 갖고 있던 불자들의 신앙의 표상이다.

기독교는 십자가가 그 상징이다. 교회당 종탑이나, 가톨릭 성당 지붕 꼭대기에도 영락없이 십자가가 있다. 심지어 적십자기에도 적색 십자가가 있다. 그러면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중요한 두 가지 의미를 살펴보겠다.

십자가는 원래 로마시대 이전부터 반역 죄인이나 흉악범들을 죽일 때 사용하는 사형도구였다. 죄인을 십자가 나무 형틀에 못박아 산 채로 매달려 죽게 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 공중에 매달아 처형하는 끔찍한 사형 집행도구가 왜 지금은 평화와 사랑, 교회와 적십자의 상징이 되었을까가 궁금하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장 17절).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과하고 십자가로 걸러지고 나면 좋은 것으로 변화되는 요술방망이 같다. 십자가를 통과하면 죄인이 변하여 의인이 되고, 십자가로 걸러지고 나면 지옥 백성이 변하여 천국 백성이 되고, 죄의 종이 의의 종으로, 마귀의 자식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가난이 부요로, 슬픔이 기쁨으로, 미움이 사랑으로, 질병이 건강으로 사망이 생명으로, 구약이 신약으로, 문명화와 인권과 여성인권의 존중으로 변화된다. 사형집행 도구였던 십자가가 예수께서 매달려 생명을 내어주고 피 흘려 죽으시고 난 후 평화와 화해와 용서와 사랑의 상징으로 변화되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속죄제물(贖罪祭物)로 처형당하셔서 인간의 모든 죄와 저주를 도말하는 제물이 되셨다. 피 흘려 생명을 내어주고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와 저주를 짊어지고 다 쓸어안고 단번에 처리하셨다. 한 손에 하나님의 손을, 한 손에는 인류의 손을 잡고 연결 고리가 되셔서 하나님과의 화해를 성취하셨다. 인류의 모든 죄의 짐을 다 벗겨 놓으셨다. 죄의 사슬을 끊고 의의 신분을 획득하게 하셨다.

마지막 “다 이루었다!” 하실 때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완전한 회복을 성취하셨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고(골로새서 1:20)”. “우리를 그 앞에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고자 하셨으니(22절)”. 이것이 십자가의 첫 번째 역할이고 의미이다.

이제 언급하는 두 번째 의미가 중요하다. 한국교회는 아래 두 번째 십자가를 놓쳐버렸다. 아니 거부하고 있다.

“너희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제 목숨을 구원코자하면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 “부모나 처자나 형제나 자매를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6-27).

예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이 되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은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 하심이었다. 그 흉악한 사형집행 도구인 십자가에 스스로 올라가 매달려 부끄러움과 수치와 고통과 피 흘리심과 생명까지 포기하심이 없었다면 구속의 사역, 인류구원과 속죄의 사역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따르는 예수의 제자라면, 성공과 풍요의 단물만 추구하는 사기꾼 같은 행위를 벗어버려야 한다.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희생해야 한다. 수치와 고통을 통과하고 피 흘리고 목숨을 내어주는 십자가를 자기 삶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거부하고 회피한다면 그는 예수를 따르는 자가 아니고 예수를 이용하여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기꾼(삯꾼)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의 사역자, 예수를 따르는 자라면 예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는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자기 의지를 내려놓고 자신을 낮추고 고난과 수치와 아픔과 피 흘림과 죽음에 십자가를 거부하지 않았다. 스스로 그것을 선택하셨다. 그래야 하늘에서 나라가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바울은 “내가 예수 죽인 것(십자가)을 내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이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고 고백했다.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욕망이나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 부탁하신 명령이며, 다음에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 같이 승리의 영광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이것을 거절하는 자는 제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목적과는 관계가 없는 악한 자이다.

본래 사람의 의지와 욕망과 사상은 하나님과 대치하고 대립한다. 바울은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원하는 이것을 하지 않고 원치 않는 그것을 함이라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또 다른 법이 나를 죄의 법 아래로 이끌어 가는 것을 보는도다 슬프다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로마서 7:15-) 고 탄식하고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내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라”(고전 9:27)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고 고백했다.

이와 같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기 극복이 복음의 핵심이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성화된 제자가 되는 핵심 요소인데 풍요와 성공이라는 맘몬의 우상을 숭배하고 십자가를 부인하고 경홀히 여긴다면 이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욕보이는 패륜이며 심각한 배임행위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이 십자가를 거부하고 있다. 아니 주목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아프고 고통스럽고 육신적으로 손해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필자는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육신이라는 노예를 잘 훈련하고 종 노릇하게 하자. 그리하면 주인도 복을 받고 종도 역시 복을 받는다. 둘째, 살인자가 되자. 자기와의 싸움에서 자기를 죽이는 살인자가 될 때 비로소 예수의 생명이 흘러나오고 하나님이 원하는 일이 성취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성령 충만, 아홉 가지 은사, 기도응답, 형통과 성공, 사회적 지위와 명예 등이 다 중요하지만, 십자가의 법칙을 날마다 자기 신앙에 적용하지 않으면 근본 복음의 핵심에서 벗어나게 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주어진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처럼 삶을 사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십자가는 자기를 포기하는 장소이다. 부모처자, 형제자매, 자기 목숨까지 포기해야 하는 곳이다.

성령의 감동하심에 순종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화해와 용서와 사랑의 실천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위하여, 공동체를 위하여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목적을 달성키 위하여, 예수 죽인 십자가를 자기에게 적용하여 그리스도가 인류 구원을 달성한 것 같이 자신을 통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와 이웃의 화해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십자가를 져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수많은 분쟁과 분열과 소송들은 모두 이 십자가를 자기 삶속에 도입하지 않고 거부하고 오로지 영광과 풍요의 열매만 따 먹으려는 고약한 욕심 때문이다. 분쟁, 소송, 다툼, 분열, 등 악취 풍기는 교회에 이 두 번째 십자가를 통과하여 걸러지고 나면 악취는 향기로, 미움은 용서로, 분쟁은 화해로, 그리고 부활의 영광으로 승화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생명을 포기하신 예수님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 목적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자.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자.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서 향기롭게 흘러나오게 하자. 이것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이다.

/박승학 목사(칼럼니스트, 기독교단개혁연(aogk.ne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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