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전체 사회 체계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소집단으로서, 구성원간의 인격적인 결속력이 가장 강한 일차적 집단이다. 가정은 합법적인 혼인에 의하여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곳이며, 소비의 경제적 단위이며, 가족 구성원의 안식과 휴식처이며, 개개인의 인격이 형성되는 교육의 장이다. 가정의 교육은 주로 개인의 인격 형성의 기틀을 만들어 주는 기능을 담당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나며 출생 당시의 생존 무력성으로 인해 가정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형성되는 존재이다.
이처럼 교육 가능적이고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교육 필연적인 존재인, 어린 인간이 최초로 접하게 되는 환경이 가정이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그가 최초로 만나게 되는 가정이라는 환경을 통하여 인격의 본격적인 바탕을 형성하게 된다. 특히 어린 시절은 모든 면에서 성장 발달이 속히 이루어지는 시기이고, 가정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는 시기이다. 그리고 어린 시기의 경험은 그 이후에도 꾸준히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므로 가정은 인간이 교육되는 최초의 장소이며 인간 성장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중요한 교육 환경이다. 따라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속한 가정에 대한 고찰이 기본적으로 필요하게 된다.
신학적 의미에서 가정은 창조의 질서에 따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할 때에 가정도 함께 만들었다. 즉 가정은 남녀 두 사람이 부모를 떠나 독립해서 애정과 책임감을 수반한 인격적·육체적 연합을 이룸으로써 형성되는, 하나님이 세운 제도이다. 또한 가정은 자녀를 낳고 기르며 자연을 다스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로서 하나님에 의해 인간에게 처음부터 주어진 삶의 형식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부일처제의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이다.
성경은 동양의 음양이나 희랍의 질서 된 세계(Kosmos)와 같은 자연적인 질서를 말하지 않고 ‘창조’를 말해 준다. 그것은 어떤 가능한 물질에 질서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무에서의 창조(creatio ex nihilo)이다. 그것은 하늘과 땅, 우주와 만물, 그리고 인간의 창조이다. 이러한 창조 기사는 아담과 이브, 남자와 여자, 나와 너의 두 인격의 결합, 사랑과 자유로 결합된 인격의 공동체인 창조의 공동체를 말해 준다. 이 공동체를 일반적으로 신학은 창조의 질서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이 창조의 공동체는 깨어진 공동체, 죄 아래 있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아담의 타락 이야기와 가인의 범죄 이야기는 깨어진 창조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인간은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는 몰라도 카오스(Chaos)와 악의 힘 아래 있다. 여기에 이 악으로부터 깨진 공동체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졌다. 이것이 바로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이 세상은 구원의 영역에 속해 있는 ‘보존해야 할 질서’라고 본다. 창조의 세계는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고 선하지만 보존의 세계는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 특히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계시의 전망 속에 있으며 은혜와 진리 가운데서 하나님에 의해 유지되는 세계이다. 그렇다면 창조 질서에 의해 지시된 현존 질서는 무엇인가? 현존 질서, 즉, 공동체의 수는 무한하다. 이 무한한 질서들 중에서 인간 삶의 윤리적 면에 빛을 던져 준 몇 개의 중요한 질서들을 언급하고 있다.
첫째, 모든 구체적 공동체들 중에서 근본적인 형태인 남녀 사이의 공동체, 즉, ‘결혼과 가정의 공동체’이다. 둘째, 살기 위한 충동에서 일어나는 ‘경제적 공동체’이다. 셋째, 지적 충동에서 나오는 ‘문화 공동체’이다. 넷째, 교회, 특히 보이는 교회로서의 ‘신앙 공동체’이다. 다섯째로 공동체 중 가장 큰 형태인 ‘법적 공동체’로서의 국가 질서이다.
가정은 창조 질서에 있어서 가장 원초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국가도 자의로 결혼과 가정의 법을 제정할 수가 없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국가가 가정을 위한 의무와 책임을 가질 때에만 정당하게 된다. 가정은 일부일처제의 결혼 위에 기초된다. 성적 결합에 있어서 오직 부부간의 결합만을 전제하는 가장 깊은 이유는 가정과 자식을 고려하는 데 있다. 왜냐 하면 결혼의 객관적 의의는 혈통의 보존에 있기 때문이다.
창조 질서에 있어서 남녀간의 성적인 구별을 한 의의는 바로 자식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 있다. 창조의 명령은 분명하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한다. 일반적인 현존 질서에서는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고 자식은 성장하기까지는 아버지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것은 성경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 아버지의 권위는 가정에 있어서 사랑과 정의로 나타난다. 따라서 참된 가정은 사랑과 정의로 완전한 합일을 완성시킴으로써 인격의 윤리와 제도 윤리의 완전한 결합을 이루는 전형적인 곳이다. 가정에 있어서 각 구성원의 동등한 관계를 창조하는 것은 사랑이다. 그러나 이 사랑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식에 있어서 각각 다른 형식을 취해야 하며, 이 각각 다른 형식은 정의가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