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신교도 토머스 제퍼슨은 재직하는 동안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성경 구절들을 삭제하면서 다시 신약 성경을 써 봤다. 그가 삭제한 부분 중 대부분은 예수님의 기적과 관계된 구절이었다. 실제로 성경에서 기적의 내용을 삭제한다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성경은 전체가 기적이기 때문이다. 기적을 믿지 못하면 하나님도 믿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기적을 행사하신다.
기적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이해다. 이러한 기적에 대한 두 가지 잘못이 있다. 첫째는 기적을 무시하는 것이다. 요즘 같은 과학 시대에는 기적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기적만을 의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신비한 체험만 쫓아다니는 경우가 있다. 역사적으로도 기적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많이 있었다. 부세는 “사람은 기적을 심리적으로 이해하려 애썼다”고 했다. 철학자 흄은 이에 대해 “자연법의 파괴”라고 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없다. 기적은 지금도 살아 있는 하나님의 몸짓이다. 기적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과학 시대인 지금도 이 기적은 매일 일어난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방법
기적은 하나님이 백성을 사랑하시는 방법이다. 40년의 광야생활 가운데 하나님은 기적적인 방법으로 백성을 보호하셨다. 그래서 가장 힘든 광야생활이었지만, 가장 은혜로운 기간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 기간에 기적이 가장 많았다. 기적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기간이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3:16) 라고 독생자를 주신 일을 설명한다. 하나님의 독생자를 사람 되게 하신 가장 큰 기적의 원인은 ‘사랑’이다.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인간이 되신 것은 두 가지 기적의 선물이다. 첫째는 인간의 조건을 준 동정녀의 탄생이다.
그리고 둘째는 인간의 조건을 벗어나게 한 부활과 승천이다.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 승천, 이 전부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기적들이다. 사랑하기에 주신 하나님의 역사이다. 성경이 말하는 가장 큰 기적이 무엇인지 아는가? 기적의 중심이 무엇인지 아는가? 예수님 자신이 가장 큰 기적이다. 하나님이 사람 되신 것이 기적이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35가지 기적 뿐 아니라, 예수님 자신도 기적이다.
장 칼뱅은 “기적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시켜 나가는 표적이다” 라고 했다. 그리고 교회의 완전한 구속을 지향하는 표지다. 기적은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에 대한 사랑, 구원의 표지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기적을 베풀지 않으신다. 예수님의 그 많은 기적 가운데 자신을 위한 기적은 없었다. 고통스러운 십자가 위에서 뛰어 내려오라는 유혹을 받았지만, 그 자신을 위해 내려오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기적을 베푸셨다. 이 기적은 지금도 계속되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랑하는 백성을 위해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은혜
기적은 믿음으로 얻은 하나님의 은혜다. 성경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가 있다. 이 말씀은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먼저 낙원과 음부의 모습을 일러주고 있다. 그리고 기적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일러준다. 나사로는 부잣집 문 앞의 거지였다. 그러나 죽어서 낙원에 갔다. 그리고 부자는 음부에 갔다. 음부의 부자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있는 나사로를 보고, 자신의 혀에 물 한 방울만 떨어트려 달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거절당한다. 그러자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세상에 다시 보내 자신의 다섯 형제들이 음부에 오지 않게 권해 달라고 한다.
그때 아브라함은 ‘그들에게는 이미 모세와 선지자가 있지 않느냐’고 대답한다. 모세와 선지자는 구약성경을 말한다. 부자는 다시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형제들은 누군가 사람이 가서 권해야지, 성경을 보고는 믿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때 아브라함은 말한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눅16:31)”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는 최고의 기적을 의미한다. 말씀을 믿지 않으면, 가장 큰 기적을 보아도 믿지 못한다. 믿음이 없으면 기적을 믿을 수 없다. 기적은 믿음으로 가능하다. 믿음은 산을 옮기는 기적을 일으킨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낫게 하는 능력을 일으킨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은 기적의 사람이다. 존 뉴턴은 기적을 “놀라운 은혜” 라고 불렀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 고백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의 고백이 된다. 우리의 삶 속에서 기적이 아닌 것이 없다. 내가 숨 쉬는 것도, 예수 믿는 것도, 살아있는 것도 기적이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다.
계속되는 기적
프랭크 모리슨은 무신론자다. 그는 그리스도의 기적이 얼마나 거짓인지 보여주려고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기적적인 면의 베일을 벗기고, 그리스도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연구에 열심히 몰두했지만, 연구는 수포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그가 연구 중에 부활의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오히려 부활을 증거하는 <누가 돌을 옮겼는가?>라는 책을 썼다.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로움이다” 라고 했다. 과학과 신앙은 절대 괴리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상호 보충적 관계이다. 그는 “우리가 사는 물질주의 시대에, 진지한 과학도야말로 깊은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했다. 또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라고 했다. 과학 시대에도 기적은 일어난다. 과학 시대에도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기적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며, 신비는 기적을 포장하시는 하나님의 포장지다. 얼마 전 어느 글을 보니 전 인류 역사의 과학자 90%가 현존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현대는 과학의 꽃을 피우고 있다. 15초마다 새로운 과학 논문이 발표되고, 15분마다 새로운 상품이 등장하며, 기술 혁신이 이루어진다. 이런 과학 시대이지만 기적과 신비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행복한교회 최명일 담임목사
<기적, 그 놀라운 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