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悖倫)’이란 국어사전에서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남’이라 했다. 자식이 부모에게, 또는 제자가 스승에게, 젊은이가 노인에게 예의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으로 모멸감을 주거나 행패를 부리는 것을 패륜이라 한다.
성서에 기록된 대표적인 패륜 행위를 살펴보면 노아가 홍수사건 후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자고 있는지라 노아의 세 아들 중 가나안의 아비 함이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 두 형제들에게 말했다”. 동네방네 많은 사람들에게 떠들고 소문낸 것이 아니라, 다만 그 형제들에게만 이야기한 것 뿐이다. 이때 “셈과 야벳은 옷을 가지고 자기들 어깨에 메고 뒷걸음질쳐 들어가서 그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얼굴을 돌이켜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다”(창 9:21-25). 그 결과 “함의 자손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들의 종이 되었고 셈과 야벳은 창대하게 되는 복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함이 그 아비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거나 허위사실을 말한 것은 아니고, 본대로 사실대로 진실을 말했을 뿐이다. “아버지가 술에 취하여 벌거벗고 잠을 자고 있다”고 비판적 의미의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저주받을 만한 행동이나 죄가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성경은 아버지 노아가 술을 마시고 정신없는 행동을 하거나 벌거벗고 하체를 드러내고 잠을 자거나 하는 것보다, 자식들이 아비의 실수나 허물을 흉보고 소문 내고 비난하는 것이 훨씬 더 악하고 저주받는 결과가 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다.
아들이 명문대를 나와 고시에 패스하고 박사나 대학교수 등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위에 올라갔는데, 아버지가 술주정뱅이요 사기꾼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파락호로 살아가고 있다면, 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하고 자식에게 망신을 주는가. 창피하다” 하고 연을 끊고 살아간다면 과연 지혜롭고 현명한 행동일까. 한 술 더 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정의를 실현하고 버릇을 고치겠다고 법원에 고소했다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디 있는가.
그가 사기꾼이요 도둑놈 전과자라 할지라도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가 틀림없다면, 그분이 아버지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질서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마땅히 해야 할 효도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최근 한국 사회에 너무도 많은 패륜행위들이 목격되고 있다.
①자식이 부모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또는 늙고 병들어 냄새나고 추해졌다고 또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고 효도는커녕 양로원 등에 보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찾아오지 못하는 먼 곳에 유기하기도 한다고 한다. ②학교에서 제자가 스승을 폭행했다는 뉴스는 너무 흔하게 되어버렸다. 남학생이 여교사에게 성희롱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초·중학생이 교사에게 욕설을 하고 폭행했다는 뉴스가 너무 다반사가 되어 버렸다. ③젊은이들도 나이 드신 어른이나 노인에게 막말이나 욕설을 하는 일이 흔해졌다. 이것들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면 교회 내에서는 패륜행위가 없는가. 가톨릭에서는 신부(神父)를 하나님의 대리자, 대부(代父), 영(靈)의 부모로 여기고 있다. 개신교회에서는 담임목사가 그와 같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는 말씀처럼 자신의 담임목사는 영적 부모이다.
지금 한국교회 내에서 이와 같은 담임목사에 대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패륜행위를 저지르는 사례가 목격되고 있다. 이는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기억하는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겠다. 수 년 전 한국교회사에서 사도와 같은 영성으로 사역하시던 부흥사 목사님이 정년이 되어 은퇴하면서 같은 교단의 젊은 목사를 후임으로 세우고, 자신은 기도원에서 여생을 보내시겠다고 하셨다. 그 교회는 수천 명 성도가 출석하는 굴지의 교회로, 20만여평의 임야에 건평 4,000여평의 수양관을 소유한 대형교회였다. 대부분 대형교회는 부채가 있지만, 그 교회는 당시 부채도 없었고 오히려 재정이 남아있었다.
은퇴 후 수양관에서 여생을 마칠 것이라셨는데, 어떠한 연유와 시행착오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불과 몇 년 만에 교회에서 쫓겨나고 지금 외국에 머물고 계신다. 세상 떠날 날이 가까운 나이 80이 넘은 노인 목사님을, 교회를 개척·설립하여 30여년간 열정을 바쳐 부흥시켜 오느라 병들고 연약해진 노 목사님을 후임목사와 교회 공동체에서 그렇게 쫓아내야 했는지 당사자가 아니라 잘 이해할 수 없지만, 이것은 심각한 패륜이라고 생각한다.
노인이 하시는 행동이 도리에 어긋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할지라도, 부모처럼 여기고 성심껏 공경하고 모셨어야 했다. 만일 그렇게 했다면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교훈을 얻고 감동받았을까. 이는 무슨 변명을 할지라도 교회에서 일어난 심각한 패륜이라 생각되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이같은 패륜행위 당사자들도 나름대로 정당한 주장이 있을 것이다. 목사님이 쫓겨날 만한 실수나 범죄행위가 있었고,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방대한 교회 재산과 공동체 내에서 각자 자신들의 기득권을 추구하고 이익을 얻으려 자신들의 행위를 변명하거나 정당화하는 경우는 없었는지 분석해 보아야 한다.
후임목사와 성도들은 노 목사님이 허물이나 문제점이 있었더라도 부모처럼 공경하고 끝까지 도리를 다했어야 했다. 이 사례는 한국교회가 똑똑히 분별해야 하고, 이같은 패륜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거짓보다 정직이 더 낫고, 정직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 용서와 관용이며, 그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은 긍휼과 아가페 사랑(고린도전서 13장)임을 인지해야 한다.
자신의 영적 부모인 목사님의 허물이나 비리를 들춰내어 소송을 하거나 모욕하고 망신 주는 행위는 노아의 아들 함과 같은 패륜행위임을 인지해야 한다. 노아와 그 아들 함의 교훈을 알고 있을진대, 그럼에도 여전히 그런 행동을 한다면 성경을 신뢰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세상 사람들 보다 더 사악한 자라 비난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같은 행위는 스스로의 묘혈을 파는 미련한 행위임을 인지해야 한다. 이 분들은 부정부패를 척결하려는 개혁운동이라 할지 모르고,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라 할지도 모르며, 자신들의 행동이 양심에 부끄럽지 않다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자기 자식에게 저주를 물려주는 무서운 패륜행위이다.
예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모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하셨거늘(막 7:8-13. 레 20:9)”,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이런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셨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말씀과 ‘장로의 유전’을 동등하게 여겼으며, 오히려 하나님 말씀보다 유전을 근거로 트집을 잡고 예수님을 배척하여 마침내 십자가에 못밖아 버렸음을 인지해야 한다.
십계명 중 인간관계의 첫 계명은 제5계명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하신 약속의 말씀을 외면하고, 부모의 범죄행위를 들춰내 돌을 던지고 소송을 하고 망신을 주는 행위는 그 손에 피가 가득한 저주받을 악행임을 인지해야 한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 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 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5)” 하신 말씀을 기억하기 바란다.
/박승학 목사(칼럼니스트, 기독교단개혁연(aogk.net)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