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가정들이 깨어지고 있다. 이혼율이 세계 2위라는 부끄러운 나라, 가정이 깨어짐으로 탈선하는 자녀들, 가정이 있어도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2007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7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혼인하는 부부 대비 이혼하는 부부의 비율이 1996년 18%였던 것이 2006년에는 30.7%로, 10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2쌍이 결혼식을 올리는 순간에 다른 편에서 1쌍이 이혼을 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이혼율은 세계에서 1, 2위를 다툴 만큼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깨어지는 가정이 많은 만큼 우리네 행복도 깨어지고 있다. 미국의 한 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녀들이 유복하게 살 수 있는지 판가름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부모가 모두 있는 가정에서의 성장 여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부모가 모두 있는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비교할 때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마약이나 비행에 잘 빠지지 않으며, 성인이 된 뒤에는 보다 부유하게 산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는 정상적인 가정 생활이 인간의 행복한 삶에 그만큼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장 큰 행복을 느낄 때가 바로 사랑을 주고받는 때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은 사랑하는 부모의 따뜻한 품에 안길 때 가장 행복하고, 부모도 사랑하는 아이들을 지켜볼 때 가장 흐뭇하고 행복하다. 인간에서 이 같은 행복감을 선물하는 ‘사랑’, 그것을 마음 놓고 주고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가정은 인생의 거친 파도를 헤치고 돌아온 항해자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와 같다. 때문에 가정이 깨어진다면 사람들은 사랑을 재충전받을 수 없고, 그러면 당연히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깨어지는 가정과 깨어지는 행복을 지키는 데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바로 사랑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은 곧 행복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가정은 사랑이 충만한 곳이다. 바다보다 더 넓은 아버지의 사랑과 땅처럼 푸근한 어머니의 사랑이 있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비난보다는 용서가 있고 주장보다는 이해와 관용이 있으며 항상 웃음이 넘치는 곳, 그 곳이 바로 가정이다. 상처와 아픔이 치유되고, 슬픔은 둘로 나뉘고, 기쁨은 두 배로 부풀어오르는 곳, 그런 곳이 가정이어야 한다.
가정은 따뜻한 심장과 행복한 눈동자가 만나고 서로의 사랑이 교류되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쌍방 간에 교류가 이뤄지지 않는 일방적인 사랑은 흔히들 ‘짝사랑’이라고 부른다. 짝사랑은 어딘가 쓸쓸하고 비극적인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상대방의 반응이 전혀 없는 대화가 사람을 고독하게 만들 듯이, 일방적인 사랑 역시 슬픔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짝사랑이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실 사랑의 고귀성을 따진다면 오히려 짝사랑이 더 클 수도 있다. 짝사랑만큼 안타까운 사랑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사랑을 표현조차 못해 봤다는 사실이다. 가슴이 터지도록, 애가 닳도록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못한 채 가슴속에 묻어두었다면 그 사랑이야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 자체는 언제나 행복이다. 그것이 가정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면 더더욱 아름답다. 그 행복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사랑은 항상 표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