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유동근 목사 요한복음 강해 2] 기독교 가르침의 특징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요 1:6-29절 강해

6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7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구약에는 여러 선지자가 나오는데, 세례 요한은 예수가 오시기 바로 직전의 선지자로 매우 중요한 일을 한 자이며, 선지자 중 가장 큰 자로 볼 수 있다. 구약 선지자들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메시아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와 동시대에 태어나 그 분을 직접 보면서 예수를 천거한 것이다. 그는 메시야(예수)에 앞서 길을 예비하기 위해 보내심 받은 선지자였고, 어머니 엘리사벳의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된 자였다. 요한의 사역은 그의 전파를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려는데 있다.

기독교 가르침의 특징

기독교(Christianity)란 말은 성경에 있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독교를 많은 종교 중 하나로 사람들이 여기기에, 불가피하게 우리는 이 말을 쓴다. 실제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사람으로서 정당하게 받아들여할 진리이다. 왜 그런가?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이시자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정상적인 회개와 믿음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곧 성경의 중점은 교리보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있다. 유교나 불교의 창시자들인 공자나 석가 자신보다는 그들의 가르침과 설법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경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한다. 성경에도 예수의 가르침(교훈)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에 앞서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면 결코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다.

성경에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라고 말하고 그분을 믿고 그분을 사랑하고 심지어 그분을 먹고 마셔야 한다고 말한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믿음으로 인한 하나님과 사람 간의 연합과 관계성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에 요한은 예수가 누구이신가를 알려주는 일을 했다. 예수는 생명 중의 생명이요 빛 중의 빛이시다.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참 빛’이라는 말은 모든 거짓된 빛에 반대되는 유일한 빛, 불완전한 빛이 아니라 완전한 빛이라는 뜻이다. 우주 가운데 빛이 있다. 물질적인 빛이다. 태양, 달, 별들의 빛, 전등 빛 등이 있다. 그러나 사람은 유한한 육신과 영원한 영혼의 존재가 결합된 피조물이다. 따라서 두 종류의 빛, 두 종류의 생명, 두 종류의 양식이 필요하다. 마음 속에 예수의 빛이 없으면 사람은 결코 어두움과 죄 속에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요8:12). 예수만이 참된 생명의 빛임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한다.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

12절은 그러나(but)로 시작한다. 사람들이 예수가 누군지 알지도 아니하고 영접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but) 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한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다. 신약에는 믿는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믿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12절에서 믿는 것은 영접하는 것이라 말한다. 영접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열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는 여러분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분이다. 예수는 사람이 마음 속에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다. 사람은 창조될 때부터 생명이신 하나님을 먹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어졌다.

13절에서 ‘난다’는 말은 태어난다(born)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뭔가를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야’ 된다. ‘거듭난다’는 말은 다시 태어남을 말한다. 우리는 원래 육신의 부모로부터 태어날 때 인간의 생명을 얻었다. 그것이 한 번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다. 이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이신 분, 그 안에 생명이 있고 빛인 분이시다.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려면 다른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때 우리 속에 생명이요 빛이신 예수께서 들어오신다.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받게 되고 예수 안에 있던 생명을 얻어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이렇게 태어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다. 교회를 오래 다닌다고,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봉사를 많이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는 것을 수도하는 것으로 잘못 안다. 하지만 원숭이가 아무리 도를 닦아도 사람처럼 되지 않는다. 예수 믿는 것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10년, 20년을 믿어도 똑같은 이유는 생명이 안 바뀌어서 그렇다. 거듭나지 않은 것이다. 요한복음은 바로 이 생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다. 자녀의 권세는 첫째 아버지의 사랑과 돌봄을 받고, 둘째로 그분의 모든 유업을 물려받으며, 셋째로 우리가 당당히 아버지께 요구하고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얻게 된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자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authority)를 얻게 됐기 때문이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한은 예수를 직접 자기 눈으로 보고 주목하며 체험한 후 14절 말씀을 고백했다. 여기서 ‘말씀’이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격에 대한 호칭이다. 예수께서 육신이 되셨다고 말하거나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셨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호칭은 인간이 타락한 후 구원하기 위해 성육신되신 주님의 호칭이기 때문이다. ‘말씀’이란 곧 하나님이신 영원한 아들의 위격을 말하는 또 하나의 성호(聖號)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말해야 맞다. ‘되어(became)’란 창조된 것이 아니라, ‘낳은 바 되었다’는 말이다. 아타나시우스 신조는 “성자는 성부로부터 말미암았으되 만들어지거나 창조되지 않았고 오직 낳은바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육신’이라는 말은 분명 ‘사람’과 구분되는 단어이다. 이 육신은 주 예수께서 성육신 되셨을 때 모든 면으로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지신 분으로서 혈육을 입으셨다는 말이다. 이는 어떠한 비밀인지! 그분은 우리와 같은 혈육을 입으신 것이다. 즉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몸(body)과 이성적인 영혼(soul)으로 이루어진 육신을 입으셨다는 말이다.

그분이 만일 참된 육신을 입지 않으셨다면, 사람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으셨을 것이다. 또 이 육신이라는 말은 피곤하고 연약하기 쉬운 인간이 타락한 후의 나약한 그 육체를 그대로 입고 오셨음을 뜻한다. 그분은 타락하기 전 아담처럼 연약함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을 입은 인간이 아니셨다. 그럼에도 그분은 한 순간도 하나님이시기를 그치신 적이 없다. 그분은 사람이 되셨을 때 신성과 능력을 감추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분은 자신으로부터 나타나는 영광의 모습을 포기하시어 목수의 아들로 나타나셨다. 그러나 한 번도 그분의 신성을 포기하신 적이 없으시다. 이 땅 위에서 사시고 고난 당하시고 죽고 부활하신 모든 것은 ‘하나님-사람’으로 하신 일이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단순한 인간의 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신 분의 피인 것이다.

따라서 그분은 아타나시우스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시다. 하나님의 본체를 가지신, 그러면서도 이 세상에 태어난 하나의 인간이셨다. 따라서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이신 동시에 온전한 사람이셨다(complete God, perfect Man). 현재 하늘에 계신 주 예수는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인간이시다. 그분의 신성 뿐 아니라 인성 또한 하늘에 계시다. 우리의 본성을 지니신 우리의 맏형이 되시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선구자로서 먼저 하늘로 가셔서 첫 열매가 되셨다. 그분이 육신 되셨을 때 우리와 모든 면에서 같은 육신을 가지고 계시지만 죄는 없으셨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죄를 범하기 쉬운 육신을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라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만 오셨다. 그분은 죄를 알지 못하셨으며 거룩하고 흠이 없으시고 죄인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었다. 그러한 분이 우리를 위해서 죄가 되신 것이다(고후 5:21).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오늘날 기독교의 수많은 분열과 혼란이 왜 생기는가? 성경의 하나님 말씀 외에 자기에게도 무엇이 있는 것처럼 행하는 많은 잘못된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 백성들이 미혹되고 분열되고 혼란스러워진다. 즉 많은 사람이 주님 대신 교주가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간절한 소원은 세례 요한처럼 행하는 것이다. 오직 주님에게서만 듣고,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 그 말씀만 순종하면 된다. 사역자란 한 번 소리치고 끝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하나님의 어린 양

‘지고 간다’는 뜻의 헬라어 ‘하이론’은 ‘무덤에서 돌을 옮겨놓는다’와 같은 말이다. ‘치워버린다’는 뜻도 있다.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는가? 세상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치워버리고 옮겨버리려 오셨다. 참으로 반갑고 기쁘고 놀라운 소식은, 우리의 많은 죄들을 짊어지고 가신 분이 있다는 것이다. 복음, 기쁜 소식, 감사한 소식, 놀라운 소식이 무엇인가? 주님이 우리 죄를 지고, 영원히 지고 가셨다는 것이다. 어떤 죄를 지었어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단번에 지고 가셨음을 성경은 말한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면서도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죄를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기차를 탄 할머니가 보따리를 메고 내려놓지 않는 것과 같다. “아유, 공짜로 기차를 태워준 것만도 고마운데 내 짐은 내가 져야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 주님을 믿는다면서, 우리의 짐을 십자가에 내려놓지 않으려 한다. 내 짐은 내가 져야지! 한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외친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 그분이 내 모든 죄짐을 지고 가셨다. 성경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점적으로 알려주는 것은 바로 우리 죄가 예수의 피로 사함받았다는 것이다(사 2:18, 시 103:12, 미 7:19, 렘 31:34).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어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고 십자가에 높이 달리셔서 온 몸의 피와 물을 다 쏟으시며 하신 일은, 부끄럽고 흉악하고 더러우며 말로 하기 힘든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이시고 빛이실 뿐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며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모든 죄를 다 용서받은 것이 바로 하나님 백성들의 특권이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그 진수로 하고 있다. ‘아, 성경은 내 죄가 용서되었다고, 이미 십자가에서 영원히 용서되었다고 가르쳐 주는구나’ 라고 믿는 순간, 여러분은 완전히 죄에서 해방된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죄를 속죄했다고 믿는가? 주님이 우리 죄를 지고 갔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죄가 없어야 맞다. 그리고 그 죄 사함의 자유와 기쁨과 해방을 누려야 맞다. 복음은 다름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셔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셨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바로 이것을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사람의 양심을 괴롭히고 정죄하는 죄는 몇 가지 안 된다는 점이다. 물론 하나님 앞에는 무수한 죄안(罪案)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양심은 그 모든 것에 의해 괴롭혀지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범죄 박사가 없다는 말이 있다. 수많은 죄를 기억하며 거기에 시달리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는 것은 우리가 아는 죄에서 해방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아는 죄, 우리를 정죄하는 죄는 한두 가지일 것이다. 주 예수 당시 치료를 위해 온 병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문둥병이면 문둥병, 중풍병이면 중풍병, 주 예수님은 그들의 일생 매여 고생하는 한두 가지 병에서 그들을 놓여 자유케 하신 것이다. 오늘날도 여러분은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의 일생 범한 죄악 중 늘 꺼림직하고 불안하며 특별히 정죄감을 주는 죄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한두 가지 있을 것이다.

여러분 중 한 번도 과거에 지은 죄로 인하여 고민하고 근심하며 정죄감에 한 번도 시달려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러분이 만일 오늘 깨끗한 양심으로 돌아갈진대 그 양심은 여러분을 정죄하며 불안감을 야기시키는 것이다.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의 구주 예수께서 당신의 바로 그 특정한 죄를 인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고난을 당하며 운명하신 것을 깊이 묵상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조용히 여러분의 모든 죄악을 골고다의 예수의 십자가 아래 내려놓기 바란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죄악을 스스로 감당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죄짐을 지어주러 오신 구주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은혜이다. 예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여러분과 우리의 수치스런 죄악을 다 지고 십자가로 가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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