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 요한복음 강해 3] 하늘과 연결된 사닥다리, 교회
요한복음 1:33-51절 강해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
주 예수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분이시다. 물세례(침례)는 도덕적인 회개를 촉구해(타락한 사람은 죽기에만 합당하다), 우리로 하여금 생각이 바뀌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돌이키게 한다. 그러나 성령 세례는 우리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킨다(고전 12:13). 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 말미암는다. 주 예수의 사역을 한 마디로 성령 세례를 주시는 것이라 한 데는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분명 우리에게 가장 축복된 것이며, 하나님의 뜻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들어있을 것이다.
결국 몸이 무엇인지 모르면 주님의 사역의 핵심을 모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역사가 다만 죄사함이라 생각지 말라! 심지어 부활의 새 생명을 얻는 것에 있다고도 생각지 말라! 이것들은 다 한 몸 안으로 성령의 침례를 받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집을 지을 때 여러 기초 공사를 하지만 그 결과는 한 채의 집이 지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교회에 주어지는 것임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분은 당신의 몸인 교회에 그분 자신과 그분이 얻으신 모든 충만을 부어주신다. 그것이 바로 오순절 성령을 부어주신 뜻이다.
그 오순절 성령은 그분의 인생을 통하여 얻으신 모든 요소와 죽음과 부활, 승천을 통하여 획득하신 모든 것을 몸에 부어주신 사건이다. 오늘 우리가 개인으로만 남아있고, 아직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알지 못하면 큰 축복을 놓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과 승천 초월의 능력, 만물을 정복하는 능력은 교회에 주셨다. 그분의 지식에 넘치는 사랑을 체험하는 곳도 교회이다(엡 3장). 따라서 여러분이 만일 정상적인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주신 모든 축복을 누리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시 133편). 오늘 성도들이 항상 성령 세례의 축복을 누리고자 한다면 몸의 위치를 떠나서는 안된다. 여러분이 만일 몸을 떠나 단독적으로 성령을 체험코자 한다면 빌립처럼 복음을 전하며 심지어 기적을 행할 수 있을지 모르나, 몸에 부어진 축복을 누릴 수는 없다.
성령께서는 믿는 사람을 거듭나게 하고 그 사람 안에 들어오셔서 내주하시며 그를 변화시킨다. 새 생명 안에 살게 한다. 하나님과의 교통을 가능하게 한다. 성령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인도를 분별할 수 있으며, 비밀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의 뜻들을 이해할 수 있다. 매일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성령의 기름 부음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얻기도 하고 우리를 자유케 하는 은혜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 죄사함을 분명히 얻지 못한 자들에게는 성령이 주어질 수 없다. 구약에도 피가 있는 곳에 기름(성령)이 있다. 요한은 그분을 만나도록 소개하는 선지자에 불과했다. 우리가 참되게 주 예수를 만난다면, 죄에서 놓여 자유케 되고 피의 씻음을 받을 때 성령의 인침이 동시에 발생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분이요 또 성령으로 세례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요한은 예수님과 자신의 사역을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사역의 최종 목표는 그분의 신부인 교회를 얻으시는 것이다. 그분의 몸인 교회는 성령 세례를 주심으로서 얻어진다.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메시야는 번역하며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인생이 바뀐다
안드레는 자기 형제 시몬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다. 예수님께서 시몬을 보더니 ‘네 이름은 게바’라고 하셨다. 헬라어로 번역하면 ‘베드로’인데, 이는 ‘산 돌’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그는 산 돌이 아니었다. 그는 반석같이 견고한 돌이 아니라, 물이나 진흙처럼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장담했다가 금방 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를 보시고 이름을 바꿔주셨다.
예수님을 참되게 만나면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뀐다. 용도가 바뀐다. 왜 그렇게 되는가? 그분은 조물주이시기에 그분을 만나면 하나님이 원래 사람을 창조한 목적을 회복하기 때문이다. 그 진가를 회복하게 된다. 원래 부모는 베드로를 잘 모르기에 시몬이라고 지었다. 자기가 낳았어도, 이 아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러나 창조자는 아신다. 부모는 시몬이라 지었는데, 예수님이 그를 만나자 ‘아, 이는 귀한 그릇이다’ 하시며 이름을 게바로 바꿔주셨다. 여러분도 주님을 만나면 창조의 목적대로 살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리고 바뀐다. 첫째는 죄 사함이 이루어진다. 둘째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영접한 사람들은 바뀐다. 시몬이 게바로, 베드로로 바뀌는 것이다. 여러분도 진정 주님을 만나면, 바뀐다.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았다고 했다. 빌립은 주님이 직접 부르셨고 빌립은 복음을 받은 후 바로 복음 전도를 시작했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았다. 우연히 만나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다. 일부러 찾아서 만난 것이다. 41절에서도 안드레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 말했다고 했다. 주님을 만났으면 먼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귀한 주님을 먼저 만났다면, 반드시 우리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찾아 그 소식을 말해야 한다.
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죄인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태도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가 있겠느냐고 묻자 빌립이 말이 막히니까 ‘와 보라’고 했다. 우리가 많은 성경 말씀을 알지 못해도, 이것은 할 수 있지 않은가? 42절에서 안드레도 베드로를 데려왔다고 했다. 데려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주님을 만나게 해 주면 된다.
나다나엘에게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런데 주님은 나다나엘이 오는 것을 보시고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하셨고, 그는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라고 물었다. 여기서 중요한 내용은, 예수님께서 다 아신다는 것이다. 베드로도 어떤 사람인지를 척 보고 아셨기에 이름을 바꿔주셨다. 예수님은 만물이 지어진 창조주이시고, 전능하신 분이며,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이분이 바로 예수로 이 땅에 오셨고, 그분의 죽음은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했으며, 그분을 믿을 때 우리는 성령의 선물을 받고, 그분을 믿을 때 우리의 인생은 변화된다.
간사함이 없는 것, 정직한 것을 주님은 매우 좋아하신다. 우리 피조물, 죄인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태도는 간사하지 않은 것이다. 그릇으로 따지면 물을 쉽게 받을 수 있게 덮개가 열려진 상태이다. 비뚤어진 마음, 궤사스런 마음, 간사한 마음은 예수를 믿고 구원에 이르기 어렵다. 세례 요한의 사역은 사람들의 마음부터 바로 잡는 것이었다.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나다나엘의 믿음의 고백이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자기를 거울처럼 다 아시는 주 예수를 만난 나다나엘은 그분이 메시아임을 고백하였다. 이렇게 나다나엘처럼 주님으로부터 한 두마디만 들어도 그분이 누군지 알 수 있다면 그는 복된 사람이다. 그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나를 다 아시다니 당신은 선지자입니까?” 라고 묻지 않았다. 그는 단번에 그분이 메시아임을 알게 됐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 하늘과 땅의 사닥다리
요한복음 1장 초반부에서 말씀이신 하나님을 본다. 후반부에서는 시몬, 요한, 빌립, 나다나엘 등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다 죄인이었다. 그러나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들이 연결되었다. 그리고 이 땅에 하늘과 연결된 사닥다리가 세워졌다. 이것이 바로 교회이다.
“하늘이 열리고”. 예수를 믿으면 하늘이 열린다. 이것은 야곱의 꿈이다(창 28장).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전이다. 하늘이 열리고, 하늘과 이 땅이 연결되어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은 하늘과 땅이 연결되는 것을 보여준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이 땅에 하늘에 연결되는 사닥다리가 없었다. 하늘은 막혀 있었다.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담을 만들고 간격을 만든다. 이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우신 것이다. 죄가 사해질 때 성령이 임한다. 그리고 성령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때 이 성령은 우리가 하늘과 교통할 수 있게 하신다. 죄 사함을 받은 영혼의 마음 속에는 모든 막힘이 사라지고 하늘이 열리게 되며,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한다. 교회는 사닥다리가 세워져 있는 곳이다. 예수를 모시고 있는 곳, 사닥다리가 세워져 있는 곳이 교회이다. 죄 사함, 성령의 축복을 갖고 있는 곳이 교회이다.
하늘이 열린 곳이 교회이다. 교회의 기도는 어디로 가는가? 천사들이 가지고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천사들은 기도의 응답을 갖고 교회로 내려온다. 축복도 주시고 은혜도 주시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이 사닥다리가 최종적으로 완성된 곳이 새 예루살렘 성이다. 그것은 하늘과 땅이 완전히 하나된 곳이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영접하기만 하면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함받고 성령을 선물로 얻고 하늘에 속한 사닥다리를 얻어 하늘로 통하는 길이 열린다. 오늘 우리는 이런 놀라운 사람들이 될 수 있다. 또 우리가 이런 분을 먼저 만났다면 다른 사람들도 메시야를 만날 수 있도록 소개해주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