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것을 가지고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만들어 보자. 매우 흡족할 것이다. 철학자 ‘코도르세’가 “네 자신의 생활을 다른 사람의 그것과 비교함이 없이 즐기라”고 한 말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혹 이제까지 자신의 장점을 알지 못하고 계발하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내 자신의 장점과 매력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자. 분명 새로운 나 자신을 통해 보람을 느끼고 힘차게 살아가는 자신이 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와의 비교를 통해 이 자신감에 타격을 받게 됐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보상받으려는 차원에서 상대방을 향해 더욱 강한 비교 공격을 퍼붓게 된다. 이처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말들을 주고받게 되면 그 가정은 불행의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 전문가들은 비교에 의한 질책은 물론이고 칭찬 역시도 궁극적으로는 결코 유익하지 않다고 말한다. 즉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아이들을 야단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비교하며 하는 칭찬도 그에 못지 않게 나쁘다는 말이다.
많은 부모들이 다른 아이들과 자녀를 비교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대체로 자제하는 편이다. 하지만 자녀를 칭찬할 때는 이같은 우(愚)를 종종 범할 때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의 한 어린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표면적으로는 외아들이라 부모의 극진한 사랑 속에 아무런 문제 없이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아이는 굉장한 정서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문가가 그 아이와 상담을 한 결과, 그 부모에게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잘못했을 때 좀처럼 야단을 치지 않았다. 큰소리로 꾸지람을 하거나 벌을 주거나 하지도 않았다. 대신에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설명을 해주었다. 같은 잘못이 반복되어도 결코 화를 내지 않았고, 그 때마다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설명할 만큼 아이 교육에 이성적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잘했을 때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이것만 봐서는 부모의 자녀 교육에 별반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칭찬하는 방법에 있었다. 그 아이의 부모는 어릴 적부터 칭찬을 할 때 꼭 누구와 비교하며 하는 것을 즐겨했다.
“옆집에 민형이는 1, 2, 3, 4도 못 쓰는데 우리 아들은 10까지 쓰는구나. 아주 잘했어요~”
“뒷집 정욱이는 맨날 어지르기만 하고 떼만 쓰는데 우리 아들은 말도 잘 들어요~”
심지어 약을 먹일 때도 사촌동생과 비교했다.
“다섯 살 연우는 약을 잘 먹던데, 오빠니까 우리 아들이 훨씬 더 잘 먹을거야~”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아이는 누군가와 비교되면서 칭찬을 들을 때마다 그 아이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되고, 또 더 못하게 되면 엄마한테 칭찬을 듣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항상 불안했었다. 그러니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만큼 누군가와 비교 당한다는 것, 비록 그 자신이 비교우위에 있을지라도 별로 유쾌한 일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매번 열등한 것으로 비교되면 그 얼마나 비참하겠는가! 그러므로 행복한 가정을 바란다면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비교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또 가정의 행복을 깨뜨리는 다른 요소가 바로 ‘비밀’이다.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하다. 그런데 ‘비밀’로 인해 행복한 가족의 신뢰가 깨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따라서 ‘비밀’의 이유가 제아무리 선할지라도 가족 간에 비밀을 갖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왜냐하면 일단 남편이나 아내가 상대방에게 비밀을 갖게 된다면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거짓말이 시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영원히 감출 수 있는 비밀은 없다. 속이거나 거짓말을 통해서 지켜왔던 비밀이 언젠가 들통 나게 되면 상대방은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되고 그것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밀은 어떠한 경우이든 행복한 가정에 유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