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 요한복음 강해 9] 물동이를 버려두고
요한복음 4장 25-42절 강해
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그녀는 자기에게 문제가 있음은 시인했지만, 자기 앞에 계신 분이 그 문제를 해결해줄 메시야임을 알지 못했다. 진정한 복음과 주 예수를 알지 못하고도 얼마든지 교회 문턱을 드나들 수 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는 게 예수를 만나는 문제가 중요하다. 예수님은 ‘네가 말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분명하게 알려주셨다. 그때 비로소 이 여자는 예수님을 만났고,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녀의 복잡한 과거, 부정함, 정죄감, 수치 등 모든 목마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예수이시다.
우리는 고백할 수 있다. 마음의 가장 중심으로 돌아와 ‘주여, 당신이 나의 인생의 답입니다’라고 고백할 때, 거기에 예수님이 계신다. 거기에 생수가 있다. 거기에 참 예배가 있다. 이렇게 고백해 보라. ‘주님, 당신만이 나의 인생의 필요를 채우실 수 있는 분입니다. 주님, 당신이 생수이십니다. 그 생수를 나에게 주옵소서. 내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무엇이 구원받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당신이 주님이셨군요!’ 이때 근본적인 목마름이 해결되는 것이다. 이렇게 영으로, 진리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이 교회이다. 예식을 갖춰 멋있게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마음과 생각과 모든 것이 참으로 영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다 바깥의 것들이다.
육적인 것들은 우리의 속을 채우지 못한다. 혼적인 것들, 종교적인 것들, 감정적인 것들은 우리의 속을 채우지 못한다. 남편과 아내 사이도, 성도와 성도 사이도 그렇다. 가식을 버려야 한다. 그냥 겉으로만 좋게 지내는 것은 찌르는 것보다는 좀 나을지는 모르지만 시원하지 않다. 우리 속에 참된 생수가 터지는 교회생활을 하려면, 참된 예배를 드리는 생활을 하려면, 육신적인 삶과 허례허식과 외식과 바깥의 어떤 행동들로부터 돌아서 가장 깊은 속의 문제들을 주님께 고하고 죄와 악을 버리고 영으로 돌이켜야 한다. 그런 자들이 참된 예배자들이며 하나님은 이 마지막 시대에 그런 예배자를 찾고 계신다. ‘찾는다’는 말은 그런 사람이 드물다는 말이다.
27 이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유대인들을 사마리아 사람들과 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한 유대인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우물가에서 한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뒤에 나오지만 주님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세상의 구주’이시다. 진정 주님을 필요로 하고 갈급해 하는 영혼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가 대화하신다. 사역자라면, 사람들에게 생수를 공급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고정된 관습이나 전통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주님의 양식은 무엇인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다. 주님께는 육신적인 음식만이 아니라 갈증과 필요를 채우는 또 하나의 양식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요한복음 4장에는 두 종류의 음식이 있다. 하나는 사마리아 여인이 마신 생수이다. 그녀는 주님을 마셨다. 또한 주님도 목마르셨다. 목마른 구주께서도 뭔가를 드시고 만족하셨다.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주님이 잡수신 음식이 무엇이었는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다.
사람은 먼저 주님으로부터 생수를 받아 마셔야 한다. 그래야 목마르지 않는 샘을 얻는다. 그런 다음에는 반드시 자라나 주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 우리 주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보내셔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오셨다. 그 뜻을 이행하는 것이 우리 주 예수님의 즐거움이고 만족이다. 우리도 이 땅에 주님의 뜻을 이행하도록 존재한다.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있어서 매우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그 뜻을 실천하기 원하셨다. 그것이 만약 아버지의 뜻이라 인정되면, 주님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바치며 온전히 몰입해 그 뜻을 수행하신 분이셨다.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왜 만족이 없을까? 왜 마음 깊은 곳에 공허함과 슬픔이 있는가? 그분의 뜻 대신, 자기 뜻을 꽉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뜻을 이루려 동분서주하며 애쓰는 사람은 반드시 마음 속에 공허함이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이기심, 욕심, 우리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내 뜻으로 받아들여 그 뜻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만족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것을 알려주시고 싶으셨다. ‘내 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한 영혼을 구원하심
하나님의 뜻은 추상적인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그 일을 하시려 주님은 여자와 대화하신 것이다. 한 영혼이 주님을 만나서 기쁨을 얻고 만족을 얻고 돌아가는 그 모습을 바라볼 때 주님은 더 이상 음식을 잡수시지 않아도 될 만큼 만족하셨다.
인생의 슬픔과 불만족은 대부분 인간의 이기심에 있다. 자기 뜻을 버리지 않고 오직 자기 뜻을 이루려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모든 인생의 뜻을 접고, 내려놓고,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그때는 반드시 알게 될 것이다. 가장 깊은 속에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평안과 행복감과 만족이 있다는 것을 체험할 것이다.
우리 주님은 사마리아에 전도하러 가셨다. 그 목마른 여인이 물동이를 가지고 물을 길으러 우물가로 올 것을 아셨던 것이다. 그것만 아신 것이 아니다. 사마리아 성에 많은 사람들이 목 말라 구원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보셨던 것이다. 그들을 모두 살리기 위해 이 여자 하나를 먼저 얻으셔야 했다.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은 많은 목회자의 생각과 다르다. 오늘날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성공을 꿈꾸며 작은 무리를 주의하지 않는다. 더욱이 한 영혼에 대한 관심은 적다. 주님은 무리를 피하시고 한 영혼을 관심하시며 기껏해야 열두 제자들을 교육하셨다. 나는 여러분이 진정 한 영혼을 관심하는 사역이 참된 것임을 아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기 바란다.
사도 바울 역시 주님의 길을 따랐다. 그가 한 형제를 얼마나 귀히 여기며 사역했는가는 고린도전후서를 보면 알 수 있다(고후 2·고전 8장 참조). 그는 교회를 단체로 보아 섬긴 것이 아니라 한 형제 한 자매를 섬길 대상으로 삼은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을 주의하다, 정작 주님이 섬기라고 붙여주신 한 영혼을 소홀히 하는 일은 없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줄 믿는다.
35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예수님은 원시안을 갖고 있으시다. 사마리아 여인 하나를 보면 사마리아 성의 사람들의 상태를 볼 수 있다. 주님은 한 여자를 통해 사마리아를 전도하셨다. 오늘날 여러분에게 귀한 영적 만족을 줄 양식을 얻는 비결은 주를 위한 큰일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다. 몇 년 걸려 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 그것이 가치 있는 일이다. 떠들썩하게 일을 크게 벌인다고 비밀스런 주님의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큰 무리 앞에 가르치는 이상으로 사마리아 여자 한 영혼을 위해서 한 말씀 한 말씀 진지하게 말씀하신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만족했다고 하셨다. 우리는 반드시 이것을 배워야 한다. 결국 그 여자가 가서 전도하는 것이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 그리스도를 전하자 많은 사람들이 이끌림을 받았다. 그러므로 구원받은지 하루밖에 안 된 사람도 전도할 수 있다. 아버지 뜻을 행할 수 있다. 이 여인이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성경을 가르쳤는가? 그렇지 않았다. 다만 전했을 뿐이다. 여러분도 이렇게는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다. 그래서 주님은 추수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한 것처럼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 먼저 노력한 사람들이 있기에 거둘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은 나중에 오셔서 공평하게 그 일한대로 보상해주실 것이다.
삯이란 일한 자들이 받는 보상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주님이 오신다. 인생은 매우 짧다. 우리가 지금은 이렇게 섬기고 있지만, 주님 만날 날이 금방 다가온다. 인생을 길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리 길지 않다. 곧 주님을 만난다. 그럴 때 주님은 여러분이 이 땅에서 전도하고 열매 맺은 것에 따라 삯을 주시고 함께 주님과 즐거워하게 하신다. 수고한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게 하신다. 그것을 기대하면서 일하라고 하신다. 요한복음 4장 후반부에서 주님은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도록 격려하는 말씀을 주신다. 스스로 본을 보이시고 많은 사람에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다. 오늘 우리의 수고가 열매가 없다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노력한 것을 나중에 다른 사람이 거두는 수가 있다. 그 때 우리는 함께 삯을 받게 된다.
39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이 여인의 사건은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믿는 결과를 가져왔다. 어떤 사람은 주님에 의해 첫번째로 사마리아로 보내심 받은 사도가 이 여인이라고도 말한다. 사도행전 8장의 빌립 이전에 이 여인이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반드시 이런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깨달음을 가져오고 성장을 가져온다. 이들은 처음에는 사마리아 여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후엔 예수님을 직접 만나 스스로 깨닫게 됐다. 여러분도 처음에는 여러분을 인도한 사람을 따라 믿게 된 경우가 있다. 그래서 여러분의 믿음이 그 사람에게 달려 있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귀가 뚫린다. 그것이 진짜 구원받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님의 태도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우리 주님은 작은 일이라 생각되는 한 여자를 만나서 복음 전하는 일을 아주 집중력 있게 하셨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 절대 큰 것을 꿈꾸지 말라. 작은 일 하나를 성실하게 하는 것이 정말 주님을 섬기는 비결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것을 배워야 한다. 온 힘을 다해 한 영혼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주님은 먼저 본을 보이신 후에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진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