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WCC와 ‘개종의 영성’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WCC의 반개종주의, 더 이상 기독교 운동으로 보이지 않아

▲이동주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이동주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지난 4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는 기독교학술원 주최 ‘WCC 영성과 한국교회’ 영성포럼이 개최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발표된 이동주 박사(선교신학연구소장)의 ‘WCC와 개종의 영성’ 요약문을 게재합니다.

서론

‘개종’이라는 단어는 WCC가 1960년대 초반부터 현대까지 WCC 산하 ‘세계선교와 전도 위원회(CWME)’의 공식선언문들을 통해 시종 결정적으로 거부한 중요한 개념이다.

필자가 그동안 발표한 논문들에 인용한 WCC의 근거 문서들은 어떤 WCC와 NCCK 신학자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WCC 총회에 입장했던 사람들의 사적의견들이 아니고, WCC가 표명한 ‘선교와 전도위원회’ 선언문들과 각 총회 보고서들, 분과위원회 보고서들, WCC 집행위원들이 택한 총회 발제자들의 강연, WCC 산하 주요기관 책임자들의 신학을 인용했다.

또 현대 WCC의 선교신학적 문제를 모두 표명하고 있는 WCC 선교연구 보고서인 <세계를 위한 교회(보세이, 1967)> 내용을 중시했으며, <세계를 위한 교회> 보고서 내용 중 하나인 서유럽에서 연구한 ‘남을 위한 교회’ 원본인 도 참고하였다. 그리고 1952년부터 Missio Dei 신학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를 위한 교회> 집필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네델란드의 선교신학자 J. C. Hoekendijk의 문헌을 인용하였다.

<세계를 위한 교회>의 내용은 J. C. 호켄다이크의 저서 <흩어지는 교회> 내용과도 신학적으로 전적으로 병행된다. 그 이유는 보고서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 세 신학자들, 즉 Johannes C Hoekendijk, Letty Russel, 그리고 Colin C. Willams가 서유럽과 북미주 양쪽 회의에 다 참석하여 함께 보고서를 작성한데 있다. 특히 호켄다이크의 저서 <흩어지는 교회>를 보면, 그가 위 두 개 연구기관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여실히 알아볼 수 있다.

또 1960년대 <세계를 위한 교회>가 수용한 호켄다이크의 ‘Missio Dei 신학’ 내용과 상당히 병행되는 가톨릭 대륙 남미의 구티에레츠(G. Gutierrez)의 ‘해방신학’도 참작했다. WCC가 ‘반개종주의’와 ‘하나님께로의 개종이 아니라’ 이웃으로의 개종(Bekehrung), 그리고 ‘불신자의 개종’이 아니라 신자의 개종 신학을 이미 약 반세기 전부터 현재까지 주장해 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밖에 필자는 WCC에서 출판한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2005년) <통전적 선교를 위한 신학과 실천>)에 선포된 5개의 CWME 선언문들이 표명한 개종에 관한 선교신학과, 금년 부산총회에 제출될 WCC의 공식선언문 ‘함께 생명을 향하여: 기독교의 지형변화 속에서 선교와 전도’를 인용했다. 이 마지막 선언문의 특징은 복음전파를 주장하는 복음주의와 야합한 사실로 인하여 CWME의 본래적인 ‘반개종주의’의 주장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원과 성령의 사역, 파송, 확장을 인정하는 이중고백이 들어 있다. 이러한 이중고백은 온 피조계의 구원, 인류의 일치, 전체 피조계의 우주적 일치의 맥락에서 추구되고 있다.

두려운 사실은 WCC와 CWME의 ‘반개종주의’는 복음을 듣지 못한 수십억의 잃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개종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1. WCC의 ‘개종’의 의미와 반개종주의

개종을 의미하는 WCC의 Proselytism은 사도행전 2장 11절에 나오는 개종자들(προσήλυτοί), 즉 유대교로 입교한 사람들을 일컬은 데서 유래한다. 개종이라는 단어는 20세기 후반부터 WCC에서 결코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는 부정적 단어이다. 사실 WCC는 개종선교를 1960년대 초반부터 Proselytism이라 정의한 이후, 현재까지도 개종 선교를 거부하고 있다. 이 ‘Proselytism’ 개념은 이미 WCC의 Missio Dei 신학자로 잘 알려진 호켄다이크에 의하여 1963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Proselytism이라고 정의되기 시작한 ‘개종 선교’는 1967년 WCC에서 출판한 <세계를 위한 교회> 보고서에서 동일하게 비판되고 있다.

<세계를 위한 교회>가 연구한 회심과 개종에 관한 중요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전통적 복음전도에서의 ‘회심’은 세상으로부터 전환하는 운동이며, 교회 출석을 강조하고 밖에 있는 사람을 안으로 초청하여 개종시킨다고 하여 비기독교인의 개종을 격하시켜 이러한 개종 자체를 거부한다. 그 이래 어떤 의미로든 개종을 긍정하는 WCC 문서는 발견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WCC는 비기독교인들에게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영접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도 요구하지 않는다.

<세계를 위한 교회>는 개종의 원인이 되는 ‘회심(conversion)’에 관하여 성경적 개념과는 다르게 이해한다. 회심은 첫째로 ‘이웃의 이익에로의 전향’을 의미하고, 그 성경적 근거로 빌립보서 2장 3절을 인용한다. CWME는 이를 ‘세상에로의 전향’이라고도 칭한다. 이 회심은 ‘성령을 통하여’ 새로운 상황을 창조하고, 내부인과 외부인이 연합하여 함께 세상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선교’의 동참자가 되게 하는 운동이라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웃에로의 회심’이란 용어는 잘못된 것이다. 회심은 오직 하나님께로 하는 것이지, 이웃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웃은 다만 사랑과 전도와 도움의 대상이지 개종의 방향이 아니다.

하나님께로의 회개와 개종은 구원을 얻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임을 성경은 확실하게 선포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개혁신학의 칭의신앙과 그 신학적 의의는 더욱 심각하게 중요해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둘째로 <세계를 위한 교회>의 회심은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집합적 차원에서의 변화를 뜻한다. WCC는 전통적 선교구조인 ‘입력구조(come-structure)’를 “안으로 초청해 들이는 개종(proselytism)의 형태가 되어 왔다”고 하며, 교회가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선교 구조로써, 정적인 사고방식, 세상으로부터의 고립, 복음선교에 방해되는 장애물로 작용하였고, ‘Missio Dei’를 방해하는 ‘이교적 구조’라고 한다.

WCC는 “개종선교를 하는 교회(die proselytierende Kirche)는 자기 자신을 구원의 중재자와 중심으로 이해하고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여긴다”고 비판한다. 이는 WCC가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다.

2012년 ‘함께 생명을 향하여’ 선언문에도 교회에 새로운 회개가 필요함을 주장하며, 우리는 선교에 대해 인간이 다른 대상을 향해 행하는 어떤 것으로 이해하고 실천했다는 것을 예로 들고, 선교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들은 … 모든 피조물과 친교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며, 우리가 잘못 선교한 것에 대한 회개를 해야 한다고 한다.

WCC는 1982년부터 2005년 사이에 다섯 개의 선교선언문들을 묶어 2005년 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이 책이 한국에서 WCC CWME 위원 김동선 목사에 의해 번역돼 <통전적 선교를 위한 신학과 실천(대한기독교서회, 2007)>이라는 책으로 출판됐다.

이 책의 선언문 중 ‘에큐메니컬적 확언(EA, Ecumenical Affirmation, 1982)’은 선교와 전도에 대해 알려진 WCC 공식문서이다. 이 문서 제 38항은 “선교를 일시적으로 중단해 달라는 모라토리움(moratorium)”을 요구하고 있다. 1973년 선언된 모라토리움은 신생교회 지역에서 선교를 중단하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좀 다르게 1982년에 선언된 선교 모라토리움은 “선교 자체에 대한 모라토리움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설명과 함께 ‘반개종주의’를 선언한다. 반개종주의는 가톨릭권과 정교회권의 개종전도를 금지하는 선언문이다.

CWME는 1997년에 반개종주의를 재확언하고 있다. ‘공동의 증언을 위한 소명: 신뢰관계의 선교와 개종주의 중단’ 선언문은 이전 WCC의 반개종주의를 보충한 것이다. 제2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가 WCC의 ‘신앙과 직제’ 및 ‘선교와 전도 회원’으로 가입한 이후로, WCC는 로마 가톨릭적 입장을 두둔하여 상호존중을 훼손하는 개종전도활동이 교회일치와 ‘공동의 증거’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개종전도를 금지하는 선교 모라토리움을 선언했다.

이 개종전도 금지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로마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 지역에 가서 명목상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활동과 교회를 세우는 일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들은 위의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여 개종자를 얻는 행위를 “강제적이고 강압적인 개종”이고, 화해를 목표로 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역증거”이며, 교회의 연합을 깨뜨리는 가장 비난받아야 할 행위라 규정하고 있다. 또 “성상을 받드는 모습을 우상숭배라 비난하는 행위, 마리아와 성인을 향해 우상이라 비웃거나 죽은 자에 대한 기도를 비난하는 행위” 등을 중단해야 할 역증거 행위로 지적하고 있다.

CWME의 위와 같은 반개종주의는 2012년 선언문인 ‘선교와 전도에 대한 새로운 확언’으로 이어진다. 이들이 피력한 선교와 전도에 대한 확언’에서도 개종주의는 배척되고 있다. 그러나 종래의 확실한 묘사보다는, ‘이중 해석’이 가능하게 묘사한 점이 다르다. 이 확인서 제 110조는 아래와 같다

“우리는 생명을 위한 대화와 협력을 선교와 전도에서 필수적이라고 확언한다. 진정한 전도는 하나님의 형상인 모든 인류를 위하여 종교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존중할 때 이루어진다. 폭력적인 수단, 경제적인 이익제공, 혹은 권력남용을 통해 이루어진 개종(Proselytism, 필자 강조)은 복음의 메시지와 반대된다. 전도할 때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존경과 신뢰 관계를 정립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각각의 혹은 모든 문화의 가치를 존중하며 복음은 특정 단체에 의해 소유될 수 없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우리의 임무는 선교지로 하나님을 모셔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증언하는 것이다(행17: 23-28). 성령과 연합한 우리는 생명을 향해 함께 일하기 위해서 문화적 · 종교적 장벽들을 극복할 수 있다(필자 강조).”

위의 반개종에 관한 고백은 세 개의 이중의미를 담은 뜻으로 표현되고 있다. 첫째 “권력남용을 통해 이루어진 개종(Proselytism)”이란, 모든 개종은 권력 내지 폭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니 거부해야 된다는 의미로 보이기도 하고, 개종이 폭력에 의한 것이 아닌 경우라면 허용된다는 의미로 보이기도 한다. 둘째 “복음은 특정 단체에 의해 소유될 수 없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란, 복음은 이미 타종교인들에게도 조명되었기 때문에 전도가 필요 없다는 의미 같기도 하고, 복음을 우리만 소유되어서는 안되니 모든 사람이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사람에게 전파해야 된다고 하는 의미로도 보인다. 셋째 “우리의 임무는 선교지로 하나님을 모셔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증언하는 것”이란, 사도행전 17장 23절 이하 증거처럼 하나님이 이미 그곳에 계시니 전도할 필요가 없다는 말로 들리기도 하고, 하나님이 이미 거기 계시니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라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해석 가능성을 허용한 것은 아주 심각한 의미를 띤다. WCC가 <세계를 위한 교회>에 선언된 전통적 교회의 입력구조를 비판한 반개종주의는 한 번도 부정되거나 수정된 일 없이 반세기 동안 동일하게 고백돼 왔다. WCC의 CWME는 1960년대 이래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개종을 주장한 일도 없고, 그동안의 개종거부를 뒤집은 적도 없다. 시종일관 반개종주의를 주장해 왔을 뿐이다. 그러면 위 고백의 이중 의미가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누구를 의식한 것일까?

2. 일원론적 역사와 반 개종주의

1960년대부터 WCC의 ‘일원론적 역사관’은 <세계를 위한 교회>와 그 선언문을 작성한 주요 인물인 호켄다이크의 주장에 의해 잘 알려졌다. <세계를 위한 교회>는 전통적 신학이 역사를 교회 역사와 세속 역사로, 그리고 구속 역사와 일반 역사 등 이중적 역사로 구별하여 왔다는 것을 비판한다. G. Warneck는 비기독교인에게 가서 교회를 조직하고 세우는 것을 선교라고 했는데, 호켄다이크는 이러한 선교관을 비판하며 기독교 지역과 비기독교 지역이 따로 있고, 신자의 지역과 불신자의 지역이 따로 있어, 신앙인이 불신앙인의 경계선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재래적인 선교관이라고 일축한다.

CWME의 일원론적 교회론은 교회의 역사를 특별한 역사로 인정하지 않으며, 역사는 ‘온 인류의 전체적인 역사’ 하나뿐이라고 주장한다. WCC의 <세계를 위한 교회>는 교회와 세상을 구별하지 않는 통합체로 보기 때문에 개종 선교는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WCC가 이중 역사관을 부정한 것은 큰 오류이다. 우리는 성경적 역사관을 갖고 있으며,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시려 우리 역사 속에 개입하셨고 그로 인해 구원의 역사가 우리 속에 시작돼 인간의 역사는 이중 역사인 구원의 역사와 아직 구원을 받아야 할 세상 역사가 엄연히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믿지 않는 자들,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구원 역사에 속하지 못하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진다는 요한계시록 21장 8절 말씀을 듣고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죄 사함을 받고 속히 구원의 역사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WCC의 새로운 선교구조와 반개종주의

<세계를 위한 교회>는 ‘하나님-교회-세상’이라는 종래의 선교 구조가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세상-교회’로 역사하는 새로운 선교 구조를 제시한다. 하나님은 세상과 화해하셨고(고후 5:19), 하나님의 관심은 전 우주, 모든 피조물(요 3:16)이며, 하나님의 1차적 관계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라고 한다. 교회는 다만 세상의 한 조각이며, 세상에 부과된 ‘하나의 첨가물(postscript)’이라고 한다. 교회는 세상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러므로 과거 ‘중심부에서 변두리에로의 움직이는 선교’를, “포교(propaganda)로 왜곡시키고 또는 사람을 우리 기독교인의 이미지로 만들거나 교회적 탈(likeness)을 쓰도록 하여” 선교를 변질시켰다고 한다. WCC는 이 선교를 “안으로 초청해 들이는 개종”(proselytism)이라고 비판한다.

2012년 WCC 선언문인 ’함께 생명을 향하여…’는 “중심으로부터 주변으로” 하는 선교를 “사회 특권층으로부터 소외계층으로 발생하는 운동”이라고 비판하고, 반선교적이고 반개종적 개념을 지닌 “주변으로부터의 선교”를 주장한다.  ‘함께 생명을 향하여…’ 선언문은 “주변부에 사는 것”이란 “정의와 존엄에서 배제된 것”이라 설명하고, 이제는 주변부의 사람들이 선교의 주된 역할을 하는 대리자라고 주장한다. WCC는 이러한 “주변으로부터의 선교”의 타당성을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약한 사람들을 택하셔서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의 선교를 진전시키시고, 생명이 번성하도록 하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선언문이 설명하는 주변부 사람들의 선교능력이란 생존의 위협을 당한 주변부 사람들이 집단적인 투쟁과 저항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주변부 사람들은 더 이상 선교활동의 수혜자가 아니라 이제 선교활동의 적극적인 행위자라는 뜻이다. 이들의 선교활동이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며, 생명의 충만함을 방해하는 권력에 저항하고 투쟁할 것을 요구하고, 또 정의, 인간존엄, 생명의 대의를 지키는 운동에 흔쾌히 함께 일하는 것이다. 교회는 주변부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을 향해 선교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호켄다이크는 교회가 신국 복음을 증거하며 회개와 개종을 요청하는 것은 세상을 자기 형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교회가 ‘존재(Sein)’이기를 포기하고 하나의 ‘기능(Funktion)’이 되라는 말이다. 호켄다이크는 전통적인 교회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고 고백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개종 운동을 거부한다. 과거에는 선교를 ‘모으고 내보내는’ 선교 구조, 즉 입력 구조(come-structure)로 이해하고 선교를 포교(propaganda)로 이해했으나, 이제 ‘새로운 선교신학’인 ‘출력 구조(go-structure)’는 개종에 몰두하는 것이 반선교적인 것임을 알고 ‘자신을 주는 교회(self-giving church)’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CWME는 이러한 ‘출력구조’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참여하는 역동적인 구조이며, 모든 확장 개념을 버리는 뜻이라 설명한다. CWME가 제시하는 교회의 새로운 선교 형태란 세상 사람의 요구에 봉사하여,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주고 방문해야 할 일(마 25:34-39), 젊은이들과 노인들을 돕는 일, 성례전적 생활을 조성하여 소집단 속의 인간들이 자신을 개발하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일, 고독을 극복할 일, 직업적 그룹들의 성장, 노동자 회중과 학생들의 모임, 사회봉사운동, 정치적 활동을 위한 유연성과 다양성 요청, 급변하는 사회에 올바르게 대처, 새로운 상황에 자신을 개방하는 일 등이라고 한다.

WCC가 1960년대 초부터 주장하는 ‘교회의 개방’은 2013년 부산총회를 준비한 ‘함께 생명을 향하여’까지 계승된다. “하나님의 선교를 우주적 차원에서 인식하는 것과 온 생명, 온 세상이 하나님의 생명의 그물망 안에서 서로 연결된 존재”라고 하는 포괄적인 세계관을 가진 WCC는 “다른 피조 세계가 멸망하는데 인간만 구원 받을 수 없다고”고 하며, 온 세계에 대한 포용성은 “인간과 피조물의 공동체 안에서 인간과 피조물이 서로를 인정하고 각각의 신성한 가치를 서로 존중하고 유지하는 정당한 관계를 촉진시킨다”고 주장하고 WCC는 교회의 일치만이 아니라 “더 광범위한 일치의 이해로, 즉 인류의 일치 및 하나님의 피조세계의 전체의 우주적 일치로 개방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CWME는 위와 같이 새로운 선교구조 외에 새로운 예배형태도 제시한다. 그것은 모든 참석자들의 활발한 참여를 허용하고 성직자화되지 않으며, 예배의식의 모든 요소를 비판해주도록 세상 사람에게 요청하여 세상 사람이 세속적 형태의 예배를 개발하게 하는 것을 교회의 의무라고 한다. 또 어떤 특별한 날이나 시간만이 극히 신성하게 취급돼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리고 신학 전문인들에게만 안수식을 베풀 것이 아니라, 비신학인들에게도 안수하여 특정 그룹이나 분야에서 교회를 대표하여 세속적 봉사를 할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요구할 것을 제시했다. CWME는 신학전문가에 의해서 규격화된 교리를 전수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 이유는 “영구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교회적 신학의 전통에 소중하게 간직되어 온 많은 상징들과 개념들이 그 타당성을 잃게 될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이 WCC는 성경적 기독교 신앙이 전제되지 않은 불신앙적이고 반개종주의적인 우주 일치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2012년 ‘함께 생명을 향하여…’ 선언문은 회심에 대한 복음주의적 진술도 포용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전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과 제자도를 향해 개인적 회심으로 초대”하는 것이며, 회개와 믿음과 세례로 인도하고. 회심을 일으키며 태도와 우선권과 목적에 변화를 수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도 회개에 개종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WCC 선언문에서 ‘개종’이라는 단어에는 “폭력적 수단이나 권력의 남용”, “경제적인 이익 제공” 같은 부정적이고 악한 수식어가 붙어있어, 개종 선교는 비합법적인 방법이라고 정의된다.

4. ‘현재적 종말관’과 반개종주의

위의 일원론적 역사관을 전제로 CWME는 Missio Dei의 목적을 개종이 아니라 샬롬에 두고 있다. 이 세상에는 오직 하나뿐인 이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시는 Shalom의 역사이며, 이 Shalom의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고 이해되는 것이다. 이 Shalom은 인간의 ‘내적 상태(마음의 평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사건이며, 인간관계의 사건이다. Shalom은 상황 속에서 발견되어야 하고 또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속적인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구속 활동을 찾아내야 하며, 그 세속 사건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샬롬을 세워나가는 신호는 “유색인종의 해방, 산업사회의 인간화에 대한 관심, 농촌사회 발전을 위한 갖가지 시도, 직장윤리의 추구, 지적 정직성과 통합에의 관심” 등이다.

WCC 신학자들은 이 세상 나라를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한다. WCC의 관심이 교회 대신 ‘세계’에, 그리스도인 대신에 ‘인간’에 맞춰지고, 영혼 구원에는 관심이 없음이 이미 잘 파악되었다. WCC는 하나님이 성도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하나님이고, 교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역사의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불신자를 포함한 전세계라고 주장한다.

위와 같이 WCC의 신학에서는 교회와 세상의 구별이 사라졌고,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구원하심을 혼돈하고 있다(참고: 고후 6:14-18). WCC는 예수 그리스도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천국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역사 속에 들어오셨다는 이유로 오직 현재적인 하나님의 통치와 낙관적인 역사관에 심취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위와 같이 CWME의 시야는 극단적으로 인간적이고 횡적인 관심에 집착되고, 일반적으로 하나님과 영적 문제 및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미래적 천국에 관한 종적 시야는 상실돼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것보다, 빵 문제와 땅의 문제 해결을 더 우선적인 문제로 받아들인다. 회개를 통한 개인구원과 ‘불신자의 멸망’, ‘미래적 천국관’을 상실하고, 대신 역사 내적 천국을 의미하는 총체적 개념인 ‘전 세계’, ‘새로운 질서’, ‘하나의 역사’라는 단어들로 대체했다. 여기서 개종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5. 해방신학의 반개종주의

해방신학은 WCC의 <세계를 위한 교회> Missio Dei 신학과 동시대적 해방신학자 R. Shaull에 의해 주장된 WCC의 ‘혁명 신학’과 세계관이 서로 비슷하며, 이후 WCC 선교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해방신학의 특징을 살펴보면 CWME의 ‘일원론적 역사관’과 같이 해방신학도 일원론적 역사관을 소유하고 있다. 해방신학의 상징적인 인물인 G. 구티에레츠(Gutierrez) 역시 역사는 오직 하나 뿐이라고 한다. 그는 구원사와 세속사라는 두 개의 역사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는 역사의 주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세상 모든 영역을 포괄한다고 한다.

해방신학은 믿음과 개종이 구원을 위해 필요하지 않다. 해방신학은 인류를 하님의 성전으로 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적 고백이 없는 불신자들의 자동구원을 주장하게 된다. 구원사와 세속사가 하나로 통합된 인류역사가 ‘구원 역사’로 이해된 것이다.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성전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육신 이래 인류와 전체 역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다. 성전 밖에 있었던 ‘속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성전과 속세의 차이가 있다면 교회는 작은 성전, 인류 역사는 큰 성전이라는 것 뿐이다. 이렇게 교회 뿐 아니라 우주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해방신학은 모든 창조물을 이미 구원받은 것으로 간주한다. 해방신학이 온 인류를 포괄하는 구원의 근거는 그리스도가 이 포괄적인 역사 속에 인간이 되셨다는 데 있다. 구원을 받기 위해 개종이나 신앙고백이나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해방신학의 구원관은 <세계를 위한 교회>의 ‘현재적’이고 ‘역사 내적 구원관’과 병행된다. 구티에레츠의 해방신학은 구원이 역사 내적이며, 초월적이 아니라 현재 구체적인 하나님과의 공동체이며 인간들과의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CWME 선언문들과 해방신학의 구원관은 ‘오직 믿음으로’ 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 구원은 역사 내적인 완성이다. 이와 같이 ‘해방신학’과 이와 병행하는 CWME 선교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 이후의 나라를 기대하지 않는다. 재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 역시 해방신학과는 상관이 없다.

해방신학적 구원을 의미하는 ‘죄로부터의 해방’이란 정치-사회적 구조악 내지 사회악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구조 변혁 없이는 개종(회심)도 없다. 죄는 철저한 해방(radikale Befreiung)을 요구하고, 정치적 해방도 포함한다.

WCC의 혁명신학은 1966년 제네바에서 열린 ‘교회와 사회 세계대회’에서 수백만을 억압하고 희생시키고 불의한 사회구조를 형성하는 불가시적 무력, 즉 무혈의 무력으로 온 백성을 영원히 절망시키는 것 보다는 유혈의 혁명이 더 적은 악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특수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무력을 사용할 수 있고 유혈혁명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개종에 관한 개념도 ‘이웃에로의 개종(회심)’이다.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우리는 이웃에게서 하나님을 만난다. 해방신학은 이웃에로의 개종이 그리스도에게로의 개종과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웃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Christus im Nächsten).

해방신학은 불신자의 개종에는 일체 관심이 없이, 신자들 자신이 이웃으로 철저히 개종(회심)하고 구조를 변혁하는 것 뿐이다. 해방신학에서 개종해야 할 사람(회심자)은 불신자나 타종교인이 아니라 우리 기독교인 자신이다. 우리가 이웃으로, 억압받는 사람에게로, 착취당하는 사회 계급으로, 무시당하는 종족으로, 지배당하는 땅으로 개종하는 것이다. 개종(회심)은 우리 자신의 철저한 변화를 뜻한다(eine radikale Veränderun unserer Selbst).

우리의 ‘철저한 변화’란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느껴야 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해방신학은 하나님께로의 회개도 없고, 그로 인해 성령의 역사도 없고(행 2:28) 구원의 상실을 초래한 것이다(눅 12:4, 5).

결론

WCC는 복음적인 개종선교를 크게 오해하고 있다. 사실은 가톨릭권이나 정교회권에서 전도한 결실로 일어난 개종(conversion, Bekehrung)은 종파나 교회집단에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하는 것임을 WCC는 깨닫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WCC가 종교다원주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기독교 칭의신앙과 ‘우상숭배’ 개념을 분실한 것 같다. WCC의 반개종주의는 구원을 받기 위해 믿음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개종은 사도행전 19장 19절의 마술사들이 마술책들을 소각하고 예수께 돌아와 과거에 숭배하던 대상이 우상이었고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한 가장 큰 죄악이었음을 깨닫는 회개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 아닌가? 진정한 회개와 개종은 오직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지, 인간의 힘과 수단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다는 특징이 있음을 WCC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WCC의 주장과 같이 오늘날 억압하고 강요하여 얻는 개종자가 어디 있는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핍박을 받아가며 잃은 WCC가 성령을 거스르는 행위 아니겠는가? WCC는 이 시대의 개종으로 인하여 죽임까지 당하는 무슬림 개종자에게 불필요한 개종을 했다고 비난하겠는가?

WCC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 또는 최후의 심판 같은 것은 놓쳐 버렸다. 오늘날 선교사들은 강압적으로 개종선교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종선교가 이미 부정적인 단어가 되었다면 우리는 오늘날 선교사들이 엄청난 희생적 사랑을 부으면서 자기를 헌신하면서 잃은 영혼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복음적 개종 선교(Proselytism)가 아니라, ‘회심 선교’(conversion)라고 칭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시작하신 회심선교(마 4:17)는 제자들에게 명하신 마지막 유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영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오히려 모든 사람들에게 헌신적으로 회심 선교를 수행하여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을 얻도록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막 16:15f). 모든 족속, 온 인류는 화해와 일치의 대상이기 전에 먼저 구원의 대상이고 복음을 들어야 할 대상이다.

결론적으로 WCC의 반개종주의는 예수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기독교 운동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동주 소장(선교신학연구소,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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