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장의 ‘38년 된 병자’가 의미하는 것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유동근 목사 요한복음 강해 11]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심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요한복음 5장 1-18절 강해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일이 있은 때는 유대인의 명절이었다. 유대인의 명절이라 함은 하나님의 절기이다. 유월절이나 초막절 같은 절기이다. 절기는 일주일씩 지속되었는데, 이 날은 특히 안식일이었다. 예수님이 그날 예루살렘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는 못에 가셨는데 이곳에서 하나의 역사가 있었다.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역사였다. 이 이야기에는 정말 깊은 비밀이 들어 있다. 당시 예루살렘은 종교의 중심지였고 유대교의 센터였다. 예루살렘 성벽에는 문이 여러 개 있었고 어문, 양문 등 짐승들의 이름을 딴 문도 있었는데, 양문 곁에 베데스다란 못이 있었다. 베데스다는 ‘자비의 못’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거기에 행각이 다섯 있었다. 솔로몬 때에는 솔로몬 행각을 지었다고 했던 것처럼 이 역시 유서 깊은 행각이었을 것이다. 그곳에 환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왜 환자들이 그 다섯 행각에 흩어져 누워 있었을까? 그들은 그 역사가 서려 있고 전통적인 곳에서 혹 치료받을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연못의 물이 동할 때 들어가려는 것이었다. 언제 물이 동하는가? 천사가 가끔 한 번씩 물을 휘젓는데 그 때 제일 먼저 연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치료된다는 풍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혹시 병이 나을까 해서 각색 병에 걸린 사람들이 다섯 행각에 흩어져 누워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인 그날 다른 곳에 가지 않으시고 그곳에 가셨다. 그분은 안식일을 지키시는 방식이 다르셨다. 그곳에서 가장 심한 환자를 찾으셨다. 그리고 질문하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이 오래된 사람이 주님의 관심사가 된 것이 은혜롭다.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오래된 환자들의 경우 가망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은 오래 병으로 고생한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기 원하셨다. 너무 오랜 세월 질병으로 고생한 것을 불쌍히 보신 것이다. 오래된 사람도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 아닌가? 주님께는 오래된 병이든 얼마 안된 병이든 다 고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아픈 사람들은 그 못에 다른 사람보다 먼저 뛰어 들어가야 했다. 환자들 중에는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 그리고 38년 된 병자도 있었다. 소경이 어떻게 뛰어가는가? 절뚝발이도 잘 뛰어가지 못한다. 소경은 심지어 물이 동하는 것을 보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당시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율법은 옳은 것이다. 지키기만 하면 다 된다. 구약 성경을 보라. 율법을 다 행하면 의롭게 되고 생명을 얻고 축복도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모두 죄인들로서 죄로 병들어 앉은뱅이가 되고 소경이 되었기에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키면 되지만,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유대교 같은 분위기는 무엇이겠는가? ‘아주 속도 빠르게 뭔가 하는 사람은 된다더라, 가끔 되는 수가 있다더라’는 이야기들이다. 확인된 것은 없다. 아마 된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도 안 된다고 한다면 유대교가 유지되겠는가? 뭔가 된다는 소리가 있어야 소망을 걸고 기다리지 않겠는가? 이것은 그러한 환경이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막연히 좋은 미래를 기대하며, 5년 혹은 10년 열심히 다니다보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이라도 구원을 받고 말씀을 받으면 벌떡 일어날 수 있는 줄도 모르고, 가끔 어떤 일이 있다는 풍설만 믿고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이 다 율법적인 사상을 가진 교회들이고, 신자들이고, 환자들이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 예수님이 오셨다. 예수님은 복음의 주(主)요 은혜의 주님이시다. 그분은 믿음의 말씀을 주셔서 한 말씀으로 치유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막연하게 ‘어떻게 되겠지’가 아니다. 믿으면 역사가 일어나고야 마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다.

그 가운데 가장 어려운 환자를 찾아 질문하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겉으로는 단순한 질문 같다. 낫기를 원하지 않으면 거기 왜 누워 있겠나? 하지만 주님은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시는 분이 절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 속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 있다. 정지되었던 그의 믿음과 지성의 능력을 일깨우는 질문이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셨을까? 주님은 사람들의 심리를 너무나 잘 아신다. 너무 오랫동안 이곳에 누워 있지만, 낫지 않는다. 이럴 때 가장 큰 문제는 치유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세월 속에 ‘소용없다’ ‘안 된다’하는 음성이 마음 속 깊이 메아리쳐 왔다. 불신이 축적되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 속에 불신을 심어, 우리를 아예 무능하게 만들고 우리로 다시는 온전하게 되고 소생될 것이라는 소망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높은 지경까지 새롭게 하신다(골 3:10). 창조자의 형상을 따라, 아담 이상으로 거룩하고 순수하며 하나님과 정말 좋은 관계를 가지면서 살 수 있도록 회복될 가능성을 목표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못하다. 죄를 오래 짓다 보니 죄가 우리를 무능하게 만들어버렸다. 남들에게 친절히 대하고 위로해 주고 좋은 말을 해 주고 싶은데 왜 이렇게 미운 말이 나오고 상처 주는 말이 나오는지, 또 판단하고 정죄하는 말이 나오는지, 좀처럼 잘 되지 않는다. 주님은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용서가 잘 안 된다.

그러나 베데스다 연못은 무슨 기능을 하는가? 그러한 환자들을 수용하는 기능을 한다. 베데스다 못은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고 그 이름 또한 ‘자비의 못’으로서 매우 그럴듯하다. 그럴듯하지 않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러한 역사적인 전통과 신비한 치료의 전설이 내려오는 몇 가지 말들이 사람들에게 막연한 기대와 소망을 줄 뿐 실제로 자신에게 믿음으로 와닿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런 자리에 누워서 약간의 양심의 위안을 삼고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오늘날 이런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교회에 안 가자니 불안하고, 간다고 해서 큰 일이 생길 일은 없고, 안 가는 것보다는 가는 것이 좀 마음에 위안에 된다.

육신적인 질병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주님은 우리 영혼의 문제만 해결해주신 분이 아니라 육신도 치료해 주신다. 성도들 가운데 몸이 약한 분들이 있다. 몸이 약하면 거기에 좌절까지 겪게 된다. ‘나는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보다. 큰일 났구나. 평생 이렇게 살면 어떡하나?’ 점점 좌절의 수렁에 깊이 빠지다 보면 옛날처럼 좋아지고 건강하게 될 수 있다는 소망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다 사탄이 하는 일이다. 죄는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질병보다 더 무서운 것, 완악하고 무서운 것이 바로 이 ‘불신’이다.

그러므로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한 마디 말씀은 귀한 복음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려 오래되면 다른 치료해줄 사람을 의지하는지! 그러나 주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시기 원하신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다. 자기 스스로 일어나려는 의지가 없는 자는 길이 없다. 그래서 주님은 먼저 ‘네가 정말 낫고 싶으냐? 정말 치료되고 싶으냐?’ 라고 물으시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잠자던 믿음을 깨워주는 말씀이다. 그럴 때 병자에게는 ‘아니, 그럼 나 같은 사람도 나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라는 생각이 일깨워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율법이 아니다. 연못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 한 말씀으로 다 이루신다. 이 사람의 답변을 보라.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자기의 관념과 체계에서 금방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베데스다의 문화에 젖어있었나? 천사가 내려와 못이 동할 때 못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자가 낫는다 하는 것이 그가 아는 전부다.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율법 외의 한 의이다. 율법의 의만 알던 유대인들에게는 생소한 말이다. 바울의 이러한 신개념(복음)은 율법으로 가득한 유대인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말이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이런 생각으로 교회 한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종교적 관념은 진리가 아닌데도, 말씀보다 더 큰 지위를 갖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식과 율법은 다 지키면 생명을 얻지만, 사람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없다.

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먼저 다른 사람이 내려간다’는 그의 말에는 대답도 안 하셨다. 그런 것은 예수의 하시는 일이 아니다. 다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한 마디 하신다. 이는 도대체 처음 듣는 말이다. 하지만 예수님 입으로 나온 말씀을 직접 듣고 믿을 때 기적이 발생하고 역사가 일어난다. 예수 믿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말씀 한 마디를 듣고 그저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 3:16)”. 믿었다면 영생을 가진 것이다. 말씀대로다. 다른 것을 보태지 말라. 천사가 왜 필요한가? 물이 움직이는 것이 왜 필요하고 거기까지 뛰어가는 것이 뭐가 필요한가? 예수님이 한 마디 하신 말씀 그대로 믿고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나는데 다른 것이 뭐가 필요한가?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환자가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었다. 기뻤다. 그러나 그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예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믿은 것이다. 믿고 순종하니 역사가 일어났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기쁨이 충만했다. 체험하고 예수 믿는 재미를 느낀 것이다. 나도 그랬다. 참된 주님을 믿으려면 예루살렘이고 베데스다고 행각 다섯이고 천사고 다 없어져야 한다. 예수를 만나야지, 천사를 왜 기다리는가? 그런 잘못된 생각이 가득하니 예수를 못 만나고 말씀 제대로 못 믿는 것이다.

예수님 말씀을 믿으면 사슴같이 뛰는 신앙으로 바뀐다. 여러분 인생이 지금까지 사막이었는가? 예수를 잘 믿으면 물이 흐른다. 이런 기적이 일어난다. 예수 믿고 기적이 한 번도 안 일어났다면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벙어리가 어떻게 노래하는가? 그런데 노래하게 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누워있던 자들이여! 누워서 기다리지만 말고 믿고 즉시 일어나면 된다. 믿기만 하면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여러 가지 방법을 찾지 말고 한 마디 듣고 일어나면 되는 것이다. 주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단번에 용서하시고 구원을 베푸셨다. 오랜 시간 기도하거나 선행을 한 뒤에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38년 된 병자가 일어나서 걷게 되는 놀라운 일이 생겼음에도 유대인과 바리새인들, 자칭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38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거쳤던 지점들의 숫자와 맞먹는다. 그 38 지점을 거치면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은 고갈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베데스다의 한 병자가 치유된 것처럼 소수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믿음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광야에서 다 쓰러져 죽었다. 이것은 경고이다.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요한복음 5장은 두 종류의 사람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 주 예수님은 한 마디 은혜의 말씀으로, 생명의 말씀으로 사람을 살리셨다. 주님은 안식일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것을 상관하셨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하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이런 역사를 하신다. 그러나 의문 문자, 자구에 떨어져서 38년 동안 사탄에게 매여 있던 자들은 주님이 사람을 살렸을 때 그 사실 자체를 귀하게 여길 줄을 모르고, 문자적으로 안식을 지키는 것을 어겼다며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12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예수를 믿고 말씀을 받아들이면 육신도 치유되고 정신도 치유되고 여러분의 온 존재가 새롭게 되고 온전케 된다. 그런데 그 이후가 중요하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죄의 결과로 질병에 걸리기 때문이다(시 107:17-18). 죄와 질병은 관계가 있다. 모든 질병이 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한다면, 욥이나 사도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대다수의 병은 죄로 말미암았던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그래서 주님은 한 마디 더 하셨다.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으려면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38년 된 병자가 과거 앓던 병보다 더 심하게 되면 어찌 되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치료받고 새롭게 되고 완전케 되고 건강하게 되는 것을 배울 뿐 아니라, 전에 지었던 죄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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