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성원·이형기 박사의 ‘WCC, 바로알자’에 답하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반개종주의와 종교다원주의… 정말 오해한 걸까?

▲이동주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이동주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2013년 5월 3일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에서 ‘WCC 영성과 한국교회’라는 제목으로 ‘제19회 기독교학술원 영성포럼’이 개최된 후, 다음날 WCC 중앙위원인 박성원 박사와 장신대 명예교수인 이형기 박사는 ‘WCC, 바로알자’ 라는 문서를 작성하였다(크리스천투데이, 2013. 5. 15. 제4면). 내용 중에는 필자가 발제했던 ‘WCC와 개종의 영성’과 2012년 2월 3일 발제한 ‘WCC의 혼합주의 영성연구’ 내용과 상충한 점이 있어 한번 확언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러므로 필자는 5월 3일 기독교학술원에서 발제한 1960년대 이후의 ‘WCC의 반개종주의’에 관해 역사 순으로 재확인하고, 다음으로 작년 발제한 ‘WCC의 혼합주의 영성연구’를 통해 1960년대부터 열거한 WCC의 종교다원주의 신학 요점들을 거론하겠다.

필자가 WCC 신학연구에 대해 ‘1960년대’를 기점으로 하는 이유는, WCC의 선교신학이 이때부터 변질되었기 때문이고, 개종을 거부하는 신학과 선교는 복음주의 입장에서 보면 잃은 영혼들이 더 이상 구원을 받을 길 없어지는 심각한 문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죄 사함과 구원을 받기 원한다. 한국교회의 터전에서 성도들이 알곡과 같이 평화롭게 잘 자라도록 하려면 잡초 없는 터전이 되어야 한다. 필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비복음적이고 반성경적인 잡초의 뿌리가 한국교회 속에 깊이 뿌리내리기 전에 이를 가려내고 뽑아내기를 희망한다.

1. WCC의 반(反)개종주의

크리스천투데이가 요약한 위 두 학자의 주장은 아래와 같다.

◈개종전도를 금지한다?=특히 최근 논란이 된, 소위 ‘개종전도 금지주의’에 대해 이들은 “WCC는 결코 개종전도 금지를 선포한 적이 없다”면서 “이것은 WCC의 생성 동기나 역사, 현재의 선교 노력,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두 박사에 따르면 WCC 제1차 총회는 ‘복음이 세상 만방에 전해지도록 하시기를 기도한다.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사랑 안에 살겨 그가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게 되기를 기도한다’는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고, 1982년이 발표된 WCC 공식문서 역시 ‘(복음의) 씨를 뿌리는 이 임무는 하나님 나라의 세포인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교회,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섬기는 교회가 모든 인간 공동체 안에 존재할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두 박사는 “이런데 어떻게 WCC가 개종전도 금지주의를 선포했다고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이 내용으로 말하자면 두 학자는 “WCC는 결코 개종전도 금지를 선포한 적이 없다”는 것이며 “이것은 WCC의 생성 동기나 역사, 현재의 선교 노력,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단언하고, “이런데 어떻게 WCC가 개종전도 금지주의를 선포했다고 하는가”라는 반문이다.

위 주장과는 대조적으로, WCC는 1967년 WCC에서 출판한 <세계를 위한 교회(박근원 역,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 보고서는 ‘개종선교’를 비판하고 있다. WCC는 전통적인 복음전도의 ‘회심(conversion)’을 세상으로부터 전환하는 운동으로, 교회 출석을 강조하고 밖에 있는 사람을 안으로 초청하여 개종시키는 것이라 설명하며 이를 비판한다. 대신 WCC가 긍정하는 ‘회심’은 첫째로 “이웃의 이익에로의 전향”을 의미하고, 이를 “세상에로의 전향”이라고도 칭한다. <세계를 위한 교회>의 회심은 둘째로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집합적 차원에서의 변화를 뜻한다(131-33).

WCC는 전통적 선교구조를 ‘입력구조(come-structure)’라 칭하고 이를 “안으로 초청해 들이는 개종(proselytism)의 형태”라고 한다. 입력구조는 교회가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선교구조로써 정적인 사고방식, 세상으로부터의 고립, 복음선교에 방해되는 장애물로 작용했고, ‘Missio Dei’를 방해하는 ‘이교적 구조’라고도 한다. 또 “개종화만 추진하는 교회는 자신을 구원의 중개소로 취급하며 사람들이 세상으로부터 교회 구조 안으로 이민해 오기를 기대한다”며 개종선교를 부정하고 있다(Ibid., 36-38).

반면 WCC가 옳다고 주장하는 선교구조는 ‘출력구조(go-structure)’이다. ‘교회는 모든 확장의 관념을 버리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구심점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으로, 교회는 “탈중심적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과거의 선교관은 “선교를 포교로 왜곡시키거나 우리 기독교인의 이미지로 만들고, 교회의 탈을 쓰도록 하는 시도”였으나, 출력교회적 선교는 회중(개교회의 교인들)이 세상을 향해 개방성을 갖추고, 세상 사람의 요구에 봉사하고, 함께 나누고 동참하는 것이라고 한다(Ibid., 44-46).

1973년 선언된 ‘모라토리움’은 신생 교회 지역에서 선교를 중단하라는 요구였다. 1973년 방콕 선교대회가 ‘Moratorium(지불정지)’이라는 ‘반선교 정책’을 내놓게 된 동기는 1971년 1월 WCC의 ‘인종차별 투쟁 사업부’ 간부들과 Bern대학 민속학과 학생들이 중남미 한 섬인 Barbados에서 함께 인디안 해방을 목표로 세미나를 개최하게 된 때부터였다.

연구결과 그들이 내린 선교에 대한 정의는 ①식민주의 이념이 종교적 가면을 쓰고 인디안 문화를 배척하며 ②인디안을 선교 대상으로 굴복시켜 과소평가하고 ③선교사들은 오히려 물질적 그리고 이상적으로 자기를 실현하였으며 ④식민주의를 행했다는 등의 내용이다. 여기서 ‘Barbados 선언문(Erklärung)’이 발표되었다(Bockmühl, K., Was heißt heute Mission?, Giessen, 1974, 128).

이것이 바로 1973년 방콕 선교대회’에서 선교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게 된 동기이다. 선교 모라토리움은 이 대회 제3분과에 제시되면서 피선교 교회들의 우위성과 동질성을 확립하기 위해 “선교국은 더 이상 선교비 및 선교사 보내기를 중단하라”는 것이었다(Bayerhaus, P., Bangkok 73-Anfang order Ende der Welt Mission? Neuhausen-Stuttgart 1973, 102).

1973년 방콕 선교대회 이듬해인 1974년 스위스 로잔 ‘세계복음화 국제대회’에서 공표된 복음주의 선언문인 ‘로잔언약’ 제9항에서도 일면 모라토리움을 수긍하고 있다. “이미 복음이 전파된 나라에 해외 선교사와 선교비를 감축하는 일은 토착교회의 자립심을 기르기 위하여 혹은 아직 비복음화 지역으로 그 자원을 회전시키기 위하여 때로는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라는, ‘선교를 하기 위한 Moratorium’이 선언됐던 것. 이는 1960년대부터 WCC에서 신생교회를 포함한 모든 선교지에서 선교 모라토리움을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과는 다르다.

그러나 1982년 선언된 WCC의 공식 선언문인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칼적 확언’ 문헌은 선교 모라토리움은 “선교 자체에 대한 모라토리움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설명과 함께 ‘반개종주의’를 선언하는 것이다. “모라토리움이란 현지 교회가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확언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또 선교의 주역으로 전통적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도록 최소한 얼마 동안 선교사와 자원을 다른 나라로 보내고 받는 일을 멈추는 것을 말한다”며 과거1973년의 모라토리움을 수정했다. 그렇다고 WCC가 개종선교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제 1장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칼적 확언, <통전적 선교를 위한 신학과 실천>, 60).

WCC 선교와전도위원회(CWME)도 1997년 ‘반개종주의’를 재확언하고 있다. ‘공동의 증언을 위한 소명: 신뢰관계의 선교와 개종주의 중단’ 선언문은 WCC가 로마 가톨릭적 입장을 두둔하면서, 상호 존중을 훼손하는 개종전도활동이 교회일치와 ‘공동의 증거’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개종전도를 금지하는 선교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것이다.

이 개종전도 금지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로마가톨릭과 정교회 지역에 가서 명목상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활동과 교회를 세우는 일을 금지하라는 것이다. 이들은 위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여 개종자를 얻는 행위를 ‘강제적이고 강압적인 개종’이며, 화해를 목표로 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역증거’, 교회의 연합을 깨드리는 가장 비난받아야 할 행위라 규정하고 있다. 또 ‘성상을 받드는 모습을 우상숭배라고 비난하는 행위, 마리아와 성인을 향해 우상이라고 비웃거나 죽은 자에 대한 기도를 비난하는 행위’ 등을 WCC는 중단해야 할 역증거 행위로 지적하고 있다(제2장 공동의 증언을 위한 소명 ‘신뢰 관계의 선교와 개종주의 중단’, <통전적 선교를 위한 신학과 실천>, 92-94).

1960년대부터 WCC의 역사관은 교회와 세상을 구별하지 않는 단 한 개의 통합체로 보기 때문에, 개종선교는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WCC는 역사를 ‘교회역사와 세속역사’, 그리고 ‘구속역사와 일반역사’ 등 이중적인 역사로 구별하여 왔다며 전통 신학을 비판한다. 그리고 G. Warneck의 주장을 예로 들면서 그가 비기독교인에게 가서 교회를 조직하고 세우는 것을 선교라 하고, 기독교 지역과 비기독교 지역이 따로 있으며, 신자의 지역과 불신자의 지역이 따로 있어 신앙인이 불신앙인의 경계선으로 넘어가는 것을 선교라 생각한다는 말로, 이를 다 ‘재래적인 선교관’이라고 비판한다(WCC., Mission als Struckturprinzip, Genf, 1965, 32). CWME의 이같은 일원론적 교회론은 교회 역사를 특별한 역사로 인정하지 않고, 역사를 ‘온 인류의 전체적인 역사’ 하나 뿐으로 보는 것이다.

WCC가 1960년대 초부터 주장해오던 ‘교회의 개방’은 2013년 부산총회를 준비한 WCC의 공식 선언문(2012년) ‘함께 생명을 향하여: 기독교의 지형변화 속에서 선교와 전도’로까지 계승된다. ‘하나님의 선교를 우주적 차원에서 인식하는 것과 온 생명, 온 세상이 하나님의 생명의 그물망 안에서 서로 연결된 존재(WCC, 함께 생명을 향하여, 제3항)’라고 하면서, WCC는 ‘다른 피조 세계가 멸망하는데 인간만 구원받을 수 없다(Ibid., 제23항)’고 한다. 그리고 교회의 일치만이 아니라 ‘더 광범위한 일치의 이해로, 즉 인류의 일치 및 하나님의 피조세계 전체의 우주적 일치로 개방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관에 개종선교는 처할 자리가 없다.

그러나 2012년 선언문 ‘함께 생명을 향하여’는 회심에 대한 복음주의적인 진술도 포용적으로 서술하고 있다(Ibid. 제 85항. 85항). 전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과 제자도를 향해 개인적 회심으로 초대하는 것’이며(Ibid., 제81항), 전도는 회개와 믿음과 세례로 인도하고, 전도는 회심을 일으키며 태도와 우선권과 목적에 변화를 수반한다(Ibid., 제 84항)고 서술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회개에 개종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1968년도 제4차 웁살라 총회에서 WCC 선교목표는 ‘인간화’였는데, 그 선교 방법은 회개나 개종이 아니라 ‘투쟁’이었다. 이미 ‘교회는 인간의 자유와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다른 그룹들과 동지적 유대를 갖게 될 것이고, 교회는 싸움터를 제공하는 하나의 광장(forum)이 될 것’이라고 했다(<세계를 위한 교회>, 138).

위와 같이 WCC의 ‘반개종주의’는 복음을 듣지 못한 수십억 잃은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죄 사함과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하며,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구원을 얻는 개종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WCC 선교 신학에서 우상의 개념은 오래 전 사라졌기 때문에, 개종의 필요성도 사라졌다.

2. WCC의 종교다원주의

크리스천투데이가 요약한 위 두 학자의 주장은 아래와 같다:

◈다원주의?=다원주의에 대해선 “이것도 WCC가 왜 종교간 대화를 해왔는지, 어떤 입장으로 해왔는지를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WCC는 세계평화와 인류공동의 과제를 두고 종교간 대화를 한다. 그러나 WCC가 종교간 대화를 할 때 기독교 신앙을 벗어나서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WCC의 궁극적 목표가 서로 다른 교파들 사이에 교리적 일치를 이루는 것인데 성찬에 관한 교리가 달라서 아직 회원교회가 성찬도 같이 나누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데 어떻게 기독교 교리를 타종교의 그것과 섞는 것을 시도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박했다.

위 진술은 WCC가 세계평화와 인류공동의 과제를 두고 종교간의 대화를 하지만, 기독교 교리를 타종교의 그것과 섞는 것을 시도할 수는 없다고 반박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와는 대조적으로, WCC에서는 1971년 혼합주의적 ‘종교간의 대화’가 실행되었다. 그 준비 단계로 이미 1961년 제3차  WCC 뉴델리 총회부터 기독론과 성령론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우주적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개념을 사용한 미국인 씨틀러(Joseph Sittler)는 제3분과에서 ‘일치를 위해 부르심 받다(Zur Einheit berufen)’는 주제로 발제하면서, 그의 신학적 근거를 ‘우주적 그리스도론(kosmische Christologie)’ 내지 ‘포괄적 그리스도론(umfassende Christologie)’ 또는 ‘확대 그리스도론(erweiterten Christologie)’에 두었다.

그는 하나님의 빛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떤 피조물도 제외시키지 않고 비췬다는 이유로, 예수가 세상의 구원자라는 의미를 담아 ‘포괄적 그리스도론(umfassende Christologie)’과 ‘우주 구원(kosmische Erlösung)’을 주장한 것이다(Zur Einheilt berufen, hers. v. W. A. Visser't Hooft, Neu-Dehli, 1961, Stuttgart, 1962, 513-523).

동 총회 제1분과에서 인도 신학자 P. 데바난단은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다(Zu Zeugen berufen)’는 제목으로 발제하면서 “하나님이 세상을 자기와 화목케 하신 고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평화가 수립되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평화가 세워졌다”면서, 타종교들을 ‘성령의 창조적인 사역에 대한 응답’이라 주장하였다(Zu zeugen berufen, in: Neu-Delhi 1961, hg. v. W. A. Visser't Hooft, Stuttgart, 1962, 495).

Devananden은 (피조물의 영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의 영과 타종교들의 다양한 종교체험을 혼돈함으로서 영적 혼합주의와 종교 다원주의의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이다.

WCC는 10년 후인 1971년, 이렇게 왜곡된 신학 위에 ‘타종교와의 대화-프로그램’을 설립하였다. 이 프로그램을 설립하기 전 WCC는 1970년 3월 아잘톤 선교대회에서 세 명의 힌두교도와 네 명의 불교도, 세 명의 무슬림과 다섯 명의 WCC 임원들이 함께 종교 혼합예배를 진행했다. 이 대회에 참석했던 인도 무슬림 오스마니아 대학 교수 핫산 아스카리(Hassan Askari)는 이때 경험한 ‘새로운 영성(eine neue Spiritualität)’을 ‘혼합종교의 영성(interreligiöse Spiritualität)’이라 묘사했다. 아스카리는 아래와 같이 WCC의 영적 혼합주의를 진술하였다:

“Dialogue는 … 우리를 하나의 새로운 영성으로 이끌었다. 함께 있는 여러 가지 다른 신앙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새로운 영성은 공동 기도 시간에 가장 강렬하게 느껴졌다. 기도 시간에는 기독교인이건 무슬림이건 힌두이건 불교도이건 간에 누가 기도했는지 또는 명상을 했는지는 대수롭지 않았고, 또 무엇을 기도했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기독교인이 하나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슬림이 “아멘” 하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하게 인식된 것은 다만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공동적 인간적 상황이었다(Margull, H. J., "Der Dialog von Ajaltoun/Beirut", in: Dialog mit anderen Religionen, hg, H. J. Margull u. S. J. Samatha, Frankfurt 1972, 17, 81)”.

이 대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WCC는 이듬해(1971년) WCC 내부에 ‘산 신앙인들과의 대화-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이 대화-프로그램의 초대 책임자였던 S. 사마르타는 서뱅갈 세람포대학 철학과 종교역사학 교수였다. 그는 타종교와의 ‘대화’만이 다원주의 사회에서 유일한 희망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제 교회연합(Ökumene der kirche)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인류연합(Ökumene der Menschen)에 대한 목적을 갖고, 과거적 교회들간의 대화를 넘어 이제 타종교와의 대화를 통한 세계공동체 형성을 위해 모든 종교인들의 협력을 구하였다(Bockmühl, K., Was heißt heute Mission? Giessen, 1974, 131).

사마르타는 10년 전 뉴델리 분과에서 주장된 ‘확장된 그리스도(die Christologie ausweitet)’와 ‘확대 성령론(umfassende Pneumatologie)’을 이어받아 기독론과 성령론을 우주적으로 확대하는 신학을 주창했다. 사마르타는 세계 공동체를 수립하기 위해 힌두교와 같은 범신론 철학체계를 수용하여 기독교 진리의 유일성을 폐지하고 존재론을 중심으로 한 확장된 진리개념을 제시하며, 기독론과 성령론을 확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즉 타종교와의 대화 문제는 기독론을 확대시킴으로서, 그리고 이 세상 종교들과 세속적 이념들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민감해짐으로서 ‘포괄적인 성령론’을 만들어 풀어보자는 것이었다(Bockmühl, K., Was heißt heute Mission?, Giessen/Basel, 132f.).

WCC 제4차 총회(1968년)와 제5차 총회(1975년) 동안 연속으로 WCC 중앙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인도 신학자 M. M. 토마스는 1973년 방콕 선교대회에서, 힌두는 대화를 통해 종교를 바꾸거나 새로운 종교 공동체로 이동할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문화 공동체에 그대로 속해 있으면서 ‘기독교적 힌두(Christlicher Hindu)’가 될 것이라 주장하고, 제5차 WCC 총회에서 ‘그리스도 중심적 혼합주의(Christozentrischen Syntretismus)’를 주장했다. 그의 ‘그리스도 중심적 혼합주의’란 비판적 사고를 통해 교리 차이를 초월하고,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기초로 한 그리스도 중심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Ibid., 142).

이후 1991년 WCC는 정교회와 가톨릭 대표들과 공동으로 작성한 종교다원주의 선언문으로 알려진 바아르-선언문(Baar Statement)을 발표했다. 그 내용 중에는 아래와 같은 종교다원주의적 고백이 들어있다(http://www.cyworld.com/dudrka8888/4734415).

“종교다원성에 대한 우리의 신학적 이해는, 태초부터 만물 가운데 임재하여 활동하시는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우리들의 신앙에서 출발한다. … 인간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들 가운데 임재하여 활동하시는 하나님께 응답해 왔으며, 그 만남을 그들의 고유한 방식으로 증언해 오고 있다. …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활동영역을 제한할 수 없다. … 타종교인들의 삶과 전통 속에 성령이신 하나님께서 활동하심을 고백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 너무 당연하다. …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타종교인들의 증언을 통하여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신비를  다각도로 체험할 것이다.

같은 해인 1991년 호주 캔버라(Canbara)에서 제7차 WCC 총회가 열렸고, 바로 그곳에서 타종교의 영과 혼합된 성령관이 등장하였다. 총회 주제는 ‘성령이여 오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였다. 대회 강사였던 전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정현경 교수는 총회 주제를 강연하면서 애굽인 하갈의 영으로부터, 우리아의 영, 입다 딸의 영, 잔다르크의 영, 원폭 실험지대에서 녹아버린 어린들이의 영, 인간의 탐욕으로 약탈당하고 파괴되고 착취된 땅과 공기와 물의 혼 등 “십자가에서 착취당하고 죽임을 당한 우리의 형제”인 예수의 영과 더불어 한 맺혀 죽은 영혼들을 초청하고 사령과 혼돈한 ‘성령’을 초혼했다(Bericht aus Canberra 91, Frankfurt, 1991, 47-56).

이후로 WCC는 2005년에 선언한 선교와 전도 문서: “화해의 사역인 선교”와, 2012년도 WCC의 공식 선언문 ‘함께 생명을 향하여: 기독교의 지형변화 속에서 선교와 전도’에 복음주의적 신앙고백과 종교다원주의적 고백이 이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는 지면관계상 2012년도 선언문에서 보이는 한 가지만 예로 서술하고 줄이고자 한다. 복음주의적 진술은 제81항의 ‘전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과 제자 도를 향해 개인적 회심으로 초대하는 것’, 제84항 ‘전도는 회개와 믿음과 세례로 인도하고, 회심을 일으키며 태도와 우선권과 목적에 변화를 수반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다른 항목에서는 내용이 달라진다. 제9항에서 ‘하나님의 영은 생명을 긍정하는 모든 문화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 그러므로 진정한 선교는 ’다른 사람’을 선교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교의 동반자로 만든다’는 영적 혼합주의도 표명됐다. 또 ‘함께 생명을 향하여’ 제19항에는 교회에 새로운 회개가 필요하며, 우리는 선교를 ‘인간이 다른 대상을 향해 행하는 어떤 것으로 이해하고 실천했다’고 비판하면서, 선교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들은 … 모든 피조물과 친교에 참여할 수 있다며, 우리가 잘못 선교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WCC 신학자들과 반WCC 신학자들의 신학 토론은 합일에 이르기 매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두 진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신학적 관점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WCC 신학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개인 구원과 회심, 개종은 중요하지 않다. 대신 온 세상의 샬롬, 온 우주적인 화해, 상생(living together), 현재적 구원 내지 평화 등이 최우선적으로 중요하다. 이 사상은 한국에서 불교 같은 타종교의 종교목적과 병행되는 것이므로, WCC와 타종교들의 연합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에 반해 반개종주의적 WCC신학을 비판하는 복음주의 신학자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한 사람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 아래 개인의 믿음을 최우선적으로 중시하고, 불신자의 멸망, 재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될 종말적 구원과 심판, 불신자들의 영혼구원을 위한 선교, 회심과 개종을 통한 구원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선교내용으로 알고 있다. 양 진영은 서로 상대방이 덜 중요한 것을 더 중요하게 불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WCC는 1960년대 이후 불신자들이 회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개종하는 선교를 포기하였고, 그 후 다시는 번복하지 않았다.

필자는 유교학자인 부친께서 93세에 소천하시기까지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사랑하고 기도하며 소천하시기까지 수십년 동안을 포기하지 않고 참고 기다렸는지 모른다. 부친께서 소천하시기 2개월 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 받고 죄 사함 받으실 때, “내가 결국은 크리스천이 되누나!”를 여러 번 반복하시며 기독교로 개종하신 후, 병상에서 얼마나 평안해 하시고 기뻐하셨는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유교도, 불교도, 무교도였던 우리 조상들을 위해 선교사들이 한국 땅에 와서 핍박과 조롱을 받아가며 복음을 전하고, 목숨을 바쳐 사랑하며 참고 희생한 것에 대해서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잘 알고, 참으로 감사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대속의 사랑을 가장 기뻐하는 자들이 바로 개종자들이며 목숨 바쳐 주께 헌신하는 사람들 역시 개종자들이다.

한국인이 그리스도를 열심히 섬기고 세계복음화를 위해 힘 다하는 까닭도 바로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을 깨달아 회개하고 개종한 체험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과거에 참 진리도, 참 구원도, 참 자유도, 참 사랑도 체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기독교에 이것들을 안겨줄 수 있는 복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구원과 우주 구원을 위해, 그리고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도래하기 위해 힘을 다하고 싶은 WCC 신학자들과 우주구원자들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마가복음 16장 15-16절에서,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하신 대로, 잃어버린 양인 한 영혼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은 우리 기독교인들 뿐이라는 것과, 비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그동안 믿고 따랐던 우상을 거부하고 개종하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전도하며 핍박을 참아가며 사랑하며 전 인간적으로 희생해야 되는지를 이해하는가를 말이다.

필자는 WCC가 잃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랑의 마음을 되찾기를, 우상숭배에 대한 성경적인 개념을 되찾기를 바라며, 십계명 중 첫 두 계명을 주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우상과 함께 나누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두기 바란다.

/이동주 소장(선교신학연구소,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은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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