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석 칼럼] 에큐메니칼 한반도 평화컨퍼런스를 보고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서경석 목사(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서경석 목사(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아무도 말하고 있지 않아 결국은 결심하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나 역시 젊은 시절 열렬한 에큐메니칼(WCC·NCC를 중심으로 한 진보적 기독교운동을 칭함) 운동가였던 사람이다. 지금도 부산 WCC총회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런데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2013 에큐메니칼 평화 컨퍼런스”에서 평화협정 청원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는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협정이 되면 핵이 폐기되고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는가? 그렇게만 된다면 누군들 평화협정을 원치 않겠는가? 지금은 평화협정은커녕 정전협정조차 북에 의해 일방적으로 폐기된 상태다. 먼저 정전협정부터 복원시켜야 할 처지다. 평화협정 대화를 하면 북이 핵을 폐기하겠는가? 북핵폐기를 위한 6자회담조차도 무력화되어 있고 북한의 생존권을 좌지우지하는 중국조차도 북핵을 폐기시키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 아닌가? 그동안 남과 북이 맺은 협정이 다 백지화되었는데 북한의 진정한 변화 없이 맺는 평화협정이 과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가?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이런 발상이 나왔는가? 에큐메니칼 운동이 그동안 남과 북의 중간에서 양쪽을 비판하는 양비론적 입장에 너무 젖은 나머지, 무엇이 한반도 긴장의 근본원인인가조차도 바르게 짚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한국인은 물론 중국을 포함한 온 세계가 너무 잘 알듯이 한반도 긴장의 근본원인은 바로 북한 김씨세습 수령독재체제다. 우리 국민은 지난 6개월 동안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고,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연일 계속되는 도발위협을 하고 개성공단을 폐쇄시키는 것을 보면서 이 점을 너무도 절절하게 체험한 바 있다. 북이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이유는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세계에 유례없는 폭압적 독재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박근혜 정부의 신뢰프로세스조차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

또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왜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에 대해 경제·통상 제재를 하게 되었는지, 왜 한국과 미국이 군사훈련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이 이유는 삼척동자도 알고 있듯이 북핵과 북의 도발위협 때문이다. 이 위협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안은 전 세계가 다 같이 공조해서 북한을 압박하고 안보를 튼튼히 해서 북이 도발하면 열 배나 응징하겠다는 결의를 보이는 것 뿐이다. 지금 한국은 이 두 가지 때문에 안보가 지켜지고 한국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유엔의 제재도 해제하고 한미훈련도 중단하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서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를 보장받는단 말인가? 더구나 중국까지 포함한 전 세계적 제재가 있지 않으면 북한은 절대로 개혁개방, 북핵폐기, 인권개선의 길로 가지 않을 것이다. 최근 최용해의 방중(訪中)에서 보인, 약간의 북의 변화도 세계적 차원의 공조압박이 가져다 준 작은 결실이 아니겠는가?

세번째로 에큐메니칼 운동은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 가짜교회인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도, 여전히 그들을 대화 상대로 삼고 있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은 외부교회로부터 모금을 하기 위한 북한 창구일 뿐 교회가 아니다. 이미 봉수교회는 쇼윈도이지 교회가 아님이 드러난 지 오래다. 북한교회는 지하교회밖에 없고 그들은 기독교인임이 드러나면 정치범 수용소로 추방당하고 주동자는 사형당한다. 그런데 아직도 에큐메니칼 운동은 북의 가짜 교회를 상대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북에도 신앙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일반 교인을 속이고 있는 셈이다. 한국 교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을 다 속이고 있다. 이 속이는 일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바로 북한의 지하교인들이다. 그래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더 이상 속이는 일을 하면 안 된다. 그리고 북을 향해 “왜 기독교인을 정치범수용소에 가두는가?”라며 항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크게 공헌했던 에큐메니칼 운동이 북한인권 문제에 이토록 침묵하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WCC 총회 준비측과 아무리 이야기해도 북한인권을 다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WCC가 동북아에 와서 총회를 연다면 동북아의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야 한다. 그래야 고난당하는 자와 함께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WCC는 평화라는 미명하에 압제자 김정은의 편에 서고 있다.

평화협정 백만인 서명운동은 도대체 무엇을 노리는가? 많은 사람이 의심하는 ‘미군 철수 음모’ 때문은 아니라고 하자. 최소한 북의 도발 위협에 한국 국민이 온 힘을 다해 공동대처하는 것을 와해시키려는 의도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제발 중단하기 바란다.

돌아가신 안병무 박사님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는 성서구절을 인용하면서, 어떤 체제나 이념도 인간을 억압할 때는 기독교인은 이에 저항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당시 많은 기독학생들이 그 설교를 듣고 유신체제에 저항하여 감옥에 갔다. 그렇다면 유신체제보다 백 배는 더 독재인 북한세습독재에 대해 왜 에큐메니칼 운동은 침묵하는가? 언제까지 한국의 민주사회와 북한의 세습독재를 동렬에 놓고 양비론을 펼 것인가? 국민이 당신들의 말을 납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지금의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은 에큐메니칼 운동을 죽이고 있다.

※다음은 서경석 목사가 지적한, “2013 에큐메니칼 평화 컨퍼런스” 평화협정 청원 전문이다. -편집자 주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위한 청원
2013 에큐메니칼 한반도 평화 컨퍼런스
 
아틀란타, 조지아 2013년 5월 15일 - 17일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의 자녀들을 갈라놓은 적대감의 벽을 허무셨듯이, 우리도 평화와 화해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에베소서 2:14-16). 한국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정치적 벼랑 끝 정책, 이념의 장벽 그리고 군사주의의 재앙으로 인해 분열되고 고통 받았습니다. 1953년에 체결된 정전협정은 4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1000만의 가족들을 갈라놓은 전쟁을 일시적으로 중지시켰을 뿐입니다. 한반도에 전쟁의 기운이 남아 있는 상태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긴장과 불안정을 조장하였고, 또한 이러한 상태는 인간의 평화적 생존권을 인정하는 유엔 결의안 39/11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각기 다른 공동체로부터 평화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모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한미 군사훈련으로 인해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합니다.

우리는 화해, 통일 그리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갈망하는 남북한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은 한반도에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이며, 그렇게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 민족의 지지와 에큐메니칼 파트너들의 협력 안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평화를 추구하고 옹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반도의 온전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 다음과 같은 행동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하나, 조국의 분단으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청원과 회개의 기도에 동참하고, 화해, 평화 그리고 통일을 위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의 노력을 지지한다.
둘, 남북한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의 즉각적인 재개를 포함한 경제 협력과 대화를 다시 시작 할 것을 촉구한다.
셋, 한국, 북한, 미국 그리고 한반도 문제의 관련국들에게 핵과 재래식 전쟁의 위협을 제거하는 평화협정의 체결을 위한 대화와 협상을 즉시 재개할 것을 촉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한반도와 전 세계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킨다.
넷,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는 북한에 대한 경제 · 통상 제재 조치를 철회할 것을, 한국과 미국에는 모든 군사훈련을 중단할 것을, 북한에는 평화를 추구하며 적대적인 행동들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다섯,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경제 발전 지원을 계속한다.
여섯, 아래와 같은 에큐메니칼 행동 계획에 동참한다.

1. 한국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총회를 맞이하여 진행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평화열차를 위해 기도하고 지원하며 참여한다.
2. 평화협정 청원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2013년 7월 27일부터 시작한다.
3. 2014년 7월 27일 “한반도 평화 주일”로 선포한다.
4. 2014년 워싱턴 D.C.에서 ‘한반도 평화 행진’을 개최한다.
5. 2015년 ‘에큐메니칼 평화 사절단’이 남한과 북한을 방문한다.
6. 우리 각각의 교단과 교회들이 평화협정 성명서 채택과 평화 추구를 위한 모든 노력들에 대해 지지하고 확언하는 것을 지키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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