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행 접고 교회 개척으로
1998년 초, 개척을 하느냐 미국에 가느냐 하는 기로에 놓여 있었다. 미국에 있는 500명 규모의 교회에서 계속 청빙이 왔다. 학비는 물론이고 생활비까지 보장해 준다는, 대단히 좋은 조건이었다. 미국에서 500명이 모인다는 것은 한국에서 5000명 규모나 마찬가지라, 목회에만 전념하면 됐다.
고민을 하다가 그 해 여름학기 시작에 맞춰 미국에 가기로 결정을 했다. 모든 서류 절차가 끝났고, 2월쯤 미국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나를 데려가기 위해 좀처럼 내기 어려운 휴가를 내서 한국에 들어오셨다. 그 목사님은 내가 어릴 적 중고등부 교역자로, 나의 믿음의 스승이셨다.
하지만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자꾸 마음 속에서 교회 개척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이 교회 개척 쪽으로 더 기울었다. 미국에서 목사님까지 나오셨는데, 어찌해야 할지 대단히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어렵사리 미국에서 오신 목사님께 말씀드렸다.
“목사님! 아무래도 미국에 갈 수 없을 것 같아요. 기도만 하면 자꾸 미국에 가지 말고 한국서 교회를 개척하라고 하십니다. 이미 준비도 다 됐는데 죄송해서 어떡하지요?”
이 말을 들으신 목사님은 대단히 난감해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좋은 부교역자를 구해서 데려오겠노라며 어렵게 휴가까지 받아서 나왔는데, 빈손으로 미국에 돌아가야 했으니 말이다.
“이런 큰일이군. 자네를 데려가려고 힘들게 휴가까지 내서 왔는데, 성도들에게 뭐라고 하나? 이거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군.”
하지만 목사님 역시나 기도하시는 분이라 나중에는 내 뜻을 받아들여 주셨다.
“송 목사, 자네라면 여기서 교회 개척을 해도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을 거야. 우리가 후원을 하지.”
감사하게도 목사님은 선교헌금으로 매달 300불을 작정해 주셨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지원해 주고 계신다. 목사님의 선교헌금은 개척교회 그 어려운 시절에 참으로 큰 힘이 됐다. 무척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나는 부교역자 생활을 16년 동안 했지만, 수중에 돈이라곤 한 푼도 없었다. 하지만 주변에 회계사니 판사니 검사니 하는 친구들이 좀 있었는데, 그들이 항상 자신들 이름만으로도 몇천만원은 쉽게 빌릴 수 있으니까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었다.
그 말만 믿고 교회 개척을 하겠다고 나섰는데, 갑자기 IMF가 터져서 은행권에서 신용대출을 다 막아버렸다. 제아무리 대단한 신용을 가진 사람도 은행권 대출이 완전히 막혔다. 그러니 성전 보증금 2000만원은 고사하고 단돈 100만원도 구할 길이 막막했다.
미국 가는 것도 포기하고 교회 개척을 작심했는데, 돈이 없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 목사가 할 것이라곤 기도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돈을 구해 달라고 떼라도 쓰기 위해 기도원에 올라갔다.
막상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데, 돈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 나오고 그동안 내가 잘못했던 것들에 대한 회개만 했다. 하루종일을 통회 자복하며 기도하고 내려오면서 속으로 걱정스러웠다. ‘오늘도 돈 달라는 기도는 한 마디도 못했으니 어쩌나. 내일 또 올라와야겠군.’ 이런 생각을 하며 집에 와보면 집사람이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옆집 영희네 집에 여윳돈이 좀 있다고 하더라구요. 내일 빌리러 가보려구요.”
그러면 어김없이 그 다음날 100~200백만원씩이라도 구할 수 있게 됐다. 돈 구하기 어려운 시절에 단순히 신용만으로 몇백만원을 빌리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기도원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돈을 구했고, 나머지는 집 전세금을 반으로 줄여서 마련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파주에 성전 자리를 임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