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 요한복음 강해 15] 요한복음 7장 강해(1)
요한 사도가 무엇을 말하기 위해서 이 7장을 기록했는가를 알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인간은 너무나 악하고 좋지 않다. 하지만 주님은 얼마나 귀하고 은혜로 충만한 분이신지! 요한복음 7장에서는 천당과 지옥이 대비되듯 주님과 사람들의 극명한 대비를 볼 수 있다. 베데스다 연못의 38년된 병자를 일으키신 후 안식일날 병자를 고쳤다는 이유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죽이고자 했다(요 5:18, 7:1, 19, 25). 그러나 예수는 얼마나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위하시는지, 그들을 위해 생명을 주시고자 했다(요 7:37-39).
1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요한복음 7장은 예수님이 30세부터 3년 반 사역을 하셨다면 그 최후 6개월 안에 있었던 일이다. 유대인들 사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적대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 지역 다니기를 즐겨하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다니셨다. 6장은 갈릴리로 다니실 때의 내용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일곱 절기가 있지만 그 중 세 가지 절기가 가장 중요한 절기이다. 유월절·오순절(칠칠절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초막절(장막절이라고도 한다)이다. 6장 내용은 유월절 때 일이고, 7장 내용은 초막절 때 이야기이다. 요한복음은 구약을 배경으로 기록된 말씀이다. 6장의 유월절처럼, 7장의 참된 초막절도 예수 그리스도가 그 실제이시다. 모든 구약은 다 그림자이다. 초막절은 유대력 7월 15일부터 8일 정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초막에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해 초막을 짓고 생활하는 절기로, 물의 축제이기도 하다. 초막에 살 때 반석에서 생수가 난 것을 기념하여 실로암못의 물을 떠다 행렬을 지어 성전문에 붓는 행사가 있었다.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이는 예수의 형제들의 이야기이다. 예수님께는 야고보, 유다 등 육신의 동생들이 있으셨다. 그런데 그 형제들이 처음부터 예수를 믿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이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족들도 믿지 않았다.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9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주님은 동생들이 하는 말을 따르지 않으셨다. 그리고 ‘때’를 말씀하셨다. 자신을 드러내 일을 성공시키는 그 때를 말하는 것이다. 헬라어 원문으로는 ‘계절(카이로스)’이라는 뜻이다(지정된 시간을 의미하는 ‘호라’나 단순한 시간적인 흐름을 말하는 ‘크로노스’와 다르다). 예수의 계절, 예수님이 역사하시는 때는 언제인가? 예수님은 여기서 바로 십자가를 암시하고 있다. 그분은 십자가로 가셔서 근본적으로 인간 속의 적대감과 시기와 미움과 죄악을 다 제하고 생명과 평강과 자유함과 사랑을 다시 창조하시려는 역사를 위해 한 발씩 십자가로 가고 계신다. 그런 의미에서 주 예수의 때는 아직 이르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주님의 형제들은 세상적인 관념으로 일할 것을 충고했지만,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방법,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들 안의 모든 악이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역사를 원하셨다.
10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 11 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12 예수께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혹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 하나 13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말하는 자가 없더라
10절에서 주님은 올라가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나중에 올라가셨다. 그러나 굉장한 일을 나타내려 올라가신 것이 아니다. 올라가셨지만 여전히 비밀히 움직이셨다.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 예수님은 단연 관심사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예수님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다. 오늘날도 이단 안의 모든 사람들이 다 사악한 말을 했다면 쉽게 미혹되지 않을 것이다. 악한 무리 가운데서도 좋은 의견들이 있다는 말이다. 어떤 단체든 열성 분자들이 있고, 약간은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13절에서 유대인들을 왜 두려워했는가?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에 대해 잘못 말하면 해를 당할까 두려워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좋게 말하는 자들도 안전한 분위기에서만 살짝 이야기했다. 인간은 대부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움직인다. 해로운 말은 하지 않는 것이다.
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15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1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초막절은 7일 동안 계속된다. 7일 동안 장막을 치고 승리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물을 뿌렸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초막절에 배경을 두고 있다.
그런데 성전에서 예수님이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여러분도 만일 말씀을 잘 배우고 진리가 속에 가득하다면, 한참 지나다 보면 많은 이들을 가르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속에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금방 알아본다.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알게 된다.
예수께 사람들이 하는 말은 다 비웃는 말이었지만, 예수님은 참된 대답을 하셨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하셨다.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 유대인들은 예수의 외모를 보았다. 배우지 않은 사람이 유식한 말을 하는 것만 생각했지, 그 말씀의 본질을 알려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하나님 뜻을 행하려 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를 인하여 괴이히 여기는도다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주느니라 23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유대인들은 주님의 참되고 직선적인 말씀에 거짓말로 응수했다. 이단들은 말이 몰리면 거짓말로 대처한다. 늘 율법을 지킨다고 자부하는 그들에게 “너희는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 왜 나를 죽이려 하느냐?”고 물으셨다. 주님께서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것이 안식일이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범한다고 해서 예수님을 미워하고 핍박하고 죽이려 했다. 자신들은 조직상 유익하면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여 유대교에 유익을 돌리는 일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선한 행위는 시기와 미움으로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죽이려고 하였던 것이다.
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사람들은 외모를 중시한다. 이것은 많은 종교인들에게도 동일하다. 인간의 핏속에 외모로 판단하는 것이 들어있다. 오늘날도 큰 인수, 대단한 외양과 건물, 권력과 명예 등 외모에 속한 것이 대우를 받고 영향력을 끼친다. 외모가 평범하면 사람들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한 공의는 없다.
25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혹이 말하되 이는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26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를 반대하는 이론 중 하나가 이것이다. 메시아가 오신다면, 어디서 오는지 알지 못하리라는 것이다(단 7:13, 말 3:1). 당시 그들의 지식은 정확하지 않고 혼동돼 있었다. 오늘날도 많은 이들이 성경을 안다. 그러나 매우 부분적으로 알기에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메시아가 미가서 5장처럼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더 깊이 들어가려는 사람은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에 대해 분명하고 깊은 지식을 갖지 않은 것에 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성경을 안다고 했지만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오늘날 ‘지식의 홍수’ 시대에도 말은 많이 하지만, 깊고 자세하고 정확하게 아는 것은 별로 없다. 당시 어떤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고자 했나? 분명하지 못한 지식을 가진 자들이었다. 이런 상태는 매우 위험하고 주님을 대적하는 위치에 서기 쉽다.
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 30 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31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이런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사역의 성과를 거두셨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 주 예수님이 표적을 많이 행하신 것은 사실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은 유대인 지도자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본 대로 느낀대로 말하고 있었다,
32 예수께 대하여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니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그분은 때가 되지 않은 것을 아시기에 잡으러 온 자들에게 자신을 내어주지 않으셨다. 거룩하신 아들은 자신을 모든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주시는 일조차 아버지의 정하신 때에 하고자 하셨다. 요한복음에는 주님이 힘이 없어서 붙잡혀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주권은 사람들이나 대제사장, 바리새인과 유대인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있다. 그분이 내어주지 않으면 주님은 그 누구에게도 잡히실 수 없는 분이다.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36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다시 한 번 유대인들의 무지가 드러나는 구절이다. 무지한 자들은 자기들의 관념에 따라 오해하고 말한다. 이런 것들이 다 죄로 드러나는 것들이다. 주님이 십자가로 나아가신다니 유대인들은 그것이 무슨 흩어져 사는 헬라인들에게 가서 가르칠 것인가 하고 오해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주님은 그들에게 참 생수를 주기 원하셨다. 이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과 비슷하지만 본질은 차이가 있다. 4장 말씀은 개인이 누릴 생수, 일단 예수로부터 생수를 마시면 내적으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는 말씀이며 7장 말씀은 사역을 위한 생수의 강을 말한다. 이 구절의 ‘성령’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괄호 속 말씀은 난해 구절 중 하나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오순절 성령은 고난과 영광을 얻으신 예수의 영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이는 에베소서 1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몸을 볼 때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은 그리스도께서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보좌에 앉으신 후의 일이다. 그분의 부활과 승천의 능력을 몸에 부으신 것이 오순절 성령의 능력이다. 그 성령강림의 날, 하늘 보좌에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인 교회가 하나로 연결·연합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오늘 교회가 누리는 성령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영광을 얻으신 예수의 영임을 찬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