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와 성화의 진리가 바로 예수님의 이 ‘한 마디’에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유동근 목사 요한복음 강해 17] 정죄와 용서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요한복음 8장 강해(1)

1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우리는 요한복음 8장을 통해 참 기묘한 분이 이 땅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정말 특이하고 예사롭지 않다. 7장에서 사람들은 예수를 죽이려 했지만, 예수님은 피하지 않고 성전에서 계속 일하셨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하루 일과를 마친 뒤 산에 가셨다.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이른 아침’, 영어로는 아침 일찍(early in the morning)이다. 산에서 밤새 기도를 하셨는지, 어떻게 그 밤을 지내셨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아침 일찍 성전에 오셨다. 사람들은 안식할 집이 있었다. 사람들은 하룻저녁만 잘못 자도 피곤해 하는데, 주님은 온 밤을 산에 계셨다. 그리고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는데, 그 때 일이 발생한다.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한 여자를 끌고 왔다. 데리고 왔다고 표현하지 않고 ‘끌고’ 왔다고 표현했다. 이 여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였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건수가 생겼다. 하나의 커다란 시험이었다. 예수께서 여자가 불쌍하니 살려주라 하신다면 모세의 율법을 정면으로 부정한 사람으로 판명된다. 그렇지 않고 여자를 쳐죽이라 한다면, 예수님이 인정사정 없다고 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당시 로마의 지배에 있었기에 사법권이 없었다. 사람을 죽이라 마라 할 권한이 없었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대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죽이지 말라고 하면 모세의 율법을, 죽이라 하면 로마법을 어기는 것이기도 하다.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현장에서 잡혔다. 부정할 길 없이 분명하게 죄를 지은 것이다. 그야말로 그녀는 죄에 대한 느낌이 생생하게 됐다. 이렇게 오갈 데 없는 죄인의 상태에 처할 때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게 된다. 여러분이 피할 수 없는 죄인이라고 하자! 여러분은 주님을 만날 희망이 있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은 돌로 치라고 할 수도, 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으니 호재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수가 누군지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와 같은 인간의 형체를 입고 오셨기 때문에, 그분을 몰랐다. 그래서 감히 예수를 시험하려 대들며 죽일 죄목을 찾고 있었다.

예수님은 물론 그들의 의도를 다 알고 계셨다. 주님은 얼른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분이 첫째로 한 행동은 몸을 굽힌 것이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다. 행동이 예사롭지 않다. 그들은 예수를 그저 어리숙한 사람으로 봤다. 교만한 사람들은 싸우고 따지려 들면 머리가 뜨거워지고 열이 나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보이지 않는다. 주님의 이 행동만 보고서도 그들은 알았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땅에 뭔가를 쓸 수 있는가?

이 예수는 하나님이시다. 창조주이시다. 마귀의 궤계를 아시고 타락한 사람을 너무 잘 아신다.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다 아신다. 이럴 때 바로 얼굴을 들고 대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잠깐 그들의 뜨거운 머리를 식히는 것이다. 따지며 달려드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열을 내던 사람들도 예수님이 몸을 굽히시자 눈이 밑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그들은 묻고 따지고 시험할 자유가 있겠지만, 예수님도 대답하지 않을 자유가 있으셨다. 그들은 그분이 쓰는 것을 조용히 따라가며 읽어야 했다. 그것은 그들의 혈기를 매우 많이 가라앉혔다.

땅에 뭐라고 쓰셨는지는 모른다. 그 내용이 정말 중요하다면, 기록되었을 것이다. 글을 땅에 쓰셨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그런 여유가 어디서 나오겠는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러나 분명 그들에게 필요한 의미 있는 글을 쓰셨을 것이다. ‘이 세상에 누가 죄가 없겠는가’라고 썼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그 문장은 진리였으며 의미있는 것이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들은 글을 따라가면서 잠시 생각이 전환됐고, 다음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됐다.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그럼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영어로는 ‘persisted in asking’이다. 아직도 혈기는 완전히 식지 않았다. 그들은 땅에 쓰고 계시는 주님께 계속 대답을 요구하면서 주님이 올무에 걸리기를 바랐다. 이제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한 마디를 던지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죄 없는 자’란 굉장히 중요한 말이다. 이 말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죄가 없는 사람을 말한다. 만일 예수님이 죄를 지어보지 않은 사람이 돌로 치라고 했다면 어떤 사람이 돌을 들었을 수도 있다. ‘나는 간음은 안했으니까’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는 여자를 돌로 쳐죽이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모세의 형법에 의하면 죽이는 것이 맞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할 자격을 가진 사람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죄가 없어야 한다. 죄가 없어야 죄 있는 사람을 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나님 한 분 외에 그 누가 죄가 없는가? 따라서 심판자는 한 분 주님 외에는 없다. 모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생각해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거기서 경기는 끝나고 말았다.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러면서 예수님은 다시 몸을 굽히셨다. 주님은 그분이 지으신 흙(인간)이 어떻게 해야 열이 식는지를 잘 아신다. 따지던 얼굴들은 다시 머쓱해지면서 밑으로 내려간다. 그때 사람들이 양심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지 않았겠는가? 살기로 등등했던 열은 식고 있었다.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어른부터 젊은이까지 하나씩 떠났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지만 고개를 숙이고 계셨다. 땅에 무언가를 쓰고 계셨다. 죄 많은 사람들은 빳빳이 고개를 들고 있고, 죄 없는 예수님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체가 주님의 낮은 자세를 보여준다. 자세에 따라서 사람은 어떤 것이 나온다. 물론 주님은 우리가 서서 기도해도 들으시지만, 무릎 꿇는 자세가 주님 앞에 더 겸손한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나이 많은 자부터 아이까지 하나씩 자리를 떠났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것은 죄를 많이 지었다는 말이다. 여러분의 인생 체험이 그렇지 않은가? 초등학교 때를 추억하면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같은 노래가 즐겁게 나온다. 고등학교 대학교로 올라갈수록 별로 좋지 않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주로 죄를 지었던 기억들이다. 인생을 오래 산 결과 쌓이는 것이 뭔가? 죄가 축적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죄는 더 더럽고 지저분해진다.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주님이 상대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누굴까? 죄가 있으면서도 빳빳이 고개를 들고 남을 정죄하던 사람들이 아니라, 죄를 짓고 근심하며 한탄하는 죄인이다. 그들 중에 가장 비참한 여자였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정죄 당하고, 어쩌면 머리를 붙잡혀 끌려온 여자다. 얼굴은 수치심과 분노로 일그러졌을 것이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그녀를 부르셨다. “여자여”, 이 음성은 분명 부드럽고, 사랑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은혜의 구주이시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주님을 제대로 믿으려면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이 필요하다. 어떤 죄인이라도 있는 그대로 예수님께 나가면 주님은 만나 주신다. 여자는 오직 한 마디만 했다. 사실 죄인으로서 가장 좋은 것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비록 죄는 지었지만 긍휼을 얻는 사람이다. ‘주여’라는 호칭이 얼마나 귀한가?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예수를 ‘주여’라고 부른 사람은 이 여자밖에 없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대화는 매우 짧았다.

여러분도 잘못한 것이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일도 없지 않을 것이다. 또 그런 것에 민감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것은 다 소용없다. 죄인이 죄인을 정죄하는 것은 다 소용없는 일이다. 여러분이 할 일은 다만 예수 앞에 나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누군가를 정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없다. 정죄한다면 하나님이신 예수만이 하실 수 있다. 그런데 그분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몰랐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만을 갖고 있었기에 죄를 지은 사람을 죽이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모든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

원래 인간은 다 죄인이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다. 그러므로 정죄감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 그저 죄를 가지고 예수께 나오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고 하신다. 오늘 여러분도 주 예수의 따뜻한 음성을 듣기 바란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예수를 만나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이 있다. 우리는 너무 기쁘다. 예수를 만나고 나니 정죄감이 없어졌다. 죄 용서를 받고 사람들의 정죄이든 사탄의 정죄이든, 모든 정죄감에서 해방됐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를 정죄할 자격이 있는 분이신데도, 그러지 않으셨다. 우리는 모든 정죄에서 해방된 사람들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한 구절에 칭의와 성화의 진리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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