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행시 짓고 행복 엮기
보통 교회 행사들은 찬양을 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고, 기도로 은혜 받기를 준비한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 대학과 아버지 대학은 교회 내 행사가 아니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찬양과 기도 등 종교 색채를 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
그 대신 처음의 서먹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건전 가요로 서먹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든다. 그런 후 본격적인 강의에 들어가기 앞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처음에 자발적으로 자기소개를 시켰더니 모두들 한결같이 아주 짤막하게 “순이 엄마입니다”, “영이 엄마입니다”라 말하고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첫 사람부터 마지막 사람까지 자신의 이름만 말하고 들어가 버리니, 앞에서 진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있는데, 아예 교재에 자기소개의 형식을 기록해 놓는 것이었다.
-어머니 대학
‘이름’ ‘별명’ ‘취미’ ‘특기’ ‘자라 온 환경’ ‘어릴 때의 꿈은?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존경하는 인물’ ‘어떤 어머니가 되고 싶은가?’ ‘내 자녀들이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가?’ ‘어머니 대학에서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기타 소개하고 싶은 것은?’
-아버지 대학
‘이름’ ‘별명’ ‘취미’ ‘특기’ ‘가정 분위기’ ‘존경하는 인물, 그 이유는?’ ‘어릴 때의 꿈은?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은?’ ‘아버지 대학에서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은가?’ ‘내 자녀들이 어떤 자녀가 되었으면 하는가?’ ‘기타 소개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 항목별로 기록해 놓으니까 진행하기가 훨씬 더 수월해졌다. 처음에 써놓은 자기소개서는 강의가 진행되면서 더욱 요긴하게 사용된다. 강의하는 사람은 누가 자기소개 시간에 어떤 인물을 존경하며 또 어떤 어머니가 되고 싶다고 했는지 등의 내용을 소상히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을 다음 시간에 학생들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모티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지난 시간에 영이 어머니는 어릴 적 나이팅게일을 가장 존경한다고 하셨고, 또 간호사가 되고 싶은 꿈도 가졌었다고 하셨는데요, 자녀들의 꿈은 알고 계시나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지, 아니면 어떤 사람이 되라고 항상 가르치나요?”
이런 식으로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활용해서 거리감을 좁히면서 질문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좀 더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에 자기소개 내용을 잘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혹시 기억력이 부족하다면 어머니, 아버지 대학을 섬기는 스태프들로 하여금 기록을 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 좋다.
그 다음으로 진행하는 것이 삼행시 짓기다. 즉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가족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 이름만 불러 봐도 어딘가 모르게 정이 가고 친근한 마음이 든다. 정말 불러도 불러도 좋은 이름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어: 어머니!
머: 머언 옛날 나의 어머니는
니: “니는 내 딸이다.”하시며 기도와 사랑과 지혜로 저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셨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아: 아버지로서 지난날의 내 삶은
버: 버려진 시간만큼 잃은 것도 많았다.
지: 지금부터라도 참된 아버지의 길을 가고 싶다.
또 가족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는다. 아들 ‘우성현’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은 것이다.
우: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상 최대 낙원인 가정의 가족입니다.
성: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현: 현재의 생활에 감사하며 충실하고 미래를 지향할 줄 아는 아름다운 가족입니다.
그리고 본인 이름으로도 삼행시를 짓는다.
김: 김순현! 항상 당당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
순: 순하고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도 강한
현: 현명한 그대는 최고의 어머니!
삼행시라는 것이 쉽다면 쉬울 수 있지만, 오랜 만에 펜을 잡아보는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단 세 글자만 써놓고 한참을 끙끙거리며 앉아 있곤 한다. 이런 산고(?)의 고통 속에서 탄생한 삼행시를 직접 읽도록 하면 듣는 이들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늘 친정 부모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는 어머니들은 금방 눈시울을 적시곤 한다. 어떤 경우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울먹하다가 결국에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또 여섯 살짜리 자녀를 둔 아버지는 아이에게 스킨십을 한 번 안 해줄 만큼 사랑 표현이 서툴렀던 사람이었는데, 삼행시를 통해서 “지금부터라도 참된 아버지의 길을 가고 싶다”고 고백하면서 그 인생이 180도로 바뀌었다. 요즘은 7시만 되면 퇴근해서 아이를 안아주고 뽀뽀도 하면서 정말 좋은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부모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감동으로 마음의 문을 열게 된 사람은 계속되는 어머니 대학과 아버지 대학 프로그램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삼행시를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서 향후 ‘어머니 대학’과 ‘아버지 대학’의 성패가 판가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교육의 아버지요, 사랑의 교육실천가로 알려져 있는 ‘페스탈로치’가 쓴 “어머니들에
게 보내는 편지“라는 책이 있다. 이것은 페스탈로치가 2년에 걸쳐 영국인 제자 ‘그리브스’에게 쓴 편지를 엮은 것이다. 여기서 그는 교육의 본질은 ‘사랑’이라며 어머니가 사랑의 화신이기에 가장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가장 훌륭한 교사를 다시금 훈련하는 곳이 바로 우리 어머니 대학과 아버지 대학인 셈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교육 개혁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가정 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이 넓혀지는 조기교육단계로까지 교육개혁이 미치지 않는 한, 그 성과는 절반 정도밖에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교육정책이라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을 품어야만 참된 값어치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