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8일 ‘소수 인종의 자유’ 언급 예정… ‘짐머만 사건’ 등 동기 된 듯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오는 28일, 50년 전 흑인인권운동가 고(故)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사자후를 토해냈던 자리에 서서 ‘소수 인종의 자유’를 외친다.
1963년 8월 28일 오후 3시, 노예 해방 100주년을 맞아 워싱턴에서 열린 평화행진에 참가했던 킹 목사는 이날 미국 흑인인권운동사에 길이 남을 의미있는 연설을 남겼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일과 자유를 위한 워싱턴 대행진’ 연설이 바로 그것. 말미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때까지” 운동을 계속하겠다는 다짐도 담고 있는 이 연설은, 흑인과 백인간 평등과 공존에 대한 요구였고,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발달한 국가’ 혹은 ‘슈퍼 파워’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음에도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형태의 인종주의를 조장해온 미국이란 나라에 경종을 울린 외침이었다.
당시 킹 목사는 100년 전 해방 선언으로 흑인노예제 폐지를 이뤄낸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을 기린 워싱턴D.C. 링컨 기념관 광장에 모인 약 30만 군중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미국의 건국 정신을 강조하면서 흑인과 백인이 모두 형제·자매로 함께하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킹 목사의 연설은 인종차별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미국 인권운동의 발전을 앞당기는 데 가장 크게 공헌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링컨 대통령과 킹 목사의 뒤를 이어 인종 문제를 극복하고, 미 건국 232년 만에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이 배출됐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흑인에 대한 공공연한 격리와 시민권 제한이 당연시됐던 점을 생각하면, 미국 사회는 유색인종 대통령을 최고 지도자로 받아들일 정도로 성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년 전 흑인 대통령의 등장으로, 미국 내 흑인들의 지위 향상은 물론 아시아계 이주민 등 기타 소수 인종에 대한 백인들의 인식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팽배했다.
그러나 실제 미국의 인권 현주소는 어디쯤 와 있을까. 최근 불거진 짐머만 사건만 해도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앵글로색슨계 백인 개신교인)가 주류사회를 형성하며 이끌어온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인종차별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그간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 이후에도 국내 인종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해왔다.
하지만 최근 ‘짐머만’ 사건으로 미 전역에 걸쳐 ‘흑백간’ 인종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등장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의 심경을 밝혔다. 인종 문제에 대해 더이상 회피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백악관에 예고 없이 나타나 “트레이번 마틴이 35년 전 나였을 수도 있다”며 미국 내 여전히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점을 언급, 대통령 이전에 흑인 남자로서 실제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말했다. 그러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많은 경험과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역사를 통해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사건을 통해 인종차별 문제와 그에 따른 흑인들의 고통을 이해해 달라고 미국인들에게 촉구했다. 이어 “미국은 법치국가이기 때문에 배심원 평결을 존중해야 한다”며 무죄 평결의 잘잘못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총기 관련 법과 위협을 느낄 때 총기 사용을 허용하는 정당방위법의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2008년 대선 과정에서 인종 문제를 언급한 이래, 가장 포괄적이며 개인적이며 흑인사회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사설을 통해 “이 나라가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을 가진 것은 위대하지만, 여전히 이럴 필요가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러한 가운데, 이 달 말로 예정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킹 목사가 참여한 ‘워싱턴 대행진’ 이후 반세기 동안 벌어진 일들에 관한 내용으로 꾸며진다고 백악관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