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밀이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유동근 목사 요한복음 강해 27] 요한복음 12장 강해(2)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온대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이야기는 사복음서 중 유일하다. 헬라인은 그리스 사람으로, 당시의 지식인들을 대표한다(고전 1:22). 아덴(아테네)에는 철학자들이 많다. 이들은 지혜가 발달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여서 항상 새로운 지식을 듣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이었다(행 17). 반면 유대인들은 기적을 좋아한다. 나사로가 살아났다고 흥분한다. 그러나 헬라인들은 지적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도 지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예수님이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은 당시 예수께서 사람들 가운데 상당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들이 빌립에게 왔는데, 빌립은 안드레와 상의했다. 예수님은 이방인을 만난 적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왔다”고 하셨다. 그래서 주저하다 상의해서 주님께 한번 데려간 것이다. 예수님은 이들 앞에서 아주 중요하고 깊은 말씀을 하셨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하시면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24절)”고 하셨다.

겉으로는 굉장히 쉬운 말 같지만, 깊은 사색이 없는 사람은 이해 못하는 말이다. 주님은 헬라인들에게 깊이 묵상하고 상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방식으로 말씀하셨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신다. 이들에겐 매우 깊은 방식으로 알리셨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나 예수는 메시야로서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한 알의 밀알로 죽는다. 십자가로 간다’는 것이다. ‘내가 죽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내게 있는 생명을 부여해 주어, 그들로 하여금 나와 동일한 생명을 가진 밀알들을 만들기 위함이다’라는 말씀이다.

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자기 생명’은 헬라어로 ‘프쉬케’라는 말인데, 우리의 혼적인 생명이다. 이들은 정신적 생명을 사랑한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주님은 자기 생명을 사랑하면 잃어버리겠지만, 미워하면 영원히 보존한다고 하셨다.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참되게 주님을 섬기는 길

12장에서 주님은 사람들에게 주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26절에만 섬긴다는 말이 세 번 들어 있다. 요한복음 12장을 겉으로만 읽으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그저 마리아의 향유 옥합을 깨뜨린 이야기,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들어가실 때 사람들이 찬송한 이야기, 헬라인들이 찾아온 이야기들이 그저 열거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구절에서 면면히 흐르는 한 가지 사상이 있다. 그것은 ‘주 예수를 어떻게 섬기는 것이 바른 것인가’이다. 마르다도 주님을 섬긴다 했고, 유다를 포함한 12제자도 예수를 섬긴다며 따라다녔다. 심지어 헬라인들도 주님을 어떻게 하면 섬길 수 있는지 물었으며, 많은 유대인들도 호산나 찬송할 때 하나님을 섬기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섬김은 일종의 외적인 것이다.

여기서 주님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의 좋은 예를 보여주셨다. 그것이 누구인가? 마리아이다. 결국 어떤 사람이 주님을 잘 섬기는가? 주님의 능력을 보고 그분의 명성을 듣고 찾아와서 소리를 지른 사람들인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에 갔을 때 그들이 따라왔던가? 호산나라고 함성을 지르던 사람들이 따라왔던가? 어떤 학자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그 사람들이 바로 호산나 하며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들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대로 성경에 맞게 호산나 찬송했다. 주님도 그들이 찬송한 것을 틀리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막상 주님이 올라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랐는가? 그렇지 않았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주님을 끝까지 따랐는가? 마리아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주님을 마음으로 사랑한 사람들이다. 헬라인들은 예수에게 지식적으로 다가간 사람들이다. 지리학자가 지리 공부하듯, 고고학자가 화석을 연구하듯, 수학자가 수학을 풀듯 예수님도 학문적 방식으로 연구하려고 접근했다. 유대인들은 어떠했는가?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기적을 보고 관심이 생겨 주님을 따랐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을 끝까지 따랐던가?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주님은 어떤 길을 가시는가? 주님은 지금 십자가의 길로, 죽음으로 한 발 한 발 가신다. 그분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버리는 길을 가신다. 그러면서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마리아는 근본적으로 예수를 따르는 것을 선포한 여자이다. 그녀의 옥합은 가장 큰 재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깨뜨렸다. 자기 생명을 미워하지 않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지 못한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오히려 잃어버리게 된다. 반면 우리가 우리의 혼 생명, 정신적인 생명을 잃어버린 만큼, 우리 자신을 미워한 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더 얻게 된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이 되어 죽을 때, 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나누어주는 사역자들이 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이런 길을 갔다(고후 4:11-12). 이것이 바로 주님을 섬기는 길이다. 어떤 사람이 이런 길을 갈 수 있는가? 마리아처럼 예수를 그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기독교는 활동의 종교가 아니다. 주님은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라고 하셨다. 그분이 계신 곳에 그분을 섬기는 자들이 함께 있는 것이다. 그분과 함께 하지 않으면서 그분을 따르고 섬길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무슨 큰 활동이 아니라, 그분과의 연합이요 함께함이다. 유다는 오해했다. 물론 우리도 오늘 구제 사업도 하고 해외선교도 하고 봉사도 하고 많은 활동을 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예수와 언제나 함께 ‘있는 것’이요 그분 자신의 인격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면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유다는 어떠했는가? 제자들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오해했다. 기독교는 사회 사업적이고 활동성 있는 종교라고 생각했다. 이 귀한 옥합을 팔아 구제하면 많은 사람들을 돕는 데 효과적일텐데, 왜 그것을 가치 없이 허비하는가 생각했다. 그러나 마리아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었기에 그 옥합을 깰 수 있었는가? 예수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 마리아만이 지금 예수님이 가시고 있는 발걸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주님이 십자가로 가시는 것을 알았고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실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저가 내 죽음을 예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었을까? 아마도 예수님의 눈을 항상 쳐다보았을 것이다. 그녀는 예수님 가까이 있었다. 가까이서 말씀을 들었다. 예수님은 ‘인자’이시다. 그러므로 사람의 성정이 있으시다. 답답함, 괴로움도 있으시다. 27절에서는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trouble’, 즉 아주 괴롭다는 것이다. 겟세마네에서도 “내 마음이 답답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주님의 심정이 눈가에 스치지 않았겠는가? 누가 그것을 볼 수 있었겠는가? 남자들은 주로 거칠어서 잘 보지 못한다. 여전히 활동에 매달린다. 그런데 이 사랑하는 여인은 주님의 눈가에서 뭔가를 느낀 것이다. 어쩌면 나사로를 다시 살린 그 장면에서 마리아는 그분의 눈물을 예사롭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우리의 마음 중심에서 예수라는 한 분의 인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틀린 것이다. 헬라인들처럼 지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잘 믿는 것인가? 어떤 단체는 기가 막힌 성경 지식으로 사람들을 현혹시켜서 교회로 유입시킨다. 성경의 오묘한 지식에 초점을 맞추어 사람들의 지성에 호소하는 것도 보통 매혹적인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유대인들처럼 기적과 능력으로 접근해 보라. 오늘날 치유의 능력을 내세워 목회와 선교를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병자에 대한 치유 전문이다. 그리고 그 기적과 능력을 내세워 사람들에게 전도한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주님의 마음을 알 수 없다.

어떤 사람이 가능한가? 그것은 예수라는 한 분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를 안다. 누가 여러분을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가족이다. 남편은 그 아내가 잘 알고 아내는 그 남편이 잘 안다. 부모는 자식들이 잘 알고 자식은 부모들이 잘 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속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누가 잘 아는가? 마리아는 왜 주님을 잘 알았는가?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 인격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결국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섬기는 자는 주님과 늘 함께 있는 자이다. 우리는 왜 이 땅에 있는가? 교회는 왜 있는가? 주님을 따르기 위해 있다. 여러분은 함부로 교회가 가는 길에 대해서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 말라.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 때 즐거워한다. 주님을 따를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무릎을 꿇는다. 기도한다. ‘주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기뻐한다. 지금까지 여러분과 함께 온 이 길을 기뻐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나사렛 예수를 따라온 것이다. 기도하면서 함께 따라왔다. 지금도 따르고 있다. 나는 이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다는 오해했다. 옥합을 팔아 나누어 주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는 것이라고 오해했다. 그 순간 유다에게는 주님이 매우 작게 보이고, 돈은 매우 크게 보였다. 오! 이것은 어떠한 경계이고 경고인가! 주님을 섬기는 것은 언제나 주님만 보고 주님만 따르는 것이다. 돈이 어떻게 쓰여야 가치가 있는가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주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이다. 그분의 마음을 알아 주님이 한 발 가실 때 우리도 한 발 따라가는 것이다. 그것이 십자가의 길이라면 순종하여 가야 한다. 그것이 잃어버리는 길이라면 버리면서 가야 한다. 그것이 오해받는 길이라면 오해받으면서 따라 가야 한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이 귀한 한 가지 진리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곧 주를 만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할 필요가 없다. 주님이 곧 집에 오시면 문 열어드릴 그런 종들처럼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우리는 오늘 주님을 따르는 일에 있어 기쁘고 만족하면 좋은 것이라고 서로 격려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따르기 위해서 부르심 받은 사람들이다. 그것이 교회이다.

교회란 헬라어로 ‘에클레시아’인데,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란 뜻이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계속 주님을 따라가는 자들이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것을 배우기 바란다.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을 배우시기 바란다. 그럴 때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귀히 여기신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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