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 요한복음 강해 28] 요한복음 12장 강해(3)
요한복음 12장의 위치
요한복음은 21장으로 돼 있다. 이 12장은 한 단락의 마지막이다. 제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특히 마지막 30세부터 33세까지 주님을 따르면서 보고 들은 것을 적었다. 여기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즉 놀라운 역사 8가지를 기록했다. 이 모든 일들은 모두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도록 도와주는 말씀으로 읽을 수 있다. 복음서의 모든 핵심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있다. 2장의 가나 혼인잔치도 ‘사흘 되던 날’로 시작한다. 바로 부활의 날을 의미하며, 물을 포도주로 변케 하신 기적은 ‘부활의 생명’을 의미한다. 12장은 이런 일련의 사건들의 마무리이다.
예수님은 유월절 엿새 전 베다니에 오셨는데, 이로부터 엿새 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된다. 12장 후반부는 13장 이전 부분의 결론이다. 13장부터는 예수님의 마지막 가르침이 기록돼 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다시 성령을 보내신다는 등의 가르침이다. 이후 잡히시고 돌아가시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므로 12장은 한 단락의 결론이다. 주님이 하신 모든 일을 놓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어떤 상황이었는가, 또 주님께서 최종적·결론적으로 주신 말씀이 12장 후반부에 기록돼 있다.
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39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40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요한은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주님이 행하시는 많은 표적을 보았다. 사람들도 보았다. 요한은 이 책에 기록된 것 외에도 예수께서 하신 일이 많다고 기록했다. 그렇게 많은 일들을 행하셨는데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이것이 요한의 회고이다. 그러면서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38절)”고 하셨다. 구약에서도 이제 메시야가 오면 많은 일을 할 텐데, 사람들이 믿지 않으리라고 이미 기록했던 것이다.
38절에서 주의 팔이 나타났다는 것은 기적을 많이 행했다는 것이다. 주의 능력의 팔이 나타나 많은 역사를 했다는 것이다. 주님이 많은 이적을 행하셨을 뿐 아니라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예언대로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더라는 것이다(39-40절).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고 그 말씀 깨닫고 고침받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원함만 가지고는 안 된다. 볼 수 있도록 주님이 눈을 열어주셔야 한다. 마음으로 깨닫도록 마음을 열어주셔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눈을 열어 보여주셔야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 보여주시는가? 믿고자 하는 사람들과 마음이 간절한 사람들에게이다.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다. 12제자 중 한 사람을 뺀 11명은 주님을 따랐다. 그리고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120문도가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다. 그런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분이 행하시는 것을 본 사람이 그 정도밖에 없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수천 명이 따라다녔다. 큰 무리(great multitude)가 주님을 따랐었다. 오천 명도 있었고 사천 명도 있었다. 남녀 아이까지 다 합하면 만 여명쯤 됐을 것이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현장에서 보고 체험했었는데도, 믿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37절)” 라는 말씀은 희망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믿지 않음
요한복음 12장은, 이렇게 많은 일을 행하시고 말씀하셨는데도 ‘믿지 않더라’는 것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산 떡이다. 누구든지 내게로 와서 마시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 예수님은 많은 말씀을 공중 앞에서 하시고 기적도 행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여기에 비밀이 있다.
예수님도 이런 상황을 이미 아셨다. 이사야 선지자 말씀을 모르실 리 있겠는가? 그래서 헬라인들이 왔을 때,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 한 알의 말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다. 곧 죽으실 것을 이야기하셨다. 이것은 참으로 귀한 말씀이다.
이 세상에 많은 이단 교주들이 있다. 그들은 수천 수만 명을 끌어 모으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죽으면 끝장 난다. 죽으면 영향력이 크게 상실된다. 그래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죽이려 하는 것이다. 요점은 이것이다. 유력한 자가 살아 있을 때는 영향력을 끼칠는지 몰라도, 죽으면 영향력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반대로 이야기하신다. ‘나는 죽어서 사람들을 내게로 이끌 것이다. 나는 죽어서 열매를 맺을 것이다. 나는 죽을 때에 사탄의 머리를 깰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인물이 또 있는가? 결국 모든 일은 그분의 말씀대로 되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를 믿고 그분의 십자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십자가의 형벌은 오늘날 교수형보다도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당시 로마의 정식 사형 제도는 십자가가 아니었다. 십자가는 범죄한 노예들을 처형할 때만 사용한 기구이다. 가장 수치스럽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사람을 산 채로 나무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예수님을 수치스럽게 죽여서 끝내려고 했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나라만 해도 십자가 건물들이 수없이 많다. 우리 예수님은 그렇게 돌아가심으로 사람들을 자신에게 이끌겠다고 말씀하셨다. 어떻게 이런 말을 그렇게 장담하며 선포할 수 있는가? 이것이 어떻게 보통 일이란 말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우리 신앙의 중심
그분이 살아있을 때나 많은 능력을 행하실 때는 사람들이 더러 믿고 사랑하기도 했지만,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에는 사람들은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음을 주님은 아셨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주께서 죄인들을 사랑하고 우리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알 때, 우리는 그분께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음을 사전에 아셨다는 말이다.
역대 가장 큰 부흥을 1900년대 웨일즈 대부흥이라 말한다. 당시 많은 극장과 술집이 문을 닫았다. 그때 부흥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이반 로버츠나 펜 루이스 같은 사람들이다. 그때 전해진 복음이 무엇인가? 십자가였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했다. 헬라인들은 지혜를 좋아했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선포하기를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했다(고전 1:22-23). 예수를 믿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현란한 지식을 좋아하고 그것 때문에 교회를 나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고전 2 :1-2). 아주 오묘하게 깨달아지는 지식 세계에 신앙의 중점을 두는 것은 잘못 믿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 병 고침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나도 병이 든 지체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이 치료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신앙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한 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보내는 것이다. 그곳이 우리가 용서를 받고 은혜를 받고 구원을 얻은 자리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만지고 그분의 눈물을 알게 된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주 예수,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시며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신 예수께로 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존재한다. 주님이 우리를 사역자로 세우셨다면 바로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세우신 것이다.
여러분의 신앙을 점검해 보라. 여러분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과연 무엇을 향해, 무엇을 위해 예수를 믿고 있는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신앙 속에 새겨져 있지 않다면 그것은 바르지 않다. 마음 속에 진정으로 여러분을 매혹시키고 감동시키는 것이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되기를 바란다. 서로 주님을 위해 더 잘 일해보겠다고 서로 싸우고 다투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하겠다. 그 일의 부담들을 내려놓고 십자가 아래로 가서 그곳에서 무릎을 꿇고 그분의 발에 입을 맞추라!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가?
여러분은 눈을 돌려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생각해야 하고, 그분의 거룩한 머리, 그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서 피가 맺히며 떨어지는 머리, 죄인을 위해 눈물 흘리시어 벌겋게 퉁퉁 부은 그 주님의 눈, 나무에 굳게 못 박힌 두 손, 그리고 못 박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두 발, 하나님께 버림받으셔서 그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으신 그분의 마음을 생각해야 한다. 이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분을 사랑하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은 신앙은 메마른 신앙이다. 지식만 좋아하고 아는 것을 자랑하며 많이 안다고 떠들고 큰 능력을 자랑하는 것은 다 잘못이다. 예수님은 과연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신 것이다!
44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언제나 우리 주 예수님은 아버지와 자신을 일치시키셨다. 예수를 믿는 자는 결국 아버지를 믿는 것이며 주 예수를 보는 자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 우리는 주 예수의 얼굴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본다. 우리는 주 예수를 믿고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를 믿는다.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얼마나 큰 말씀인가? 예수를 아는 것이 빛을 얻는 것이다. 오늘도 이런 짧은 말씀을 통해 빛을 얻기 바란다. 우리가 어두움에 거하지 않는 비결은 주 예수를 믿고 그분을 따르는 길이다.
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주 예수를 소홀히 여기고 예수의 말씀을 받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 예수의 말씀을 소홀히 들으면 심판을 받게 된다. 오늘 우리는 그분의 하시는 이러한 말씀들을 중히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당한다. 마지막날에는 그분의 이미 하신 이러한 한 마디 말씀들이 사람들을 심판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 영생 얻는 길, 복 받는 길이 있으니 그것은 주님을 믿고 주님의 하신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늘 이렇게 주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귀하게 듣고 믿어야 한다. 이 얼마나 엄중한 말씀인가!
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우리 주 예수의 하신 말씀이 다 하늘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오해하지 말라.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 아니시다. 하늘에서 감시하듯 내려다보시며 잘못한 사람들을 쫓아다니고 때리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바로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 그 사랑의 말씀, 구원의 말씀을 보내주신 분이시다. 그런 예수를 보시고 그분의 그 은혜로운 말씀을 들을 때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 명령은 무엇인가?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예수님이 기적을 행한 것도 사실 영생 얻게 하려는 것이다. 그분이 하나님 아들인 것을 믿게 하여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분이 많은 말씀을 하신 것도, 진리의 말씀을 말한 것도 믿어 영생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해도 안 믿는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구주이심을 보이시며 영생을 얻게 하셨다. 이 땅에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명령은 바로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12장의 주 예수의 말씀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