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유동근 목사 요한복음 강해 34] 요한복음 14장 16-25절 강해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이 구절에서 보혜사란 성령을 일컫는다.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떠나시지만, 보혜사로 오시는 성령은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말씀이다. 이와 같이 14장은 그분이 떠나기 전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위로하는 말씀을 주고 계신다. 이제부터 그들을 돌보시는 방식이 바뀔 것도 말씀하신다. 헬라어로 보혜사란 ‘파라클레토스’이다. ‘파라’란 곁을 의미하고 ‘클레토스’란 도움이나 지지의 사상을 전달한다. 즉 보혜사는 옆에서 돕는 자란 뜻이다. 보혜사는 우리의 가까이에서, 또 옆에서 우리를 돕고 지켜보시며 지지해주는 일을 하는 분이다.

여기서 주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시지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셔서 그들과 영원히 함께 있게 하시리라는 약속을 주신다. 현재 제자들에게는 첫번째 보혜사가 계시다(그 때는 보혜사이신 성령께서 예수 안에 계셨다). 그분은 육신으로 오신 주 예수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이제 십자가로 나아가려 하고 계신다. 그분은 십자가와 죽음을 통해 그분 자신을 성령 안에 계시게 하셔서 우리 안에 오시도록 하신다. 주 예수님은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영으로 새롭게 도와주실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도록 아버지께 구하시겠다고 하신다.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그는 진리(실제)의 영이시다. 모든 영적 실제들은 이제 성령 안에 있다. 예수의 모든 실제를 우리는 오늘 성령으로 체험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이 실제의 영은 오직 믿는 이들과만 관계가 있고 세상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왜 성령을 받지 못하는가? 예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 예수를 알고 본 자들은 실제의 영인 성령을 받게 된다. 어떤 사람이 알지도 못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겠나? 보지도 알지도 못한 사람을 집에 들이겠는가?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를 알기에 성령을 받을 수 있다. 누구든지 자기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알 수 있다. 이 구절에서 ‘너희 속에’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말이다.

이는 구약 에스겔 36장 27절 말씀의 성취이다. 신약의 귀한 점은 성령께서 성도들의 안에 거하셔서 그들의 보혜사가 되신다는 점이다. 제자들은 당시 육신으로 계신 주님을 체험했다. 그분과 함께 먹고 마셨으며, 그분의 말씀을 바로 앞에서 들었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는 주 예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로 예수를 내적으로, 주관적으로 체험하게 하신다. 제자들이 더 축복인가, 우리가 더 축복인가? 우리는 주 예수를 안에 모시고 체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주 예수는 우리 안에서 더욱 더 실제적이 되셨다. 이것이 신약의 놀라운 축복이다. 실상 이 구절에 ‘너희 속에’란 말은 시대가 바뀜을 알리는 말씀이다. 기껏해야 제자들은 주 예수를 곁에서 만지고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 안에 사시는 주 예수를 매 순간, 매 시간 체험하며 누릴 수 있다.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내가’라는 말을 주의하기 바란다. 이 구절의 ‘나’는 16절의 보혜사이다. 주 예수님은 17절에서 ‘저(He)’라는 대명사를 썼지만 18절에는 ‘나’(I)라고 바꾸신다. 여기서 우리는 주 예수님과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이 다른 분이 아님을 알게 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비밀이 여기 있다. 16, 17절은 예수께서 구하시는 분이며 아버지는 보혜사를 보내시는 분이며 18절에서 성령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돌보시기 위해 오시는 분이다. 그러나 사실은 셋이자 한 분이시니, 어찌 비밀이 아니겠는가! 17절의 진리의 영인 ‘그’는 18절의 ‘나’로 바뀐다.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우리에게 오시는 분은 분명 성령이시며 보혜사이신데 그분은 우리의 보호자와 아버지처럼 우리를 돌보러 오신다.

고아란 범사를 돌볼 아버지가 없는 자식을 일컫는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이 땅에 남은 제자들을 위하여 보혜사를 보내시는데 그분은 다만 능력이나 기적을 위한 분이 아니라 우리의 범사를 아버지처럼 돌보시는 성령이시다. 따라서 우리 안에 사시는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 따라서 신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고전 3:16).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세상 사람들은 주님을 보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분은 성령으로 보이지 않게 강림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을 보게 된다. 이는 주님이 부활하시며 성령으로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도 살겠음이라”. 당시에 제자들은 죽어 있다는 것이다. 죽어 있으니 어떻게 사랑하겠는가? 성령이 오실 때에게 그들은 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죽었다는 말은 감각이 죽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감각이 죽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을 때 살아난다는 것이다. 살아날 때에야 사랑할 수 있다.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여기서 ‘그 날’이란 보혜사가 오시는 날을 의미한다. 그날에서야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게 됨을 알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성령이 강림하실 때에야 우리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완전한 연합을 알게 된다. 오순절날 이것이 증명됐다. 이 말씀은 시대의 전환을 알리는 말씀이다. 그분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보혜사 성령의 보내주심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완전한 연합을 이루려 하신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사람의 완전한 연합은 성령이 오심으로 성취된다. 사람은 놀라운 존재이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하나를 이룰 수 있는 존재란 말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이러한 상태가 성령을 받은 신약의 성도들의 정상적인 상태이다. 아멘.

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럴 때에 아버지도 여러분을 사랑을 해주고 예수님도 사랑을 해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이 땅에서도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 된다. 반대로 부모의 사랑이 결핍된 사람들은 비뚤어지고 모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그리스도인이 좋은 그리스도인 되는가? 아버지와 아들 예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요한, 베드로, 바울은 예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보아도 복된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되기 바란다. 그것이 비결이다.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것이다. 그 비결은 또한 예수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여러분은 주 예수를 사랑하는가? 나는 엊그제 새벽에 한 시간 정도 기도한 후에 찬송시를 하나 썼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이 되어 써내려갔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21절에서의 이 ‘사랑’은 하나님이 보편적으로 인류를 사랑하는 그 사랑과는 다르다. 이것은 보다 특별한 사랑이다. 물론 하나님은 선인이나 악인이나 다 사랑하신다. 은혜를 모르는 자도 사랑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아버지께서 사랑하신다고 하는 것은 그런 보편적인 사랑이 아니라 매우 특별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특별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여러분이 사람이기에 그렇다. 사람이라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다. 동물은 안 된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되는 것이다. 예수를 많이 사랑하면 아버지는 여러분을 사랑하실 것이다. 그 이유를 아는가? 예수는 하나님의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신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들을 사랑할 때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는 공감대 안에서 우리 역시 사랑하지 않으실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어하는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언뜻 생각할 때 하나의 명령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강요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진리이다. 진리란 이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옳은 이치라는 것이다. 만약 예수를 알고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뜻이다. 생각해보라.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원래는 영광 보좌에 계신 분이신데 그 모든 영광을 버리고 낮아지셨다. 위엄의 보좌를 떠나서 어느 날 비천한 말구유에서 출생하셨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또 주님은 우리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아픔을 당하셨다. 예수를 제대로 믿은 사람들은 그래서 건강의 축복도 받는다. 죄악된 삶은 사람의 몸을 망친다. 예수 믿기 전에 죄로 물든 몸으로 많은 병을 얻었던 사람들은 그래서 예수를 믿은 후에 건강해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예수를 믿은 때부터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들 속에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채찍에 맞으시고 질고의 인생을 사심으로 우리의 약함과 질병을 담당하셨다고 성경은 말한다.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기 위해서 그 분은 채찍에 맞으시고 질고를 당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악된 인생으로 망친 몸을 주님이 이미 회복시켜 주심으로 축복을 누리고 있는 성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 배후에는 주님이 계시는 것이다. 주님의 질고의 인생이 있다. 채찍에 맞으신 주님이 계시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그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그 죄로 인한 죄와 저주와 사망과 영원한 지옥을 면하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그 예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심판받고 지옥으로 떨어져서 불못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서 주님은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되셨다. 그분이 여러분의 구주라면, 여러분이 그 예수를 믿었다면 그분의 발자국을 한번 따라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여러분이 그 피로 인하여 용서를 받았는데, 주님의 온 몸에서 쏟아지는 그 피를 한 번은 바라보아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스스로에게 한 번 질문을 해보기 바란다. ‘이 예수를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말씀에 이렇게 되어 있으니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예수님이 과연 그렇게만 대할 수 있는 분인가? 예수는 나에게 있어서 단지 그런 지식 안에 있는 분인가? 아니다. 그분은 인격이시다. 여러분은 그분과 반드시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잘못된 것이다.

23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진실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를 사랑하게 된다.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킨다. 어떤 사람이 예수를 진실로 믿었는가를 알려면 그가 예수를 사랑하는가를 봐야 한다. 여러분은 진실로 믿었는가? 그렇다면 반드시 주 예수를 사랑하게 된다. 주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예수의 말씀을 사랑하고 지킨다. 그분이 진정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매일 말씀을 보고 싶고, 그 뜻을 알고 싶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고, 그 말씀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것은 자동적인 현상이다. 주님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해야 주님이 기뻐하실까? 내가 어떻게 말해야, 행해야 주님이 기뻐하실까?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갖는 심리이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사랑하신다고 했다.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24절은 23절에 반대되는 내용이다.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자도 있다’는 암시를 주신다.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들은 주님의 말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은가? 사도 바울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이 오실 때에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해도 되고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커다란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과 지키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는 크다. 성경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 성경은 아버지의 말씀이다. 아들의 말씀이며 또한 성령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이를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하루라도 말씀에서 떨어져서 살면 안 된다. 늘 말씀과 함께 말씀으로 인해서 생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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