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칼럼] WCC 핵심 논점에 대한 신학적 성찰 (I)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머리말

그 동안 국내에서 논란되어왔던 역사적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이하 WCC) 제10차 총회가 오는 2013년 10월 30일에 부산 해운대 벡스코(BEXCO)에서 개최한다. 이에 대한 한국 보수주의 교회의 비판의 소리는 높다. 이 지상 위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목사요 복음주의와 정통 개혁주의 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보수주의 교회가 WCC 운동에 대하여 선의의 비판하는 것은 신앙양심으로 정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개최를 반대하고 대회 진행을 훼방하는 것은 지나친 행위가 아닌가 생각한다. 자신들의 신앙적 의견을 조용하게 표시할 수는 있으나, 외국의 성직자들과 신학자들, 수많은 인사와 교회 지도자들이 초청되어 오는 세계적인 기독교의 축제 모임에 대하여 개최 반대 시위를 한다거나 혹시나 그 모임석상에서 어떤 물리적 방해를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고 주의 교회를 욕되게 하며 복음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이번 부산 대회에 참석하는 독일 복음주의 선교신학자 피터 바이어하우스(Peter Beyerhaus)를 비롯하여 많은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이 대회의 토론 가운데서 선의의 비판적 의견을 많이 개진하고, 이것이 반영되어 WCC 운동이 새로운 방향, 잃은 영혼을 살리고 복음을 전파하는 성경적이고 복음적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이 모임에 참석한 외국 지도자들이 한국교회의 경건과 신앙에 깊은 감동을 받고 돌아가는 등 성공리에 끝날 수 있도록 후원하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1948년 출범 당시에는 복음적 성격을 유지하였다. WCC는 헌장 제1조에 “WCC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라고 분명한 정체성을 밝히고 있다. WCC가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영성은 구조상 선교, 봉사, 교회일치, 이 세 기둥의 결합체이다. 선교의 영성은 세계복음화와 세계구원을 추구하고, 봉사의 영성은 “교리는 갈라지게 하지만, 봉사는 하나되게 한다”(Doctrine divides; whereas service unites)는 기치로 수많은 봉사활동을 전개한다. 교회일치의 영성은 “다양성 속의 일치”(Unity in Diversity), 곧 교파전통상의 다름과 다양성을 상호 인정하고 존중한다. 1978년 발표된 방갈로 문서에선 “성경은 전 창조세계와 민족들과 개개인의 삶을 다루고 계시는, 한 분이시며 동일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책”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1961년 인도 뉴델리 총회 이후에 신학적 패러다임을 자유주의와 종교다원주의로 바뀌었다. 1970년대 종교 대화프로그램을 통하여 종교다원주의를 추진했다. 그래도 1980년대까지는 ‘그리스도 중심주의’와 ‘기독론적 배타성’이 있었으나, 1990년 이후로 신중심적 보편주의 패러다임으로 나아가고 있다. 1990년 바아르 선언에서 타종교 안의 하나님의 구원활동을 인정하였다. 그러한 흐름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이 1991년 호주 캔바라 총회에서 무당신학자가 주제 강연을 함으로써 일어난 초혼제(招魂祭) 사건이었다.

필자는 일방적으로 WCC를 비판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WCC 참여자들은 형제이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기본적 입장을 천명하며, 지금 부산에서 역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WCC 운동이 제10차 부산총회를 기점으로 복음적 성격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간절한 염원 속에서 WCC의 회원들과 지지자들 가운데 복음주의적 입장을 지닌 자들에 대한 유대감을 가지면서도, 실제로 WCC 신학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비판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WCC의 핵심 논점사항들에 관하여 복음주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WCC 신학의 궤도 수정과 발전을 위한 것이다.

1. 성경의 권위를 부인, 자유주의?

WCC에 속하는 회원교회들은 대체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안다. WCC의 성경관은 시대를 거쳐오면서 변화하였다. 1949년 출범 당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워드햄대에서 채택된 워드햄 문서(Wadham Document, 1949)는 성경 중심과 그리스도를 강조하고 있다. “성경 그 자체가 우리를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도록 인도한다.”(WCC, “성경해석을 위한 지침,”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성경의 권위와 해석』, 엘렌 플레세만-반리어 엮음, 이형기 역, 서울: 한국 장로회출판사, 1996, 29-33.). 정통주의와 신정통주의 요소를 함께 지니고 있었다. 1963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WCC 신앙과 직제위원회 제4차 대회에서 채택된 몬트리올 보고서(Montriol Report, 1963): “성경, 전통, 전통들”(Scripture, Tradition, Traditions)은 전통과 성경의 연관성을 역동적으로 엮는다. “전통은 성경에 선행한다. 이것은 전통이 중요하다는 것과 나아가서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의 보배라는 것을 지칭한다.”(WCC, “Scripture, Tradition, Taditions” para. 42). 1967년 영국 브리스톨 신앙과 직제위원회에서 채택된 브리스톨 문서(Bristol Document, 1967): “에큐메니칼 운동을 위한 해석학적 문제의 중요성”(Significance of the Hermeneutical Problem for the Ecumenical Movement)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 역사비평적 방법의 도입을 제안한다. “성경은 일련의 문학적인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기에 그것은 여타 문학적인 자료들의 연구에서 사용되는 방법들과 동일한 방법으로 연구되어야만 한다.”(WCC, “Significance of the Hermeneutical Problem for the Ecumenical Movement,” Geneva: WCC, 1967.) 벨기에 루뱅에서 모인 WCC의 신앙직제위원회가 채택한 루뱅문서: “성경의 권위”(The Authority of the Bible, 1971)는 성경의 권위를 자체의 영감에서가 아니라 그것의 영향력이라고 보며 신앙과 행위의 규범 됨을 거부한다. “성경을 우리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대답과 표준으로 간주할 수 없다… 성경은 밖으로부터 우리에게 부과되는 규범이 아니다… 성경은 많은 영감들 가운데 하나의 영감의 원천이지도 않다.”(WCC, “성경해석을 위한 지침,”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성경의 권위와 해석』, 엘렌 플레세만-반 리어 엮음, 89).

1993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모인 신앙과 직제위원회는 산티아고 문서(Santiago Document, 1993): “질그릇에 담긴 보배: 해석학에 관한 에큐메니칼 고찰을 위한 도구”(A Treasure in Earthen Vessels: An Instrument for an Ecumenical Reflection on Hermeneutics)를 채택했다. 이 문서는 교회전통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정합의 해석학과 비판적으로 반성하는 의심의 해석학을 상호보완적으로 사용하는 통일성의 해석학을 제시한다. “기독인들은 이 같은 해석학적 관계 한가운데서 해석이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과, 새로운 문제들이 다양한 컨텍스트에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WCC, “A Treasure in Earthen Vessels: An Instrument for an Ecumenical Reflection on Hermeneutics,” Geneva: WCC, 1993, para. 28). 여기서 WCC의 성경관은 권위가 박탈되고 해석학은 잡다한 것들의 정합의 해석학이 되어, 절대적인 기준과 규범과 원칙이 없고 상대주의 해석학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상대주의적 해석학으로 인하여 WCC에는 여러 성향 교회들이 있다. 이들 가운데는 동방정교회 같은 극보수주의가 있는가 하면 상당수는 예장 통합이나 감리교처럼 중도적 보수주의도 있다. 독일의 선교학자 피터 바이어하우스(Peter Beyerhaus)나 별세한 영국의 존 스토트(John Stott) 등은 성경의 권위와 영감을 인정하면서 WCC에 참여하는 비판적 학자들이다. 그러나 WCC를 주도하는 소수 그룹 가운데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부인하는 자유주의적이며 종교다원주의적 경향을 지닌 자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예장 통합측 안에서도 WCC의 신앙직제위원회 정식회원인 로마 천주교가 구약 외경을 정경 안에 포함시키는 입장을 받아들이는 역사신학자 이형기의 전통과 권위를 수용하는 성경관에 대하여, 성경신학자 김중은은 다음과 같이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복음과 성경 이해에서 이러한 이분법적인 복음 전승의 역사적 우선권 주장과 자유주의 성서 비평학의 전제들과 방법을 수용함으로써 개혁교회 전통의 복음주의 성경관에서 이탈된 현상을 보여준다.”(김중은, “21세기 한국 장로교회의 진로와 신학노선에 대한 인식과 전망: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의 경험을 중심으로,” 2005, Wholistic Theology, PCTS, 2010, http://hopeinx.tistory.com/36.).

김재준 신학의 영향을 받아 신정통주의적 성경관을 가진 자들이 중도적 보수주의에는 적지 않다. 신정통주의자들은 성경의 불오(infallibility)는 믿으나 무오(inerrancy)는 믿지 않는 것이 특색이다. 불오는 성경의 구속사건, 신앙과 구원과 관련된 메시지는 오류가 없다는 목적 영감설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을 우리들에게 전달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이는 바르트나 브룬너 등 신정통주의자들의 성경관이다. 바르트와 브룬너의 영향을 받은 김재준의 성경관은 목적 영감설이다. 미국에서도 복음주의 좌파에 속하는 학자들이 이러한 입장을 취하였다. 클락 피녹, 잭 로저스, 다니엘 풀러 등이 불오설의 입장에 섰다.

WCC 안에는 성경에 대한 신정통주의적 입장을 지닌 자들이 자유주의적 입장을 지닌 자들보다 훨씬 많다고 보인다. 필자가 생각하건대 WCC 안에 성경의 권위와 영감을 받아들이는 신정통주의적 견해를 가진 자들이 거의 대부분이며, 이 가운데는 정통주의적 입장을 지닌 자들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WCC 참가자들이 모두 적그리스도라거나 또는 WCC 대회 참가 자체가 현대판 신사참배라고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이 매도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비판이지 않나 생각된다. 나와 같이 믿지 않는다고 믿음이 작다고 하거나 약한 형제를 질책하는 것은 복음적이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믿음이 작거나 부족한 형제를 질책하기보다는 격려해주고 이들이 더 큰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 믿음이 큰 자들의 사명이라고 생각된다. 믿음이 큰 자들이나 보수주의자들은 독선에 빠질 수 있는 여지가 있으므로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겸손해야 한다.
 
신전통주의자들에 대하여 정통주의자들은 성경이 단지 구속사건이라는 목적 메시지 뿐만 아니라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용어와 역사적 연대기나 지리학적 기술 등에 있어서도 오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성경무오설이다. 프린스턴의 정통신학자 찰스 핫지, 벤자민 월필드, 아더 글라서, 제임스 메이쳔, 칼 헨리, 헤롤드 린젤, 제임스 보이스, 에릭슨 등이 성경무오설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있으며(Harold Lindsell, The Battle For the Bible (Grand Rapids: Zondervan, 1976), 한국교회에서는 평양신학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박형룡, 박윤선, 한상동, 주기철, 오병세, 차영배, 신복윤, 김명혁, 김중은, 이수영, 김영한, 정일웅, 심창섭, 권호덕 등이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성경에 대한 자유주의적 견해는 성경을 하나의 고대 근동과 유대교의 종교문서로만 본다. 그리하여 신적 영감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성경은 하나의 역사적인 종교문서일 뿐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역사비판적·종교사학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러한 입장을 제시한 자들이 헤르만 군켈과 그의 입장을 수용한 불트만 등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며, 한국에서는 이러한 입장을 수용한 자들은 안병무와 서남동, 변선한 등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WCC 안에는 이러한 자유주의적 성경관을 지닌 신학자들이 적지 않으며 이들이 주도권을 쥐고 끌어 나기기 때문에 용공, 초혼제,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 동성애 등의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다.

2. 종교다원주의 신학?

WCC는 1970년대부터 인도 신학자 사마르타 등을 종교 대화 프로그램의 책임자로 임명하여 종교 대화를 시작했다. 사마르타, 니터, 토마스 등 인도신학자들은 성경을 타종교의 경전과 같이 취급하고, “타종교에도 그리스도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타종교의 구원을 인정하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이다. 1989년 산 안토니오 세계선교와 복음화위원회(CWME)는 “타종교 안에서 하나님은 발견될 수 있다”고 선언했다. “하나님께서 비기독교 종교들 사이에서 사역하시고, 하나님의 구원 능력에는 한계가 없으며,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알고 있는 하나님께서는 타 종교들의 사람들의 삶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이형기, “WCC의 신앙과 신학이 추구하는 ‘종교간 대화의 영성’,” 기독교학술원 영성포럼, 2013년 5월 3일 자료집). 우리는 1990년 정초에 스위스 바아르(Baar)에서 WCC, 정교회, 가톨릭교회가 함께 논의하고 이끌어 낸 바아르-선언문(Baar Statement)을 주목하게 된다. 이 선언문은 종교다원주의를 시사한다: “타종교인들의 삶과 전통 속에 성령이신 하나님께서 활동하심을 고백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 참으로 당연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타종교인들의 증언을 통하여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신비를 다각도로 체험하게 될 것이다.”(http://www.cyworld.com/dudrka8888/4734415). 이 선언문은 창조주 하나님 내지 성령이 타종교인들 즉, “산 신앙인들”의 삶과 전통 속에서 활동하신다는 것과, 타종교들 속에서 구원의 신비를 인식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대화에서 그들에게 접근하는 자세라고 주장한다. 2000년 WCC 산하 CWME는 ‘그리스도 바깥 구원 가능성’을 피력하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외에 다른 구원을 이야기할 수 없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에 어떤 제한을 둘 수 없다. 이상의 두 문장 사이에는 긴장이 있으나, 이 긴장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WCC, “일치를 향한 오늘날의 선교와 전도”, 『통전적 선교를 위한 신학과 실천』, 2000, 135.).

2005년도 선교와 전도문서: “교회의 치유선교” 선언문 73~77항에서 CWME는 “다른 종교에서 유래된 치유요법, 즉 다양한 전통종교의 처방, 요가, 영기(靈氣)요법, 수기요법, 선(禪) 명상 등에 대한 개방성과 의존성은 교회와 기독교 관련의료기관에서 많이 토의되는 주제이다”라고 고백하며, 한편으로는 다른 종교의 치유의 영성과 호환을 희망하며 “모든 치료수단에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그리스도인은… 기독교가 아닌 특정 종교의 세계관과 연관된 위험스러운 치료관습에 정성을 들인다. 또 다른 그리스도인은 겉보기에는 유익하게 보이는 치유 요법 뒤에 숨어 있는 악령의 힘이 자신의 파괴적인 모습을 감추고 있음을 잘 깨닫지 못한다”고 하며 무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WCC는 “다른 종교에 뿌리는 둔 치료 요법과 기(氣)치료 등을 대할 때,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다양한 치료방법과 고대로부터 내려온 영적 전승을 교회 자체 안에서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교회의 치유선교”, Ibid., 234-35.). WCC는 치유에 있어서도 포스트모던적 다원주의 영성을 나타내고 있다.

전통 종교적 유산으로 말미암는 치유를 기독교에 수용하는 WCC의 이러한 혼합주의 영성은 창조자의 영과 창조신앙이 없는 범신론자들이나 다신론자들의 “능력”에 대해서 영분별의 필요성을 전혀 문제 삼는 것 같지 않다. 그러므로 1989년 산안토니오 선언에서 언급된 “타종교에서의 하나님의 구원 계시,” 그리고 1990년 바아르 선언에서 나온 “타종교들 속에서 구원의 신비를 인식 가능성,” 2000년 WCC 산하 CWME가 언급한 ‘그리스도 바깥 구원 가능성’ 사상을 분명히 신학적으로 정리해야 하는 것이 요청된다. WCC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은 타종교의 구원 문제에 관한 복음주의자들의 비판을 경청하면서 종교다원주의 비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종교다원주의 경향성”과 결별하는 분명한 신학적 선언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3. 구속사와 보편사의 혼동?

WCC의 일원론적 역사 개념은 호켄다익(Johannes Hoekendijk)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신학에서 유래한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전체 피조물과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최종 목표는 교회가 아니다(WCC, 『세계를 위한 교회』, 세계교회협의회 편, 박근원 역,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70f.). 교회는 다만 세상의 “한 조각”이며, 세상에 부과된 “하나의 첨가물”(postscript)이다. 피조물 전체가 다 오직 하나의 역사인 샬롬(Shalom)의 역사이며, 이 샬롬의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다. 이 샬롬의 왕국을 실현하려면 교회는 “교회의 모습”(Statur)과 신분(Status)을 “사멸시키고”(absterben lassen), 세상 사람과 같이 되는 것이다. 그 성경적인 근거로 빌립보서 2장 5절 이하에 있는 말씀으로 “종의 형태를 입은 메시야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Ibid., 35f. 『세계를 위한 교회』, 27.).

호켄다익에 의하면 교회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증거하며 회개와 개종을 요청하는 것은 세상을 자기 형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교회는 “존재”(Sein)이기를 포기하고 하나의 “기능”(Funktion)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본질은 사도직의 한 기능에 불과하다. 교회의 존재 방식은 없다. 교회는 전혀 확고한 위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활동성, 즉 사도의 활동성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H. C. Hoekendijk, 『흩어지는 교회』, 92.). 호켄다익은 교회와 세상을 구별하지 않는 통합체로 보기 때문에 개종선교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제4차와 제5차 WCC중앙위원회 중앙위원장을 연달아 맡았던 M. M. 토마스는 인류연합을 위한 “투쟁의 영성”(Spiritualität des Kampfes)에 관해 설명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사회적이건 도덕적이건 문화적이건 간에, 사람을 종속시키는 모든 연합을 파괴하고, 더 성숙한 연합을 위하여 남녀를 해방하며, 이 연합이 다시금 종속적으로 되면 또 다시 파괴해야 한다(Krüger, H., Müller-Römheld, M., Bericht aus Nairobi, Frankfurt, 1976, 251.)고 역설하였다. 그는 “그리스도는 해방하고 연합한다”는 제5차 WCC Nairobi 총회의 주제를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으로 해석하였다. 영적인 시각을 잃어버린 토마스가 “투쟁의 영성”을 요청한 것은 기독교인과 타종교인과 불신자들의 협력으로 하나의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문화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세계선교와복음화위원회(CWME)는 여러 종교와 화해 없이는 통전적 의미의 화해와 치유가 성취될 수 없기 때문에 타종교와 함께 선교를 하자고 한다. “화해와 치유의 영적인 자원이 기독교 신앙의 전승으로부터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다른 종교와 문화에 나타난 영적인 유산을 긍정하고 배우는 것이다. 치유와 화해에 대한 다른 전승과 경험은, 특히 토착 공동체의 전승과 경험은 큰 가치를 가진다”(WCC, “화해의 사역인 선교”, 『통전적 선교를 위한 신학과 실천』, 김동선 역, 대한기독교서회, 2007, 186.).
 
독일의 복음주의 선교신학자 바이어하우스는 “2013 WCC 총회 사명선언서에 나온 성령·생명·선교·하나님 나라·변혁 등이 ‘복음주의 스타일’로 쓰였다고 해서 매혹당하거나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며 “그보다 그 개념들이 진정한 성경적 내용들로 채워져 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산 총회 준비 문서에 나와있는 선교와 전도의 개념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를 하였다. “‘함께 생명을 향하여’에는 ‘성령·생명·창조·하나님 나라’ 등 성경적 핵심용어들이 사용됐지만, ‘생명’에 대한 진정한 기독론·구원론적 이해가 빠져 있다.” “여기서의 생명은 뉴에이지 운동을 포함해 어떤 범신론적 종교나 이데올로기의 신봉자들에 의해서도 쉽게 뒤집힐 수 있는 보편적 힘으로 일반화되고 있다.” 또 ‘세계 역사(World history)’와 ‘구원 역사(Salvation history)’ 간의 혼동을 지적한다. 하나님께서 이 두 영역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일하심을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적 종말론이 빠져 있다. WCC의 역사 이해에는 진보적인 세속사관이 지배한다.

그러므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한국교회가 받은 청교도적 영적 유산을 고수해야 한다. 구속사와 보편사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구속사는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요, 보편사는 세계사를 통한 하나님의 일반 섭리의 역사다. 스위스의 에큐메니칼 신학자 쿨만(Oscar Cullmann)이 말하는 바와 같이 역사 가운데서는 구속사는 보편사 가운데 좁은 선을 지니나 역사의 목적이요 의미이다. 그리고 역사 종국에는 이 구속사 안으로 보편사가 편입된다. 선교의 역사는 보편사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의 역사, 교회의 역사로 진행한다. 구속사에는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이 집행되는 것이며, 지금은 보편사 속에서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보편사는 중단되며, 구속사가 역사의 진정한 의미를 충족하게 된다. WCC는 이러한 성경적 역사 이해를 놓치고 있으며, 구속사를 보편사와 혼동하고 있다. 그러니 선교개념을 영혼구원이라기 보다는 인간화와 사회화, 인권신장 등으로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화, 사회화, 인권신장 등은 오늘날 선교에서 보다 넓은 선교 개념으로 필요하다. 인간은 영혼의 구원으로만으로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없고 구원받은 영혼이 인간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의 구원이 필요하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독재국가나 공산국가나 빈곤국가에서는 인간답게 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영혼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사회의 빈부격차나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이나 지역차별이 없는 사회를 필요로 한다. WCC가 이러한 인간화와 사회화나 인권신장의 차원에 기여를 한 것은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영혼구원을 받지 못하면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는 천하를 얻고도 그 영혼을 잃어 버리는 것이 된다. WCC는 초기의 선교 이념인 영혼구원 열정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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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윤리와 학생인권조례’

“학생 담뱃갑서 콘돔 나와도,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훈계 못 해”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세미나가 ‘생명윤리와 학생인권조례’를 주제로 21일(목) 오후 2시 30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됐다. 이상원 상임대표는 환영사에서 “학생인권조례는 그 내용이 반생명적 입장을 반영하고 있고, 초‧중‧고등학교에서 사실상 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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