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gei 선교칼럼] 러시아의 겨울연가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러시아의 겨울은 몇 가지 긴 여운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먼저 영하 2-30도의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나와 처음 몇 분 동안은 매우 온화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어, 별로 안 춥네’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은 습기가 없기 때문에 첫 느낌이 부드러운 것이다.

그러나 5분이 지나기 전에 차가움은 화살처럼 얼굴에 침투하고 코끝을 헤집고 들어온다. 그리고 잠시 후면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눈썹까지 얼어붙는 느낌이 든다. 기후는 인간의 습성을 만들어 내면서, 이렇게 러시아인들은 자연에 길들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의 겨울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매우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동네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스키를 즐기는 것을 본다. 어린아이들은 학교 수업으로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눈에 파묻히면서 겨울과 벗을 삼는다. 노인들은 스키로 눈밭을 달리면서 건강을 유지하고 매서운 추위와 동거동락하는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는 요람에 뉘여, 영하 20도의 추위에 산책을 하는 어머니를 통하여 인생의 혹독함과 냉정함을 배우는 것 같다.

수많은 시간을 러시아에서 보내면서도 스키 한 번을 제대로 즐겨 보지 못한 것은 참으로 소극적이고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인가 스스로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바쁜 일정이나 잡다한 일상 속에서 여유를 느끼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 문화와 관습 속에 잠긴 습성이 허락을 하지 않는 것인가?

러시아의 겨울은 지방으로 나가면 소위 “반야”라고 하는 러시아식 전통 사우나에서 특이함을 맛보게 된다. 눈 속에 파묻힌 외딴 곳에 만들어진 이 러시아식 사우나탕은, 장작불을 때서 난로의 물을 데우고 탕 안의 온도를 높인다. 온도는 난로에 물을 부어서 습기로 올리는데, 그 물 속에 커피나 향기 나는 차를 조금 섞어서 부으면 탕 안은 온통 향기로운 냄새로 가득하게 된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고급도 아니고 화려함도 없고 나무 조각을 갖다 붙여 만든, 시골스러움이 가득한 러시아식 사우나다. 몸에 한참 열을 올린 후 탕 안의 긴 의자에 사람을 누이고, 자작나무 잎사귀로 만든 채를 가지고 몸을 두들기면서 피부 마사지를 한다. 어떤 때는 소나무 가지를 꺾어 채를 만들어 피부를 두들기면서 마사지를 하는데, 그 사람의 건강 상태에 따라서 다르게 한다.

한국에서 온 손님들이 이러한 장면을 연출할 때에는 “훠어~ 훠어~” 하면서 “물러가라”를 외치며 채를 휘두른다. 그러는 사이에 탕 안은 온통 웃음바다로 변하고, 너도 나도 물러가라 외치면서 떡갈나무 잎으로 된 채로 피부를 두들기면서 마사지를 한다.

맛사지를 받은 사람은 즉시 탕을 벗어나 자연으로 튀어나간다. 탕 밖의 눈밭 속으로 몸을 내던지는 것이다. 벌거벗은 자연 속에 벌거숭이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들고, 인간은 그 세상을 다스리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의 겨울은 1월 중순이 최고조에 달한다. 그 때는 러시아 정교회력으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기념일로 지키며, 러시아 전국에서 1m 정도 꽁꽁 언 강을 톱으로 십자가형으로 절단한다. 그리고 영하 2-30도에 어린아이로 시작하여 남녀노소 모두가 수영복 차림으로 그 얼음물 속에 뛰어들어간다. 유명한 정치인으로 시작하여 평민에 이르기까지, 예수께서 세례받은 날을 기념하여 그 의식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로써 질병을 없애고 건강을 기원하며 러시아의 겨울과 친해지는 것이다.

러시아의 대표적 겨울 풍경은 뭐니뭐니해도 자작나무일 것이다. 수백km를 줄지어 서서 가로수 역할을 하는 자작나무는,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백조들의 군무를 보는 느낌이 들게 한다. 북쪽 추운 곳으로 갈수록 늘씬한 키를 자랑하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강한 추위 속에 우뚝 솟아가는 나무의 강인함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자작나무는 강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패 보면 알 수 있는데, 날선 도끼로 패도 도끼가 튕겨나올 정도다. 또한 나무를 패서 장작불로 사용하면 매우 오래 타면서 향기를 발한다. 자연 그대로의 향기를 가지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품게 되는데, 온 몸이 그 향기에 반응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자작나무는 열이 강하여 숯불구이를 할 때에 주로 사용된다. 일반 나무로 하는 것보다 훨씬 맛이 좋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강한 성질 탓에 사우나탕 내부 벽에 밖으로 새어나가는 열을 차단하기 위하여 많이 사용된다. 나무도 이처럼 다양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신기함을 갖는다. 봄이 되면 이 나무에서 물을 받아 먹는데, 우리 몸에서 일종의 윤활유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아름다운 자작나무에도 아픔이 있다. 깊은 숲 속에 자라는 자작나무 밑 둥치에는 혹이 생기는데, 그 혹은 나무와 함께 20여년을 자라게 된다. 그 혹이 나무의 영양분을 모두 빨아먹어, 결국 나무는 고사하고 뿌리에 붙은 혹은 자라는데, 큰 것은 거의 2-300g 정도의 무게를 가지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즐겨 먹는 차가버섯이라는 것이다. 솔제니친이 시베리아에서 형을 살 때에 이 차가를 통하여 암을 고친 사실을 그의 글을 통하여 밝힘으로, 세상에 그 존재를 소개하였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러시아의 차가를 찾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는 도시 주변 멋진 장소에 위치한 사나토리(휴양소)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공산 시절에는 각종 정신교육의 장으로 활용됐고, 이제는 각 단체들의 교육 장소와 쉼터로 활용된다. 개방 덕분에 외국인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가 있고, 과거에 최고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이용하던 곳도, 이제는 우리가 차지하여 그 시절을 회상해 보기도 한다.

수영장과 사우나탕과 당구장과 극장, 그리고 댄스홀, 이제는 그곳에 와이파이가 들어오고 인터넷이 연결되어 현대 문화와 과거의 향수를 함께 느끼게 한다. 이것이 동화 속의 그림 같은, 겨울 러시아의 사나토리이다.

러시아의 겨울에는 또 뭐니뭐니 해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야 한 것이다. 눈 속을 뚫고 한없이 한없이 달리는 기차 속에 몸을 담고, 흔들거리는 차창 밖으로 한없이 펼쳐지는 끝없는 대지와 눈밭, 그리고 자작나무 숲과 기적소리와 석탄 연기 냄새, 지나가는 사람들의 입가에 소리 없이 흩어지는 입김들, 검은 털모자, 이 모든 것이 러시아의 겨울연가이다. 기차 속에서는 몇 날 며칠을 함께 작은 공간에서 보내면서, 인생을 소비하고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회상하기도 하고 창조하기도 한다.

러시아의 겨울이 성큼 다가왔지만, 예전 같지가 않다. 그 매서움과 맹렬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맥 빠진 겨울비가 처량하게 내리는 11월이다. 강하고 힘 있었던 러시아의 겨울이 기다려진다. 거리의 더러움과 수치를 모두 가려주는 하얀 눈이 기다려진다. 이번 겨울은 얼마나 추울까?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낸 온난화의 결과를 그대로 맛보는 맥없는 겨울이 될까 궁금하다.

현장의 소리, 세르게이 선교사
Lee709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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