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 요한복음 강해 39] 요한복음 15장을 마치면서
요한복음 15장에는 포도나무가 나온다. 포도나무 이야기는 신약만이 아니라 구약성경에도 나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한 그루의 포도나무로 비유했다. 이사야 5장, 예레미야 2장, 에스겔 17장를 비롯해 호세아 등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비유했다.
주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말씀하셨고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고 하셨다. 이 포도나무를 중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이 나오고 아들 예수가 나온다. 그리고 가지는 믿는 성도들인 우리다. 그러므로 이 포도나무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와 믿는 성도들이 연합된 연합체인 교회이다.
주님은 한 분이시고 따라서 포도나무도 하나이다. 많은 가지가 있어도 다 한 포도나무의 가지이다. 포도나무를 이 땅에 두신 목적은 열매를 맺기 위한 것이다. 아버지는 열매를 기대하셔서 이 땅에 포도나무를 두셨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 포도나무이지만, 요한복음 15장에서 말씀하시는 포도나무는 결국 신약의 교회이다. 그러므로 교회도 하나님을 위해서 열매 맺어야 한다.
깨끗하게 되는 비결
열매를 맺기 위해 하나님이 첫째로 하시는 일은 깨끗게 하시는 것이다. 과실을 더 맺으려면 아버지께서 그 가지를 깨끗케 하신다고 했으며(2절),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3절) 내 안에 거하라고 했다(4절). 깨끗해지지 않으면 주님 안에 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않고 깨끗해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떤 사람은 어차피 잊어버리는데 말씀을 자꾸 들으면 뭐하느냐고 한다. 물론 우리의 지력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잊어버린다. 그렇지만 말씀을 들을 때마다 씻긴다. 그것도 참 진리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제대로 들어야 씻기지, 아무 말이나 듣는다고 씻기지 않는다. 씻기는 말씀이 따로 있다. 이것은 체험이다. 생명의 말씀이 아닌 지식이나 율법은 씻기지 않는다. 여러분도 어쩌면 예배에 참석해서 말씀을 듣고 영이 씻김을 느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체험적으로,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주의 말씀을 듣고 씻길 때, 자연히 그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을 발견한다. 깨끗하게 씻기면 어느새 주님 안에 거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무척 쉽고 편하다.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그럴 때 과실을 맺는 것이다.
15장을 마치면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깨끗하게 되는 것’이다. 씻기지 않고 깨끗하게 되지 않으면 우리는 능력을 얻을 수 없다. 깨끗하게 되려면 말씀을 듣고 또한 순종해야 한다(벧전 1:22). 진리의 말씀을 순종할 때 우리의 영혼이 깨끗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속된 것과 세상적인 것에서 분별되어서 깨끗하게 되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 안에 있는 누림을 얻지 못한다(딤후 2:20-22).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일은 주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는 것이다.
한 그루의 포도나무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는 한 그루의 포도나무이다. 하나님은 두 개의 포도나무를 심지 않았다. 가지는 많지만 포도나무는 여전히 하나이다(고전 12:12). 신약 성경에 교회가 여러 개가 있다는 말은 없다. 언제나 몸은 하나이다. 이러한 그림을 요한복음 15장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15장에서 주님은 당신께 속한 사람들을 한 무리로 보시고, 교회와 구분된 것은 세상으로 보셨다.
17절이 어쩌면 16절까지 말씀의 결론이다. 결국 이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가 하나로 유지되는 비결은 사랑이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함에 의해 포도나무는 하나로 유지된다. 그러나 교회는, 이 포도나무는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다(18절).
주님은 ‘너희’와 ‘세상’을 언제나 구분해서 말씀하셨다(19절). 그것은 16장에서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 예수님의 마음 속에는 그분을 믿는 사람들이 분열되어 있다는 어떤 암시도 우리는 발견하지 못한다. 그들은 다 주님께 속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나뉘었다면 세상과 나뉜 것이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주님의 택함을 받아 하나의 포도나무 가지가 된 것이다. 교회의 통일성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성경에는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명령이 있는데, 오늘날 교회는 이 명령을 소홀히 하고 있다. 나뉘는 것에 대한 어떤 죄의식도 없을 정도로 수백 수천 갈래로 나뉘었다. 이런 분열의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원래 교회는 하나이다. 그런데 루터의 개혁 이후, 수많은 교회들이 분열적으로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교회 분열에 대한 느낌이 둔감해졌다. 이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요한복음 17장에서 말하겠지만, ‘교회의 하나됨’은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드린 기도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명령, 교회의 통일성에 대한 진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말씀 앞에 우리는 다 심판되어야 하고 점검되어야 한다.
교회와의 구분은 오직 세상
15장 후반부 말씀을 볼 때 교회와 구분되는 것은 세상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와 세상과의 구분점을 모르고 교회와 교회, 성도와 성도, 즉 그리스도 안에서 자꾸 구분을 지으려고 한다. 주님은 항상 ‘나에게 속한 너희’와 ‘세상 임금에 속한 사람’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데, 오늘날 어찌된 일인지 세상과의 구분은 약화시키고 성도들과 성도들을 구분시키려 한다.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교회란 세상으로부터 주님께 부르심받고 택함받아 모인 무리이다. 그것이 바로 교회이다.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란 세상으로부터 주님께 부르심받아 나온 무리이다. 교회가 유일한 구분을 가져야 한다면 그것은 곧 세상이다. 교회란 세상으로부터 구원받아, 세상으로부터 분별되어 나온 무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는 세상으로부터의 분별은 잊어버리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조금만 다른 것이 있어도 그것을 가지고 구분을 하려 하는가? 너무나 옳지 않은 것이다.
16장부터 주님은 교회와 반대되는 세상에 대해 말씀하신다. ‘세상은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 핍박할 것이다, 심지어 너희를 쫓아내고 죽일 것이다’라고 하셨다. 교회와 반대되는 것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