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유동근 목사 요한복음 강해 42] 요한복음 16장 16-27절 강해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주님의 제자들에 대한 강화하심

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 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뇨 하고 18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한 말씀이 무슨 말씀이뇨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조금 있으면(a little while)’이라는 말이다. 주님은 이 말씀을 일곱 번이나 하셨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한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나를 본다고 하셨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알지 못했다. 주님이 원래 있었던 아버지께로 가신다면 영원히 가신다는 것인데,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고 하시는 것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많은 강해서나 주석은 나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죽으심을 말하기에 사흘 만에 부활한 나를 보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3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내가 자주 참조하는 존 라일의 강해서에도 그렇게 돼 있다. 그러나 그 부분만큼은 그가 잘못 해석한 것 같다. 그러면 16절은 무슨 의미인가? 당시 제자들도 몰랐고 오늘날에도 잘 모른다. 성령을 받아야 이를 알게 되는데, 예수님은 이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그들이 서로 문의할 때 주님이 지금 너희들이 이 말 때문에 서로 의논하느냐 하시며 20절에서 직접 설명해 주신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주님은 조금 있으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에 못 보게 된다. 그때 제자들이 곡하고 애통할 것이라 하셨다. 이는 맞는 말이고 다들 그렇게 해석한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고 하신 것은 단정적으로 분명히 말해 오순절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다시 본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기간은 3일이 아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는 것도 기쁨일 것이다. 그것으로도 제자들은 주님을 전보다 더 알게 될 것이다. 재림 시에는 물론 주님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말씀하신 의미는 오순절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만나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기간은 삼 일도 아니고, 이천 년도 아닌, 오십 일인 것이다.

‘조금 있으면(A little while)’은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실 때이다. 주님은 성령을 다시 보내 주시는 일, 성령으로 다시 오시는 일을 굉장히 크게 생각하고 계신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한 마디로 “성령으로 세례 주시는 분”이라 표현했다. 이는 오순절에 이뤄진 일이다. 오늘 교회는 반드시 이것을 의미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주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가장 강조한 것이 무엇인가?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놀라운 시대의 전환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20절은 지금 너희들이 근심하고 슬퍼하겠지만, 성령이 다시 오실 때 매우 기쁠 것이라 하시는 것이다.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을 받기 전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다. 베드로가 언제 변했는가? 언제 달라졌는가? 오순절 성령이 강림했을 때다. 두려워하는 것이 없었다. 전에는 작은 하녀 앞에서도 벌벌 떨며 예수를 부인하던 사람이, 예수를 죽인 그 많은 핍박자들 앞에서도 예수를 강하게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얻은 변화이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할 때, 성령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 베드로가 변한 것처럼 여러분도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성령이 오시면 달라진다. 성령 강림은 시대의 전환점이었으며, 또한 우리의 인생의 전환점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16절의 ‘조금 있으면’은 주님이 오순절 성령으로 다시 오시는 것을 말한다. 그 때 너희의 마음은 기쁠 것이다,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은 기쁨이 되리라고 하셨다. 이는 해산하는 것과 같다. 여인이 해산할 때 어떤가? 예전에는 아이를 해산하기 전에 신발을 다시 보고 들어간다고 했었다. 다시 이 신발을 신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이다. 그렇게 고통스런 것인데 아이를 낳고 나면 그 고통을 다 잊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아내의 얼굴을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때는 아이를 출산했을 때였다. 분만 뒤에 고통스러운 가운데도 편안하고 안정감 있고 보람되기도 한 모습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러할 것이다. 그럴 때에 근심했던 고통을 다 잊는 것이다.

주님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목전에 두었다. 주 예수님은 자신이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피 흘려 돌아가실 때에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 것인지 생각하고 지금 위로해 주시는 것이다. 21절에도 기쁨이 있을 것이라 했다. 그 기쁨으로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이는 주님의 자상함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깊은 마음이다. 주님을 아는 사람, 성령을 아는 사람은 이렇게 한다. 바울 사도도 그렇게 했다. 그는 고린도전서에서 죄를 범한 형제를 심하게 책망하며 쫓아내라고 했다. 그를 사단에게 내어주었다고 했다. 그것은 아마 육신의 질병을 말할 것이고 회개하지 않으면 죽으리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한 심각한 책망을 한 후 회개했을 때 고린도후서 2장에서 사도 바울은 심히 애통하고 슬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나는 잠시 동안만 그렇게 했다, 그가 지금까지 받은 고통은 충분하다. 이제 용서해 주자. 이제 도리어 위로해라. 기쁘게 해 주라’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당부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심을 알게 된다. 그분은 소리 없이 떠나신 분이 아니고 제자들에게 할 말을 다 해주시고 위로해주셨다. 이 때 보는 것은 육신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잠시 후 그들은 주님을 영적으로 보게 되는데, 이는 육신적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있다. 당시에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를 육신적으로 보았다. 그래서 예수가 누군지를 몰라보았다. 그저 유대인, 나사렛 사람, 갈릴리 사람, 목수의 아들,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오순절 사건은 아이를 출산하는 역사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다가 하늘로 오르신 사건이다. 부활은 승천을 포함하며, 그분의 승천은 성령을 부어주시는 근거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은 이 땅에 교회를 산출하는 일을 하셨다. 이것이 이 구절의, 여자가 해산하는 것에 비유한 말씀이다. 주님은 이 땅에 교회를 산출하셨을 때 기뻐하셨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신 후 교회를 태어나게 하신 후, 그 태어난 아이를 보고 모든 고통을 잊으시고 기뻐하신 사실을 생각해 보았는가?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주님은 오순절에 지구상에 교회가 일어난 후 주님은 교회를 바라보셨다. 그분이 해산한 아이다. 그분은 십자가 고통과 슬픔을 겪으셔서 아이를 낳으신 것이다. 주님에게 교회는 매우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그것은 그분이 친히 해산의 고통을 거쳐 낳았기 때문이다. 실상 사도들도 동일한 고난에 동참한다. 주 예수님은 구속의 고난은 홀로 감당하셨지만 교회를 위한 고난은 사도들의 몫으로 남겨두셨다(골 1:24). 지금 주님은 우리를 보고 우리도 주님을 본다. 교회 안에서 주님과 우리는 서로 보고 있다. 영으로 우리는 주님을 보고 주님도 성령으로 우리를 보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운행하시는 성령을 통해 그분을 볼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성령으로 보는 기쁨은 빼앗기지 않는 기쁨이다. 여러분은 이 기쁨을 이미 얻었으며 아무도 이 기쁨을 빼앗을 수 없다.

23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그날’은 성령이 오신 날이다. 지금은 제자들이 많이 묻지만, 그날에는 묻지 않을 것이다. 성령을 얻게 되면, 영적인 인식과 지혜가 충만해서 알게 되기 때문이다. 물어볼 필요가 없이 알게 된다. 그런데도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영적인 것은 무엇이든 믿음으로 생기는 것이다. 성령을 얻으면 알게 된다. 특히 하나님께 속한 것,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아버지를 아는 것, 영적인 지식들에 대해서 알게 된다. 어떤 말씀을 들을 때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은 그야말로 가치있는 기도를 올바르게 할 수 있도록 하는 크나큰 사건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신약의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님 뜻에 맞는 합당한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내 이름으로 구하라

성령께서 이 땅에 강림하신 일은 기도에 있어 큰 변혁의 사건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혔던 담을 허시고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시키고 승천하셔서 하나님께로 가셔서는 존귀한 이름을 얻으셨다. 주와 그리스도가 되시고 아버지 앞에서 그 이름이 아주 거룩하게 되셨으며 새로운 이름을 얻으시고 아버지 앞에 더욱더 기쁨이 되는 이름을 얻으신 것이다. 그 이름만 대면 아버지께서 기뻐하시고 만족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마치 통장을 하나 주면서 비밀번호를 알려줄 테니 은행에 가서 찾아서 쓰라는 말과 같다. 그러므로 ‘조금 있으면’이라는 이 기간은 제자들을 달라지게 하는 놀라운 기간이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지, 어떻게 그 존귀한 이름으로 기도하게 되었는지 그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기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큰 대가로 인한 것이다.

25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비사’란 헬라어로는 ‘파라볼레’로 불가사의한 말,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의미한다. 주님이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의 그 고통과 태어난 후의 기쁨을 이야기하시는 것이 비사이기에 제자들은 잘못 알아듣고 있다. 그런데 때가 이르면 비사로 하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고 하셨다. 아버지에 대한 것은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으로,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를 나타내셨다. 그런데 성령께서 오시면 비사로 말하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분명히 말해주신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성령을 받았기에, 아버지에 대해서 애매모호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그 이유를 27절에 밝혔다.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아버지께로 온 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아버지와 우리의 관계가 직접 연결된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버지께로 오셨다는 것을 믿고 그분을 사랑한다. 그러하기에 아버지는 우리의 기도를 다 들어주시며, 여러분은 아버지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알 수 있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성령충만되어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기도하고 응답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다만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1장 13절에서 약속의 성령을 받아서 인침을 받는 것은 듣고서 믿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국 26절의 아버지에 대하여 밝히 알 수 있게 되는 비결은 무엇이라는 말인가? 그것은 우리가 주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길이 그분을 알게 되는 비결이다. 또 그분을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으로 믿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믿음과 사랑에 의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신다고 말씀하신다.

기쁨에 대해서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믿을 뿐 아니라 사랑하면 기쁘다고 했다. 우리가 사람들을 사랑할 때 기쁜 것이다. 미워할 때는 기쁘지 않다. 사랑할 때 기쁘다. 더 나아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면 큰 기쁨을 얻는다. 너무나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사랑할 때 더 큰 기쁨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참을 때도 큰 기쁨을 얻는다. 참기 어려운 환경이 닥칠 때 참는 데까지 참다가 못 참고 만다. 그러면 기쁨이 사라진다. 하지만 끝까지 참을 때 더 큰 기쁨이 있다. 이럴 때 여러분의 인생은 완전히 변하게 된다. 여러분 모두 주님이 주신 축복을 누리고 기쁨을 충만히 얻는 삶을 살게 되며 확신 있는 기도를 드림으로 풍성히 응답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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