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 요한복음 강해 43] 요한복음 16장 28-33절
주님의 제자들에 대한 강화의 절정
28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16-18절에서 제자들은 주님이 조금 있다가 떠난다고 하시고 조금 있다가 다시 오신다고 하신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물었다고 했다. 그러자 주님은 20절에서 그에 대한 답을 해주셨다. 본문은 결론적으로 맨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신분과 근원을 말씀해주시는 구절이다. 어디서 오셨으며 아버지와는 어떤 관계인가를 말해준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론(Christology, Who is christ?)에 해당된다. 누가 그리스도인가? 오늘날 모든 이단은 바로 이 문제에서 발생한다. 보통 성경을 근본적으로 잘못 가르치는 것을 이단이라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제대로 가르친다 해도 어느 한 쪽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균형을 잃어버려 다른 쪽의 진리가 훼손되는데, 그 때 성도들의 신앙은 바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단이 생겨난다.
성경 진리도 마찬가지다. 구원의 진리는 중요하다. 그런데 이 구원도 지나치게 강조하면 진리의 균형을 벗어나게 된다. 모든 성경 구절을 구원에 맞춰 해석하기 때문이다. 성경 전체를 구원받은 것과 구원받지 못한 것으로 구분하면, 그리스도인의 성화와 성도들이 온전케 되며 성장하는 것에 대한 진리는 다 잊어버린다. 오로지 구원에만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 가지만 편식하듯 가르치는 것을 성도들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1.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이 말은 나사렛 예수는 하늘로부터 오셨다는 뜻이다. 그분의 선재성과 신성한 충만을 말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복음서이다. 즉 예수는 메시아로서 영원 전부터 존재하신 분이시다. 주님은 친히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니고데모도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없다고 증거했다. 그는 당시 유대인의 학자였기 때문에 예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보고 이 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2. 세상에 왔고
이는 그 분이 타락하고 죄 많은 세상에 성육신하여 오셨음을 말한다. 이것은 현재완료 시제이기 때문에 한 번 일어난 사건이 계속 지속되는 것을 알려준다. 그 분은 성육신하여 오신 사람이고 그 때부터 영원토록 사람이시라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시점에서 사람이 되어 오셨고, 세상에 오실 때부터 영원히, 또 지금도 하늘에 앉아계신다. 인자로서 하늘에 계신 것이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주님은 이 땅에 왜 오셨는가? 참된 제물이 되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3. 다시 세상을 떠나
짧지만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다. 승천하셔서 아버지께로 간다는 뜻이다. 그분은 이제 곧 십자가로 가시는데, 죽고 부활하신 후에는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내가’ 세상을 떠난다(I am leaving the world)고 말씀하신다. 내가 왔고 내가 간다는 뜻이다. 주님은 자원해서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자원해서 십자가로 가시고 자원해서 이 세상을 떠나시며 그 분 스스로 모든 것을 하신다. 그 분은 아버지와 하나이시면서도 ‘스스로’의 의지를 포기하신 것이 아니다.
4. 아버지께로 가노라
마지막으로 그 분은 목적지를 말씀하신다. 아버지께로부터 오셨다가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것이다. 첫째, 그 분은 구속의 모든 역사를 마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려고 가시는 것이다. 앉으셨다는 말은 이제 일을 끝냈다는 것이다. 둘째는 하늘 아버지께로 가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은사들을 나누어 주러 가시는 것이다. 그분이 가셨기에 우리는 성령을 얻은 것이다. 주님은 이 땅에 오시는 것에도, 가시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 이는 다 우리를 위한 것이다.
주님은 하늘로 올라가셨다. 올라가셔야 우리를 대언하는 기도도 해주실 수 있고 중보기도도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여전히 당신의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신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왜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가? 왜 온전히 구원받지 못하는 지경에 머무는가? 그 이유 중 하나는 다만 예수님이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죽으셨다는 십자가의 공로만 알지, 주님이 승천하셔서 하늘에서 무엇을 하시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은 하늘에서도 여전히 간구하시며 우리에게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역사하셔서 완전히 구원받도록 도와주시는데, 그에 대한 믿음이 없기에 온전한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사도 하지 아니하시니 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서 나오심을 우리가 믿삽나이다 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제자들의 참된 상태
그런데 제자들은 어땠는가? 이 말씀을 다 듣고 나서 이제 다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2절을 보면 제자들은 아직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도들도 때로는 당시의 제자들처럼 생각할 때가 있다. 어느 정도 알고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면 다 안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주님은 사람의 연약함을 다 감안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당시의 제자들과 똑같은 상황이다. 그런데 나중에 어려운 상황이 닥치자 그들은 겁을 많이 내었다. 그래서 사람이 순간적으로 감동해서 하는 말은 다 믿을 수가 없다. 주님께서도 그것을 다 아시기에 “이제 너희들이 믿는다고 말하느냐 조금 있으면 너희들이 나를 버리고 다 흩어질 것이다”라고 말씀해주시는 것이다.
주님의 구속 역사는 아무도 도와준 사람이 없었다. 다 도망갔다. 주님은 홀로 십자가에 고민하시고 혼자 당하신 것이다. 그 분은 유일한 구주이시다. 당시 제자들은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오히려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릴 것이라고 확신에 차 주장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의 연약함을 아시고 버리지 않으시며 돌보셨다. 주님은 제자들을 어떻게 목양하고 세울지를 다 아신 것이다. 주님은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있다고 하셨다.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평안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항상 순탄하고 순조로운 삶은 사는 것은 아니다. 환난을 당할 수 있다고 했다. 주님도 제자들에게 환난을 면하게 해준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환난은 당할 수 있겠지만 나는 너희에게 평안을 누리게 하겠다고 하셨다. 환난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게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평안이 있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움을 발견한다. 세상을 이긴 것은 주님이신데 무슨 연고로 우리가 담대할 수 있는가? 주님은 주님이시고 우리는 우리가 아닌가? 그러나 우리가 깨닫는 것은 그 분이 우리고 우리가 주님이라는 것이다. 그 분은 우리의 대표이시다. 그 분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인 것이다. 그 분은 사람의 대표이시고 우리를 포함하신 분으로서 사탄을 이기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어떤 시련이나 갈등이나 좌절이나 낙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잘못 가르치는 것이다. 욥도 매우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었던가? 절대로 사고도 안 나고 병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다. 병이 들고 고난도 당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평강을 그들 마음속에 부여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주님은 오히려 그런 좌절과 갈등과 슬픔 속에서 그것을 뛰어넘고 이길 수 있는 은혜와 평강을 부어주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여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면서 자신의 사역이 공허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남겨 두신 것이다. 그러므로 어려운 환경이 임했을 때 기묘하게도 우리 마음 속에 평화가 있다. 이런 상황은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평안의 조건
1. 그 분 안에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는 그리스도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말이다. 주님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만 이 하나님의 평화가 있는 것이다. 또 주님과 함께하며 깊은 교제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언제나 평안이 있다.
2. 주님의 승리를 의지함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은 세상을 이기셨다고 했다.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승리하신 것이다.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는 죽을 것이고 패배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주님은 개가를 부르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승리한 사람들이다. 주님은 다 이기셨고, 우리는 이미 그 분 안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더 이상 대적은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대적의 머리를 깨고 이기셨기 때문이다. 대적은 우리를 패배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담대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김이 우리의 이김이다. 그 분은 우리의 머리이시기에 그렇다.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