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4장 23절
23.But the man who has doubts is condemned if he eats, because his eating is not from faith; and everything that does not come from faith is sin.
·But the man who has doubts : 의심하고~~자는
·is condemned : 정죄되었나니
·if he eats : 먹는
·, because his eating is not from faith; :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and everything that does not come from faith :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is sin. : 죄니라
▶중요한 단어, 숙어
doubt 의심,의심하다. condemn 비난하다,정죄하다,선고하다,운명지우다.
우리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옳다는 확신이 서지 않은 채 “의심하는 자”의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다른 형제를 위한답시고 우리의 양심에 반하여 어떤 음식을 먹거나 어떤 일을 행한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우리 스스로를 “정죄”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믿음으로” 먹거나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짓밟는 행위인즉, 이것은 “믿음으로.... 아니하였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요, 따라서 우리 스스로를 정죄한 것일 수 밖에 없다.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이 구절은 말씀한다. 믿음의 양심에 비추어 조금이라도 의심스럽다면 손대지 않는 것이 좋다.
무엇이든지 우리가 믿는 바대로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할진대 다른 형제도 그러하리라는 것을 망각하지 말라. 우리가 우리의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면서 다른 형제가 그의 믿음에 따라 행하는 것을 어찌 비난할 수 있겠는가? 창세기 27장에 보면, 늙어서 눈이 침침하여 자기 아들들도 누가 누구인지 눈으로 잘 식별할 수 없었던 이삭은 큰 아들 에서에게 사냥한 고기로 자기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죽기전에 축복해 주겠노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엿들은 야곱은 아버지의 축복이 탐나서 에서가 사냥 나간 사이에 자기가 염소 새끼를 잡아 별미를 만들어 야곱에게 갖다 준다. 야곱은 아무래도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창 27:18)하고 묻은다. 야곱이 “에서입니다.”하고 아비를 속인다. 그러자 야곱은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그처럼 빨리 잡았더냐?” (창 27:20)하고 두 번째로 의심을 표명한다. 야곱은 “아버지의 하나님께서 내게 사냥감을 빨리 보내주셨답니다.” 하고 또 거짓말을 한다. 이삭은 그래도 의심스러워 “내 아들아. 내게 좀 가까이 오너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를 만져 보리라” (창 27:21)고 말하면서 극도의 의심을 나타낸다. 그가 야곱의 손을 만지면서도 여전히 의심을 늦추지 않는다.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창 27:22). 그리고는 다시한번 더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냐?” (창 27:24)하고 묻는다. 그러고도 이삭은 속는다. 그리고 에서에게 해줄 축복을 야곱에게 해주고 만다. 이것은 물론 하나님의 섭리였지만, 이삭의 인간적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었다. 이삭은 “의심하는 자”의 입장이었으면서도 믿음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수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여기서 “정죄도었다” (is damned)는 말은 15절의 “망치다” (destroy)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지옥에 떨어지는 영원한 정죄가 아니라 현세에서 어려움에 봉착하는 일시적인 정죄를 의미한다. 15절에서의 “망치다”라는 말은 그리스도인다운 사람을 파괴시킨다는 뜻이고, 여기 23절에서의 “정죄”눈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파괴됨으로써 현실적으로 환난에 직면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의 저주를 먹고 마시는 것” (고전 11:29)이라는 말씀에서의 “저주” (damnation)와 맥을 같이 하는 말이다.
이 “저주”로 인하여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현실적인 환난은 “이 때문에 너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약하고 병들었으며 상당수가 잠들었느니라” (고전 11:30)는 말씀에서 보듯이 질병과 죽음까도 포함된다. 그러나 지옥 가는 것은 아니다. 디모데전서 4:16에서 “네 자신과 교리에 주의하고 이 일들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써 네 자신과 네 말을 듣는 사람들을 구원하라” 는 바울의 언급에서 “구원”이라는 말은 지옥으로부터 구원되어 하늘 나라에 간다는 의미에서의 구원이 아니라, 이 현세에서 당하는 “저주”로부터의 구원을 말한다.
“믿음으로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이것은 하나의 규칙이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목사가 놀음판에 앉아 있는 형제를 발견하고 그에게 말한다. “형제님은 포커 놀음을 하는 것이 죄짓는 일인 줄을 모르오?” 그러자 그 사람이 대뜸 이렇게 대답한다. “알고 말고요, 목사님! 그래서 나는 지금 그 죄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걸요.”
그 사람은 포커 판에서 계속 돈을 잃고 있는 중이다. 나쁜 짓을 하고 있으면서 그게 나쁜 짓이란 걸 알고 있고 그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으니 괜찮지 않느냐고 억지를 부르는 것이었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죄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아주 간단하다. 당신의 머리로 생각해 볼 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복을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할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이 기준이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인가? 그래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 일을 하도록 허용하고 계신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정녕 하나님의 말씀이 인정하고 있는 일인가? 그렇다면 그 일을 하라. 당신은 옳은 궤도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뭐라고 아우성을 치든 말든 상관하지 말라.
그러나 그 일을 복되게 하시고 은총을 내려 달라고 당신히 하나님께 요청할 수 없다면, 그 일은 무엇인가 잘못된 일이다. 이러할 때 당신은 그 일에서 손을 떼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이처럼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하다.
▶해석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