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 요한복음 강해 47] 17장 14-19절 강해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말씀을 받은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과 당시 제자들의 차이가 하나 있다면 아버지의 말씀을 받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말씀을 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말씀을 받은 여러분은 그들과 다르다. 하나님 말씀을 받은 영혼들인 여러분들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저희들의 마음 속에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며, 또 이 세상에서 악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 주님의 간절한 기도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은 악으로 충만하다. 악으로 충만한 이 세상에서 저들을 아예 데려가 버리면 좋을텐데, 주님은 그것이 아니라 저들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악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시라고 기도하셨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속한 분이 아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우리 주 예수님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있다. 온전히 하늘에 속한 거룩하신 분으로서 이 땅에 존재하셨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분은 세상에 계셨다. 주님은 제자들도 세상에 두시고,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라 구하셨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세상의 악에 빠지지 않고 이렇게 일주일을 지켰다면, 여러분의 능력이라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이는 주님의 기도 때문이며, 아버지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지킨 것이다. 그 생명과 능력이 여러분을 지키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도들에 대한 갈망은 세상과의 분별이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나온 무리이다.
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분별됨과 거룩함
악에 빠지지 않는 것은 소극적인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저희를 거룩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린다. 즉 13절에서 기쁨을 말한 뒤에 나아가 거룩으로 전진하고 있다. 거룩은 죄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크리소스톰이라는 성경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주님을 위해 나는 감옥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오직 한 가지 죄를 두려워한다.” 이는 성도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이다. 성도로서 가장 괴로운 것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것도 아니고 가난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병이 드는 것도 아니다. 죄를 짓는 것이다. 죄를 지으면 악에 빠지고, 그러면 기쁨이 사라지며 거룩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성도들과 하나를 잃어버린다. 거룩하게 되어야, 세상에서 분별될 수 있어야, 성도들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의 경계선은 세상’이라는 것이다. 세상과 분리되지 않아 교회에 분열이 생긴다.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지 않기 때문에 분열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를 철저하게 심판하지 않고 십자가로 처리하지 않기 때문에 분열이 생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자주 말씀하셨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거룩하지 않으면 성도로서 소용이 없다. ‘성도’라는 자체가 거룩한 무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거룩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가져야 하는데, 세상을 떠나야 거룩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질이 거룩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거룩은 음란이나 세속에 물들지 않음을 말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거룩은 ‘분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로 분별되는 것이다. 원래 시장에 있는 금은 거룩하지 않다. 그런데 그것이 성전에 놓이면 거룩해진다. 이는 주님이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을 위해 분별되었을 때 거룩한 것이다. 다만 깨끗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위해서 분별되었는지, 온전히 하나님께 쓰이도록 드렸는지가 거룩함의 척도라는 말이다.
19절을 보라. 주님이 자신을 거룩케 한다고 하신다. 주님은 원래 성령으로 잉태된 분이고 거룩한 분 아닌가? 그러므로 이 뜻은 ‘저희를 위해 내가 십자가로 가서 제물이 되어 죽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드리겠다는 뜻이다. 이것이 거룩케 한다는 뜻이다. 오늘 여러분이 모든 세상적인 것에서, 자신을 위한 삶에서 자신을 분별해 ‘하나님 오늘부터는 내가 아버지 뜻을 위해서만 살겠습니다. 나는 주님 뜻만 위해 이 땅에 존재하겠습니다. 주님 뜻대로 나를 사용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해보라. 그런 마음을 가져보라. 그렇게 헌신해보라. 그때 당신은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거룩함을 드러냄
중세에 ‘기둥 성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에는 거룩하게 살려는 많은 사람들이 수도원에 들어갔다. 거룩해지고 싶은 이들끼리 따로 생활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상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곳에 있을 때는 거룩한 것 같다. 항상 기도하고 항상 말씀 읽고 항상 찬송 부르니 거룩한 것 같은데, 그런 생활을 10년쯤 한 후 내려와 사람들을 만나 보면, 그것은 시험을 거치지 않은 거룩함,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의 무죄 상태(innocent) 같음을 알 수 있다. 주 예수님의 기도는 그런 뜻이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면서 악에 빠지지 않고, 거기서 거룩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거룩은 시험된 거룩이고 능력 있는 거룩이다. 생명의 능력이 그들 가운데 있어서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성도들끼리만 모여 있으면 별로 시험에 들지 않는다(물론 우리는 성도들과 많이 교제해야 한다). 또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항상 만나는 한두 사람과만 만나면서 자신이 거룩하다고 확신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것은 시험이 되지 않은 거룩인 것이다.
소금이란 무엇인가? 야채나 여러 가지 재료 속에 집어넣으면 녹아 없어져 버린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소금의 기능은 살아 있다. 그래서 음식이 부패하지 않는다. 이러한 거룩함이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이 세상에 성도들을 두심으로 세상의 부패를 막고 이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소금이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야, 우리 참 짜다’ 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다. ‘이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불을 켜서 통 속에 넣어두고 ‘우리끼리 얼마나 밝은가!’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아니다(마 5:14,16). 주님은 이렇듯 제자들이 세상 속에서 악에 빠지지 않고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사람들이 그들의 연합, 하나됨, 서로 사랑함을 보고 ‘아, 하나님은 살아 계시구나, 하나님을 믿어야겠구나’ 하는 느낌을 갖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진리로 거룩하게 됨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거룩하게 되는가? 우리 주님은 ‘진리로 거룩케 하옵소서’라고 하셨다. 진리가 있어야 한다. 진리의 종국이란 지혜가 아니다. ‘나는 많이 배워 이렇게 많이 안다’ 자랑하라고 진리를 가르치신 것이 아니다. 주님은 진리의 말씀을 받은 성도들은 그 종국이 거룩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삶이 성결케 된다는 것이다. 진리의 종국이란 우리가 배운 뒤에 우리의 삶이 진정 거룩케 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온유함과 겸손함과 그리스도의 미덕들을 나타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며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알 수 있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 있게 하고 복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지, 지식이 많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은 잘못된 진리이다.
기묘한 것은 여러분이 참으로 성결하게 되었다면 주님은 다시 여러분들을 세상으로 보내신다는 것이다. 18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거룩하게 된 성도들을 세상에 보낸다고 하신다. ‘주님, 제 주변에는 왜 이렇게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서 나를 괴롭힙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보내신 이유이다. 거기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은혜와 거룩과 생명과 그 아름다운 것을 나타내라고 보내신 것이다. 거룩한 생명은 여러분들을 통해서 나타날 수 있게 되어 있다.
거짓 신앙으로는 거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행동으로 나타나는 거룩은 여러분 마음 속 깊이 있는 참된 신앙을 세웠을 때에서야 오는 것이다. 선한 행위, 거룩한 행위는 참된 신앙의 결과이다. 진리를 참되게 믿었을 때 그 모든 진리는 여러분의 삶 속에서 거룩함을 낳게 되어 있다. 반면 잘못된 교리는 간접적·직접적으로 여러분을 죄로 인도한다. 편협하게 만들고 인생의 발걸음을 바르지 못하게 만든다. 참된 진리는 자연스러움 속에서 거룩을 산출하는 것이다.
지금은 마지막 시대이다. 주님은 거룩한 교회를 얻기 원하신다.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 우리가 가야할 곳은 성경이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러분이 말씀 자체를 사랑하고 말씀으로부터 영양분을 얻고 가르침을 받고 감동을 받고 새롭게 함을 받고 거룩하게 되기를 원한다. 성경의 증거에서 떠나지 말고 성경을 사랑하되 끝까지 이 경주에서 낙오하지 않기 바란다. 특정한 사람들만 거룩하게 된다고 오해하지 말라. 진리의 말씀을 부지런히 배울 때 여러분의 삶 가운데 거룩함이 이루어진다.
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에 의해 아들이 이 세상에 보내심 받은 것처럼, 아들은 제자들을 보내신다. 주님은 원래 거룩하시다. 하늘에 계실 때부터, 또 이 땅에 태어나실 때부터 거룩하시다. 그런데 여기서는 주님이 ‘저희들을 위해 내가 나를 거룩케 한다’고 하셨으니, 거룩이라는 말에는 한 가지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무언가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틀림없이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자신을 바쳐 순종하시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거룩하게 되려면
1. 주님께 배워야 함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거룩케 하셨듯 우리도 거룩케 해야 한다. 우리가 온전히 자신을 분별하여 주님께 드리지 않으면 거룩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체험적으로 여러분들이 진정 주님의 거룩하게 함을 입으려면 첫째는 먼저 배워야 한다. 많이 배웠을 때, 은혜를 많이 얻었을 때, 비로소 보내심을 받는다. 그 때부터 여러분은 거룩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우리 주님도 거룩한 분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거룩함이 증명되셔야 했다. 그럴 때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가 진실로 거룩한 분이심을 알게 되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주 예수님은 제자들을 삼 년 이상 교육하셨다. 그들은 많이 배웠다. 발 씻어주는 것도 배우고 말씀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 주님은 떠나려고 하신다. 제자들의 거룩함이 증명되어야 할 단계이다. 나는 여러분도 이런 단계에 도달하기를 원한다. 어느 날 주님께서 여러분을 보내실 것이다. 주님이 당신을 거룩하게 하셨듯이 말이다. 주님은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얼마나 죄인을 사랑하며 절대적으로 구별된 사람인가를 증명하셨다. 이것이 바로 거룩이다.
2. 세상 속에서 입증됨
거룩은 세상에 있는 속된 것이나 평범한 것과 구별되는 어떤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함을 나타내는 길은 세상 속에 있을 때라야 입증될 수 있다. 오해가 없기 바란다. 스스로 거룩한 것이 다 거짓이 아니라, 참되게 증명되는 곳은 바로 세상이라는 것이다. 거룩이란 세상과 절대로 다른 방식과 속성, 본질의 어떠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이 배경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성도의 거룩함이 세상과 대비되어 나타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문제를 위해서 기도하신 것이다.
여러분도 주님의 음성과 명령을 듣고 가야 한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것이 다 세상이다. 그곳에서 결국 우리 주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미움을 받고 핍박을 당해야 한다. 그러나 주님이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죄를 위해 자신을 버리고 피를 흘리셨듯 그분과 같은 생명을 가진 여러분 역시 세상 속에 그 거룩함을 나타내게 되어 있다. 여러분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받은 진리이다. 진리가 여러분 속에서 역사해 여러분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