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틴을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은 유대 광야와 네게브 사막을 지나는 동안 한 가지 의문을 갖는다. 막연하게 상상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약속의 땅은 매우 비옥할 것으로 생각했던 환상이, 황량하고 메마른 지역들을 보면서 점차 흐려지기 때문이다. 이 표현,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다른 말로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란 말로 이해해도 되는가?
이스라엘에서 성경의 역사·지리적인 배경을 공부하던 필자도 초기에는 그 의미가 사뭇 궁금했었다. 그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표현에 대한 주석학자들의 다양한 해석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독일학자인 벤징거(Benzinger)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리스의 신화적인 배경에서 신들의 음식인 젖과 꿀의 땅”으로 해석하였다. 벤징거는 가나안을 신들의 땅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레쓰만(Greβmann)은 이 표현은 “가나안을 낙원으로 이해한 상태에서 바벨론의 신화적인 요소가 반영된 것”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그레쓰만은 요엘 3장 18절과 아모스 9장 13절에 근거하여 이것은 선지자들의 종말론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하였다.
후트만(Houtman)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욥기 20장 17절에 근거하여 “시적 표현에서 비롯된 과장법으로, 젖과 꿀이란 가나안의 대표적인 농산물”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이 표현은 광야에서 40년을 생활했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시각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성경학자요 랍비인 모쉐 데이빗 카수토(Moshe David Cassuto)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광야에 살았던 유목민들이 가나안 땅을 가리켜 처음 사용했던 표현으로, 그 의미는 목축을 통해서는 젖을, 그리고 농업을 통한 각종 나무로부터 벌의 꿀처럼 많은 실과를 거둘 수 있는 배경에서 이해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는 확대되어 각종 실과를 풍성하게 소출하는 가나안 땅을 포괄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저명한 유대 학자 나훔 마타티아스 사르나(Nahum Mattathias Sarna)는 젖과 꿀이 흐른다는 표현을 “가나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조심스럽게 해소하기 위해 사용된 표현”으로 이해하였다. 이 표현은 히브리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내가 …(중략)…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중략)… 이르려 하노라”(출 3:8). 당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생활했던 나일강 삼각주 지역은 지역은, 흉년을 피한 이주민들이 정착하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성경의 역사·지리학자인 데니스 발리(Denis Baly)는 이 표현을 광야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나안 땅이 꼭 비옥하다는 의미가 아닌, 광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괜찮은 땅”으로 이해하였다. 민수기 16장 13-14절에 기록되기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 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과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이렇듯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에 대해 학자들마다 다양한 주장들을 제기했다. 비록 일부이지만 이 표현에 대한 대표적인 학자들의 의견들을 거의 망라하였다. 여기에 덧붙여 성경을 탐독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가나안 땅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이 사용되었던 후기 가나안 시대의 역사·지리적인 배경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1)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가나안 땅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곧 상호 국제 무역을 주도할 수 있는 자연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이런 지리적인 이점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정착민들은 무역이 아닌 목축과 농사에 종사하였다. 국제 무역은 오히려 페니키아에서 활기를 띠었다. 성경에 기록된 가나안의 대표적인 산물들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마음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시 104:15)이다. 열방들이 혹시 주의 백성들에게 조롱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할 때”에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시면서 이 땅으로부터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욜 2:17-19).
2) 후기 가나안 시대(Late Bronze Age)에 가나안 땅의 정착 인구는 이전에 비해 현저히 감소되었다. 네게브는 크게 황폐되었다. 중기 가나안 시대(Middle Bronze Age)에 번성했던 주요 성읍들은 대부분 파괴되고 황폐되었다. 특히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 곳은 브엘세바 인근, 중앙 산지, 그리고 요단 계곡이 대표적이다. 실로, 벧술, 여리고, 헤브론은 중기 가나안 시대에 견고한 성읍이었지만, 후기 가나안 시대에 이르러 작은 촌락으로 전락되었다. 텔 아줄(Tell el-Ajjul)과 텔 나길라(Tel Nagila)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농사를 위하여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정착했던 사마리아 중앙 산지에서는 중기 가나안 시대의 수많은 작은 도성들이 후기 가나안 시대에 들어서 사라졌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지역의 경제 구조가 농경에서 유목 생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후기 가나안 시대의 말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던 시대이다.
3) 비록 출애굽과 가나안 정착 시대보다는 앞선 때이지만, 가나안 땅에 대해 잘 표현된 고대 이집트의 시누헤 문서가 있다. 주전 20세기 초반에 속한 시누헤 문서에 나타난 가나안 땅에 대한 내용이다:
“그곳은 야(Yaa)라 부르는 땅이다. 그 곳에는 무화과와 포도가 가득하였다. 그곳에는 물보다 포도주가 흔하였다. 꿀은 넘치고 올리브는 풍부하였다. 각종 나무에는 온갖 종류의 실과들이 열렸다. 보리도 있었다. 양과 소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중략)… 그는 나를 그 땅의 가장 뛰어난 지파의 지도자로 삼았다. 매일의 양식으로 빵이 준비되었으며 포도주는 일용한 음료로 마련되었다. 나를 위하여 사막의 야생 고기 대신 (집에서 기른) 고기가 요리되었고 구워진 닭 요리가 내 식탁에 마련되었다. …(중략)… 나를 위한 온갖 종류의 음식이 마련되었고 우유로 만든 각종 요리들이 준비되었다”(ANET 18-22).
주전 20세기 초반의 시누헤 문헌에 야(Yaa)는 상당히 발달된 농경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야(Yaa)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는 올리브, 각종 나무에서 생산되는 실과, 탐스럽게 열린 포도송이들이 언급되었는데, 이것들은 가나안의 대표적인 농산물이다. 여기의 농산물들은 보통 늦여름에서 초가을에 수확하고, 밀, 보리는 늦봄에서 시작하여 여름 내내 추수하는 곡식이다. 학자들은 야(Yaa)의 위치를 갈릴리 호수의 동쪽, 골란 고원의 기름진 평야로 이해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해서 한 마디로 분명하게 정의하기는 어려워도 두루뭉수리하게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이 표현이 성경에 처음 기록된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시기 위해 부르신 때이다: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출 3:17).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약속의 땅(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표현 방법이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 땅은 일부 기름진 곳에서는 곡식을, 일부 척박한 곳에서는 가축을 돌봄으로 젖을 구할 수 있는 땅이다. 비옥한 땅과 척박한 땅이 첨예하게 공존하는 이 땅에, 하나님의 시선은 늘 있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 11:12).
이주섭 목사
현)두루Tentmaker(www.eduru.co.kr/두루투어/두루에듀/두루문화원) 고문
현)조지아 크리스챤 대학교 (Georgia Christain University) 역사 지리학과 교수
현)성서지리연구원 (Institute of the Biblical Geography) 원장
전)예루살렘 대학 역사학과에서 고대 성읍, 히브리 대학 고고학과에서 고대 도로를 수학
전)4X4 지프를 이용하여 방문 가능한 모든 성경적인 유적들을 탐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