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칼럼]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선교 방식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이 글은 김명혁 목사(본지 편집고문,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님께서 4월 18일 광림세미나하우스에서 열린 빌리온선교회 세계선교대회 개회예배 중 전한 설교문입니다. 본지는 김명혁 목사님의 동의를 얻어 이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마 5:11, 12, 16, 행 10:38)

저는 중국 선교를 가장 잘 하고 있는 이가 양영학 선교사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양 선교사가 시작하고 계속해서 지도하고 있는 빌리온선교회에 속한 선교사님들이 함께 모인 ‘빌리온선교회 세계선교대회’에 와서 개회예배 설교를 하게 되어서 기쁘고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설교 제목은 “급변하는 선교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선교 방식”입니다. 제가 이런 어려운 제목을 가지고 설교를 잘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이곳저곳 선교지를 계속해서 방문하기는 하지만 “급변하는 선교 환경”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습니다. 상식적인 수준의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제가 지난 4월 1일부터 4일까지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모인 “재중 한인 선교사 리트릿 및 전략회의 사경회”에 가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중국을 떠나 지금 인근 나라들에 머물면서 선교 사역을 준비하고 있는 60여명의 한인 선교사들과 교제하고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전했는데, 선교사들이 많이 좋아했고 저도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3일 동안 저들과 함께 지내면서 세 번 말씀을 전했는데 1)인생은 나그네라는 “인생 칠도”, 2)예수님께서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세상에 오셔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셨다는 “선교 칠도”, 3)십자가 복음의 특성은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이라는 “복음 삼도”, 그리고 4)저 자신의 삶에 대한 재미 있는 간증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한평생 현실적으로 분석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근심 걱정 두려움 계획 없이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막가파”로 “즐겁게” 살아오게 되었다는 간증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막가파”라는 말이 그곳에서 오고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11살 때 신앙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부모님과 동생들을 북에 두고 캄캄한 밤에 혼자서 38선을 넘어 남한에 오게 된 일을 시작으로, 단돈 100불을 가지고 미국에 가서 12년 동안 유학생활을 했고, 귀국해서 주일성수를 방해하는 군사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다가 중앙정보부에 붙잡혀 가서 협박과 심문을 당했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심문하는 사람들을 책망하고 충고하고 권면했다는 이야기와, 그리고 꽉 막힌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캄캄한 밤에 혼자 넘어가서 학교 준공식에 참석하고 돌아왔다는, “막가파”로 살아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국 저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간 아브라함을 좋아하게 되었고, 막대기로 홍해를 가른 모세를 좋아하게 되었고,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돌아서 무너뜨린 여호수아를 좋아하게 되었고, 사자 굴과 풀무불 가운데로 두려움 없이 들어간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좋아하게 되었으며, “사망아 네까짓 것이 무엇이냐”라고 호령했던 사도 바울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리고 선교는 이 세상의 모든 종류의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사랑하려는 “십자가의 영성”을 지녀야 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십자가의 영성”을, 스데반 집사가 지녔었고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이 지녔었고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과 성 프란시스가 지녔었고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선교사와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가 지녔었고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이 지녔었다는 말도 했습니다. 결국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야말로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막가파”의 기질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모두에게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지니고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선교사들이 매우 좋아했습니다. 저도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떤 선교사는 나에게 “언제부터 그런 도가 텄습니까?”라는 질문도 했습니다. 저는 그저 살아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배우게 되는 것 뿐이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급변하는 선교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선교 방식”이라는 제목으로 상식적인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두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선교는 평탄한 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변하고 있습니다. 나쁜 방향으로 변할 수도 있고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쁜 방향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쁜 방향으로 변하는 것이 오히려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방향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방향으로 변하는 것이 오히려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역사가들이 지적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지난 이천여 년 동안 기독교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지녔던 때는 가장 심한 박해를 받은 처음 300여 년 동안이었다고 말입니다. 처음 300여 년 동안 초대교회에는 대박해가 10번 있었고,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어려운 때 기독교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지녔었습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에 의해서 36년 동안 극심한 박해를 받던 때와 6.25 전쟁으로 고난을 당하던 때, 한국교회는 회개와 기도에 전력하는 겸손하고 따뜻한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지녔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지만 그 피가 교회를 순수하고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스데반 집사와 빌립 집사를 비롯한 예루살렘 교회는 핍박과 박해를 많이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핍박과 박해를 통해 핍박자 사울이 사도 중의 사도가 되었고, 세계선교의 기지가 된 안디옥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쌔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쌔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행 8:1-6).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 11:19-21). 핍박과 박해가 교회에 손해를 끼친 것이 아니라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의 길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고난과 핍박과 투옥과 매맞음의 연속이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선교의 길은 본래부터 형통한 길도 화려한 길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내어 보내시면서 고난과 핍박을 각오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1-12).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16, 17, 19, 20, 28, 39). 선교는 “고난”의 길이고 “핍박”의 길입니다. 그런데 그 길은 “영광”의 길입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기뻐하시면서 축복하시는 길입니다. 
 
두 번째 말씀을 드립니다. 급변하는, 또는 적대적인 선교 환경에 어떻게 대응하여야 할지에 대한 상식적인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선교의 길은 적대적인 세력에 대해서 진리의 칼을 휘두르면서 진리를 선포하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검과 몽치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는 자들을 향해서 칼을 뽑으려고 하는 베드로를 향해서, 선교의 모델이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마 26:52-54). 그리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악독한 로마 군인들을 바라보시면서 분노와 증오와 저주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시지 않고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시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그런 모습을 바라본 로마 군인들은 무척 놀랐을 것입니다. 그 상황을 바라보던 로마 군인들의 대장인 백부장도 무척 놀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마지막에 하늘을 향해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백부장은 다음과 같이 회개의 고백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눅 23:47). 악독한 죄인들인 로마 군인들과 백부장에게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가 임한 것이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악독한 로마 군인들의 죄를 용서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선교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모습을 지니시고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심으로 하나님의 뜻, 곧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선교가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평생 죄만 짓다가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가던 악독한 강도 한 사람에게도 구원의 은혜가 임하게 하셨습니다. 선교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모습을 지니시고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심으로 악독한 강도에게도 구원의 은혜가 임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던 강도가 고백한 것은 다음과 같은 말 한 마디 뿐이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 23:42). 그런데 악독한 강도에게 놀라운 구원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어떻게 이런 모순되는 듯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모습을 지니시고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셨기 때문입니다.

선교는 모두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품으려고 하는 “착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안디옥교회의 선교는 “착한” 사람 바나바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 11:24). 욥바의 선교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던 “착한” 사람, 다비다 즉 도르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행 9:36, 42). 가이사랴의 선교는 구제를 많이 하던 “착한” 사람 고넬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 10:1, 2).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행 10:44, 47, 48). 사도 바울의 후계자가 된 디모데는 그 지역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고, 자기의 일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일을 더 돌아본, 이타적인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뒤를 이어서 선교 사역을 충성스럽게 수행했습니다. 빌립보교회의 설립자 루디아도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일 사랑하고 제일 보고 싶어하고 제일 귀하게 여기던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빌립보교회를 위해서라면 자기의 몸을 제물로 드려도, 즉 자기가 죽어도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습니까? “착한” 사람 루디아와 “착한” 성도들이 빌립보교회에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루디아는 사도 바울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집을 열고 지갑을 열어 바울의 일행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결국 루디아의 집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안디옥교회의 뒤를 이어 빌립보교회는 선교의 기지가 되었습니다. 

저는 진리 선포보다는 “사랑” 선포와 “착함” 실천이 선교에 더 필요하고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의 근원이시고 모델이신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는 본래부터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충만하신 “착한”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착하신” 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신 10:18, 19). “너희는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7). 하나님께서는 악독이 가득한 니느웨 사람들과 동물들까지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신, 참 “착하신” 분이셨습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불쌍히 여기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 4:11). 결국 성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선교의 모델이 되시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고 했습니다(요 3:16).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인들과 모든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착하신” 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행 10:38).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 9:36). 그리고 제자들을 향해서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그리고 긍휼을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 9:13).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달아 못 박는 로마 군인들까지 불쌍히 여기시고 저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참 “착하신” 분이셨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이지만 주님과 주님의 제자들이 나타내 보이신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몸에 지니고, 어려움에 처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착함”과 “도움”의 손길을 펴려고 애를 쓰곤 했는데, 아름다운 선교의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중국 연변 지역에 살고 있는 불우한 조선족 어린이들 170여 명(대부분이 고아들)에게 지난 13년 동안 매달 한 명에게 5만원씩 보내고, 7명에게는 대학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지급하며 “사랑”과 “착함”과 “도움”의 손길을 펴고 있는데, 전도한 일이 없고 예수 믿으라고 말한 일도 없는데 상당히 많은 어린이들과 저들을 지도하는 지역 회장들 대부분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놀라움과 감사와 기쁨을 지니고 있습니다. 발글라데시에 파송한 노재인 선교사를 통해서 지난 24년 동안 그곳의 불우한 어린이들 1,300여명을 14개의 학교에서 매일 무료로 학교 교육을 시키고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게 하고 있는데, 40여명의 교사들과 어린이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고 지역 주민들의 마음이 기독교에 대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놀라움과 감사와 기쁨을 지니고 있습니다. “악의 축”이라고 불리는 아프가니스탄을 두 번(2003년 7월과 2005년 12월) 방문해서 저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과 “착함”과 “도움”의 손길을 편 일이 있습니다. 2005년 12월에는 꽉 막힌 타직 국경과 아프간 국경을 캄캄한 밤에 그냥 “뚫고 넘어가서” 아프간 무라취흐에 세워준 학교 준공식에 참석했는데, 그곳에 모인 수백 명의 무슬림 지도자들과 학생들이 나와서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또 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나와서 한국말로 이런 가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저는 참 놀랐습니다. 보통 때 “예수” “할렐루야”라고 하면 테러를 당하는 곳인데 어떻게? 저는 순수한 “사랑”과 “착함”과 “도움”의 손길은 정치나 종교이념을 초월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눈으로 몸으로 확인했습니다. 오래 전인 1988년 여름 북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를 방문해서 가뭄으로 고통을 당하는 그곳 주민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폈을 때도, 무척 고마워하며 무슬림 지도자가 “자기는 주민들을 도울 수 없는데 여러 나라의 교회 지도자들이 찾아와서 도움의 손길을 펴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면서, 오랫동안 간직해오던 이슬람 유물을 월드 리릴흐 총재에게 선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2010년 8월 밀가루 300톤을 가지고 북한 개성에 가서 그곳에 하역하며 민화협 대표들에게 전달한 때도, 고마워하는 반응을 보았습니다.

저는 급변하는, 또는 적대적인 선교 환경에 대응하는 방식은 1)적대적인 세력에 대해서 진리의 칼을 휘두르면서 진리를 선포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대적인 환경을 현실적으로 분석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근심 걱정 두려움 계획 없이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막 뚫고 나아가면서” “막가파”로 “즐겁게” 살아가는 방식과 2)적대적인 세력에 대해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품고 “사랑”을 선포하고 “착함”을 실천하며 “도움”의 손길을 펴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의 선두주자였던 사도 바울의 권면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 12:20).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8, 9).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제가 한평생을 살고 나서 할 수 있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가장 좋은 사람과 가장 필요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지식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능력이 많은 사람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설교를 너무 잘 하는 사람도 진리를 너무 많이 아는 사람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가장 좋은 사람과 가장 필요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도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도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해도 근심 걱정 두려움을 지니지 말고 “막 뚫고 나아가는” “막가파”의 기질을 지니고, 그리고 모두를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착함”을 지니고 선교의 길을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와 위로와 사랑이 항상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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