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직 목사의 ‘기독교적 건국론’과 대한민국 건국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기고] 오늘날 대한민국과 한경직 목사

▲이효상 목사(미래목회포럼 사무총장).
▲이효상 목사(미래목회포럼 사무총장).

해방공간에서의 한반도 상황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와 뒤이은 일제의 ‘무조건 항복’으로 촉발된 한반도에서의 일제 통치 종결은 통상적으로 한민족에게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왔다. 그 감격을 만끽하였던 짧은 시간 후, 해방된 우리 민족은 ‘건국’이라는 보다 시급한 과제를 안게 되었다. 당면 과제 앞에서 전대미문의 절박한 각양의 논의가 우후죽순처럼 제기되는 ‘해방정국’의 소용돌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해방 이후 건국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당시의 한민족에게, 해방은 ‘선물’인 동시에 커다란 ‘짐’이기도 했다. 다양한 세력과 분파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이 처한 입지와 그간의 일제에 맞서 투쟁하였던 전력들에 기반한 다양한 방책들을 제기했다.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실시하여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8월 15일정부가 수립되기까지의 3년은, 향후 민족의 행로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시기였다. 38도선 이북은 소련의, 이남은 미국의 군정체제가 되었고, 미 군정은 일정 기간의 통치를 마치면 한국인에 의한 자치독립 정부 수립을 지향하고 있었다.

‘기독교적 건국론’의 기초

한경직 목사는 해방 후 3년간 건국을 위해 주창했던 내용을 1949년 서울 보린원에서 출간한다. 저서 「건국과 기독교」는 초기 대한민국의 정신적 기초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때로 정치와 종교의 분리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일제에서 해방된 한반도에 어떤 형태의 국가가 세워져야 하는지에 대하여 열정적 설교로 방향을 제시하였고, 그를 따르는 이들은 정치참여로 그의 주장에 동조하며 선한 영향을 끼쳤다.

한 목사는 영락교회를 설립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시 미 군정 시절과 이후 제1공화국에서부터 제3공화국에 이르기까지 기독교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대한민국의 해방과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경직 목사의 <건국과 기독교>.
▲한경직 목사의 <건국과 기독교>.

한 목사는 「건국과 기독교」에서 해방부터 건국 과정에서 끊임없이 주창한 성경에 입각한 세계관을 토대로 ‘기독교적 건국론’을 주창한다. 한 목사는 근·현대사를 열어가는 대한민국인 새 나라의 머릿돌은 반드시 기독교 정신 위에 건설되어야 마땅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이유로는 기독교가 지향하는 개인 인격 존중사상, 개인의 자유사상, 만인 평등사상을 꼽았다. 전통적으로 삼국시대에는 불교,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나라의 근간이 되었으나, 이제 유·불 양 종교는 그 시대적 사명을 다하여 쇠진하였다는 것이다. 유교는 형식과 인습만 남아있고 대중은 미신에 빠져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민족적으로 망국의 절망적 비애 중에 위안을 얻고 사회적 부활의 희망을 안게 하는 유일한 현실적 원천은 바로 기독교라고 역설했다.

또 한 목사는 “악은 먼저 사람의 마음에 있다. 만약 인간의 본성 안에 악이 없으면 무정부주의의 실현이 가능하겠다. 그러나 인간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산상보훈대로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면 정부는 필요치 않겠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이상이요. 현실은 아니다. 그러므로 정부는 성경 말씀대로 ‘악을 행하는 자를 벌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즉 죄가 있으므로 관헌을 임명하여 인간 생활에 필요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인간은 본성상 악한 존재이기에 자신과 타인을 포함하는 인간관계는 서로의 욕망이 상충되는 불협화음을 연출하기 일쑤이며, 이를 통제하고 조정할 상위의 권위체가 필요하고 이것이 인류의 역사를 통해 발전해 나온 결과가 바로 ‘정부(政府)’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강제하는 권력’으로서의 정부 주권의 소재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한 목사는 중세 ‘군주(제왕)가 권위의 출처다’는 왕권신수설부터 근대의 ‘민(民)이 곧 권위의 출처다’는 주권재민 사상에 이르기까지 제 이론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성찰을 통해 근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주권재민’ 사상에도 무신론과 유신론으로 갈음할 수 있다는 점을 적시한다. 당대 앞선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미국의 경우, 건국의 모태가 되는 헌법과 독립선언서에서 분명히 자연법과 하나님의 법을 함께 거론하며 주권의 근원적 출처가 하나님에게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참으로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어떤 방법으로든지 다 하나님께 대하여 책임이 있다. 즉 그 권세가 있는 자는 하나님의 일꾼됨을(롬 13:6) 기억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권세의 출처가 근원적으로 하나님에게 유래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권세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통치를 행하여야 한다는 점을 동시에 강조한다. “자연에는 자연법이 있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도덕법이 존재하듯이 정치에도 일관된 원리가 있으니, 그 원리에 의하여 정부를 세워 모든 백성으로 복이 되게 하는  것이다. ‘공의는 나라를 흥하고 하고’ 라는 말씀과 같이 공의를 정치의 원리로 주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것은 정치가 다름 아닌 만인의 행복을 도모하기 위한 본래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정치를 실행하는 사람에게 칼, 곧 권세를 주신 것은 악한 사람을 징계하라고 형벌의 칼로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 칼을 이러한 데 쓰지 아니하고 오히려 선한 사람을 핍박하고 선지자를 죽이며 주기철 목사와 같은 이를 옥사케 하면 이는 법대로 쓰는 공의가 아니다. 의인이 피를 흘리고 옥중에서 죽게 하는 이러한 정치가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목사가 ‘법대로 쓰는 공의가 아닌’ 실질적인 예로 제시하였던 주기철 목사 사건의 경우, 일제의 강압통치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였던 신사참배에 대한 저항과 이어지는 옥사사건을 의미한다. 또 일제의 멸망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였음을 적시하고 있다. 나아가 올바르게 쓰여진 권세가 아닌 또다른 예증은 바로 공산주의의 행태였다.

한 목사는 기본적으로 정치와 종교는 서로 별도의 영역에서 분리해 존재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주장을 폈다. 과거 역사 속에서 정치와 종교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했을 때, 적지 않은 폐해가 속출했음을 상기시킨다. 과거 서구 사회에서 중세의 교권이 막강하여 세속 군주를 자신의 수중에 두었을 때, 인간성의 억압과 신이라는 이름으로 무소불위를 행하던 폐단의 예를 상기시킨다. 반대로 정치 권력이 종교를 억압하거나 아니면 종교의 영역을 자신이 수행한다고 천명하였을 때, 이 또한 다른 형태의 왜곡이 아닐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한 목사가 성경에서 제시한 바람직한 국가와 종교의 상관관계는 미국과 화란(네덜란드)의 모델이다. “교회와 국가를 완전 분리하는 미국과 화란(네덜란드) 같은 칼빈주의 제국을 볼 수 있다. 주님께서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로’ 하신 바와 같이 이 완전 분리주의는 그리스도의 교훈에도 적합하며, 따라서 교회는 영적 범위 안에서 완전 자유롭고 간접적으로 국가의 정신적 기초가 될 것이다.”

교회와 국가의 두 통치 영역이 한쪽은 인간의 영적 생활의 올바른 지도와 그를 위한 헌신에, 또 다른 쪽은 인간의 세속적 삶의 제 영역을 위한 강제와 지도, 그리고 보호에 각각 헌신하면서 상호 분리하되, 서로의 영역을 서로 존중하면서 그 존재의 목적에 합당하게 자신의 영역을 관리하는 일이 바로 칼빈주의적 교회와 국가의 이론임을 원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해서 기독교인의 국가를 위한 개인적 정치 참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오히려 각계 기독인은 적극적으로 국가를 위한 정치에 참여해야 할 것을 권하였다. “전 대한 민족의 사상을 기독교 사상으로 순화한다면 공의의 나라 기독교 독립 대한이 속히 이루어질 것을 확신한다.” 새로운 국가의 건설을 위해 전 국민이 노력하고자 할 때, 마땅히 기독교인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적극 권면하고 있다.

▲1974년 여의도 집회에서의 한경직 목사.
▲1974년 여의도 집회에서의 한경직 목사.

한 목사의 ‘기독교적 건국론’은 구체적이다. “옛 나라가 없어진지 이미 40년, 새 나라가 건설되려는 이 시기에 ‘이 나라의 정신적 기초를 어디에 두어야 하겠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 3천만의 중대 관심사입니다. 이 새 나라의 정신적 기초는 반드시 기독교가 되어야 하겠고, 또 필연적으로 될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신념입니다. 첫째, 이 새 나라는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중략). 둘째, 도덕적 국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 목사의 ‘기독교적 건국론’의 핵심은 그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그 근원으로서 성경과 기독교 사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는 해방 공간에서 새로운 나라의 틀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이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틀은 바로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신의 섭리와 경륜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모든 국민이 합심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가장 경계하는 건국 시나리오 중 기피대상 1호는 유물론적 독재국가 출현이었다. 그는 당시 상황의 혼미함을 경계하면서 이렇게 일갈한다.

“그러면 우리 신자가 어떻게 이 천부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까? 최선의 의무 이행 방법은 여하하다. 첫째로 우리는 조선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참으로 지금은 각 방면이 혼돈한 상태에 빠져 있다. 그 근본 이유는 사상이 혼돈해진 까닭이다.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 민주주의냐 독재주의냐, 기독교 사회주의냐 공산주의냐, 건설이냐 파괴냐, 문명이냐 야만이냐, 이러한 사상적 기로에서 청년과 학생, 농민과 소시민, 일반 대중들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은 하되 기독교 이상에 의하여 건국케 할 의무가 있다. 건국하되 유물론적 독재국이 되면 어찌하랴? 이때는 참으로 천재일우의 기회이다. 우리의 행동 여하가 자손만대에 큰 관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자각하여, 우리의 의무를 수행하여야 하겠다.”

한 목사의 ‘기독교적 건국론’은 한편으로는 유물론에 입각한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이에 맞서는 성경적 인간론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새로운 국가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자유가 중심되는 민주국가의 건설을 목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유가 언제나 보장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는 ‘첫째로, 민주주의 근본 사상의 철저한 이해와 신념, 둘째로 질서와 법의 존중사상, 셋째로 자유를 바로 쓸 수 있는 국민의 도덕적 품격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적시한다.

그에게 있어 건국의 초석이 중요한 만큼, 세워진 나라가 번영을 향하여 나아가고자 할 때 개개인이 꼭 갖추어야 하는 덕목도 강조됐다. 또 분단 현실의 극복을 위해 구체적인 행동강령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기독교적 건국론’의 현실적 반영

한 목사는 현실 정치에서 기독교적 이상을 가진 기독교인이 새 나라를 건설하는 주역이 되어야 하며, 그러한 가능성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희망이요 기대라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내 보이고 있다.

“기독교는 국가적 견지에서 보면 애국 운동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3·1운동 당시의 기독교의 역할이 어떠하였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조국 부흥 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의 대다수가 기독교 신자였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도산 선생, 남강 선생을 비롯하여 지금 생존하여 지도하시는 이승만 박사, 김구 주석, 김규식 박사, 그 외에 국가를 위하여 순국한 허다한 애국지사의 수는 오직 하나님만 아실 것이다.”

한 목사는 내심 철저한 반공주의자이며 우익을 대표하는 민족 진영의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된 것을 매우 안도하였다. 비록 북에서는 조만식 선생 등 민족진영 지도자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박해를 받아 안타깝게도 그 생사를 알 수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더 이상 남한에서의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질서를 확립할 정부가 세워지는 일은 그의 평소 신념과 일치하였기 때문이다.

한 목사의 ‘기독교적 건국론’은 1948년 8월 15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이어 ‘기독교인이며 투철한 반공주의자’ 이승만 대통령의 집권으로 현실에서 어느 정도 실제적인 꽃을 피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실제로 제1공화국 시절 처음 열렸던 개원 국회는 당시 감리교 목사이기도 했던 이윤영 의원의 기도로 개회됐으며, 간접선거로 대통령에 취임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취임식도 기독교적 예전으로 집례되었다. 이승만 정부 전반기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였던 ‘일민주의’는 기독교적 성격을 근간으로 했다.

▲한 목사의 &lsquo;기독교적 건국론&rsquo;을 현실로 구체화한 이승만 건국대통령.
▲한 목사의 ‘기독교적 건국론’을 현실로 구체화한 이승만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기 전과 후 기독교를 나라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확신을 거듭 표명해 왔으며, 이 점에서 어쩌면 한 목사의 ‘기독교적 건국론’을 현실 정치에서 가장 극적으로 구현한 인물이 된 셈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 군정기에 도입된 형목 제도, 성탄절 공휴일 제도 등을 그대로 유지했고, 주요 국가의례들이 기독교식으로 제정되거나 거행되도록 하였다. 이 같은 대한민국의 설립과 이어 등장했던 정부와 국회, 그리고 사법기관 등에서 지속적으로 기독교, 특히 개신교적 이념이 반영되는 현상은 다양한 방면에서 꾸준히 그 형태를 볼 수 있다.

한 목사 자신의 생애에서 평생의 과업으로 꿈꾸던 ‘기독교 건국’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상황을 낳게 되었으니, 그것은 첫째로 6·25전쟁의 발발이요, 둘째로 이승만 정권의 부패 스캔들과 이어지는 정권 몰락이었다.

한 목사의 ‘기독교적 건국론’이 당면한 시련은 이승만 정권의 실패와도 직결된다. 새로 건립된 국가에서 기독교 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법치, 그리고 질서에 대한 존중 등의 핵심 가치를 주장하였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우익 진영의 민주인사, 특히 기독교 인사들의 정부 요직 참여를 반겼지만, 현실에서 정치 권력이 강화되는 와중에 그에 기생하는 사이비 신자들이 횡행하고 또한 그로 인해 정권 자체가 붕괴되는 엄청난 충격적 결과를 가져온 사실에 자못 큰 실망을 금치 못하였다. 한 목사의 ‘기독교적 건국론’은 미처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깊은 병으로 상처를 입고 좌절해 버린 형국이 되었다.

민족의식과 신앙의 외연화

한 목사는 기독교의 주도적 건국 참여와 함께, 기독교의 정치·문화적 개화운동을 동시에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전, 즉 한반도에서 기독교를 수용했던 복음 1세대가 가졌던 진보·보수의 양대 과제를 동시에 종합적으로 수행하는 양상을 보여주며 대한민국의 탄생에 기여했다. 한 목사에게 있어 민주주의라는 꽃은 반드시 기독교 문화의 밭에서만 아름답게 필 수 있는 바, 당대의 선진 제국 곧 화란이나 미국 등이 바로 기독교 문화에서 꽃을 핀 민주주의 국가들의 예증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기독교적 건국론’에서 민족의식과 신앙의 외연화는 해방과 건국에 있어 기독교적 민족의식의 표현이었다. 그의 영향력이 남한인구 1/4에 해당하는 개신교 주류 세력에 끼친 영향을 감안한다면, 당시 한국 기독교의 민족의식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한 목사의 ‘기독교적 건국론’은 진보와 보수간 절충적 수용의 결과물이다. ‘기독교적 건국론’이 해방 당시에는 기독교인의 적극적 사회 대응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보수화 경향을 띠게 되고, 특히 정부 수립 후 보국, 안보, 사회 안정이라는 흐름에 따라가다 새로운 비전 제시가 이어지지 못하였다는 점이 아쉽다.

이후 한 목사는 주요 관심을 민족 복음화와 한국교회 연합운동, 더 나아가 민족 통일에 대한 아젠다로 방향을 돌린다. 한경직의 민족 복음화론은 한국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한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교분리와 목화자적 정체성에 입각하여 복음화운동에 헌신하므로, 이러한 처음 행적은 시간이 갈수록 정치적 보수성으로 기울었다. 특히 그의 투철한 반공사상과 사회안정 추구의 열망은 소극적 정치참여 형태로 나타났다.

그의 삶은 대한민국의 근대사만큼이나 희노애락으로 점철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서 「기독교와 건국론」을 통하여 한경직 목사의 신앙, 철학, 그리고 삶의 족적은 그의 주변인들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형성과 그 전개 과정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으로 남겨졌다는 점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느 면에서라도 대한민국 탄생 과정에 있어 한 목사의 ‘기독교적 건국론’의 정신세계와 삶이라는 발자취 앞에, 또 그 실천에 빚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효상 목사(미래목회포럼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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