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설교를 준비할 때에 염두에 두는 기준으로 1) 쉽게 2) 즐겁게 3) 깊이 있게 4) 적용할 수 있게 5) 변화 되게 이렇게 다섯 가지 기준은 앞에 글들에서 소개한 바이다. 그러나 다섯 가지 기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들 다섯 가지 기준이 <어떻게 설교할 것이냐?>에 대한 내용이라면,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설교할 것이냐?>라는 내용이 중요하다. 요즘 많이 쓰는 말로 콘텐츠가 중요하다.
무엇을 설교할 것인가? 란 질문에 대하여 나는 다음의 다섯 가지를 중요시 한다.
첫째는 복음적이어야 한다.
둘째는 치유와 회복의 열매가 있어야 한다.
셋째는 상식을 소중히 하고 정직함과 도덕성을 높여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넷째는 공동체 정신을 높여 나감에 기여하여야 한다.
다섯째 역사의식(歷史意識)을 강조하고 북돋워 줄 수 있어야 한다.
첫 번째로 설교 내용이 복음적이어야 함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복음적’이란 말의 기준이 무엇인가? 복음적이란 말은 단순화시켜 쉽게 표현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이다. 소박한 의미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하늘의 자녀가 되었다는 구원의 확신과 천국에 대한 분명한 소망을 품은 신앙고백이다.
그리고 복음적이라 함은 다른 말로는 ‘예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신앙이다. 한국교회가 가진 장점 중의 하나가 한국교회의 중심 흐름(Main Stream)이 복음적이란 점이다. 한국교회의 중심 흐름이 복음적이기에 앞으로 세계 교회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요, 세계 선교에 크게 쓰임 받는 교회가 될 것이다.
나는 3대째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모태신앙이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2년이 지나도록 복음적인 확신이 없는 크리스천이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한 후 2년간 방황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고 복음적 확신을 얻게 되었다. 1968년 12월 4일 밤이었다. 대학 철학과 2년 선배였던 홍응표 선배와 그해 여름부터 만나 성경공부를 하던 중에 에베소서 1장 7절을 읽을 때에 복음에 대한 확신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말씀을 읽었을 때 내 영혼에 지진이 일어났다. 젊은 날 방황과 고뇌의 시절이 끝나고 ‘예수 안에서 누리는 안식과 감사, 구원의 확신’에 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날 밤 나는 찬송가 421장을 감격의 눈물에 젖어 부르고 또 불렀다.
“내가 예수 믿고서 죄 사람 받아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내가 가는 길 천국길이요 주의 피로 내 죄가 씻겼네.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 받았네
하나님은 나의 구원 되시오니 내게 정죄함 얻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