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양화진문화원에서의 다섯 차례 강연 바탕
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
이어령 | 포이에마 | 360쪽 | 15,000원
이어령 박사는 지난해 양화진문화원 목요강좌에서 ‘소설로 찾는 영성순례’라는 주제로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앙드레 지드의 <탕자, 돌아오다>,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등에 대해 강연했다. 이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이 박사의 지난해 강연 내용이 최근 <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라는 책으로 나왔다. 강좌에 참석했던 이들에게는 그때의 감동을 차분히 되새길 수 있는 반가움이, 강좌를 들어본 적 없는 이들에게는 우리가 즐겨 읽었던 책에서 ‘신의 흔적’을 발견하는 새로움이 함께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저자가 유일하게 세 번이나 읽은 장편소설이다. 중학생 때는 추리소설을 읽듯, 대학 시절에는 실존주의 문학에 관심을 두고 읽었다면, 기독교에 입문한 뒤에는 종교 문제에 대한 물음을 갖고 읽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눈물을 흘렸다. “진실함 속에서 투정을 하고, 투정 속에서 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 이러한 모순의 세계를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고 법칙으로도 해명할 수 없기에 소설과 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말테의 수기>는 저자가 ‘내 인생의 책’으로 꼽는 책이다. ‘인간과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 관통하고 있는 71개의 수기로, 봐도 봐도 생각할 거리가 있는 명저란다. 그래서 학창 시절 사람들을 <말테의 수기>를 아는 인간과 모르는 인간, 둘로 구분하기도 했다. 여기서 저자는 생명을 말한다. “지금 죽음은 너무나 하찮게 다뤄집니다. 다시 말하자면 생명이 너무나 하찮게 다뤄진다는 것입니다. … 문제는 너무나도 왜소해지고 가벼워진 우리들 내면의 황량함을 누가 고발하고 되찾겠느냐는 것입니다.”
<탕자, 돌아오다>는 앙드레 지드가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를 재구성한 짧은 소설이다. 자신을 ‘탕자’라고 생각했던 저자는 그 심정을 담아 이 비유를 자주 인용해 왔다. 당시 수술 후 넉 달 만에 돌아왔던 저자는 “목사님이나 신학자가 아니라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줄 수 있는 것은 보통 때 먹을 수 없는 야생의 석류 맛, 광야 속에서 느끼는 갈증을 통해 얻는 생명력을 그 작은 열매 속에서 발견하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는 아래로 떨어지는 돌멩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가장 높은 나뭇가지에서 익어가는 야생 석류입니다.”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 열풍 후 원작 소설에 대해 첫 강연에 나섰던 저자는, 당시 한국 사회가 빅토르 위고를 잘못 읽고(miss reading)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설을 통해 세간의 평가와 달리 ‘사랑이 없는 혁명은 안 된다’고 말했다는 것. 그 사랑은 바로 예수님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고 영화를 다시 보면서 흥분하고 세계 어느 곳에서도 없는 열기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길과 진리, 생명을 우리가 가장 많이 잃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최근 소설인 <파이 이야기>는 당시 의외의 선택이었다. 저자는 이 소설에 대해 “우리 인간의 몸과 마음, 그리고 이성으로는 결코 벗길 수 없는 일곱 개의 베일을 차례차례 벗겨나가 이윽고 우리의 밑바닥 깊숙이 숨어 있는 우주의 생명을 드러내는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의 고정관념과 편견, 지적 오만을 깨뜨리고, 생명을 깊이 성찰해 저자가 주창하는 생명자본주의, 바이오필리아(biophilia·생명愛)를 잘 보여준다는 것.
저자에게 ‘선택’된 책들은 모두 역설적이든 직접적이든 사랑과 생명의 가치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이 시대의 ‘고전’들이다. 그리고 이 땅의 이야기들을 통해 영성과 신앙의 세계, 하늘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이다. 기도나 신학의 언어를 통해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야생의 석류 맛’ 말이다. 저자는 이 작업을 ‘소설을 통해 영성을 찾는 내 자신의 한 순례(Pilgrim)’라고 표현한다. “크리스천들은 이 책을 읽는 것이 나의 해설보다는 그 작품들을 직접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저자는 당초 ‘예수님이 다니신 길을 따라서 영성순례’를 하기로 했지만, ‘뜻하지 않은 신병’으로 먼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어 그 성지를 ‘문학’으로 바꿨다고 한다. 저자의 바람대로 언젠가 건강이 회복돼 순례길에 오를 수 있는 그날이 오면, 우리에게는 ‘일석이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