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칼럼]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요즘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이 많다. 강아지를 보면서 ‘아빠 다녀올게’, ‘엄마 시장 갔다 올 테니까 집 잘 보고 있어’라고 하며 집을 나선다. 언제부터 사람이 강아지와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던가. 나는 별로 달갑지가 않다. 나를 강아지나 다른 반려동물과 같은 그룹으로 두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미 시대적 트렌드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기호까지 운운하고 싶지는 않다.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찾아오신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옷을 입고 오신 사건은 신학적으로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일상의 영성을 점검해 보려고 한다.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피부 깊이 느끼게 된다.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심으로, 자신의 사랑의 농도를 보여주셨다. 말로만이 아닌, 동참하고 느끼는 사랑이다. 형식적이 아닌, 몸으로 체험하는 사랑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과 고독을 알고 계신다. 그래서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가끔 말한다. “내가 네 마음을 다 안다.” “너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다.” 그런데 나는 그게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감성이 뛰어난 사람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낀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 사람의 형편이 되어 보는 것이다. 과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홀아비이다. 홀로 된 사람의 외로움과 아픔은, 겪어보지 않고는 잘 모른다. 암환자들을 심방할 때 가장 위로가 되는 사람은 암과 투병을 해 본 사람이다. 사별의 아픔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을 가장 효과적으로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사별의 아픔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다.

지지난 토요일은 큰딸의 생일이었다. 그런데 그날 하루는 목회 일정상 매우 바빴다. 오전 11시 30분에 어느 청년 자매의 결혼식이 있었고, 오후 3시에 장로님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분주한 하루였다. 물론 설교는 미리 준비해 두었기 때문에 부담은 덜하지만. 저녁에 조촐하게라도 딸의 생일파티를 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저녁에는 딸이 시간 내기가 어려웠다. 친구가 뷔페를 사준다고 했단다. 그래서 문자로 축하메시지만 전하고, 사고 싶은 걸 사라고 ‘현금 박치기’를 했다. 그래도 좀 아쉬움이 남아서 월요일에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딸도 좋다고 했다.

월요일 오후. “혜린아, 밥 먹으로 가자.” 뭘 먹으러 갈까? 어디로 갈까? 고민 끝에 혜린이가 정했다. “회 먹으러 가!” “그럼 어디로 가지?” 아내가 제안했다. “수산시장에 가서 먹자.” 아마 싱싱한 회를 좀 싸게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아들이 빠진 네 식구가 수산시장으로 갔다. 광어와 우럭을 시켜서 회를 먹고 매운탕도 끓여 먹었다. 계산을 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돈이 나왔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생일파티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저녁부터 내 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아~ 알레르기다!’ 몸을 긁으니 온 몸이 빨개졌다. 나는 밖에 나가 있는 세린이에게 전화했다. “세린아, 아빠 알레르기가 생겼는데 약 좀 사와라.” 월요일 저녁부터 약을 먹었다. 그런데 몸의 가려움증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온 몸에, 머리와 얼굴에까지 알레르기가 일어나서 가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밤에 잘 때면 온 몸을 긁느라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화요일 저녁, 다시 약국을 찾았다. 두 종류의 약을 받았다. 그런데 가려움증은 여전했다. 목요일 목회칼럼을 쓰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몸이 아직도 가려워?’ ‘응~’ ‘피부과 가서 주사 한 대 맞으면 괜찮아진다고 하는데.’ ‘알았어~’ 그래놓고는 이것저것 분주하다 보니 병원에 가지 않았다. ‘괜찮아지겠지’ 하는 마음도 들고 해서.

저녁 7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몸이 가려워 주일까지 갈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다. ‘병원 문을 안 닫았을까?’ 아내가 전화해 보니 8시까지 한다고 했다. 결국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하고 주사를 맞고, 또 다시 약을 복용했다.

수요일 저녁이었다. 온 몸을 긁느라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알레르기 때문에 이렇게 힘든데,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까?” 알레르기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아토피 피부염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 칼럼을 쓰고 있는 월요일 새벽 이 시간까지, 내 손은 연신 가려운 몸으로 가고 있다. 그래서 딸을 보고 웃으며 말한다. “이번 딸 생일파티는 정말 거나하게 했다. 평생 잊지 못할 생일파티가 될 거다.”

알레르기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소중한 선물을 하나 얻었다. 참여하고 공감하는 일상의 영성이다. ‘내가 기도할게요’라고 하지만 정작 기도하기를 잊어버리기가 십상인 우리. ‘아픔을 함께 나눌게’라고 하지만 그 아픔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그런데 아픔에 동참하는 영성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하셨다. 이제 아토피 피부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마음을 조금 더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을 보면 손을 잡고 한 번 더 기도해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한다.

며칠 지나면 지구촌이 성탄 축제를 누린다. 성탄절의 기원에 대한 이러저런 말들이 있지만, 중요한 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있는 인간들을 직접 찾아 주셨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왜? 알레르기보다, 아토피피부염보다 더 심각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죄의 참상 가운데 있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 그리고 인간이 당하는 모든 아픔과 고통에 참여하셨다. 이것이 바로 성탄절이다.

이 성탄절에 공감하고 참여하는 일상의 영성이 있어, 가난하고 소외되고 눈물을 흘리며 아파하는 자들에게 한 발자국 더 바싹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참된 공동체성이 회복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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