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2) 그리스도론
2. 예수는 그리스도인가?
꾸란과 무슬림들도 Sura 3:45에서 예수를 메시아라고, Sura 4:171-172에서는 그리스도라고 호칭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의미는 꾸란 어디에도 설명되어 있지 않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마리아의 아들’이며, 현세와 내세에서 훌륭한 주인이고 하나님 가까이 있는 자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 각주에서 메시아의 의미를 ‘기름으로 세례를 받음’ 또는 ‘성별식’용 기름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는 사건을 결정한 중대한 호칭이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는 것이며, 이 고백으로 인해 불신자가 구원을 받게 되는, 엄청나게 중요하고 신비한 지식이다.
2.1. 그리스도의 의미
성경의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라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의미는 단순한 성별식의 뜻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영의 강림’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서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사 61:1)”.
성경에 계시된 창조주 하나님 자신의 영은,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에게 반드시 강림하였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왕적 직분, 제사장적 직분, 선지자적 직분이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메시아의 왕적 직분은 롬 1:3의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라는 증언과 같이, 다윗왕의 뒤를 이은 영원한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구약 시 2:1-12, 110:1, 사 9:6-7, 11:1-2, 단 7:13-14 등에 예언되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와 그 탄생에 관한 복음(마 1-2, 눅 1-2장)이 그 예언의 실현임을 잘 알고 있다. 메시아의 왕적 직무는 유대인들이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은 그를 시기하고 살해하였다(마 27장).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직분은 이사야 53장에 묘사되어 있으나 유대인들이 싫어하고 배척하는 직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직무는 세례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선포한 내용과 같이(요 1:29),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짊어지고 속건 제물(guilt offering)로 드려져서 우리의 죗값을 담당함으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그대로 성취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선지자적 직분은 신명기 18:15-18의 말씀을 중심언약으로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언약하시면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고 한 바와 같은, 예언적 사역을 위한 것이다.
위의 말씀을 인용하여 무슬림들은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무함마드라고 억지 주장을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구약성경 문맥을 무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이스마엘의 형제 내지 이스마엘 후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형제 중에서, 즉 이스라엘의 후손에서 나온다는 예언이다. 신약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에서 우리는 무수한 선지자적 행위를 발견할 수 있다.
2.1. 예수는 약속된 그리스도인가?
성경의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다. 선지자 아모스를 통하여 하나님은 그의 시행방법을 알리셨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호 3:7)”.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시고, 반드시 먼저 예언하시고 후에 성취하시는 사역 특성이 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을 통하여 구약에 수백 가지를 약속하셨으나, 구약의 무수한 언약들 중 가장 중요한 언약이자 예언들 중 가장 중요한 예언은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려는 최대의 약속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주신다는 것과, 하나님 자신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주신다는 두 가지 약속이다.
그것은 초역사적인 하나님의 제2위와 제3위가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시겠다는 예언이다. 구약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적 탄생과 그의 대속적인 죽음과 부활에 관해 상세하게 예언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신약에서 다 이루어진 바를 익히 알고 이 같이 역사 속으로 찾아 들어오셔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해주신 그 은혜를 넘치게 누리고 있다.
하나님이 세우신 최대의 언약이란 버려진 인간에게 주시는 최대의 선물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친히 찾아오시는 것이며, 죄악과 마귀의 쇠사슬을 풀어주시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내주시고, 범죄한 자의 죄의 대가를 지불해주신 것이다. 이 선물은 기독교인들에게만이 아니라 무슬림들을 포함해서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것이며, 누구든지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다 받을 수가 있는 선물이다.
2.2.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인가?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는 것을 무슬림들은 하나님이 자식을 생산한다는 물질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이라는 성경적인 진술을 절대 부정한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는 것은 신성모독죄에 해당된다. 꾸란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담 같은 하나님의 창조물이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명백하게 부정한다:
그들은(유대인과 기독교인) 하나님이 아들을 낳았으니 그분께 찬미를 드리라고 말하나 그렇지 않노라(Sura 2:116).
또한 하나님께서 자손을 두셨다 말하는 자들이 있으니 실로 너희들은 불결한 주장을 함이라. 그 때에 하늘이 떨어지려 하고 대지가 갈라지며 산들이 산산조각이 되려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께 자손이 있다고 불결한 말을 했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자손을 가질 필요가 없으시매 천지의 모든 것이 종으로서 하나님께로 오기 때문이다(Sura 19:88-93).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은 자연적인 지식으로는 할 수 없고, 이 고백은 인간이 아닌 제3자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 제3자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영을 의미하는 ‘성령’이다. 성령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시는 영이다. 이 영으로 말미암아 사도 베드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을 할 수 있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라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6-17)”.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하나님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성령이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고(갈 4:6) 하나님의 영이다(롬 8:9f). 그는 또한 진리의 영이며(요 16:13, 14:17)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고전 12:3) 그리스도를 증거하고(행 1:8, 요 15:26),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요 16:14).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예수그리스도와 영원히 동행하게 되고 성령을 받은 것은 구원을 위한 인침과 보증이다(고후 5:5, 13:5, 엡 1:13).
죄인이 구원을 받게 되는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그리고 주님으로 고백하는 믿음에 의한 것이다. 이 고백이 현재 인류의 5분의 1에 해당되는 모든 무슬림들에게 최대의 신성모독죄로 간주되고, 이를 믿는 무슬림은 배교자로 간주되어 극형에 처하게 된다. 불지옥에 대한 꾸란의 무수한 가르침이 바로 이러한 고백을 하는 자들이 가는 곳이라고 함으로써, 무슬림들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야 할 길을 완전히 차단해 버린 것이다.
2.3. 성육신인가? 동정녀 탄생인가?
꾸란은 예수를 하나님의 창조물이라 주장하고(Sura 3:47). 예수가 아담과 같은 피조물이고 예수가 흙으로 지음받았다고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랬듯이 예수에게도 다를 바가 없도다. 하나님이 흙으로 그를 빚어 그에게 말씀하셨다. 있어라, 그리하여 그가 있었느니라(Sura 3:59).
꾸란은 위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요 1:14)을 부정하면서, 오직 동정녀에게서 탄생한 하나의 피조물임을 주장한다.
그녀가 말하길 주여 제가 어떻게 아이를 가질 수 있습니까 어떤 남자도 저를 스치지 아니 하였습니다. 그가 말하길 … 그분이 어떤 일을 하시고자 할 때 이렇게 말씀하시나니, 있어라 그러면 있느니라
성경적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란, 무슬림들이 믿고 있듯 ‘동정녀’에게서 탄생된 하나의 피조물에 관한 설명과는 크게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적 탄생과 그의 행적과 그의 죽음은 구약에서 무수히 반복적으로 예언된 사실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고, 당대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에게 다 목격된 것이며, 공개된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요한복음 1:14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설명하고 있다. 꾸란도 이 점은 동일하게 증거하고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는 모순을 지니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시 110:1, 사 9:6-9, 마 22:41-46, 요 1:1-4의 증거와 같이 동정녀에게서 나셨을 뿐 아니라 이미 창세 전에 계셨던 하나님의 말씀이며 역사 속에 들어오신 하나님이시다.
2.4.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꾸란 4장 157절의 내용을 『성 꾸란』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마리아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선지자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다라고 그들이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을 할 뿐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노라”.
무슬림들은 철저하게 예수의 죽음을 부정하면서 위와 같이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는 애매모호한 말을 풀이하며, 그 뜻은 ①아무도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으나 유대인들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②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는 했지만 죽지 않고 무덤에서 회복되어 도망갔다 ③다른 인물이 예수님을 대신해서 죽었고 예수는 산 채로 승천했다고 한다. 무슬림들은 그를 대신해 죽은 자를 흔히 가룟 유다라 한다. 그러나 예수를 팔고 은 30을 받은 가룟 유다는 예수 대신 십자가 달려 죽은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정죄된 것을 보고 은 30을 성소에 던지고 달려나가 자살한 사람이다. 그의 자살은 구약성경에는 예언된 바와 같이 사실로, 당시 제사장들은 그 은전 30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다.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부정하는 구절과 모순되게도, 꾸란에는 예수의 죽음을 예언하는 또 다른 구절이 있다. Sura 19:33에 신생아 예수가 요람에서 “제가 탄생한 날과 제가 임종하는 날과 제가 살아서 부활하는 날에 저에게 평화가 있도록 하셨습니다”라고 자기가 죽을 때와 부활할 때에 관해서 예언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꾸란 3:54-55은 다음 번역에서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부정한다.
그들이 음모를 하나, 하나님은 이에 대한 방책을 세우셨으니 하나님은 가장 훌륭한 계획자시라(54절). 하나님이 말씀하사 예수야 내가 너를 불러 내게로 승천케 한 너를 다시 임종케 할 것이라. 불신자들에게서 세제하며 너를 따르는 자 부활의 그 날까지 불신자들 위에 있게 하리라(Sura 3:54-55).
이 구절은 번역자 최영길의 부정확한 번역으로 독자들이 잘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는 아주 잘못 번역된 구절 중 하나이다. 한글 꾸란 54절 각주는 알라가 ‘예수를 살해하려 했던 음모자들에게서’ 예수를 구하여 ‘하늘로 승천시키고 대신 유대인을 예수와 흡사하게 하여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고 해설하고 있다. 그러나 위와 모순되게도 곧이어 Sura 3:55절 ‘내가 너를 나에게로 오르게 했다(warafiuka)’는 단어 앞에는 ‘내가 너를 죽게 했다(mutawaffika)’는 단어가 쓰여 있다. 이 단어에는 어간 tawaffa가 들어 있어, 본래 ‘너를 죽게 했고, 너를 내게 올리웠다’로 번역되어야 한다. 이 꾸란 본문은 예수가 죽지 않고 그냥 위로 올리웠다는 꾸란의 증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꾸란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목적과 존재 및 죽음의 이유,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인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을 철저하게 부인하고 있다. 이슬람교가 무함마드를 ‘선지자’로 ‘계시’하고 한 종교의 교조가 되었다면, 왜 남의 종교 핵심 메시지를 철두철미하게 부정하는 것일까? 이는 바로 기독교 신앙과 인류 구원의 길을 막아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려는, 최대의 적그리스도적 행동이 아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형벌과, 그의 죽음과, 그가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묘지에 사흘 동안 묻혔던 사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탄생 수백 년 전부터 예언된 것인데(사 53), 부활하여 오늘까지 그 시체를 찾지 못한 빈 무덤의 역사적 사실을 왜 아무 역사적 근거도 없이 부정할까?
2세기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Julius Afrikanus)에 의해 인용된 주후 약 52년 쓴 탈루스(Thallus)의 글에는, 예수께서 운명하실 때 그 땅을 뒤덮었던 흑암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이 소문이 로마에까지 퍼졌다고 하였다. 주후 70년 이후 유대인 지도자 요세푸스(Josephus)가 93년 기록한 유대 고대사(Antiquitates Judaicae Bd. 18, III,3)에 실린 ‘De Bello Judaico(75-79년)’에는 예수 동시대의 많은 성경 인물들이 언급되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빌라도가 십자가 사형을 언도했고, 죽은 지 사흘 후에 부활하여 나타나심과 많은 기적을 행하심을 기록하며 오늘까지 이것들이 풀리지 않는다고 쓰고 있다.
성경적 복음은 일점일획도 변함없이 다 이루어질 하나님의 말씀이, 미리 선지자들을 통해 알리시고 행하시는 분에 의해 그대로 이루어졌고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그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그 의미까지도 모두 예언되었고, 신약에서 다 그대로 성취되었으며(고전 15:4-8, 고전 15:4-8, 눅 24:36-43, 빈 무덤 사건 등), 성도들에게 목격되고 체험되었음을 역사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위와 같은 반복음적인 진술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두려운 말씀을 증거하고 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섭겠느냐(히 10:29)”.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하나님의 이 두려운 계획과 섭리에 관해 알지 못하고 반복음적·적그리스도적 행각과 행동에 익숙해져 있는 무슬림들에게, 우리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전달하려면 많은 기도와 인내와 소명, 무슬림 영혼을 위한 진실한 사랑을 준비해야 한다.
2.5.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는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음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40일 동안 함께 계시다가 승천하셨다. 그의 부활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의 통치자와 심판자가 되셨다(마 28:18-20, 빌 2:5-1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을 믿는다. 예수는 몸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지만, 우리에게 다가오시기 위해 역사 속으로 들어오셔서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 놀라운 것은 이 성육신 사건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몸을 일시적이 아니라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영원히 입고 계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영원한 양성(兩性)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형상대로 만드셨던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놀라운 것이었나에 관해 더욱 깨닫게 된다.
부활이란 ‘영혼불멸’이 아니라, 죽은 자의 몸의 부활을 말한다. 영혼불멸 신앙은 애니미즘, 샤머니즘, 윤회론, 활불론 등에서 발견되며, 인간의 육체가 다시 사는 것을 믿지 않는다. 몸의 부활이란 그리스도에게서 처음으로 일어난 사건이며(고전 15:20), 죗값인 사망을 완전히 정복한 역사적인 ‘빈 무덤 사건’이며, 이 무덤은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대로 부자 아리마대 요셉이 새로 판 것이었다(사 53:9, 마 27:57-58).
때로는 신학자들 간에 ‘영혼부활’이라는 단어를 ‘육체부활’과 함께 운운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이를 잘못된 신학 테마로 본다. 영혼은 거듭난다고 하지, 부활한다고 하지 않는다. 부활은 죽는 몸에 해당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아담을 통해 인간은 영혼 뿐 아니라 전인간적으로 하나님을 배신했기 때문에, 구원도 역시 영혼과 육체라는 전인간적으로 받게 된다. 죽은 자의 몸의 부활은 나사로처럼 죽었던 자가 잠시 더 살아남거나 또는 그대로 죽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부활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처럼 인간에 의하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 주신 영원한 몸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 놀라운 전인적인 구원은 이미 성령을 받은 자에게만 일어나는 것이다(고후 5:1-5). 악한 일을 행한 자가 심판을 받기 위해 부활하는 몸(요 5:29)과는 질적으로 다른 지극히 영화로운 몸이다. 이 몸은 그리스도와 같은 영화로운 몸이다(고전 15:22-23, 49).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이 헤아릴 수 없이 심오하다. 사도 바울이 살기가 등등하여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그 때에, 부활하여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하셨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 9:1-5)”. 이렇게 말씀하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성도들의 고난에 동참하시고 성도들을 위로하시며 함께 고난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하나님이며 영원한 인간으로서, 인간과 하나님은 영원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창조의 목적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부활신앙의 고백은 전인적 구원의 필수조건이다.
“만일 네가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성은 그의 약속대로 그가 부활하신 후에 보내주신 성령 강림의 사실성에 의해 확인된다. 예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셨고, 약속하신 성령도 보내주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구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으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2.6.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꾸란은 Sura 4:157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부인하지만, Sura 43:61에서 “실로 예수의 재림은 심판이 다가옴을 예시하는 것이라 일러 가로되 그 시각에 대하여 의심치 말고 나를 따르라 이것이 옳은 길이라”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시인하고 있다:
또 부카리 하디스에도 ‘너희 가운데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재림하나니(Sura 43:61 각주 61-1)’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위의 그리스도 재림에 관한 설명은 예수께서 심판주로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본문과 각주 61-1)이 설명하는 바와 같이 “심판이 있기 전에 하늘에서 예수를 내려 보낸다”는 것이다.
무슬림 전통에 의하면 예수는 재림해서 반기독교인들과 모든 돼지를 이 땅에서 죽이고, 모든 십자가를 부수고 나서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다고 한다. 그 후 예수는 모든 인간을 알라에게 돌이키고 이 사명을 다 이루면, 그 역시 죽어 메디나에 있는 무함마드의 묘 곁에 묻힐 것이라고 한다. 이 순간 알라가 세계를 심판하려고 예수와 무함마드를 부활시켜 보좌에 앉히고, 무함마드는 모든 무슬림들을 심판하며, 예수는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모든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심판한다고 한다.
이 같이 무슬림들은 아주 잘못된 종말관을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십자가를 꺾고, 돼지를 죽이고, 결혼해서 이 땅에서 살아 보자고 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 7:13-14에 예언된 바와 같이 권세와 영광의, 만왕의 왕이자 심판자로서 재림하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께 이러한 권세를 주신 이유는 그가 인자가 되시고 많은 죄인들을 의롭게 하시고 구원하셨기 때문이다(사 53:4-12, 요 5:22, 27). 예수께서 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하늘에서 재림하실 때 그에게 속한 자들이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고전 15:23, 살전 4;16-17).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주께 속한 자들이 하나님께서 주셔서 새로 입게 되는 부활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이 새 몸은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이고(고전 15:44), 썩지 않고, 죽지 않고(고전 15:42-53), 사망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은, 영화로운 새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계 21:4).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