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서울 9호선 ‘봉은사역’ 명칭에 일제히 ‘반대’ 나서

송경호 기자  dwlee@chtoday.co.kr   |  

한교연·한장총, 교회언론회 이어 성명 발표

서울시의 지하철 9호선 2단계 구간 ‘봉은사(奉恩寺)역’ 정거장 명칭 확정 방침에, 교계가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양병희 목사, 이하 한교연)은 10일 ‘서울시는 봉은사역 제정을 즉각 철회하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서울시가 다음달 28일 개통되는 서울 지하철 9호선 2단계 구간 929정거장 명칭을 ‘봉은사역’으로 확정한 것은 시민 정서를 무시한 탁상행정이자 명백한 종교편향이므로 즉각 철회하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한교연은 “이 역이 들어서는 곳은 왕복 12차선 도로가 나 있는 서울 코엑스 사거리인데, 이곳 역명을 누구다 다 아는 코엑스가 아닌 특정종교 사찰의 이름으로 정한다면 과연 어느 누가 납득할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서울시의 역명 제정원칙에 ‘역사에 인접하고 있는 고적, 사적 등 문화재 명칭’을 쓰도록 되어 있다고 하나 봉은사는 고적이나 사적, 문화재로 등록된 사찰이 아니고, 기존 삼성역이 있기 때문에 법정동명이나 가로명을 쓰지 못한다면 서울시가 정한 원칙대로 ‘이전 우려가 없고 고유명사화 된 주요 공공시설물’, ‘지역을 대표하는 다중 이용시설 또는 역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는 지역명칭’, ‘시설물이 대표 지역명으로 인지가 가능한 시설명’인 코엑스역으로 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또 “해당 역은 코엑스에 인접해 있는 반면 봉은사와는 120m나 떨어져 있고, 더구나 코엑스는 매일 10만여명이 드나들고 국제적인 회의와 박람회 등이 연간 3천 건 넘게 열리는 주요 사회기반시설”이라며 “과연 지하철 이용자인 시민들이 어떤 역명을 바랄 것인가는 너무나 자명하다”고 강조했다.

한교연은 “서울시는 시민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므로, 매사 공익적이고 시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결정을 해야 한다”며 “만약 서울시가 특정종교의 눈치를 살피며 시민 정서에 반하는 결정을 고집한다면, 종교편향 논란을 떠나 서울시의 어떤 정책과 행정도 당위성과 설득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회장 황수원 목사, 이하 한장총)도 같은 날 ‘서울시는 봉은사역명 제정을 재고하라’는 성명을 내고 ‘봉은사역’ 명칭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한장총은 “지하철역명은 대중이 이용하는 공공시설이기에 중립적인 명칭을 사용하여야 하고, 역명 제정 기준에 지명, 법정동, 가로명을 일반적으로 쓰는 이유가 이런 이유”라며 “해당 역은 삼성역으로 역명을 사용해야 하는데, 2호선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으므로 세부 기준을 적용한다면 봉은사역 명칭 사용은 적당하다고 볼 수 없고, 코엑스역이 더 적합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봉은사역’ 명칭에 대해 “시민편의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우리 국민이 불교인이 아니라면 코엑스가 훨씬 귀에 익은 명칭이고, 해마다 수많은 국제회의를 하는 바 찾아오는 외국인들에게도 자연스런 역명일 것”이라고 했다.

‘종교편향적’ 오해의 소지도 있다고 했다. 한장총은 “봉은사는 불국사처럼 고적이나 사적,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은데도, 특정종교의 시설명을 무리하게 사용해 강남을 대표하는 지역 명칭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며 “서울시가 특정종교의 눈치를 살피고 시민정서에 반하는 결정을 한다면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니,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설문조사로 시민들을 기만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원점으로 돌아가 심도 깊은 논의로 공익과 통합과 미래를 위한 결정을 내려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불교계의 봉은사역 ‘홍보’를 위한 포스터.
▲불교계의 봉은사역 ‘홍보’를 위한 포스터.

해당 논란은 지난 3일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유만석 목사)에서 ‘전철역명을 봉은사로 하는 것은 종교편향 아닌가’라는 논평을 하면서 교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교회언론회는 “우리나라가 불교국가도 아닌데, 사찰 이름을 따 전철역명으로 정하는 것은 ‘종교편향’에 불을 지피려는 의도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며 “서울시는 서울을 1등 국제화 도시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은, 국제화 노력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한 바 있다.

‘봉은사역’ 명칭 논란은 오는 3월 28일 지하철 9호선 2단계 구간 개통을 앞두고 불거졌다. 해당 역명은 관할인 서울 강남구청에서 지난해 1월 1일부터 15일간 설문조사를 통해 ‘봉은사, 코엑스, 아셈’ 등 3개 중 선정됐다고 밝히고 있으나, 해당 페이지는 ‘비공개’ 처리돼 있어 정확한 설문 결과를 알 수 없다.

해당 설문조사 과정에서 불교계는 언론 등을 통해 설문조사 참여를 독려하거나 구체적인 참여 방법을 안내하고, ‘봉은사역’ 명칭의 당위성에 대해 홍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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