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들이 갖고 있는, ‘성령’에 대한 오해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무슬림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3) 성령론

▲이동주 박사.
▲이동주 박사.

3. 성령은 누구인가?

성령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다. 무함마드 출생 14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엘을 통해 약속하신 이 말씀은(욜 2:28-29),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 자신의 영이다(행 2:38). 그리고 이 약속은 무함마드가 출생하기 일천 년 전에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도 하신 말씀이 실현된 것이다(겔 36:26-27).

이 약속대로 강림하신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확인하셨던 가장 중대한 사건이고(요 14-16),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또 다시 약속하셨던(행 1:4-8), 임마누엘을 체험하게 하는 가장 중대한 선물이다.

이 성령은 성도들 안에 거하심으로 모든 성도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은 것이다(요 3:5; 롬 8:11). 이 약속은 현재도 모든 회개하는 자들에게 강림하시는 것이다. 무슬림 구도자들도 회개하고 죄 사함 받기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이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과 선물을 받을 수 있다(행 2:38).

2,000년 전 오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받는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성령의 전, 즉 성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사실적으로 강림하셔서 그리스도인들의 안에 계시고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요 14:16-17).  이와 같이 구약의 약속과 예언이 성취되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강림으로 인해서 신약의 백성들에게 삼위일체의 지식이 생겼다.

3.1. 성령에 대한 오해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도 ‘성령’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꾸란에는 ‘알라에게서 온 영’이라는 ‘거룩함의 영’에 관한 진술은 있다. 하나님 자신의 영을 의미하는 ‘성령’이라는 단어는 꾸란에 없다. 알라 자신의 영에 관해서는 꾸란이 알고 있지 않다. 만일 알라 자신에게 영이 있다면. 그것은 아랍어로 al-ru:ḥ al-qudus 또는 al-ru:ḥ al-ila:hiy(the divine spirit)라고 써야 한다.

그러나 꾸란은 영(루흐)이라는 명사 앞에 정관사(알)이 빠져 있으므로 ‘루훌 꾸두스’(거룩함의 영)라는 영이 있을 뿐이다. 이 영이라는 단어는 ‘성령’이라고도 번역되고 최고의 피조물이라는 지브리일(가브리엘) 천사와 동일시하거나 알라의 영혼으로 번역되고 있다. <성 꾸란>은 예수 그리스도 역시 주님의 영혼(a sprit, [ruh])이라고 번역했다. 알라 자신은 영이 없기 때문에 꾸란은 하나님 자신의 영을 의미하는 성령의 조명이나 체험이 없고, 꾸란에서 성령을 뜻하는 가브리엘 천사와 대화했다는 무함마드조차 하나님 자신의 영에 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 자신의 영인 성령을 받은 일이 없가 때문이다. 무함마드는 성령에 관해서 알지 못함을 고백하고 있다.

“그들이 성령이 관해서 그대에게 물으리라 일러 가로되 성령은 주님 외에는 알지 못하는 것이며 너희가 아는 것은 미량에 불과하니라(Sura 17:85)”.

무함마드의 ‘계시’와 관련된 영은 메카에서 12년 동안 한 번도 자신의 정체를 언급한 적이 없다. 다만 주석가들이 이름 없는 그 영을 각주에 가브리엘이라고 주석했을 뿐이다.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은 모두 메디나에서 받은 ‘계시’ 중 2장과 66장 두 장에만 나타난다(Sura 2:97-98, 66:4). 메카에서 12년 동안 무함마드에게 계시한 영은 이름 없는 ‘그 영(Sura 97:4)’ 또는 ‘우리의 영(Sura 19:16-22)’이었다.

그러나 초기 계시에 속하는 Sura 97:4의 ‘al-ru:ḥ(그 영)’를 <성 꾸란>은 가브리엘 천사로 그릇 번역하였다. 성경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계시하는 데(눅 1:35) 반해, 꾸란에서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계시’한 것이다(Sura 4:171; 5:75; 19:88-93).

꾸란은 성령을 한편으로 가브리엘 천사로 대체하여 하나님의 영을 하나의 피조물로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 무함마드로 대체하였다. 그렇게 온 인류의 1/5이나 되는 무슬림들을 속임으로써 하나님의 최대의 선물인 성령을 받지 못하게 하고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하였다. 사실 성령과 보혜사는 같은 영이며 하나님 자신의 영인 줄을 알지 못하는 무슬림은,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영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 다가갈 수 있는 문이 완전히 폐쇄된 채 1,400년이라는 역사가 흘러갔다.

그러므로 무슬림들은 역사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과의 화해도 없고, 새 사람도 되지 못하고, 거룩함도 없다. 무함마드는 하나님 자신의 영인 성령을 알지 못했고, 그로 인해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더러운 영, 악한 영, 거짓 영, 거짓 예언자 등에 관한 개념도 분별력도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최대의 선물인 하나님 자신의 영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신약과 구약에 약속하신 바와 같이,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용서를 받은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다(행 2:38).

3.2. 아들을 증거하는 영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 15:26)”.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영이므로, 성령을 받아야 그의 증거로 인하여 비로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 수 있게 된다(고전 12:3, 요 15:26, 행 1:8). 그러므로 성령을 받지 못한 무슬림들이 성령을 알지 못하고, 성령의 증거를 받지 못하여 예수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서 ‘그리스도’라고 호칭하며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다.

‘성령’이라고 하는 이슬람의 ‘가브리엘’은 예수를 결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슬람에는 성령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그들은 우리를 신성모독죄인 아니면 다신론자로 여긴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먼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게 된다. 성령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하며 그리스도로 믿게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의 믿음은 성령의 증거에 의해서만 발생한다(고전 12:3, 요 14-16장).

그러므로 3년 동안 따라 다니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시몬 베드로가 비로소 예수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칭찬하시면서, 인간의 지혜나 지식으로 예수를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셔야만 알게 된다는 것을 친히 설명하신 것이다(마 16:16-17).

3.3. 또 다른 보혜사

Sura 61:6은 다음과 같이 예수가 자신의 입으로 자기의 뒤를 이어 올 무함마드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이스라엘 자손들이여 실로 나는 너희에게 보내어진 선지자로서 내 앞에 온 구약과 내 후에 올 아흐맏이란 이름을 가진 한 선지자의 복음을 확증하노라.’

Sura 3:81의 주 81-1에는 신구약 성경에 무함마드가 올 것을 예언해 놓았다고 하고, 그 근거를 신명기 18장 18절과 요한복음 14-16장에 두었다. 무슬림들은 요한복음의 보혜사 성령 ‘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ήτος)’가 본래는 페리클뤼토스(περικλύτος, 찬양받을 자) 즉 ‘아흐마드’인데,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왜곡하여 무함마드에 관한 예언을 성경에서 삭제했다고 한다. 그들은 아흐마드 ‘찬양받을 자(Der Gepriesene)’를 무함마드라로 해석한 것이다. 즉 예수의 후계자로 보혜사 성령이 오신다는 예언이 아니라, 예수의 후계자로 찬양받을 자인 무함마드가 온다는 예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꾸란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원어성경 요한일서 2장 1절이 가르치고 있는 ‘보혜사’ 또는 ‘대언자’(παρακλήτος)’, 즉 “아버지 앞에 있는 우리를 위한 대언자”가 있다는 것과,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또 다른 보혜사”가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보혜사”란 보혜사가 적어도 두 분 이상임을 의미하고, 그 한 분은 요한일서 2장 1절의 부활·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며, 다른 한 분은 예수께서 아버지께 올라가시면 보내주시기로 약속한 보혜사 성령이다.

“…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παρακλήτος)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를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

‘παρακλήτος(파라클레토스)’는 대언자, 변호사, 중보자, 조력자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부활·승천하신 후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한 대언자 내지 변호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주후 약 100년에 모음이 박혀 기록된 그리스어 ‘παρακλήτος’를, 600년 후에 모음 없이 기록된 아랍어 꾸란이 Sura 61:6의 Ahmad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리스어 ‘παρακλήτος’가 아니라 원래는 ‘περικλύτος(페리클뤼토스)’였다며 무지막지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어떤 기독교인들이 그 많은 번역 성경들을 다 모아 무함마드의 도래에 대한 예언을 지우려고 이 단어의 모음을 살짝 바꾸었단 말인가?

3.4. 부어주시는 성령(롬 5:5)

무함마드도 한 영을 받은 체험을 진술했다. 이 영은 메카에서 갑자기 나타나 무함마드를 몹시 두렵게 했다. 무함마드는 40세 되던 610년 라마단월, 메카에서 3마일 떨어진 광야에 있는 히라산 동굴에 들어가 명상했다. 그때의 상황을 알 부카리와 사히흐 무슬림은 무함마드의 애처 아이샤에게서 전승된 무함마드의 신비체험으로 다음과 같이 그들의 하디스에 전하고 있다:

무함마드는 히라(Ḥi:ra) 동굴에서 여러 날 동안 알라를 경배하였다. 그때의 경험을 무함마드는 그의 첫째 부인 카디자에게 설명하면서 그는 한 ‘천사(the angel)’를 보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그에게 다가와서 ‘읽으라’고 명했다. 그래서 그는 ‘나는 읽을 줄 모릅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그 천사는 그를 강제로 잡고(caught me forcefully) 눌러 그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했다. 그런 다음 그는 그를 떼어놓고 재차 읽으라고 하였다.

이 사태가 똑같이 세 번 반복된 다음  그 ‘천사’는 ‘읽어라! 너의 주의 이름으로! 그는 응혈(clot)로 사람을 창조하였느니라’고 말했다. 이 ‘계시’ 내용이 Sura 96장에 기록됐다. 무함마드는 마음에 큰 타격을 입고 그의 첫 부인 카디자에게 돌아와 “나를 덮어주시오! 나를 덮어주시오! 나에게 일어날 일이 무섭소!”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서 그 공포가 다 지나기까지 그를 덮어 주었다.

한국이슬람교 중앙연합회에서 발행한 <하디스> 선집에서는 무함마드의 영적 경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인기척 없는 적막한 사막의 동굴로 예고 없이 나타났다가 돌연히 사라져 버린 이 방문자는 악령의 통념적인 관념과 혼합이 되어 그를 경악시켰고, 그런가 하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모해서 사생활을 해롭게 간섭하는 정신상태에 사로잡히게 했다.’

위 서술과 같이 무함마드 자신도 처음에는 이 방문자를 악령(Jinn)으로 생각했다. 무슬림 하디스는 또 자비르(Ja:bir b. Abdulla:h)의 구전을 ‘It was terror-stricken till I fell on the ground’라고 전하며, 그 영을 만났던 무함마드의 고통을 서술하고 있다.

인간은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로 창조되었다. 무속 문화권에서는 선무당이 아니라 진짜 무당은 귀신을 받는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을 받는다(행 2:38).

인생의 수고와 고통과 소외감에서 해방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며,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란 바로 성령을 받은 사람이다.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날마다 행복을 고백할 수 있고,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 함을 고백할 수 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 7:38-39)”.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4=5)”.

인간이 접하는 영들에게서 우리는 큰 현상학적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 자신의 영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체험하고 그 영의 다스림을 받아 성품과 언행이 거룩해진다. 그런데 무함마드가 체험한 이 무명의 영은 사로잡고 짓밟고 두렵게하고 무서운 고통을 주었다. 무함마드의 성품도 거룩하게 변하지 않았다.

현상학적으로 보면 이 영은 무함마드나 꾸란의 주장과 같이 성경에서 약속한 하나님 자신의 영인 성령이 아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무함마드가 경험한 무서운 고통 같은 것을 체험하지 않는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요 3:16; 요 4:10) 평강과 희락을 체험하고(롬 14:17) 하나님의 거룩한 새 사람으로 변화를 받아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는다(갈 5:22).

영적인 역사가 어디에서부터인지, 즉 귀신의 역사인지 성령의 역사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체험주의자들의 위험성은 대단히 큰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무함마드가 만난 영은 반성경적이고 반기독적 ‘계시’를 준(Sura 3:54-55; 4:157.171; 5:75.116-117), 반그리스도적이고 적그리스도적인 영이다.

그러나 무슬림들도 이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고 죄사함을 받으면 기독교인들과 똑같이 성령을 받고 변화되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고 행복해진다.

3.5. 하나님의 자녀를 증거하는 영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고(갈 4:6), 하나님의 영이다(롬 8:9f). 그는 진리의 영이며(요 16:13, 14:17),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행 1:8, 요 15:26),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게 하며(요 16:14) 그리스도를 믿게 한다(고전 12:3). 그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영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보내신 그 영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증거를 받는다.

이와 같이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관계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것이다(요 3:16). 하나님이 인간 역사 속에 들어오신 목적은 인간과 하나님이 화목하고 임마누엘의 친밀성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다(롬 5:10-11, 2:2, 고후 5:16-19). 이 친밀성은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이 그리스도인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고(행 2:38, 요 14:16f) 피조물이 하나님의 신성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죄의 종 또는 진노의 자녀(엡 2:3) 또는 마귀의 자녀(요일 3:10) 관계가 변하여 ‘하나님의 자녀’ 관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호칭은 혈통 개념이 아니고, 약속에 의한 것이며(갈 4:28, 롬 9:8) 입양의 의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타락한 피조물을 정결케 하여 양자로 삼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오직 새로워진 하나님과의 관계개념이며(요 1:12-13) 하나님이 주신 권세이다(롬 8:21, 9:8). 하나의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뜻은 피조물이 신적 본질을 얻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세워진 새로운 관계를 말한다(요 3:16). 이는 오순절에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림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다(행 2:38, 요 14:16f).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고백한 베드로의 기독론은 하나님에 의한 것이며, 고린도전서 12장 3절의 기독론적 고백도 성령에 의한 것이다. 이 같이 아버지에 대한 신앙과 아들에 대한 신앙도 오직 성령의 조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성령의 조명이 없기 때문에 이슬람교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모든 피조물은 오직 ‘종’일 뿐이라고 고백한다. 종은 하나님과 체험적인 사랑의 교제나 사랑의 은사나 대화가 전혀 없다. 가브리엘 천사와 대화했다는 무함마드조차도 하나님 자신의 영인 성령의 감동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3.6. 영혼을 새롭게 하는 영

무슬림들은 매일 17번씩 동일한 기도 형식을 따라 알라를 경배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알라와 개인의 심중에 있는 깊은 대화를 하지 못한다. 또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은 체험이나 사유함을 받은 감격적인 찬송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서 철저한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어떤 무슬림도 그들의 예배생활이나 성지순례 등의 행위로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는다. 새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오시는 보혜사 성령(요 15:26)은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며, 새 피조물이 되고(고후 5:17, 롬 12:1-2), 새 마음을 주시고(겔 36:25-26), 새 사랑을 주신다(고전 13). 새로운 평안을 주시고(요 14:27), 하나님의 의로 의롭게 하시고(롬 3:24) 거룩하게 하신다(고전 6:11, 살전 3:13, 히 10:10). 기독교의 하나님의 영은 진리의 영이며(요 14:17), 의와 희락과 평안의 영이다(롬 14:17).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영적인 자유함이 있다(고후 3:15).

성 어거스틴은 그의 책 <고백록(The Confessions of Saint Augustine)>에서 “우리 마음은 주님 안에서 안식하기 까지 쉼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또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을 만나주시는 분이고(신 4:29; 렘 29:13), 죄를 저지른 인간이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와서 간절히 기도하면 응답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인간과 대화하기를 원하신다(렘 29:12, 33:3, 마 7:7-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7)”.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이 사는 목적을 찬송에 두고 계신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나라(사 43;21)”.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성령의 은사 중에 최대의 은사인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사랑은 타락 이후 인간에게는 없던 사랑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새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άγἆπη)이다(롬 5:5). 이 사랑은 인간이 경험하는 형제 간의 사랑, 부모의 사랑 또는 애정을 의미하는 인간적 사랑과는 질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은 하나님이 약속하고 예언하셨던 대로 부어주신 하나님 자신의 영인 성령이 강림으로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사랑을 부어주신 이유는,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믿고 받아들이며,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과 끊어졌던 관계가 다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신의 영(성령)을 받은 사람이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그 마음 속에 내주하시는 사람이다(고후 13:5). 성경은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버림받은 자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후 13:5).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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