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칼럼] 권리와 의무 사이에서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나라가 무엇을 해 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라.”

한 조직이나 공동체가 존립하고 발전하는 게 쉽지 않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그 공동체에게서 무엇인가를 얻고 싶어한다. 사실 그건 당연하다. 그런데 그 공동체가 존립할 수 있도록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국가가 무엇을 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살 궁리를 하라.” 기대가 무너진 사람들의 허망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단적인 예이다. 회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지만, 세월호 참사 때 자기 직무를 내던진 선장의 꼴사나운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선장은 모든 승선인들의 존경을 받는 위치다. 그가 누리는 혜택과 특권도 많다. 그렇다면 선장은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마지막까지 배와 함께 운명을 하는 게 의무다. 그런데 세월호 선장은 승객들을 두고 먼저 뛰쳐나왔다. 그래서 온 국민들과 세계인들에게 빈축을 샀다.

조직이나 공동체의 고민과 갈등은 바로 그것이다. 기업에서는 종업원들의 헌신을 요구하고, 종업원들은 그 만한 혜택을 달라고 요청한다. 문제는 어느 것이 먼저냐는 것이다. 예전에는 회사부터 살려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그래서 회사가 어려울 때 자기 살을 깎아가면서 회사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에게 돌아올 혜택이 줄어든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다른 회사로 옮긴다. 사실 그렇게 하는 데는 그 만한 이유도 있다. 요즘은 종업원들의 혜택을 보장해 주는 기업도 드무니까. 40, 50대에 퇴출당하는 회사를 위해 목숨 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어느 공동체나 특권은 마음껏 누리면서 책임과 의무는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 해 달라 저것 해 달라 요구는 많다. 하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제대로 감당하지 않는다. 의무는 수행하지 않으면서 혜택은 누리고 싶은 게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교회가 건강하려면, 교회에게서 무엇을 받기에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 내가 교회를 위해, 아니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자신의 사명은 감당하지 않으면서 이런저런 불평만 해서는 안 된다. 직분을 받기 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받은 직분을 충실히 감당하려는 이들은 많지 않다. 권리와 특권을 주장하는 이들은 많다. 그런데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려는 이들은 많지 않다.

공동체가 지탱될 수 있도록 각자가 기본적인 자리를 지키고 자기 역할들을 감당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예배나 기도 자리가 점점 비어가는 추세다. 모임이 있다고 해도 참여하지도 않는다. 특별새벽기도회를 하고 부흥회를 해도 교인들이 모이질 않는다. 제직회를 하고 공동의회를 해도 썰물처럼 우르르 나가 버린다. 그래서는 공동체가 건강할 수 없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느 크리스천 사회학자는 “오늘날 전 세계에 교회 다니는 사람의 95%는 벤치 워머에 불과하다”고 했다. 벤치 워머(bench warmer)는 벤치를 데우는 자, 후보 선수란 의미를 갖는다. 주전으로 경기를 뛸 기회가 없어서 벤치만 달구고 있는 후보 선수를 가리킨다.

직분자가 직분을 받아놓고도 벤치만 달구고 있다면 그 교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주께서 주신 직분을 갖고 뛰어야 한다. 주전 선수로! 쓰러질 때까지! 힘들고 어렵더라도! 상처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든든히 설 수 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5년? 10년? 그 후에는 은퇴한다. 그 후에는 죽음의 문으로 들어간다. 얼마 있지 않으면 관절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일을 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주께서 주신 직분과 사명을 제대로 감당해야 한다. 주님이 평가하시는 날이 다가오니까. 그때는 돌이킬 수 없으니까.

주께서 주신 직분을 소홀히 여기는 자들이 있다. 사회적인 커리어는 당당하게 내민다. 그런데 주께서 주신 직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사실 요즘 같으면 교회에서 받은 직분을 내미는 것도 뭔가 꺼려지기는 하다. 하지만 직분에 대한 프라이드가 사라져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재임 시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주일을 맞아 여의도에 있는 침례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광고시간에 담임목사님이 광고를 했다. “오늘 우리교회에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미국 남부 침례교회 카터 집사 부부가 오셨습니다. 지금 나와서 교인들에게 인사하겠습니다.”

그때 카터 대통령이 나와서 뭐라고 말했을까? “저는 오늘 이 교회의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를 미국 대통령으로 소개하지 아니하고 남부 침례교회 집사로 소개한 것을 감사합니다. 대통령직은 국민이 투표해서 세운 직분이지만 집사의 직분은 하나님이 주신 직분이므로 저는 집사의 직분을 더 존귀하게 생각합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의 대통령이다. 하지만 그는 주께서 주신 집사 직분의 가치를 소중히 여겼다. 우리 자신부터 직분에 대한 영광과 자부심을 갖지 못한다면 더 이상 희망은 다가올 수 없다.

영광스러운 직분이기는 하지만, 사실 사역의 현장에서는 별의별 일들이 다 있다. 직분을 감당하는 동안 상처도 받는다. 절망도 많이 한다. 그래서 직분을 벗어던지고 싶은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전쟁 중 한 군인이 적군의 총에 맞아 죽어가며 군목에게 유언을 했다. “제 어머니에게 전해 주십시오. 아들은 고통 없이 기쁘게 죽었다고요.” 이렇게 짤막하게 말했던 군인은 잠시 후 무슨 중요한 것이 생각난 듯 숨을 헐떡이면서 다시 간곡하게 말했다. “목사님, 한 가지 부탁이 더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학교 선생님께 이 말을 전해 주십시오.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고요. 그리스도인으로 편안하게 눈을 감게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한다고 전해 주세요.”

군목은 교회학교 교사를 찾아가 군인의 유언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여교사는 아무런 말없이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 교회학교 교사가 아닙니다. 교회학교 교사라는 직분이 대단치 않게 생각되어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나 제자의 유언을 들으며 결심했어요. 다음 주일부터 다시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렵니다.”

받은 직분을 수행하는 동안 이런저런 마음 아픈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래서 주께서 서머나 교회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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