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핵심, ‘십자가와 부활’에서 ‘인간 예수의 오심’으로?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WCC의 교회관과 선교관: Missio Dei 신학을 중심으로(1)

▲이동주 박사(선교신학연구소장). ⓒ크리스천투데이 DB
▲이동주 박사(선교신학연구소장). ⓒ크리스천투데이 DB

1. 서론

가톨릭교회, 정교회 그리고 WEA와 연합하고 있는 지상 최대의 교회연합단체로 몸통이 비대해진 WCC가, 지난 2013년 10월 한국에서 제 10차 총회를 개최했다. 필자는 WCC의 신학을 선교신학적 측면에서 연구하고, 이미 기독교 학술원에서 “WCC의 혼합주의 영성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WCC 신학은 이미 20세기 후반에 종교다원주의 신학, 세속주의적 Missio Dei 신학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21세기에 와서는 과거 고백했던 위의 비성경적 신학들의 토대 위에 복음주의 신학까지 더해, 종교다원적이고 세속적인 신학과 함께 복음적인 고백까지 동시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WCC의 신학적 동향을 깊이 있게 통찰하지 못하면 “교회가 다 하나되어야 한다”는 아름다운 성경적 주장과 함께, WCC의 복음적 포장에 매료되어 일부 복음주의 교회들이 편안하게 생각하고 WCC가 종교다원주의적이 아니며 오히려 복음적 연합기구라 주장하면서 그들에게 더 큰 무게를 실어주게 될 형편이다. 필자는 이러한 교회들에게 이미 발표된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출판물들과 필자의 원고를 읽어주고, 사실 여부를 확인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바이다.

이번에 필자는 WCC 자체가 표명한 문서를 요약함으로써, 필자나 타자의 해석이 들어가지 않은 WCC의 세속주의적 교회관과 선교관을 선교신학적 입장에서 밝히고자 한다. 그 근거 자료는 1967년 보세이에서 출판된, 『세계를 위한 교회』라는 WCC의 복음전도연구 분과에서 나온 두 개의 보고서이다.

이 문서는 ‘남을 위한 교회(The Church for Others)’라는 선교 구조에 관한 서유럽연구협의회(당시 서독과 동독)의 보고서(1965년)와, ‘세상을 위한 교회(The Church for the World)’라는 선교 구조에 관한 북미주연구협의회의 보고서(1967년)가 합본된 것이다. 위 서유럽연구보고서와 북미주연구보고서의 내용은 상당히 서로 비슷하며, J. C. 호켄다익의 저서 『흩어지는 교회』의 내용과도 신학적으로 대부분 병행된다.

그 이유는 보고서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세 사람의 학자들(Johannes C Hoekendijk, Letty Russeel과 Colin C. Willams)이 양쪽 회의에 다 참석하여 함께 보고서를 작성한 데 있다고 사료된다. 필자는 WCC의 신학에 관해 더 신학적으로 명료하게 다루어진 서유럽연구보고서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북미주연구보고서에서 더 선명하게 묘사된 부분을 첨가한다.

2.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신학

Missio Dei 신학자로서는 세속주의 선교신학의 상징적 인물인 J. C. 호켄다익을 손꼽고 있으나, 사실상 그 최초는 독일 복음주의 선교학자인 칼 하르텐슈타인(K. Hartenstein)이다.

그의 선교관은 복음적이고 전통적으로, 교회의 선교는 인간이나 조직의 능동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원천이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에게 있고, ‘하나님의 선교’란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심, 곧 Missio Dei에 참여하는 것이며, 구원받은 피조물 위에 하나님의 통치를 세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또 Missio Dei는 Missio eccleciae 이상이며, 교회의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로 인해 가능해진다고 확언함으로써, 호켄다익이 교회를 통하지 않는 Missio Dei를 주장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하르켄슈타인의 Missio Dei는 반드시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하르텐슈타인이 말하는 선교란 사도직의 계승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완성된 구원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다. 구원의 선포란 각 지역 교회가 지리적 경계선을 넘어, 그리고 사회적·문화적·종교적인 경계선을 넘어 온 세상 모든 민족의 사회, 정치·경제·문화적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구원 행위의 보편성을 말하며, 그 때문에 교회는 온 세계에 보냄을 받는다는 말이다. 온 세계가 다 선교지이며, 비기독교 지역이면 어디든지 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부르시면 선교 사역을 위해서 조국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야 한다. 하르텐슈타인은 이러한 선교를 포기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의 자격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1952년 빌링겐(Willingen) 세계선교협의회에서 본래적 교회론이 사라졌다고 지적하며, 하나님은 온 세계에 교회를 보내시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구원을 온 세상에 선포해야 하는 사명자임을 강조한다.

선교에 대한 하르텐슈타인의 특별한 제시는, 로마서 15장 15-16절 고백과 같이 사도직을 제사장의 직무로 본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사도직이었다. 바울이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드린 제물은 바로 성령으로 거룩하게 된 이방인이었다.

빌링겐 대회 이래 호켄다익 등에 의하여 다뤄진 ‘하나님 나라의 신학‘이 이 세상에서 펼쳐야 하는 샬롬을 위한 행동 신학이라면, 하르텐슈타인이 이해한 하나님 나라의 소식이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부름에 대한 결단을 의미한다. 이 부름에 의하여 먼저 제자들이 돌아왔고, 오늘도 이 부름에 대한 결단이 요청되는 것이다. 오늘이 바로 그 결단의 시간이고, 그를 믿고 돌이켜 자기 생명을 그에게 맡기는 시간인 것이다.

하르텐슈타인은 바로 이것이 “역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설명한다. “역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란, 하나님이 이념이나 프로그램이나 시스템 속에 자기를 계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한 인격 속에 계시하셨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하르텐슈타인의 Missio Dei 신학은 시종일관 온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을 전하여 듣고 돌이켜 구원을 받게 하려는 신학이다. 교회는 이러한 선교 중심적인 사명과 함께 존속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호켄다익과 서유럽연구협의회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샬롬을 세우는 것이라고 하며, 샬롬이란 모든 피조물의 잠재적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고, 모든 피조물의 궁극적 화해와 일치를 포함하여, 진리, 사귐, 평화를 지칭하는 사건이라고 한다. 이 평화(샬롬)는 개인이 홀로 즐길 수 있는 내적 평화(마음의 평화)가 아니고(26-29).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신호 유색인종의 해방, 산업사회의 인간화에 대한 관심, 농촌사회 발전을 위한 각가지 시도, 직장윤리의 추구, 지적 정직성과 통합에의 관심 등이다.

이 연구보고서는 미국에서의 자유 운동(freedom movement), 프랑스의 노동 신부(worker priest ), 영국의 산업 선교, 경제계, 행정계, 및 다른 기관들을 중심으로 한 아카데미 운동, 독일의 화해운동(Aktion Sühnezeichen)으로 교회는 샬롬을 증언하였다고 한다(30).

J. C. 호켄다익이 이해하는 교회는 머리 둘 곳 없던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위치를 가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하나의 기능일 뿐이다. 이러한 기능적 교회를 그는 “(남을) 위한 교회”(Pro-Existenz)라고 한다. 호켄다익은 자신을 주는 교회란 “교회의 모습(Statur)과 신분(Status)을 사멸시키고”, 세상 사람과 같이 되는 것이라고 하며, 그 성경적 근거로 빌립보서 2장 5절 이하에 있는 말씀으로 ”종의 형태를 입은 메시아의 삶“을 제시한다.

서유럽연구협의회도 ‘남을 위한 교회’는 재정적 지원을 남을 위해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재정 지출을 결정해야 하고,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전 소유를 바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며 위 호켄다익의 진술과 병행되는 고백을 하고 있다(83).

“인간 사이에서 걸으시는 하나님”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WCC의 하나님에 대한 진술은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하고, WCC는 하나님이 특정 지역(기독교 세계나 교회)이나 특정 인간 집단에 한정된 신이 아니고, 하나님은 성전 안에 에워싸여 계시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교회들의 담을 넘어 역사하시고, 교회와 세상을 동시에 포용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 속에서의 하나님의 선교에 봉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31).

WCC가 연구한 선교구조에 관한 중요한 내용은 전통적 교회의 입력구조(come-structure)에서 교회는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선교구조, 정적 사고방식, 세상에서의 고립, 현실 밖에 존재함으로 복음선교에 방해하는 장애물로 작용했고, Missio Dei를 방해하는 ‘이교적 구조’라고 한다. 이 보고서는 개종에만 몰두하는 전도는 선교와 정반대가 된다고 하며, 그 자신을 구원의 중개소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출력구조(go-structure)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참여하는 역동적인 구조이며 모든 확장 개념을 버리는 뜻이라 설명한다(36-38).

북미주연구협의회 보고서는 “우리 신학의 근본적인 자료와 전제는 더 이상 자명하지 않고 더 이상 당연시되지 못한다”고 거부하며, 신학적 사고 및 훈련의 센터들을 전통적 형태에 부수적인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160-162). WCC는 영구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은 변하며, 불변하는 상태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교회와 신학의 전통에 소중하게 간직돼 온 많은 상징들과 개념들이 그 타당성을 잃게 될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67).

또 북미주연구협의회 보고서는 평신도 교역(ministry)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평신도가 선교의 전달자이며, 평신도는 세상에서 종(교역자)이 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고 이 위임은 교회가 평신도의 형태로서 세상에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할 때 성취된다고 한다(140f).

이 문서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적 책임을 발견하려고 사회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WCC가 교회 갱신과 교회의 세속화 신학을 추구하고 있다. WCC가 사회학자들의 도움을 받고자 한 이유는 사회학자들이 신학자들보다 “성서의 역동성을 더 잘 인식”해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14-15).

WCC는 교회가 세속화되어야 할 이유를 성경에 두고 있다. 성경에 나타난 세상은 전적으로 세속적이며(20), 세속화는 현대 사회의 한 양상이므로 교회는 세속화를 받아들여야 하고(24), 신학의 지배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WCC는 세속화를 ”복음의 열매”로 이해한다(19).

서유럽연구보고서도 WCC의 교회를 ‘자신을 주는 교회(self-giving church)’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의 기본적 선교행위를 함께 나누고 동참하는 행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성직자와 목회자는 전문화된 세속적 직업과 역할 전모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우선적인 대화 적격자는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라고 한다(46).

그러므로 신학 전문인들에게만 안수식을 베풀 것이 아니라 비신학인들에게도 안수하여 교회를 대표하여 세속적 봉사를 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연구해야 한다고 한다(84). 평신도들의 신학적 능력은 전문가들에 의해 규격화된 교리 안에 전수되어서는 안 되고, 실제 상황과의 관계에서 추구되고 성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46-47).

WCC는 세상이 선교에 방해가 되어 온 전통적 구조를 대체하는 새로운 형태를 제시한다(44). 교회의 새로운 선교 형태란 세상 사람의 요구에 봉사하여,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주고 방문해야 할 일(마 25:34-39), 젊은이들과 노인들을 돕는 일, 성례전적 생활을 조성하여 소집단 속의 인간들이 자신을 개발하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일, 고독을 극복 할 일, 직업적 그룹들의 성장, 노동자 회중과 학생들의 모임, 사회봉사운동, 정치적 활동을 위한 유연성과 다양성 요청, 급변하는 사회에 올바르게 대처, 새로운 상황에 자신을 개방하는 일이라고 한다(38-44).

WCC는 ‘예수’를 ‘참 인간’으로서, 그의 삶이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일치되었던 유대인이며, 자신을 세상과 동일시한 분이라고 고백한다(69). 여기에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빠져 있다.

북미주연구협의회 보고서 내용에는 선교의 목표를 인간화로 묘사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구속적 선교의 절정이 참 사람이시며 새 인류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오심이 있다고 한다.

WCC에 의해 기독교의 핵심인 신앙적 액센트가, 십자가와 부활에서 인간 예수의 ‘오심’으로 옮겨간 것이다. <계속>

/이동주 박사(선교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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