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칼럼] 고통을 가져오는 ‘욱’하는 세상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아이들의 화 다스릴 수 있는 최고 훈련장은 가정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75살 된 할아버지가 설 연휴 전, 한 식당에서 자기 조카에게 3억 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용도도 밝히지 않고 적지 않은 돈을 요구하기에 조카는 거절했다.

할아버지는 속상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결국 열흘 후에 엽총을 들고 형의 집을 찾아갔다. 아마 상속 문제로 티격태격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상황은 자기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결국 엽총을 들고 86세의 형을 쏴 죽였다. 84살 형수까지 쏴 죽였다. 이들은 현장에서 사망했다. 심지어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마저 살해했다. 이후 그는 5분 정도 경찰과 대치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형은 2008년 남양택지지구 개발에 따른 토지 보상으로 10억원 가량을 받았다. 그 돈으로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을 지었다. 동생은 오래 전부터 형보다 상속을 적게 받았다는 불만을 품고 있었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불만은 결국 살해와 자살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남편과 단둘이 살면서 폐지를 주워 근근이 생활을 꾸렸던 할머니가 있다. 어느 날 주택가 이면도로에서 폐지를 줍고 있었다. 그런데 한 남성이 할머니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쓰러진 할머니를 짓밟고 있었다. 출근길 시민이 그 광경을 목격하고 황급히 차를 세우고 다가갔다. 그러자 남자는 폭행을 멈추고 유유히 사라졌다. 결국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할머니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후송됐다. 그러나 결국 숨졌다. 부검 결과는 참혹했다. 광대뼈가 부러지고 위턱이 산산조각 났다. 귀와 입에도 멍이 들어 있었다. 사인은 두부손상이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일진’으로 활동하던 20살 청년이 있다. 몇 차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성적이 상위권이었던 그는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얼굴 예쁜 여자는 모든 게 용서받는다는 세상이 아닌가? 같은 원리로 공부 잘하는 자녀는 모든 게 용서되는 현실이다. 결국 부모도, 학교도 그의 폭력 성향을 눈감아줬다.

하지만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말았다. 재수학원에 들어간 뒤부터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툭하면 격렬하게 화를 냈다. 그의 폭력 성향은 갈수록 짙어졌다. 편의점에서 술병을 마구 집어던지기도 하고, ‘묻지 마 폭행’으로 경찰서를 들락날락했다. 심지어 자해를 하기도 했다. 입원치료가 필요할 만큼 심하게 자해를 한 뒤에야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어느 날 안동에 있는 어느 가정에서 32살 난 남편이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고 있었다. 그런데 방 안에 있던 29살 난 부인이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신을 무시하는 말을 들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1미터 가량의 철제 부지깽이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아내는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다.

마음에 안 들고, 기분이 안 내키면 거침없이 불지르고 훔치고 때리고 부순다. 욱하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요지경으로 험상궂어진다. 치미는 분노와 화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 늘면서, 사회 곳곳에서 이런저런 문제가 터지고 있다.

60대 남자는 술 마시고 들어왔다고 잔소리하는 아내를 홧김에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토막내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떤 여성은 택시기사에게 길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갖은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이른바 ‘택시막말녀’ 소동이다. 지하철 안에서 노인이 여대생에게 막말을 퍼붓기도 한다. 출근길 행인을 어깨를 부딪쳤다는 이유로 무차별 폭행한다. 아내와의 사소한 말다툼 끝에 토막 살인을 저지르는 이도 있다.

그러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970년 ‘미래의 충격’이라는 책에서 이미 예견하지 않았던가. “라이프 사이클이 빨라지고 제품 생산 사이클도 빨라지면서 친구조차 지속적으로 사귀기 어려워지는 정서적 문제가 올 수 있다.”

어떤 이는 안타까운 고백을 한다. “순간적으로 화가 폭발한다. 참으려 해도 조절이 안 된다. 돌아서면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한다. 화를 너무 자주 내서 주변 사람들과 관계도 안 좋아졌다.” 이런 증상을 흔히 ‘분노조절장애’라고 한다.

분노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분노 자체가 죄가 될 것도 없고, 문제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조절능력이다. 분노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에게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을 버리라’고 요청하고 있다(엡 4:31).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는 분노의 감정을 오래 품지 말아야 한다.

순간적으로 분을 내는 일이야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해가 지도록 분을 품고 있어서는 안 된다. 분노의 감정을 오래 품고 있다 보면 반드시 마귀가 틈을 탄다(엡 4:16). 마음의 그릇에 분노의 감정을 오래 축적해 두면 가스가 폭발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를 방치해 두면 머지 않아 마귀에게 마음의 세계가 장악되고 말 것이다.

분노가 일어나는 상황을 피할 수는 없다. 생각지도 않은 일에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 터져서 감정이 폭발할 때도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속상할 때가 있다.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왔을 때 당황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데 마음을 통제하고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평소에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을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간의 감정은 통제 불능의 세계가 아니다. 얼마든지 통제 가능하다. 문제는 평소 훈련이다. 평소에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통제하고 절제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옛말에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도 막는다”고 한다. 평소에 참는 훈련을 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는 없다. 내가 기대하는 대로 모든 상황이 질서정연하게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환경이나 사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조건화되지 않는다. 그래도 마음을 다스리면 문제가 없다.

분노의 문제에서 도망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세계를 정리해야 한다. 헨리 나우웬은 인간관계를 깨뜨리는 가장 무서운 적을 분노로 규정했다. 그는 “가까운 이웃을 잘 섬기기 위해 사람은 두 가지 면에서 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의 과거에서 죽어야 하고, 둘째는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에서 죽어야 한다.

분노의 폭발을 막으려면 속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아무리 짜증이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도, 마음에 있는 감정의 찌꺼기를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면 서로 대화를 나는 속에서 분노의 가시를 제거할 수 있다.

요즘은 무엇보다 마음 치유가 필요한 시대이다. 우리 주변에 몸을 치유하기 위해 이런저런 의학기술과 제품을 의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런데 내면 치유가 더 절실하다. 상한 감정을 치유하지 않고는 욱하는 세상을 치유할 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식받아야 한다. 성령의 통치 아래 자신의 삶과 감정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은혜의 강물로 마음밭을 물들여야 한다.

아이들의 성적에만 집중하는 학교나 교회가 인성교육과 훈련에 눈을 떠야 한다. 물론 이미 눈을 뜬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이론에 불과했다. 머리에만 머물렀지 가슴까지 내려오지는 않았다. 머리와 가슴 사이가 그렇게 멀었던 게다. 아이들의 화를 다스리는 훈련장은 뭐니뭐니 해도 가정이 최고이다.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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