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칼럼] 당연히 모르지!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최근 우리네 마음을 참담하게 하는 일이 있었다. 10살짜리 초등학생이 지은 동시집 <솔로 강아지>에 나오는 ‘학원 가기 싫은 날’이라는 시 때문이다.

10살 어린아이에게서 어떻게 그런 단어들이 나올 수 있을까? 더구나 감수성이 예민한 여자아이 아니던가. 정말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다. 그런 걸 어떻게 동시라고 소개할 수 있는지. 그런 아이가 자라서 작가가 되기라도 한다면, 세상을 어떻게 표현할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가기 싫은 학원을 이리저리 보내는 엄마가 짜증스럽더라도, 아무리 학원을 가기 싫더라도, 엄마에게 어떻게 그런 표현을?

자식 농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라는 경고로 받아야 한다. 아이들의 행복과는 상관 없이,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부모의 발상이 아이들을 이렇게 삭막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그렇게 키운다고 특출한 아이가 되는 게 아닌데. 특출한 아이가 되었다고 부모의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아니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렇게 후회할 일이 벌어질 텐데. 그런데도 부모들은 성공지향적으로 아이로 키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어버이날을 보내며, 부모님을 생각할 때 좋은 추억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나쁜 추억만 떠오르는 사람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어느 친정 엄마가 딸에게 쓴 짤막한 편지가 있다.

“너희들이 주는 돈으로 그럭저럭 살면 되는데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됐나’ 싶어 공연히 서글프고 눈물도 났다. 다리가 어찌나 아픈지. 내 몸이나 잘 간수하면 다행일 나이에 ‘내가 왜 이러고 사나’ 후회도 했지. 수시로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한 달에 20만 원. 가만 있으면 그 돈을 누가 주냐? 발품 파니 그래도 다달이 20만 원씩 들어 오잖냐. 그런데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금방 또 마음이 바뀌지 뭐냐. 그만 둬야지. 이달까지만 하고 그만하겠다고 해야지.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갈등이 왔다.

그러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벌써 넉 달을 넘겼으니 모두 합해 80만 원 벌었다. 이젠 마음 굳혔다. 지금은 방학이라 쉬고 있지만 방학 끝나면 또 하려고 한다. 내년에도 신청할 거야.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학교가 크거든. 비라도 오는 날은 혼이 쏙 빠질 것 같아. 그런 날은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까지 몰려 나와 함께 교통정리를 하지. 처음에는 미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 잘한다. 선생님들도 ‘할머니, 할머니’ 하며 내게 얼마나 깍듯이 하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 돈 번다고 친구들에게 국밥도 한 그릇씩 사 주고, 일 끝나고 오는 길에 옷집에 들러 옷도 하나씩 사 들고 온다. 그런 일을 하니 깨끗해야지. 아무 옷이나 입고 다니면 남 보기도 흉하잖냐?

신발도 편하고 좋은 걸로 하나 샀다. 20만 원이라 해서 내 한 달 월급인데 싶어 잠시 망설였지만, 그 신발 신고 더 편하고 기쁘게 일할 수 있으니 그것도 잘한 것 같다. 내 걱정은 마라. 내가 번 돈으로 손자들 맛있는 것도 사주고 며느리 용돈도 몇 푼씩 집어 주고. 내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하는 날까지 해 볼란다.”

어느 친정 엄마가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며 돈을 버는 이유이다. 일흔 여섯인 엄마가 아이들 등교 시간에 맞춰 한 시간씩 교통정리를 하는 게 가슴 찡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로 그것도 낙이리라 싶어 안도를 한다.

부모를 생각하면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반응이 나온다. 어떤 이는 부모님께 해드린 게 너무 없어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린다. 어떤 이는 효도도 제대로 못한 채 다른 세상으로 먼저 보낸 부모를 생각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어떤 이는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자꾸 회상되어 속상함과 분노의 눈물을 흘린다.

때때로 남들 부모보다 멋지지 않은 내 부모님 때문에 속상할 때가 있다. 다른 부모들이 해주는 것처럼 해 주지 않은 부모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이 앞설 때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잊어선 안 되는 게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애쓴다는 사실을.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부모는 없다.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부모는 없다. 부모는 자녀에게 늘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한다. 설령 ‘악한 부모’일지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으로 주려고 한다.

가끔 맛있는 반찬을 먹을 때, 아이들을 위해 먹지 않을 때가 있다.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면 아이들은 “아빠가 먹어!”라고 한다. 그럴 때면 웃으며 말한다. “아빠는 너희들이 먹는 게 더 행복해. 그런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알려나?” 그러면 아이들은 말한다. “당연히 모르지~.”

그렇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다 알겠는가? 이렇게 말하는 나도 부모님의 마음을 아직 다 헤아리지 못하고 있으니까. 시골을 갈 때면 어머니는 차 트렁크에 이것저것 싸 주시려고 애쓴다. 혹여 하나라도 빠뜨릴까봐 냉장고와 창고에서 미리 꺼내 문 앞에 두신다.

지난번에는 쑥을 뜯어 “부드러울 때 뜯어서 약이 될 거야”라며 싸 주신다. “어머니, 이제 우리 살 만해요. 문만 나가면 시장에서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어요. 어머님만 잘 드시고 건강하시기만 하면 돼요.” “그래도 세 아이 가르치려면 힘들지!” 그러면서 기쁨으로 부지런히 이것저것 챙기신다. 그런 부모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제대로 공경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성경은 자녀들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제시한다.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 부모를 공경하라!’ 그런데도 부모에게 순종하지 못하고, 부모를 제대로 공경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먹고 살다 보니 부모님을 돌볼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자식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느라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지만, 미처 부모님을 봉양할 엄두도 못 낼 때가 있다. 그런데 기억할 사실이 있다. 그 부모는 언제까지나 우리를 기다려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어떤 이는 성장 과정에서 부모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서 부모님의 얼굴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상처가 너무 커서 얼굴 보는 것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얼마나 아팠으면 그럴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기억할 사실이 있다. 그런 부모도 하나님의 대리자로 보냄 받은 존재임을. 부모 역시 당신처럼 온전하지 못한 존재임을. 부모는 싫든 좋든 간에 당신을 존재케 한 분임을. 그래도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애쓰는 분임을. 부모에게 불평하고 있는 당신을 쳐다보고 있는 당신의 자녀가 있음을.

우리가 원망하고 있는 부모는 그 시대의 산물이다. 우리보다 훨씬 더 어려웠던 시대, 그래서 훨씬 더 고생하며 살았던 인생. 자식 된 우리는 부모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감정과 여건에 집중하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에 집중하면 머지 않아 서먹서먹한 관계, 깨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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