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20:8-11, 마 12:8
이 글은 김명혁 목사(본지 편집고문,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님이 5월 24일 서울 쌍문동 목양교회와 새성교회의 연합 주일예배에서 전한 설교문입니다. 본지는 김명혁 목사님의 동의를 얻어 이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오늘 쌍문동과 상계동에 있는 두 작은 교회가 한 곳에 모여서 연합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 부족한 사람이 여기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두 교회의 이무환·배종부 목사님들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1년에 한 번씩 통영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서 오전과 오후에 설교를 하곤 하는데 오후에는 다섯 교회가 함께 모여서 연합예배를 드리곤 합니댜. 오늘 쌍문동과 상계동에 있는 두 교회가 함께 모여서 연합예배를 드리게 되어서 매우 좋습니다. 우선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오늘 연합예배와 관련된 아름다운 성경 말씀 한 곳을 읽어드리겠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 “연합과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예찬했습니다. 오늘 두 교회가 연합하여 동거하면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하셨는데 오늘 이곳에 하나님께서 영생의 복을 명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무슨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이무환 목사님에게 물었더니 신앙의 선배님들과 주일성수의 신앙에 대해서 설교하면 좋겠다고 해서 오늘 “신앙의 선배님들이 가르쳐주신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몸과 마음을 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신자들이 제일 먼저 힘써서 하여야 할 것이 바로 몸과 마음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역사의 종말이 올 때 목회도 전도도 구제도 봉사도 선교도 다 그치고 말지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는 영원토록 계속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계 7:9-12). 이것이 하늘에서 드려지는 영원한 “안식일 예배” 또는 영원한 “주일 예배”의 모습입니다. 우리 죄인들이 “예배”를 바로 드리기 위해서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안식일 제도를 만들어주셨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주일 제도를 만들어주셨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나신 날은 모두 주일이었고 사도 바울과 초대교회가 함께 모여서 예배 드린 날은 모두 안식 후 첫날인 주일이었습니다.
청교도들과 초기의 한국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주일성수”의 신앙이었습니다. 청교도들과 한국교회의 신앙의 선배님들은 “주일성수”를 가장 귀중한 신앙생활로 여기며 “주일성수”를 철저하게 했는데, 오늘의 한국교회는 주일성수의 신앙을 거의 포기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일부 목회자들과 교수들은 주일성수를 “율법주의”로 간주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많은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주일날 오락, 여행, 매식, 사업, 공부 등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고 있습니다. 주일 대신에 다른 날에 예배 드려도 된다고 말하는 정신 나간 목회자들과 교수들까지 생겼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신앙 중에서 “주일성수”의 신앙이 가장 귀중한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도 “예배의 제사”를 받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는 출애굽의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즉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데 있다고 거듭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8: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9:1).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바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나를 섬길 것이니라”라는 말씀을 12번 이상이나 반복하셨습니다. 여기 “섬길 것이니라”라는 말은 “예배할 것이니라”라는 말씀입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 출애굽의 목적은 “예배”와 안식일 성수”에 있었습니다. 출애굽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독립하여 자유를 누리는데 있다기 보다는 복 받고 잘 사는데 있다기 보다는 하나님께 “예배의 제사”를 드리는데 있다고 거듭해서 말씀했습니다.
“예배의 제사”의 중심은 구약시대에는 “안식일 성수”의 “예배의 제사”였고 신약시대에는 “주일성수”의 “예배의 제사”였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 즉 첫 주일 새벽에 부활의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에게 나타나서 위로와 기쁨과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저녁 즉 첫 주일 저녁에 부활의 주님께서 사랑하는 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강과 기쁨과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 20:19-23). 한 주가 지난 그 다음 주일 저녁에 부활의 주님께서 도마를 포함한 일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서 평강과 믿음과 사명과 부여하셨습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6,27). 이상하게도 부활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날은 언제나 주일날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신약의 성도들은 주일날에 함께 모여서 예배와 제사를 드렸습니다. “주일성수”의 신앙은 성경의 중심적인 신앙이고 기독교의 핵심적인 신앙입니다. 이제부터 “신앙의 선배님들이 가르쳐주신 주일성수의 신앙”이란 제목으로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성경적으로 둘째는 교회사적으로 셋째는 저의 간증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주일성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구약 성경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분명하고 강하게 명령했습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신앙의 선배인 모세가 안식일 성수를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인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니”(출 31:14, 35:2, 민15:35).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이유와 목적은 인간을 복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창 2:3, 출 20:6, 신 5:10).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하사하신 목적은 저들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혜와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안식일 성수의 명령은 구약시대에 그친 것이 아니고 신약시대에도 이어졌습니다. 구약의 안식일 제도는 구약 시대에 잠깐 동안 주어진 제도가 아니라 “대대로” 지킬 “영원한” 언약이고 표징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했습니다(출 31:13, 16, 17). 구약의 안식일 제도는 신약의 주일을 준비하는 예표였습니다. 사실 구약의 거의 모든 제도는 신약 시대를 준비하는 예표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시고 완성자시라고 말씀했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 12:8). 주일성수를 무시하고 등한시하는 사람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은 구약의 명령이기 때문에 구약의 율법이기 때문에 신약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주일을 철저하게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망령되게 말합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모든 날이 주의 날이기 때문에 반드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필요가 없다고 어리석게 망령되게 말합니다. 주 5일 근무제도가 실현되고 있는 지금 일요일 대신 금요일 오후나 저녁에 모여서 예배를 드려도 상관이 없다고 망령되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의도를 알지 못하는 무식하고 무례한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섭리와 의도를 거역하는 반역자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미 말씀 드린 대로 부활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날들은 안식 후 첫 날인 “주일”이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인 주일날 부활의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실에는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창조와 구속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신 날을 새로운 안식과 예배의 날로 제정하신 것이었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신 날도 안식일 이튿날인 “주일”이었습니다. “주일”에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신약의 대표적인 신앙의 선배인 사도 바울도 안식 후 첫날인 “주일”에 성도들과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밤 늦게까지 전했다고 했습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쌔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 20:7). 부활의 주님께서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신 날도 주의 날 곧 “주일”이었습니다(계 1:10). 신약 성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약의 주일은 영원한 천국의 안식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히 4:1). 그리고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히 4:11)고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구약과 신약 성경이 가르치는 “안식일”과 “주일”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중요한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며 복 주셨고, 신약시대에는 “주일”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며 복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늘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십니다.
둘째로, “주일성수”에 대한 교회사의 가르침에 대해서 말씀 드립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을 분명하고 강하게 가르칩니다. 초대교회의 신앙의 선배들인 교부들은 이제는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지 말고 일요일 “주일”을 지키라고 가르쳤습니다. 2세기경의 문서인 디다케와 2세기의 변증가 져스틴은 “주일”을 지키며 예배 드리라고 가르쳤습니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는 321년 칙령을 내려 일요일에는 휴식할 것을 명했습니다.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주일성수”를 철저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을 묶는 적극적이고 영속적인 도덕적 계명을 주시므로 일곱 날 중 하루를 안식일로 정하여 자기를 위하여 거룩하게 지키도록 제정하셨다. 이 날이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의 때까지는 일주일의 마지막 날이었는데, 그리스도의 부활의 때로부터는 일주일의 첫 날로 바뀌게 된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 날을 주일이라고 부르는데 이 날은 세상 끝날까지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일로 지키도록 된 것이다. 이 날에는 그들의 세속적 직업과 오락에 대한 일이나 말이나 생각으로부터 온 종일 쉬어야 할 뿐 아니라 공적 내지 사적 예배행사와 자선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신앙의 선배인 촬스 핫지는 “주일성수”를 무시할 때 가정과 사회는 타락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예배모범은 “주일성수”를 강조하면서 “주일”을 “종일토록”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주일을 기념하는 것은 사람의 당연한 의무이니 미리 육신의 모든 사업을 정돈하고 속히 준비하여 성경에 가르친 대로 그 날을 거룩히 함에 구애가 없게 하라. 이 날은 주일인 즉 종일토록 거룩히 지킬지니 공동회집으로나 개체로 예배하는 일에 씀이 옳으며 종일토록 거룩히 안식하고 위급한 일 밖에 모든 사무와 육신적 쾌락의 일을 폐할지니 세상 염려와 속된 말도 금함이 옳다. 먹을 것까지라도 미리 준비하고 이 날에는 가족이나 집안 사환으로 공동 예배하는 일과 주일을 거룩히 함에 구애가 되지 않도록 함이 옳다.” 1920년대 한국교회에 큰 부흥 운동을 일으켰던 신앙의 선배인 김익두 목사님은 “주일 범한 사람들은 구약시대 같으면 다 때려 죽일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때려 죽이지는 않지만 죄는 죄입니다”라고 아주 강하게 설교했습니다.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순교자들이고 신앙의 선배들인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은 감옥에서 가족과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새벽기도와 주일성수의 신앙을 철저하게 지키라고 권면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존경하는 마지막 신앙의 선배라고 할 수도 있는 방지일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전에는 주일 아침 예배나 저녁 예배에 참석하는 신자들의 숫자가 거의 같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은 문제야요. 그리고 주일 아침에 예배 보고 교인들이 헌금 낸 돈으로 점심 먹고 오후 예배 보고 집으로 가니 참 문제야요. 우리 영등포교회도 오후 예배로 바꾸자는 말이 나오는데 방 목사 죽은 다음에 바꾸자고 해요, 나 참!” 저는 성경의 가르침과 신앙의 선배들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즉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을 무시하고 현대적 유행에 영합하며 “주일성수”를 무시하는 목회자들은 무서운 죄를 범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주일성수”에 대한 저의 간증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11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와 고향을 떠나 38선을 넘어서 남한으로 왔는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망극하신 은혜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주일성수”를 하면서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평양 제오인민학교에 다닐 때 주일날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교회에 간다고 거의 매 월요일마다 학교에서 벌을 받곤 했습니다. 정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주일성수”의 신앙을 굽히지 않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서 신앙생활을 철저하게 했습니다. 평양 서문밖 교회의 주일학교 선생님들인 이인복 선생님과 명선성 선생님과 최병목 선생님들이 새벽기도의 신앙과 주일성수의 신앙과 순교 신앙을 저의 몸과 마음에 심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고 싶다는 소원까지 지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은 신의주 제이 교회(한경직 목사님이 목회하시던)와 평양 서문밖 교회에서 목회하셨는데 신의주에서는 일본 경찰에 의해서 자주 투옥되었고 평양에서는 공산당에 의해서 투옥되셨습니다. 결국 저는 평양 사동 탄광에서 복역 중이신 아버지를 찾아 가서 “주일성수”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가서 그곳에서 신앙생활과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한참 바라보시다가 그러면 그렇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를 매우매우 사랑하시던 저의 어머니도 울면서 그러면 가라고 말씀했습니다. 만 11살 되던 1948년 8월 저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동생들과 감옥에 계신 아버지를 뒤에 두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떠났습니다. 38선을 넘던 날 밤 우리 일행은 경비원들에게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손을 들고 서지 않으면 총을 쏜다고 위협했습니다. 어른들은 모두 손을 들고 섰습니다. 그러나 저는 설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온 힘을 다해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캄캄한 밤을 뚫고 40여분 동안 남쪽을 향해서 달렸습니다. 저는 혼자서 언덕을 넘고 파 밭을 달리고 강을 건너서 남쪽 땅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초가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떤 청년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저를 서울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서울에 사시던 이모님 댁에 살면서 방산국민학교 5학년에 편입하여 공부하게 되었고 영락교회에 다니며 주일성수와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밤에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지만 저는 신앙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매우매우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별의 슬픔과 아픔이 가득한 저의 나그네의 삶을 매우 많이 복 주셨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부족한 죄인이지만 “주일성수”를 저의 일관된 신앙과 삶의 원리로 삼게 되었습니다.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과 고등학생과 대학생 때는 물론 한 평생 목회에서 은퇴할 때까지 주일은 아침부터 밤까지 종일 교회에 있으면서 예배와 봉사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매우매우 큰 복이었습니다. “주일성수”의 신앙을 강조하다가 박정희 군사정부의 미움을 사서 1977년 11월 20일 아침 남산 중앙정보부의 지하실로 붙잡혀 가서 밤 12시가 지나 다음날 이른 새벽까지 혹독한 심문을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 한 번도 불안하거나 두려워한 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심문하는 두 사람을 책망하기도 했고 충고하기도 하고 권면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허물과 잘못을 모두 아시면서도 저를 매우 많이 복 주신 이유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였지만 하나는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순교하신 저의 아버지의 순교의 피 때문이고 또 하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가족과 고향을 떠난 저의 “주일성수”의 신앙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일성수”의 신앙은 성경의 중심적인 신앙이고 기독교의 핵심적인 신앙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이 가르치고 물려준 신앙의 유산입니다. “주일성수”의 신앙은 주일을 종일토록 거룩하게 지키며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섬기는 신앙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은 자기 자신과 세상을 부인하며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주일 날에는 오락이나 여행이나 매식이나 사업이나 공부 등을 금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며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우리들의 삶이 변화됩니다. 우리들의 운명이 바뀌어집니다.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복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무가치한 삶이 가치 있는 삶으로 바뀌어집니다. 몸과 마음과 시간을 되는대로 쓰고 주일을 되는대로 지키면 우리들의 삶이 되는대로 뒤죽박죽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에서 멀어집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순교 신앙은 물론 새벽기도의 신앙과 주일성수의 신앙을 포기하고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에 치중하는 세속화와 인간화로 치닫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일 대신 토요일이나 금요일에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신 나간 사람들이고 귀신들린 사람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주일날 오전 예배만 드리고 저녁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절반만 지키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방지일 목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속아넘어가지 말기 바랍니다. 방지일 목사님께서 주일성수가 해이해지는 것을 아쉬워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귀 담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주일성수의 원리와 방법”을 요약하므로 설교를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주일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구속 사역을 기쁨으로 기념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에 슬퍼하거나 금식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면서 이 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이 날은 자신과 남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며 예배와 영적 사역을 위해서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자선과 봉사의 일을 하면서 이 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의 권면에서 가난한 형제들을 위한 구제 헌금이 주일 예배의 중요한 부분이 됨을 암시해 주었습니다. 넷째로, 구원 공동체적 의식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교제하면서 이 날을 기쁨으로 지켜야 할 것입니다. 교제의 의식을 결한 어떠한 주일성수의 노력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주일은 개인에게 속한 날이 아니라 신앙공동체에 속한 날입니다. 다섯째로, 앞으로 완성될 영원한 천국의 안식을 바라보면서 종말론적 기대 속에서 주일을 열심히 지켜야 할 것입니다. 여섯째로, 주일에 불가피한 일들을 제외한 모든 세속적 업무를 중단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속적인 업무를 중단하는 것은 주일을 온종일 거룩히 지키기 위한 방편인 동시에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자신의 공로나 노력을 의지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구속과 부활의 사역만을 높이고 찬양하는 신앙의 간증이요 고백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일곱째로, 비기독교적 사회에서 생활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희생의 각오를 가지고 주일성수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함께 모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희생을 각오한 모임이었습니다. 여덟째로, 교회는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므로 사회와 국가를 점차 복음화하여 교회가 처해있는 국가 사회가 주일성수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편의를 제공해 줄 수 있게 되기를 위해 기도하고 힘쓰면서 주일을 거룩히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가장 귀중한 신앙은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께서 물려주신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와 여러분들이 “주일성수와 예배”를 소홀히 하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에서 멀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주일”을 종일 거룩하게 지키며 정성껏 “예배” 드림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복을 계속해서 받으시기 바랍니다. 가장 귀중한 신앙은 우리 신앙의 선배님들께서 물려주신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신앙을 죽을 때까지 귀중하게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복이 목양교회와 새성교회와 성도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부끄러운 우리 한국교회 위에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