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맞아도 서로 맞추면서 살아야 하는 게 인생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KTX? 자가용? 고속버스? 정답은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생을 생각해 보라. 어떻게 마음이 맞는 사람과만 살 수 있겠는가? 싫어도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살 수밖에 없다. 마음이 안 맞는 배우자이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 마음이 안 맞는 자식이지만, 그래도 떼 버릴 수 없는 혹 아닌가? 그게 인생이다. 안 맞아도 서로 맞추면서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다.
결혼한 지 36년 된 부부가 있다. 적지 않은 세월을 함께 살았다. 알 만큼 알 때가 됐다. 이제 적응할 때도 됐다. 그러나 부부가 하나되기란 쉽지 않음을 새삼 느낀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과 함께 먹으려고 꼬막 1kg을 사왔다. 아내는 꼬막을 삶아 남편이 있는 테이블에 내놓았다. 그리고 부엌에서 일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남편은 꼬막을 먹으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와서 먹어!” 그러나 아내는 하던 일도 있고, 남편을 생각해서 “여보, 난 생각이 없으니까 당신 다 먹어!”라고 했다. 잠시 후 일을 마치고 와 보니 남편이 정말 꼬막을 다 먹고 한 개도 남기지 않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아무리 안 먹는다고 해도 그렇지!”
아내는 화가 났다.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도 헤아리지 못하는 남편이 괘씸했다. 그래서 “어쩌나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다시 꼬막을 1kg 더 사왔다. 이번에는 ‘다 먹으라’는 말도 하지 않고 남편이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보았다. 역시 남편 혼자 다 먹어치웠다.
이번에는 남편에게 섭섭한 마음을 표현했다. “세상에 어떻게 그 많은 꼬막을 혼자서 다 먹어 치울 수가 있어?” 그랬더니 남편은 남편대로 속상한 마음을 터놓는다. “당신이 안 먹어 놓고 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그러나 아내는 수십 년을 살아놓고도 아내의 마음을 그렇게 몰라주는 남편이 서운하다.
왜 그렇지 않은가? 엄마가 아이들에게 ‘엄마는 괜찮으니 너희들 다 먹어라’고 했지만, 엄마가 먹고 싶지 않은 건 아니지 않은가? 자식들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리니까 그렇다손 치더라도, 남편은 달라야 하지 않은가? 남편을 생각하는 아내의 마음을 그렇게 모르는 걸까? 나이가 들었는데도.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는데도. 아내가 꼬막을 좋아하는 줄도 모른단 말인가? 아내는 푸념한다. ‘안 먹는다고 해도 다 먹어치우고, 아무 말을 안 해도 다 먹어치우는 남편. 아내의 마음을 좀 헤아려주지 않는 남편이 못내 섭섭한 거지요.’
그러나 나는 그 아내를 보고 말했다. “이중 메시지를 주면 상대방은 곤란하답니다. 차라리 먹고 싶은 데 할 일이 있어서 조금 있다가 먹겠다고 하면 좋지 않아요?”
우린 살아가면서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 내 마음’을 헤아려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표현하지 않은 마음’을 헤아리는 건 쉬운 게 아니다. 그러다가 서로 오해가 되고, 섭섭한 마음이 찾아온다. 솔직한 마음과 감정을 표현해 주는 게 좋다. ‘나는 이렇게 하고 싶다’고. ‘당신이 이렇게 해 주면 좋겠다’고. ‘난 이걸 원한다’고. 그런데 아내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런 정도로 배우자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배려해 주는 것쯤은 기본이 아닌가요?”
그렇다. 살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요구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필요를 알아차리는 민감함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속내를 읽어주는 섬세함도 중요하다. 엎드려 절받기보다는 배우자의 헤아림과 배려심을 통해 사랑의 마음을 전달받고 싶은 거니까.
어느 토요일이었다.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아내가 거실에 있는 작은 창문을 열면서 말했다. “자기, 저기 사고 났다. 엄청 크게 소리가 나서 우리 집을 부수는 줄 알았어.” 출근하면서 봤더니 차 후미 양쪽이 깡통처럼 찌그러져 엉망진창이 되었다. “어떻게 양쪽이 저렇게 될 수가 있냐?”
알고 보니 상황은 이랬다. 뒤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들이받고, 뒤쪽에 있는 전봇대를 또 다시 들이받은 것이다. 전진기어를 넣는다는 게 후진기어를 넣어 뒤차를 받았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당황했는지 후진을 하다가 다시 뒤쪽에 있는 전봇대를 들이받아 반대편 뒷면이 찌그러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게 있다. 남편이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아내에게 말했다. “뒤차가 외제차가 아니니 천만다행이네.” 그 말을 듣고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와~ 그 남자 정말 괜찮네!” 그러자 아내가 나에게 말했다. “세상에 예수 안 믿어도 괜찮은 남자 많아~”
물어 보고 싶다. ‘혹시 예수 안 믿는 남자보다도 못한 남편·아내는 아닌가?’
부부들은 점검해 봐야 한다. 부부 행복에 이상이 없는지? 부부 행복에 이상이 생기면, 부모에게도, 자녀에게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러니 목숨 걸고 부부의 행복부터 챙겨야 한다.
그런데 부부가 행복한 동행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았는데도 여전히 서로의 속내를 읽는 게 쉽지 않다.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 더구나 남자들에게는 그런 섬세함이 없다. 그래서 서운해질 수 있다.
가정의 달에, 한번 점검해 보자. 우리 부부가 걸어가고 있는 행복 여행에는 이상이 없는지? 우리 가정의 울타리를 작은 여우가 공략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는 이 땅에 두 개의 천국 모델하우스를 만들어가야 한다. 하나는 가정이요, 다른 하나는 교회이다. 주님이 주인 되시고, 성령님이 통치하셔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복된 가정으로 회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