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생사관(3) 고등종교들의 생사관 [1] 불교
Ⅲ. 고등종교들의 생사관
1. 불교의 인간관과 생사관
불교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아를 찾는 종교이고,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죄와 타락의 문제를 해결하는 종교가 아니라 업보와 윤회·전생에서 도망쳐 나오는 법을 추구하는 종교이다. 불교는 인생의 고(苦)에서 탈출하려는 무신론적 현실 해결주의에 기울어져 있고, 처음부터 철저한 무신론이었다.
불교의 생사관을 설명하는 12인연은 석가모니가 6년 고행 끝에 깨달은 존재론이며 세계관이다. 석가모니는 인간이 태어나 늙고 죽는 이치를 타(他)와의 관계에서 발견했고, 그것이 연기(緣起)의 법칙이다. “이것이 있으려면 저것이 있어야 하고, 저것이 있으려면 이것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나고, 저것이 일어남으로 이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이 없어지고, 저것이 없어지면 이것이 없어진다”는 원리이다.
20세기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큰 승려’ 이성철은 1966년 11월 1일 조선일보에 실린 故 서남동 박사의 글 “성부가 죽고 성자로 나타났고, 다시 성자는 죽고 성령으로 나타났다는 것”과, “역사적 예수가 또 형태 변화를 해서 만인의 얼굴과 눈으로 분신 화신하는 성령이 되었다”는 ‘기독교 무신론’, 즉 양태론적 진술을 인용하고, 불교의 윤회론과 자신의 범신론까지 혼합하여 자신의 인간론과 생사관을 반영하였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죽어서 없고, 예수도 죽어서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죽고 없지만 그냥 없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가 형태 변화를 해서 성령으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분신 화신하고 있다고 합니다. 각 사람마다 다 성령이 있으니 … 초월신이 아닌 인간에 내재한 내재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인간이 하나님이고, 인간 속에 하나님의 절대성이 들어 있음을 말합니다. 불교에서 모든 사람에게 다 불성이 있다는 것과 통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성령과 인간의 마음과 불성을 모두 동일시하였다. 그는 성령을 예수의 분신 화신으로 해석했고 범신론적으로 이해했다.
불교적 윤회사상에 젖어 있는 그는 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자기 제자에게 배반당하고 그 마지막을 마쳤습니다. 그것은 다 전생에 죄만 많이 짓다 금생에 왔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라며 예수를 6도를 왕생하는 중생 중 하나로 보았다.
이성철은 상대적이고 유한한 현실세계 그대로가 곧 절대의 세계이고, 이 세계를 벗어나 따로 절대의 세계가 없으며, 원래 “앉은 자리 선 자리 이대로가 극락세계, 황금세계, 절대세계”라고도 하고(143f.), “우주 창조자 하나님”이, “내 품 안에 계시고”, 그래서 나와 하나님은 일체라고 주장하였다(185).
뿐만 아니라 성철은 창조자 즉 초월자가 없는 전통 불교철학의 자기초월(無我, 非我)의 목표에 머물지 않고, 한층 더 상승시켜, 나는 有無로 형성된 “저 우주 밖의 것”이라며 “우주초월”을 주장하고 있다(188). 그의 우주초월이라는 말은 전통적인 불교적 세계관을 뛰어 넘어, 유일신론과 창조신앙을 가진 기독교 세계관과 창조주 하나님의 자리를 정복하는 개념이다.
“초절대적인 신성불가침의 나”는 심즉불(心卽佛), 인내천(人乃天), 범시아(滼是我)이므로, 노력하여 “하나님이 되며” 부지런하여 “전능자가 되어야 할 것”을 주장한다(187-189). 동시에 성철은 부처와 마귀를 동일시하여, “몸은 하나인데 이름이 다를 뿐”이라고 “소나 돼지 같은 짐승까지도… 부처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하여 서로 존경하라고 가르쳤다(55-61).
그는 한편으로 마음이 부처이고 신이며 우주라 하고, 마음만이 전지전능하고 모든 것을 만드는 실재이며 주재자라며, 한편으로는 “부처도 꿈이고 예수도 꿈이고 지구 태양이 다 꿈”이라고 한다(181-184, 191). 위와 같이 성철은 마음만을 절대시하면서 다른 한편 그와 동격화한 신도 부정하고 부처도 부정했다. 그러나 그 절대시한 마음조차 아무것도 아니고, 또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고, 설명할 수 없고 생각해볼 수도 없다는 것이라고 한다(178-191).
“자기(自己)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 속의 잠꼬대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설사 하공이 무너지고 땅이 없어져도 자기는 항상 변합이 없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有形 無形 할 것 없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입니다. 그러므로 반짝이는 별, 춤추는 나비 등등이 모두 자기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하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함과 같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영원하므로 終末이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종말을 걱정하며 두려워하여 헤매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상은 힌두교 베단타의 범아일체(Brahman-Atman) 사상과 병행된다. 현실은 無가 아니라 有이고 “절대의 세계”이다. 이성철은 자기 마음이 부처이며, 신이며, 우주이며, 진리라고 하고, 또 자기 마음이 허공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고, “물질과 허공, 그 모든 존재 이전의 실재”라고 한다.
우리는 한국 불교 승려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성철이 자기를 “우주초월”의 경지에 올려놓은 것을 보면서, 죄를 벗지 못한 타락한 인간의 실상이 얼마나 교만한 것인가를 여실히 볼 수 있다. 사실상 모든 범신론자들의 종교적 목표가 주객합일의 신비(Mystik)를 통해 자기신격화를 꾀하려는 것이다.
이제 성철은 참 자아가 되려는 자기초월의 차원을 넘어, 우주초월이라는 자리에 인간의 자아(心)를 올려놓고, 우주 창조주를 완전히 거부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그 자리를 정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같이 전통불교 사상은 범신론적이며 일원론적 사고 구조를 갖고 있어, 기독교와 같은 창조신앙과는 전혀 관계 없는 종교다. 아시아 고등 종교에 초월이라는 개념이 있어도, 그것은 우주 초월이 아니라 참 자아를 실현하는 의미로서의 자기 초월만을 뜻할 뿐이다.
중국 고승 황벽이 절대자와의 합일의 신비에 대하여 “나는 절대자다”라고 고백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인도의 대통령이며(1962-1967) 힌두교인인 라다크리슈난(S. Radakrishnan)이 “참 자아”(Atman)를 신(神)이라 한 것과 같고, 비베카난다(S. Vivekananda)가 “참 창조자이며 세계 통치자는 바로 인간의 자아이다”, “우리가 신께 경배하는 동안 우리는 언제나 우리 속에 숨겨져 있는 자아에게 경배했다”고 고백하며, 나는 “모든 것을 포괄하고 영원하고 무한하다”고 고백한 것과 병행되는 사상이다.
2. 불교와 무교 혼합주의 생사관
무교와 불교가 혼합된 한국 고유의 종교는 신라 진흥왕에 의해 창립되었다. 한국 고유의 혼합종교 화랑도에서 발견되는 사후신앙은, 그들이 죽은 후 그들의 수호신이자 스승인 미륵 곁으로 환생한다는 신앙이다. 또 그들은 미륵과 함께 이 세상에 다시 와서 이 땅을 불국토가 되게 한다고도 믿었다.
그들은 미륵 동상 앞에서 소원을 빌고 맹세하며 “우리 부처님께서는 화랑으로 화신하시어 이 세상에 나타나시어 제가 늘 부처님의 얼굴을 뵈옵고 곁에서 시중하도록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 661년 즉위한 문무왕은 죽은 후 불법(佛法)을 만들어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겠다며 ‘동해의 큰 바위 위에 장사하도록’ 유언했다. 이는 무교의 사후 귀신신앙과 불교의 윤회 사상이 혼합된 형태로 이해된다.
샤머니즘에서는 용을 대개 물의 신(水神)으로 섬기며, 뱀 형상의 신으로 생각한다. 용왕은 바다에 살고 용부인, 용궁아가씨, 용장군, 용궁대감, 용궁대신들이 큰 구렁이와 함께 숭배된다. 한국 불교에서 용은 사람에게 나타나 영혼을 사로잡고, 할 일을 지시하고, 나라를 보호하는 신으로 숭배되었다. 진흥왕이 황룡의 지시를 받고 황룡사를 건립한 것과 같다.
이렇듯 한국 불교는 샤머니즘과 혼합주의가 되었고, 귀신과 잡신숭배, 마술, 염불이 뒤섞여 발전되었다. 고려의 태조는 즉위하자마자 팔관회를 열고 천신, 산신, 용신에게 제사를 하였다. 고려 불교는 더욱 무교적으로 변천되었다. 이 팔관회는 추수감사제를 겸하여 고려 말까지 800년간 진행되면서 기복적 내지 수호적인 성격을 띠고 무교의 동일한 신앙대상들인 천신, 산신, 용신 등에게 제사하면서 외적의 침입을 막으려 했다.
팔관회와 함께 고려의 2대 법회인 연등회 역시 부처에게 제사하며 태평을 빌고, 3계의 신들에게 제사하고 재액을 떨어버리려는 법회이다. 이렇게 고려 불교는 무교적 신앙과 혼합되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의 불교를 이어받아 多佛신앙, 多神신앙, 주술신앙으로 발전하였다. <계속>
/이동주 박사(선교신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