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일어나는 교회의 수많은 크고 작은 문제의 원인은 대부분 목사들의 몫이다. 잘하면 목사의 기쁨이지만, 못하면 더더욱 목사의 책임이 크다. 이래저래 목사의 소임은 그야말로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여야 하는, 대단히 큰 몫인 것을 안다.
필자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많은 사역자들이 목사가 되기까지 학업과 책상 위에서 만들어진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이다. 그것이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세상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목회가 편향되고, 세상을 향하여 일할 사람들이 세상을 모르고 일하는 우스운 일이 된다는 사실이다. 낮고 천한 자와 가난한 자와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래서 많이 배우고 실력 있는 자들의 설교를 들어 보면 허공을 치는 경우가 많은데, 세상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인 것을 금방 알게 된다. 책상머리에서 세상을 이론적으로만 공부한 것이다. 실전 경험이 없이 세상을 다 이해한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어떤 목사가 설교 중에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이들은 도둑놈”이라고 외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는데, 대부분 그 같은 말을 한두 번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성경의 교훈이기 때문에 충분히 설교할 수 있지만, 현장의 삶 속에서 구슬땀과 피눈물 나는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철없는 목사의 외침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노동의 현장이나 삶을 경험하지 못한 목사들일수록 그러한 원색적인 표현으로 성도들을 도둑으로 내모는 담대한(?) 일이 허다하다. 자신이 모르는 세상이기 때문에 무식한 용감함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경우가 한두 건이라면 몰라도, 책상 앞에서 만들어진 목회자들이 대부분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요즘은 몇십 명 안 되는 교회라도 재정적인 여유가 있으면 담임목사는 그랜저를 탄다고 한다. 중고라고 하여도 그 정도는 타야 품위 유지가 되고 다른 목회자나 교회에 체면이 선다는 이야기를 한다. 소위 큰 교회 목사들은 최고급이다. 큰 회사 회장이 타고 다니는 그 이상의 고급차를 탄다. 업무상 필요한 것이라면 뭐라 말하겠는가?
교회에서 좀 잘 사는 몇몇 사람들이 자기들 수준에 맞추어서 “목회자가 그 정도 차는 타야 된다”고 고집하여서 그런다고 한다. 그러나 세속의 풍조에 밀려서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그런 사치에 밀려다니는가 싶어서 씁쓸하다.
주님이 보기에 합당한 목회를 하려면 낮은 자의 삶을 배우고 경험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를 배우고 유지하여야 한다. 많은 경우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리고 온갖 사치를 누리기 때문이다.
선교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별한 어려움이 없이 학업만 감당하다가 파송까지 받아 현장에 들어오면 고급화될 수밖에 없다. 현장을 누비면서 낯선 환경의 어려운 일이나 불편한 음식 등은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헌신하고 수고해야 하는 일을 회피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적당하게 말로써 가르치는 일이나 설교에만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나름대로 다양한 사회 현장의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시장통에서 장돌림 삼 년을 경험하고,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이 년 동안 근무할 기회를 가졌었다. 건축 현장에서 질통을 짊어지고 삼 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뼈 빠지게 일하고 번 돈으로 십일조 감사 헌금을 하는 일이 얼마나 떨리는가를 배우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삶의 현장 경험과 이해가 없다면 목회는 자연스럽게 고급화되고, 가진 자의 입장에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약자에 대한 이해나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가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부를 축적하고 누리는 일에는 익숙해져 가지만, 세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돈 몇 푼 던져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사회 속에서 이루어진 삶의 경험은 돈에 대한 인식을 다르게 한다. 청지기 의식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땀 흘리고 번 돈을 만져 보지 않은 사람은 돈에 대한 인식이 매우 천박한 것을 보게 된다. 특히 노동하며 벌지 않고 사례비를 받는 목사들은, 돈에 대한 인식이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내 주변의 목회자나 동료들 중에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안수까지 받은 이를 많이 보지 못하였다. 그들에게 복된 일이기도 하지만, 헌신과 봉사와 배려의 삶을 살아가야 하고 세상 속에서 사역해야 하는 일꾼으로서는 합당할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나는 한때 신학생들이 졸업을 하기 전에 병원에서 삼 개월 정도 봉사하는 과정을 거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것이 섬김의 훈련으로 매우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시장통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배우도록 하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세상을 배우는 데 있어서 그만큼 적합한 곳도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요즘은 너무나 쉽게, 할 일 없으면 목사가 되고, 일이 안 풀리면 목사가 되는 일들이 허다하여 가짜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한국교회 돈 문제 대부분은 이러한 훈련이 결여된 것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본다.
목사훈련을 다시 받아야 한다.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만 생각이라도 고쳐먹어야 한다. 목사이니까! 그래야 한국교회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분들에게 누가 되었다면 참으로 죄송하다. 한국교회를 염려하며 일반적인 상황을 이야기한 것이니 널리 양해를 구한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현장의 소리, 세르게이(모스크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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