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둔 모든 부모들이 꿈꾸고,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모든 학생들이 가고 싶어하는 학교가 있다.
S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지인이 있다. 아마 그의 동네에서는 경사 났다고 잔치를 했을 게다.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일이 있을 거라 기대했다. 좋은 직장에 취업을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직장을 그만뒀다. 그렇게 하길 몇 차례. 어느덧 나이가 30대 후반을 훌쩍 넘겼다. 물론 결혼도 못한 채. 매일 집안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주식을 한다나? 그 아들을 쳐다보는 엄마는 속에서 불이 치밀어 오른다. 젊은 시절 남편을 잃고, 아들 하나 보고 살아 온 인생인데. 이제 그 아들에게서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우리 인생에 최고의 자산이 무엇일까?’
캘리포니아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인 소나 류보머스키는, 인간관계가 행복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임을 이렇게 말한다. “행복과 관련된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내용은, 행복한 사람은 덜 행복한 사람들보다 더 좋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어디 행복 뿐인가? 카네기기술연구소에서 발표한 연구 자료에 의하면, 성공적인 인생의 변수도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 “엔지니어링과 같은 기술 분야에서도 재정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 중 15%는 자신의 기술적 지식에 의한 것이고, 85% 정도는 인간 조종술, 즉 사람을 움직이는 능력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성공의 공식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 재미있는 사실도 있다. 하버드 의대에서 이런 연구를 한 적이 있다. 126명의 아주 건강한 대학생들을 놓고 부모와 좋은 관계를 갖고 있는지, 즉 부모와 정기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를 했다. 그리고 35년이 흘러 이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과거 조사에서 부모가 자기와 시간을 잘 안 보내줘 관계가 나쁘다고 한 사람들의 90%가 고혈압, 위궤양, 알코올 중독 같은 심각한 병들을 앓고 있었다. 부모와 관계가 좋았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절반도 안 되는 45% 정도만이 건강하지 못했다. 부모와 좋지 않았던 사람들은 특히 암에 걸릴 확률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높았다.
부모가 다른 여러 가지 일에 바빠서 아이를 돌보는 일을 등한시하면, 나중에 아이들의 육체적 건강에 치명타가 온다. 정신적·영적 웰빙은 말할 것도 없다. 이쯤 되고 보니 개리 스몰리는 <관계 DNA>에서 “인생은 관계이고, 나머지 모든 것은 부수적인 것”이라고까지 했다.
좋은 관계는 그저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노력이 필요하다. 지혜와 기술도 동원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꾸준히 업그레이드시키는 노력이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데일 카네기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성인들에게 효과적인 화술 뿐 아니라, 일상적인 업무와 사회적 교제를 하는 데 있어 사람들과 잘 사귀는 기술에 대한 훈련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아주 절실하게 깨달았다.”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지식과 기술 뿐 아니라 훈련이 필요하다. 훈련을 하루아침에 끝내려 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많은 시간 동안 집중해야 할 과정이다.
대인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원래 성격적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해. 성격대로 사는 거지 뭐.” 그런데 문제는 성격대로, 태생대로 살다 보니 직장생활도 사업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더불어 살아가는 게 너무 어렵다. 그러니 영적인 성장도, 공동체 안에서의 섬김과 기여도 할 수 없다. 그저 구경꾼처럼 왔다 갔다만 하는 객으로 신앙생활을 할 뿐이다.
그런데 존 록펠러가 하는 말을 들어 보라. “사람을 다루는 능력은 설탕이나 커피 등의 공산품처럼 구입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나는 세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 그러한 능력에 대해 더 많이 지불하겠다.” 좋은 관계를 맺어가는 기술은 누구나 가질 수 있고 훈련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한다. 남보다 나은 학벌이나 자격을 취득하려 애쓴다. 외모를 꾸미기 위해 적잖은 돈을 투자하고, 그에 따른 고통도 감수한다. 출세를 위해 빠져서는 안 될, 고가의 액세서리이니까.
그런데 그 어떤 자격이나 능력보다 우선적으로 점검해야 할 건 바로 관계이다. 관계를 점검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미래를 가늠할 수 없다. 성공적인 사회생활이나 풍성한 신앙생활을 하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관계를 맺는 기술을 습득하고, 관계를 좋게 하려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좋은 관계야말로 인생의 최고 자산이니까.
좋은 관계를 통해 아름다운 인생을 꾸미려 한다면, 무엇보다 관계를 맺는 저변의 힘인 마음을 아름답게 단장해야 한다. 모든 게 마음에서 나오니까.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도 마음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사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마음에 의해 조종된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여인들에게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어 외모를 단장하려고 애쓰기보다 마음에 숨은 사람을 단장해야 한다고 말한다(벧전 3:3-4).
영성을 말할 때 우리는 균형을 잡아야 한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가 좋고, 사람들과의 수평적 관계가 바를 때 진정한 영성이 나온다. 영적인 삶이란 바로 두 날개가 건강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는 좋은데 대인관계를 재대로 맺지 못한다. 또 어떤 사람은 대인관계는 잘 맺는데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다. 좌우로 치우친 영성이다. 바른 영성은 하나님과도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가야 한다.
천국은 관계에서 경험된다. 그 관계를 좋게 하는 것은 마음이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천국이 아닐까?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가족들이 있다면 가정은 천국이 된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사회라면 거기서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성도가 모인 교회라면, 거기서 천국을 맛보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마음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리스도와 성령의 통치 아래 머물 때 가능하다. 말씀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일 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그렇게 살려고 헌신할 때 가능하다.
어떤 사람은 가까이하고 싶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멀리하고 싶다.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와 멀리하고 싶은 사람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천부적 조건들이 그렇게 만드는 건 아니다. 성공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그저 이루어지는 인생의 부산물이 아니다. 끊임없이 노력한 땀의 결정체이다.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만이 이룰 수 있다. 배우고자 하는 진지한 갈망을 가진 자만이 얻을 수 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길 줄 아는 사람, 손해를 보면서도 히죽히죽 웃을 수 있는 사람, 남들이 자신을 욕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되받아칠 줄 모르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갈 줄 아는 사람. 남의 필요 때문에 자신의 필요를 좀 미뤄 둘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들지 않는 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