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칼럼] 배려와 인내의 조화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여름철에 들어섰다. 개인적으로는 더위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개인적인 우려보다 사회적인 불편함과 불안함이 더 심각하다. 사람들의 시선을 자극하는 노출들이 심해진다. 짧아지는 여성들의 치마를 노리는 파렴치범들의 극성도 만만치 않다. 취객들이 누우면 안방이 될 수 있는 적당한 날씨지만, 그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한 이런저런 사건들도 늘어날 것이고, 유흥지에서 벌이는 사람들의 추태도 꼴사납다. 남들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인간 심리에서 나오는 불편함이다.

최근 30대 남성 A씨가 옆집에 사는 50대 남성 B씨를 때려 살해했다. 이웃 간에 왜? 얼마 전 A씨가 B씨 옆집으로 이사를 왔다. 어느 날 B씨가 새벽 시간에 텔레비전을 켰다. 옆집에 사는 A씨에게는 시끄럽게 느껴졌다. A씨는 참다 못해 옆집으로 달려갔다. B씨 집 앞에서 TV 소리를 낮추라고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했다. 그러자 B씨도 화가 났던지, 볼륨을 줄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화가 치민 A씨는 담을 넘어 이웃집으로 들어갔다. B씨의 가슴과 머리를 때렸다. B씨가 쓰러지자 그의 머리를 수 차례 밟았다. 그리고 집으로 도망쳐 버렸다. B씨는 쓰러진 채 결국 죽고 말았다. A씨는 범행 동기를 진술했다. “집에 있는데 TV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술을 마신 상태에서 흥분해 우발적으로 그랬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명을 갈취한 범죄를 술에 취해서 그랬다는 한 마디로 덮어버릴 수는 없다.

나이가 들었다고 성인이라 할 수 없다. 나이에 걸맞게 성숙됨을 가져야 성인이라 할 수 있다. 성인이라 하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행동이나 태도에 대한 선택을 남들을 의식하며 할 수 있는 분별력도 있어야 한다. 내가 좋다고 다 할 순 없다. 내가 원한다고 아무렇게나 살아서도 안 된다. 왜? 나는 사회 속에 한 구성원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존립되려면 ‘나’ 뿐만 아니라 ‘너’를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나와 너의 관계는 그저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여기에는 상호 배려와 이해와 용납이 필요하다. 너를 위한 나의 통제가 되지 않고서는 건강한 사회가 있을 수 없다. 너를 위한 나의 불편함이 있을 때 타인의 괴로움을 덜어 줄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위해 너의 불편함을 감수하라고 강요한다. 나를 위해 너의 불이익을 참으라고 말한다. 공생관계가 이루어지려면 참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불편함과 불이익을 주지 않으려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더구나 불편함과 불이익이 거듭 강요를 당한다면, 그것을 참아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나의 행복과 편리를 위해 남의 희생을 강요한다면, 그건 너무 이기적인 발상이요 태도이다.

우리가 사는 빌라는 길 옆에 있다. 그러다 보니 여름이 되면 불편한 것들이 많다. 덥다 보니 창문을 연다. 그러면 우리 집 옆에 버리는 쓰레기 더미에서 나는 악취가 장난이 아니다. 더구나 분리수거도 하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를 불법으로 투기하는 자들이 많다. 검정 비닐봉지에 쓰레기를 넣어 아침에 출근하면서 툭 던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치민다. 부패한 음식에서 나오는 악취가 바로 옆에 있는 우리 집으로 몰려 오니까. 그래서 아무리 더워도 한쪽 창문은 닫아 둔다.

창문을 열면 자그마한 소리도 확성기처럼 들린다. 지나가는 차량 소리,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와 말소리까지도. 이런 것들이야 어찌하랴. 그들의 통행을 막을 수는 없으니.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게다. 그런데 옆집에서 말하는 소리도 같은 방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리니 괴롭다. 더구나 우리 옆집에 사는 이들은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모른다. 조곤조곤 이야기해도 될 법한데 소리를 높인다. 그렇다고 어쩌다 싸워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일상인데 고성에 가깝다.

더구나 여름이면 우리네 신경을 더 날카롭게 하는 게 있다. 바로 옆집에 사는 이들이 하는 마작 놀음이다. 금요일만 되면 사람들이 모여든다. “외국생활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그리워서 그렇겠지” 생각하면서 참아 보려고도 한다. 그래도 너무하다. 금요일 저녁부터 주일 저녁까지 줄기차게 마작을 한다. 밤을 꼬박 새운다. 새벽기도를 갈 때까지 불을 켜 놓고, 창문을 열어 놓고 하니 ‘드르륵 드르륵’ 하는 소리가 얼마나 귀에 거슬리는지 모른다. 또 그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게다가 아이들 소리까지 합세하면 정말 짜증이 난다. 올 여름에도 이미 그 전쟁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저녁 9시쯤 되면 문을 닫는다. 이상해서 아내에게 물었다. “웬일이야?” 아내가 대답한다. “얼마 전에 3층 아저씨가 화가 나서 술을 마시고 가서 한 마디 했더니, 그때부터 저녁 9시쯤 되면 문을 닫는 것 같아.” 난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네.”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있다. 하나는 상대방을 위한 세심한 배려의 마음이다. 자기 편리와 이익에 눈이 멀면 곤란하다.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만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 자기 맘대로 하는 사람들 곁에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불행하다. 공동체 삶이 가능하려면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해 주어야 한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 못지않게 공동체에 필요한 요소가 있다. 서로 이해하고 참아 주는 마음이다. 때로는 상대방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눈감아 줄 줄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의 행동을 어떻게 다 따지고 고치며 살겠는가? 이런저런 불편함을 토로하는 나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함과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니던가. 단지 내가 느끼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할 뿐.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역시 다른 사람들이 주는 불편함과 불이익을 참아 주고 감수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공존할 수 없다.

혹시 불편함을 참아 주고 불이익을 감수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 ‘이젠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따지고 문제 제기하는 방법을 잘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침착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극단적인 말이나 행동은 피해야 한다. 더구나 술기운을 빌어 대응하다 보면 반드시 문제를 악화시킨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술에 취하기보다는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수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너의 문제’를 지적할 때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도 그렇지 않은가를 고려하면서 문제를 수습하려고 애써야 한다. 자신도 그러면서 상대방에게 문제 제기를 하고 잘못을 다루려고 할 때, 상대방은 더 화가 치밀 수 있다. 그래서 상대방의 문제를 인식하기 전에 자신의 문제부터 성찰하는 게 필요하다.

이웃 주민들 이야기를 하면서 나도 생각해 본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에게 당부했던 말씀을.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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